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 한 기억술사의 삶으로 본 기억의 심리학
알렉산드르 R. 루리야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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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억이 시원치 않은 사람들은 한번 듣거나 본 것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고 고통을 회피하기 위하여 망각기능이 발전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탈리 샤롯 지음, 설계된 망각; http://blog.joins.com/yang412/13173328) 그래도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부럽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돌이켜 보면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여 역사가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특히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하기 마련이었는데, 그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기억전달자; http://blog.joins.com/yang412/12811323>라는 판타스틱 소설도 있었습니다. 기억술사라고 부르는 뛰어난 기억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적지 않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피터 매칼리스터가 <남성퇴화보고서; http://blog.joins.com/yang412/12812543>에서 인용하고 있는 언어학자 로드와 페리의 연구에서는 세르비아의 몬테네그로의 구슬라르(세르비아의 서사시를 구비전승하는 사람들) 전통을 조사하였는데, 아브도 메데도빅이라고 하는 문맹의 도축업자는 놀랍게도 58개의 서사시를 암송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그는 35만 476행의 시를 외우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기억이 뛰어난 사람들은 물론 타고나는 것일 터인데, 기억하는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리고 뛰어난 기억력으로 인한 문제점은 없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러시아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아의 연구를 통해서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뇌부상으로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남자의 사례를 밀착해서 관찰한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17429>를 통하여 그의 낭만주의과학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만, 기억상실로 고통받는 환자와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과잉기억증후군의 환자를 비교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루리야는 기억술사라고 부르는 환자를 만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그가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그의 의식과 정신세계, 그리고 그의 행동을 조절하는 방법 등에 대하여 적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오랜기간 동안 환자를 관찰하고 환자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환자의 기억능력이 형성되는 과정과 문제점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의 사례에 대한 기록을 과학적 관찰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의학에서는 이런 접근방식을 사례보고라고 하고 이런 사례들이 축적되면 공통점을 찾아서 그러한 공통점이 나타나게 되는 기전을 뒤쫓는 연구방식을 과학적 연구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루리야가 관찰한 기억술사는 기억용량은 물론이고 획득한 기억의 지속성도 무한해보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머릿속에 쌓여가는 기억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없었을까요? 루리야의 관찰에 따르면 연구대상이 된 기억술사는 단어와 숫자를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났는데 그는 이를 회화적 개념과 공감각적 반응을 이용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기억술사는 사람의 얼굴처럼 기분에 따라서 변화하는 대상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은유나 비유가 많은 시나 문학작품은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억이 많아지면서 이미 기억되어 있는 사항과 상충하는 경우에 이것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망각의 기술이었다고 하는데 성공여부는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억술사의 어린시절의 기억을 뒤쫓는 장면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였습니다. (…) 제 요람은 작은 침대 양 옆에 창살 모양의 난간이 있는 것이었고, 아래쪽은 고리버들 장식을 따라 둥글게 되어 있어서 흔들흔들 움직였습니다.(107쪽)”라는 기억술사의 진술을 읽다보면 바로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쪽으로;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의 도입부에서 옛날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정리하면, 기억의 기전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기억하는 비법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으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기억도 망각이라는 보완장치가 작동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있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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