망각의 즐거움
임희택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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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읽기도 특정 분야를 몰아서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의 책읽기는 ‘기억’에 몰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이기도 합니다만, 최근 탈리 샤롯의 <설계된 망각>,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이어 임희택원장님의 <망각의 즐거움>입니다. 망각의 의미는 <설계된 망각>에서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 많이 정리가 된 셈입니다. 즉 인간은 긍정적 기대, 즉 낙관편향이 생존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확인되었는데, “낙관편향은 미래에 틀림없이 닥쳐올 고통과 고난을 정확하게 지각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인생의 선택권을 제한된 것으로 보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이런 낙관편향을 유지하기 위해 뇌는 무의식적 망각을 설계해두었다. 그 결과, 스트레스와 불안이 줄면서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 행동하고 생산하려는 동기가 강해진다.(탈리 샤롯지음, 설계된 망각, 16쪽)”고 정리하였습니다.

 

스트레스를 연구하는 임희택원장은 만병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망각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망각의 즐거움>은 스트레스에 관한 다양한 사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관하여 저자가 알게된 몇 가지 사실은, 첫째, 몸과 마음은 생각했던 것보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 둘째, 잊어버린다는 것이 기억하는 능력보다 인간에게 더 중요하다는 것, 셋째, 우리를 강력하게 붙잡아두는 신념이나 원칙, 진리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등입니다. 스트레스에 관한 문제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망각의 중요성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생각을 한다는 것, 그 생각은 기억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생각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고통을 불러오는 것인데, 이를 버린다면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찾아낸 구절,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모든 속박으로부터 그대 자신을 해방시켜라. 그리고 존재하라(33쪽)”가 바로 정답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2장을 통하여 망각의 효능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으로 인하여 받게 되는 스트레스의 기전에 대하여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는 개인의 심리적 환경에 달려있다.’고 전제하고, 승화, 억압, 투사, 전위, 합리화, 반동형성, 그리고 퇴행 등 일곱 가지의 기제를 가지고 스트레스에 대처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 욕망, 개인화, 비교, 불만, 그리고 분노 등을 잊어야 생각으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서문의 말미에 “솔직히 말하자면, 망각은 어떤 면으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전제하였습니다. 자신이 온전하게 망각하면서 살아보았더니 몸과 마음은 확실하게 편안해졌지만, 기억력이 떨어지고 나태해지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적절한 망각이 해답이라는 것입니다. 적절한 망각이란 바로 몰입인데, 몰입은 망각과 기억 사이의 중용이라고 보았습니다. 특정사안에 몰입하는 경우에 다른 것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몰입은 완전한 무지도 아니고, 너무많은 생각도, 잡념도 아닌 어느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얻는, 없음과 많음의 적절한 알맞음이다.(272쪽)“라고 정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자의 생각이 뇌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방대한 책읽기에 놀라게 됩니다. 책의 말미에 17종의 참고문헌 목록을 정리해두었습니다만, 그밖에도 헤아일 수 없는 다양한 경구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인용문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인용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놓다보니 자칫 논점이 흩어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는 점입니다.

 

정리해보면, 기억을 바탕으로 한 생각에 매달리면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안을 설명하고 있는데, 망각도 그 해결방안의 하나일 수 있지만, 기억과 망각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몰입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하고 있어 <망각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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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 한 기억술사의 삶으로 본 기억의 심리학
알렉산드르 R. 루리야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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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시원치 않은 사람들은 한번 듣거나 본 것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고 고통을 회피하기 위하여 망각기능이 발전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탈리 샤롯 지음, 설계된 망각; http://blog.joins.com/yang412/13173328) 그래도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부럽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돌이켜 보면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여 역사가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특히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하기 마련이었는데, 그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기억전달자; http://blog.joins.com/yang412/12811323>라는 판타스틱 소설도 있었습니다. 기억술사라고 부르는 뛰어난 기억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적지 않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피터 매칼리스터가 <남성퇴화보고서; http://blog.joins.com/yang412/12812543>에서 인용하고 있는 언어학자 로드와 페리의 연구에서는 세르비아의 몬테네그로의 구슬라르(세르비아의 서사시를 구비전승하는 사람들) 전통을 조사하였는데, 아브도 메데도빅이라고 하는 문맹의 도축업자는 놀랍게도 58개의 서사시를 암송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그는 35만 476행의 시를 외우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기억이 뛰어난 사람들은 물론 타고나는 것일 터인데, 기억하는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리고 뛰어난 기억력으로 인한 문제점은 없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러시아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아의 연구를 통해서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뇌부상으로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남자의 사례를 밀착해서 관찰한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17429>를 통하여 그의 낭만주의과학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만, 기억상실로 고통받는 환자와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과잉기억증후군의 환자를 비교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루리야는 기억술사라고 부르는 환자를 만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그가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그의 의식과 정신세계, 그리고 그의 행동을 조절하는 방법 등에 대하여 적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오랜기간 동안 환자를 관찰하고 환자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환자의 기억능력이 형성되는 과정과 문제점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의 사례에 대한 기록을 과학적 관찰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의학에서는 이런 접근방식을 사례보고라고 하고 이런 사례들이 축적되면 공통점을 찾아서 그러한 공통점이 나타나게 되는 기전을 뒤쫓는 연구방식을 과학적 연구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루리야가 관찰한 기억술사는 기억용량은 물론이고 획득한 기억의 지속성도 무한해보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머릿속에 쌓여가는 기억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없었을까요? 루리야의 관찰에 따르면 연구대상이 된 기억술사는 단어와 숫자를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났는데 그는 이를 회화적 개념과 공감각적 반응을 이용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기억술사는 사람의 얼굴처럼 기분에 따라서 변화하는 대상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은유나 비유가 많은 시나 문학작품은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억이 많아지면서 이미 기억되어 있는 사항과 상충하는 경우에 이것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망각의 기술이었다고 하는데 성공여부는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억술사의 어린시절의 기억을 뒤쫓는 장면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였습니다. (…) 제 요람은 작은 침대 양 옆에 창살 모양의 난간이 있는 것이었고, 아래쪽은 고리버들 장식을 따라 둥글게 되어 있어서 흔들흔들 움직였습니다.(107쪽)”라는 기억술사의 진술을 읽다보면 바로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쪽으로;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의 도입부에서 옛날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정리하면, 기억의 기전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기억하는 비법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으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기억도 망각이라는 보완장치가 작동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있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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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클래식 - 우리 시대 지식인 101명이 뽑은 인생을 바꾼 고전
정민 외 36명 지음, 어수웅 엮음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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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조선일보에서 기획하여 책읽는 분들의 큰 관심을 모았던 <파워클래식>이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 101명이 뽑은 인생을 바꾼 고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파워클래식은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책말미에 소개하고 있는 101분으로부터 세권의 고전을 추천받고, 이 가운데 가려 뽑은 고전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각계의 명사들이 자신과 그 책과의 내밀한 인연을 담은 글을 매주 월요일 소개해왔다고 합니다. <파워클래식>에서는 그 가운데 가려 뽑은 37권의 글과 기획하신 어수웅기자님이 해당 고전과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책을 읽은 분들 가운데 왜 나에게는 추천의뢰나 집필의뢰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생길법 합니다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당연한 선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이 대부분입니다만, 어떤 책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이 책도 뽑혔구나’ 싶은 책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 기획이 진행되면서 많은 독서인들이 뜨겁게 호응했다고 엮은이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저 역시 열심히 지켜보고 참여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을 따라 읽거나 읽을 준비를 하고 있는 책도 10권이나 됩니다. 그리고 예전에 읽은 책들도 11권 정도 되는 것으로 보아서 선정된 대부분의 책들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역시 서문에 소개된 것처럼 선정된 책을 두고 진행된 북콘서트에도 참석한 적도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님과 문학평론가 강유정님이 진행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습니다. 열혈독자들이 그리 좁지 않아 보이는 객석을 가득 채운 가운데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된 북콘서트는 작가에 대하여 그리고 작품에 대하여 인식의 깊이를 더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2847499).

 

이번 기획을 위하여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고 ‘자유’에 대한 조르바식 질문에 견디다 못해서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교수님과 같은 파격적 감동까지는 몰라도 그리스 사람의 역사인식과 삶에 대한 생각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어서부터 즐겨듣던 노래< 조르바의 춤>도 다시 찾아 듣게 되었습니다. 덧붙인다면 김정운교수님의 경우처럼 책을 읽는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뻐꾸기둥지 위로 날아간 새>처럼 원작이 아닌 영화로 만난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 http://blog.joins.com/yang412/13089182>처럼 원작을 다시 해석한 경우에는 재해석된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도 충분히 즐길만 하지만, 그래도 영화만으로는 원작의 깊이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기에 원작을 찾아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니 <안나 카레니나>는 <파워 클래식>에서도 다룬 작품입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님은 “안나는 소위 불륜을 불륜답지 않게 온몸으로 실천했기에 유죄이자 무죄이다.(109쪽)”라고 적었습니다만, 저의 경우는 단순히 감성적 사랑과 이성적 사랑을 대비시키는 구도보다는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생각을 많이 한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076051).

 

이 점에 대해서 엮은이도 “소설은 안나가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장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레빈의 도덕적 탐색 및 개인과 공동의 생활을 새롭게 하려는 시도로 끝난다. 여러 겹으로 읽을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읽는 독자에 따라서 혹은 같은 독자라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에 담은 37권의 고전을 소개하는 이는 어떻게 읽었고 내가 읽은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고전을 가늠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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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과 생명윤리 - 생명과 과학의 공존을 바라보다 생명문화총서 2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엮음 / 한국학술정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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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무의미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 초안’에 대한 공청회가 지난 5월 29일 연세의대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공청회에서 의료계, 종교계, 환자단체들은 모두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중단을 결정하는 절차가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인식을 같이했지만 이를 법제화하는 것에는 입장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종교계는 이 제도가 소극적 안락사로 변질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를, 환자단체에서는 환자와 가족이 치료 중단 선택을 사실상 강요당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지난해 말 건강보험공단과 병원협회가 수가협상을 진행하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는 부대조건에 합의하였다는 소식이 전달되면서 일었던 의료윤리문제의 논란의 여진이 남아있는 탓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체결된 부대합의문에 명시된 ‘협회는 만성질환 예방 및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등 국민운동을 전개한다. 단, 목표지표를 설정하고 그 성과에 대한 별도의 인센티브를 고려할 수 있다’는 조항이 해석에 따라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의 문제를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보라매사건을 계기로 의료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져왔던 연명치료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고, 세브란스병원의 김할머니사건을 통하여 법률적 판단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되기까지 연명치료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연구가 진행되어 이제는 제도화에 이르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의학의 발전에 따라 과거에는 문제되지 않던 다양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의료현장에서 부딪히는 윤리문제들은 이제 의료계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두고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고 최선의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화두로 하여 종교, 인문학, 사회과학, 생태학, 의학, 자연과학 등의 영역에서 생명과 반생명에 관한 담론을 이끌면서 대안적 생명문화들을 연구해온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가 내놓은 <생명과학과 생명윤리>에 관심이 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생명과 과학의 공존을 바라보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는 생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시작으로, 뇌사판정의 기준문제, 연명치료 문제, 재생의학, 줄기세포연구와 관련한 난자에 대한 인식, 유전자특허에 관한 윤리적 논의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편집을 맡은 심현주박사는 생명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수용하는 자세가 변하고 있어 이와 같은 논의가 필요하게 된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편집자가 쓴 서론의 모두에 인용되어 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슈의 필요성을 압축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죽음의 진실을 점점 더 두려워하고 부정하게 되었다. 사회적 의미에서 죽음의 부정은 사람들에게 살아갈 희망과 목적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켰고,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키웠다. 미래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직결되는 신체 기관들을 기계로 대체하고 생명을 연장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삶과 죽음, 장기기증과 수혜자에 관한 논란 역시 복잡해질 것이다. 법적, 도덕적, 윤리적, 심리적 문제들이 제기될 것이고 인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수없이 많은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9쪽)”

 

먼저 생명론에 대한 논의에서 소광희교수님은 과학적, 철학적, 종교적 차원에서 생명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온 과정을 요약하였습니다. 종교적 차원의 생명에 대한 인식을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생명을 물활론적, 즉 범생명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철학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삶의 방식, 즉 윤리적인데 관심을 두고, 과학적 차원(주로 생물학)에서는 층구조에 기반한 기계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진화론의 대두로 이런 설명이 가능해졌다고 보았습니다. 필자는 생명존중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되 그 사랑은 인간에 국한되어서는 안되며 자연에까지 연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생명과학은 인간을 비롯한 생물계의 본질을 규명하는데, 즉 자연을 아는데 공헌해야 하며, 윤리학은 생명보호에 앞장서고, 종교는 하찮은 미생물도 신의 의해 창조된 거신 만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고귀한 심성의 교화에 힘써야 할 것이라 결론짓고 있습니다.

 

맹광호교수님은 논의의 대상을 인간의 생명으로 좁혀서 의학적 측면에서의 인간생명을 논하고 있습니다. 의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생명과 그 생명현상을 보호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왔지만, 인간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는 수동적인 자세를 견지해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계론적 생명관이 대두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인공적 피임기술과 인공임신중절수술 기술, 인공수정과 시험관아기 출산기술, 태아진단 기술, 장기이식을 포함한 생명연장 기술 생명체의 합작과 조작 기술, 그리고 안락사 시술 등이 있습니다.

 

맹교수님은 기술이란 일단 개발되면 빠르게 확산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의학분야의 기술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문제라서 기술의 발전을 기다리는 환자가 항상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확산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라고 전제하고, 올바른 의학적 생명관의 정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인류문명의 역사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인간의 본래적 존엄성마저 잃게 하는 기술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경향을 경고하고, 인간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모든 학문과 기술은 결국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역사적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장기이식술의 발전에 따라 사망의 기준이 전통적으로 내려온 심장사(心臟死)에서 뇌사(腦死)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뇌사의 정의에 대한 하버드 의대 위원회 보고서>를 계기로 ‘회복 불가능한 혼수상태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서’ 인정하자는 입장으로 전환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한없이 계속되는 혼수상태가 환자와 환자가족 및 의료자원에 지우고 있는 부담을 줄이고, 이식수술용 장기의 획득을 둘러싼 논쟁을 피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뇌사와 장기은행과 관련하여 죽음을 실용적으로 재정의하게 된 것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북소리]에서도 다루었던 한스 요나스교수님의 <기술 의학 윤리; http://blog.joins.com/yang412/12420243>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요나스교수님이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행해지는 죽음의 대한 규정은 더욱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 무슨 일이 있어도 환자는 의사가 그의 사형집행인이 되거나 그의 죽음을 정의할 수 있도록 전권을 위임해서는 안된다.(한스 요나스 지음, 기술 의학 윤리, 215쪽)” 라고 한 이유는 우리가 아직 삶과 죽음 사이의 정확한 경계선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톨릭교회가 뇌사판정에 관하여 아직까지 공식적 가르침을 공표한 바 없음에도 로마 알폰시아눔 대학원의 윌리엄 비히교수님은 뇌사판정의 기준에 관한 윤리적 검토를 통하여 “죽음이 일어난 후에 자신의 기관을 기증함으로써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삶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는 거룩한 행위이다.(84쪽)”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생명유지를 위한 의무의 한계와 죽음의 판정 및 기준에 관하여 광범위한 고찰을 통하여 죽음판정을 위한 뇌사기준은 충분히 발전되어 왔고 타당한 정의가 내려져 있다고 보기 때문에,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뇌사판정의 기준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신빙성과 확실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습니다.(83쪽)

 

앞서 인용한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중단과도 관련된 사안은 울산의대의 김장한교수님이 다루고 있습니다. 뇌사, 존엄사, 지속적 식물인간상태를 정의하고 카렌 퀸란양과 낸시 크루잔양의 사례를 인용하여 치료중단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지속적 식물상태에 대한 의학적 접근으로는 식물상태를 진단하는 기준에 관하여 임상증상과 진단에 필요한 최소관찰기간, 진단기준을 적용하는 나이 등을 고찰하고,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에 대한 치료수준 그리고 환자 가족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 등을 논하였습니다. 존엄사의 본질이 ‘삶의 질’의 측면에서 본 생명유지에 대한 가치평가이며,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연장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미끄러운 비탈길’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인용의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개진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결손을 해결하거나 파킨슨병, 루게릭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과 같은 난치성질환을 치유하는 방안으로 생체이식, 인공장기의 이식, 자체복원력의 극대화에 의한 자연적 치유 기술 등이 적용되고 있지만 아직 많은 제한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 생체 이식의 제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대두된 것이 줄기세포치료기술입니다. 줄기세포란, 무제한적인 분열 능력을 가지는 미분화상태의 세포로서 다양한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인체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실험실내에서 미니간을 만들어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172317).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에 따라서 성체줄기세포, 제대혈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배아줄기세포의 경우는 수정란에서 시작되는 배아로부터 얻는 것이기 때문에 수정란을 얻는 방법에서부터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과정에 대한 윤리적 문제와 배아줄기세포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에 관한 의학적 문제까지 산적해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무지의 공포에서 떨기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장래를 개척해 나가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130쪽)”고 맺은 김원선교수님의 글은 논의되어야할 사안들이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배아줄기세포 기술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난자의 제공에 대한 사회학적 측면의 문제를 파헤친 조주현교수님의 글에서는 여성의 재생산건강권(의학용어로서 reproduction은 재생산이라기보다는 생식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복제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한 남성이건 여성이건 독자적으로 인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원에서 난자제공을 다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지만 지나친 확대해석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배아복제기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교수님의 사건의 본질 가운데 하나였던, 연구원을 비롯한 자원자로부터 기증받은 혹은 매매를 통하여 얻은 난자로 실험이 이루어졌다는 의혹에서 나온 논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 해방후 국가가 주도한 출산과 관련된 제반정책을 보면 여성의 건강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서 발전하여 국가주의의 강화, 가부장적 가족의 유지, 그리고 출산의료기술의 확산 아래 여성의 모성이 도구화되어왔다는 주장은 논의점이 있다고 보입니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인간 유전자(DNA)는 ‘자연의 산물’이므로 특허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는 소식과 관련하여 가톨릭대학교의 이상헌교수님이 다룬 유전자 특허와 관련된 글도 관심이 가는 주제입니다.

 

요약하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관련분야에서 오랫동안 논의해온 것들인 까닭에 오래 전에 발표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출간을 앞둔 시점에서 최신지견을 반영하여 수정보완했다고 합니다. 생명과학은 뜀박질하는 상황에서 생명윤리의 논의는 거북이걸음이라는 느낌입니다만 그래도 꾸준한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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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2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2
고든 리빙스턴 지음, 노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든 리빙스턴의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세 번째 책입니다. 정신과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그는 참 매력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상담을 원하는 분들에게 다른 치료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은 삶이 주는 고통에 대하여 위로받고 명쾌한 해답을 듣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의 치료철학을 함축하고 있는 구절을 발견하였습니다. “삶은 때로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주고 시간과 운명의 무거운 짐을 견디어낼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도움을 주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위안을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44쪽)” 이런 그의 철학은 두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고통을 겪었고 베트남전에서 많은 죽음을 직접 목격하였기에 얻은 것이라서 더욱 절절한 것 같습니다.

 

심리상담은 보통 소크라테스식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심리치료사는 적절한 질문을 던져서 상담을 받는 분들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상담을 받는 사람들은 치료사가 특별한 조언을 해주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치료사들이 그런 인식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신과의사로서 그는 상담하고 약물을 처방하는 전통방식의 효과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가 변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져야만 변화의 물꼬를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수면제를 처방하기보다는 원인을 먼저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잠드는 것’을 환자의 관심 우선순위에서 낮추게 되면 초조한 기분이 사라지면서 잠을 잘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약물보다는 상담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생각하는 방식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찾았습니다. “만일 각종 매체들이 우리가 언제 어디서 광우병에 걸릴지 모른다고 두려움을 자극하면 스테이크를 먹는 즐거움을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135쪽)” 바로 2008년 우리사회를 혼란에 빠트렸던 제2차 광우병파동의 핵심을 짚은 것입니다. 아마 지금도 쇠고기를 먹지 않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광우병소가 처음 발견되었을 무렵 아마도 2004년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국립환경보건연구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만났던 분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확산된 가능성과 쇠고기를 먹는 문제를 물어보았지만, 큰 문제가 될 것 없다면서 쇠고기 먹는 것을 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미국의 도축시스템이 그때보다 더욱 강화된 시점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기회가 더 적을 우리나라에서 더 요란을 떤 셈입니다.

 

나이들어감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나이먹는 것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늙어간다는 사실을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하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 처지를 말하는 것 같은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회에 존재하는 세대간의 갈등을 감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노인들의 느린 동작과 무능함에 대한 농담들, 운전에 부적합한 나이가 얼마인지를 놓고 벌이는 토론, 나이를 근거로 한 폄하와 차별 등에서 언젠가 자신들도 늙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179쪽)”

 

“바로 그 늙은이들이 없었다면 자네 같은 젊은이들도 없었을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알려주고 싶습니다만 저자는 나이를 먹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때의 젊은이들에게 같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확연하게 드러난 우리사회의 세대간의 갈등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옮겨보았습니다.

 

인생은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의 결과이고, 지나간 잘못과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개선과 변화를 시도할 수 있기에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돌아보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 마음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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