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신화 지중해 국가정보 시리즈 5
지중해지역원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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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국어사전에 따르면 신화(神話)란 “어떤 신격(神格)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설화로, 우주 및 세계의 창조, 신이나 영웅의 사적, 민족의 기원 같이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신화를 억압된 관념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고, 융은 한 걸음 나아가 신화에 집단의 무의식이 녹아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민족에는 전승되어오는 천지창조신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단군신화가 전해온다는 주장에 대하여 고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하여 신화로 포장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신화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구전으로 전해오면서 새롭게 해석되거나 새로이 보태지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민족의 이동과 접촉과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집단들이 유사한 신화를 가지기도 하고, 배경이 서로 다른 신화가 융합되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에서 펴낸 <지중해의 신화>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 사이에서 전해내려온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부로 구성된 내용의 1부에는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소아시아의 터키의 신화를 다루었고, 2부에서는 유럽의 그리스, 로마,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의 신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화의 요약된 줄거리를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신화를 구성하는 요소라거나 민족들의 접촉에 따란 신화의 변화를 주로 다루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면, 이집트 신화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신들의 이름도 생소하고, 복잡해서 산만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혹은 지역에 따라서 등장하는 신들이 다른데 이는 인접한 민족의 신화가 녹아들면서 생긴 것으로 이해된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터키의 신화는 그 뿌리가 돌궐족에 닿고 있다고 합니다. 돌궐제국을 구성한 튀르크족이 멸망하여 흩어지면서 아제리족, 카자흐족, 키르기즈족, 투르크멘족, 알타이족, 투바족, 하카스족, 아쿠트족 등 유라시아대륙 전반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고 하는데, 터키족은 중앙아시아에 건설된 셀축제국이 서진하여 아나돌루반도에 이주하여 성립한 오스만제국의 후예인 것입니다. 따라서 터키족의 신화는 튀르크족의 신화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습니다.

 

튀르크족의 천지창조신화는 ‘세상은 하늘도 땅도 없는 하나의 바다였다.’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바다를 날면서 쉴 곳을 찾던 탄르 윌겐은 바다에서 솟아오른 돌 하나에 머물게 되었고, “있어라 땅이여!”라고 외쳐 바다로부터 땅을  창조하였다. 이어서 “있어라 하늘이여!”라고 외쳐 땅을 창조하였으며, 이어서 생물을 창조하는데 6일이 걸렸고 7일째 잠들었다고 합니다. 튀르크족 가운데 최초로 기록을 남긴 돌궐족의 종족기원설화에는 몰살당한 마을에서 홀로 살아남은 소년이 이리와 합하여 이리가 잉태하고 열명의 아들을 낳은 것이 돌궐족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들이 튀르크족의 기원설화들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거주지들이 한민족과 한국어의 기원과 형성에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알타이계 민족들의 무대라는 점을 고려한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에게도 알려진 프랑스의 인기만화 아스테릭스는 고대 골(프랑스의 옛 명칭)에 거주한 갈리아 켈트인의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골신화에는 산, 나무, 강과 같이 특정한 곳에 머무는 정령이나 조상신들로 구성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서쪽이 만나는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신화 역시 다양한 문명이 교차한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토착 민간 신앙은 물론 그리스의 헤라클레서 신화, 게르만족의 하나인 고트족의 신화, 그밖에 이슬람이나 기독교 성서의 내용이 신화와 결합되어 있다고 합니다.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그리스신화는 기원전 15세기로부터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기원후 4세기에 이르고 있는데, 등장하는 많은 신들 가운데 누구도 전지전능하거나 초월적이거나 세상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유일신을 믿는 종교와는 다른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는 새롭게 번안, 각색되며, 계속 반복되어 생동하고 있는데, 이는 같은 문화권 내부의 상이한 집단들 간의 독자성, 대립, 충돌을 반영하는 것이며, 고대 그리스국가들의 정치적 현실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신은 인간처럼 사물을 똑 같이 느끼고, 양자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협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은 인간과는 달리 불사의 행복과 권능을 가진 존재인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이야기 중심의 신화를 소개하기보다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신화를 민족들의 관계사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기 때문인지 다소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만, 신화의 성립과 변천과정을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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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 삶을 위한 죽음의 연구
허버트 허시 지음, 강성현 옮김 / 책세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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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라는 단어보다는 ‘기억’이라는 단어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만 ‘제노사이드’에 무게가 실린 책입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교수는 <제3의 침팬지; http://blog.joins.com/yang412/12920729>에서 확인된 집단학살의 사례들이 15세기 이래 아주 최근인 20세기 말까지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남극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일어났고, 또 일어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점을 설파한 바 있습니다.

 

[북소리]를 통해서 소개드린 다카노 가즈아키의 추리소설 <제노사이드>에서 이미 인용한 위키백과에서 설명한 ‘제노사이드(genocide)의 뜻을 다시 인용합니다. 제노사이드는 ‘집단학살(集團虐殺)’이라 번역되고 “그리스어로 민족, 종족, 인종을 뜻하는 ‘geno’와 살인을 뜻하는 ‘cide’를 합친 말이며, 고의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는 범죄를 일컫는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단 학살의 정확한 정의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법적인 집단 학살의 정의는 1948년 국제 연합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에서 나온다. 이 협정 2조를 보면 집단 학살을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한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집단의 일원을 살해하거나 심각한 육체적ㆍ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 고의적으로 육체적 파멸을 의도한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것, 집단 내 출생을 막는 것,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가 저지른 대규모 학살이 재발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국제적인 공감이 만들어낸 성과이지만, 이 규정이 실효적으로 지켜지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드는 사건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에서는 ‘왜 인간은 서로를 죽이는가? 어떻게 하면 이 살육의 비극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관하여 오랫동안 연구해온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 정치학과 허버트 허시교수의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를 통하여 582만 여명이 생명을 잃었고,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국제협약도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50년이 지나도 제노사이드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증거로 보스니아내전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990년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것을 계기로 1992년 보스니아에서 문화적·종교적·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세 집단(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이슬람교도) 사이의 묵은 갈등이 표출되면서 대략 20만 명이 죽고 75만 명이 실종되었으며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저자는 홀로코스트나 보스니아 내전이 촉발된 배경에는 집단들 사이에 감추어진 묵은 증오의 기억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럽사회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반유대주의 정서는 그 뿌리가 로마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특히 탄압받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인정을 받게 되면서 강화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예수의 죽음의 책임을 유대주의자들에게 미루려는 로마제국의 정치적 선택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에는 남슬라브민족의 배경을 공유하고 있지만 가톨릭신앙을 가지고 있는 크로아티아인과 그리스정교를 신앙으로 하는 세르비아인 그리고 보고밀파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집단들이 14세기 오스만튀르크의 침공에서부터 입장을 달리하던 것이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오스만튀르크에 대항하여 유고슬라비아를 창설하면서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량학살이 반복된 뿌리 깊은 원한관계가 성립되어왔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통하여 후세에 전해지는 것인데,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패자의 역사는 아무래도 살아남은 자의 기억에 의존되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가면서 잊혀지고 왜곡될 수 있고, 승자의 역사는 기록될 당시부터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 자신의 기억이 사실은 ‘소멸, 정신없음, 막힘, 오귀인(誤歸因),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과 같은 요인에 의하여 심각한 오류를 빚어내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습니다.(대니얼 샥터 지음,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http://blog.joins.com/yang412/12562617). 특히 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이 현재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집단의 기억을 왜곡하고 통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노력하는데,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기 위하여 “유대인과 집시에게 나치 독일이 행한 제노사이드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신화, 꾸며진 이야기이거나 날조로 여겨진다.(63쪽)”는 주장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아시아 각국에 잔악한 범죄행위를 한 일본이 적절한 사과와 반성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옹색한 모습과 겹쳐지는 대목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보는 것처럼,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사회에서는 죽음의 빚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는 인식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기억이란 개인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특히 원한과 관련된 일이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니라면 기억의 강도가 약해지거나, 다르게 기억하는 구성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 내에서 복수에 관한 기억이 면면히 이어져 내리는 것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리처드 도킨스교수가 <이기적 유전자; http://blog.joins.com/yang412/2583563>에서 제안한 밈(meme)이라는 문화적 요소로 설명하는 것이 쉬울 듯합니다. 개체 사이의 관계에서 발전하는 무형의 산물이라고 보는 문화도 모방되고 복제되어 전파되고 전달될 수 있다는 개념을 담은 단어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밈풀에서 펴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2010년, 323쪽)”는 도킨스교수의 설명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기억’이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다고 믿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기억은 분명 정치현상이며, 가능한 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해의 측면에서 분석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제노사이드의 정치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얻기 위해서도 기억, 역사, 그리고 기억의 역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32쪽)”

 

저자는 기억이 희미해지고 목격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역사가 재구성될 가능성을 설명하는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히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베텔하임과 데 프레의 시각을 비교하고 있는데, 나치 친위대가 피해자들의 협력 없이는 기능할 수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나치의 화학실험실에서 일하면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와 같은 생존자의 경험을 정신분석 이론이라는 필터를 통하여 강도가 조절되는 베텔하임의 방식을 부정적으로 평가를 하는 반면, 오랜 위기의 압박 아래서 살아가는, 정신과 몸에 난 끔찍한 상처를 견디는, 아직도 거기에서 제정신으로 여전히 인간인 채 살아 있는 능력이라고 생존을 정의하는 데 프레의 방식은 인간주의적, 문학적 시각에서 생존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에 참여한 가해자들의 의식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앞서 리처드 도킨스가 제안한 문화적 유전자 밈개념을 인용하였습니다만, 사람은 기억이나 정치적 사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나 공식적으로는 교육과정을 통하여, 비공식적으로는 문화전파를 통하여 그러한 문화의 규범을 배우게 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 적은 “모든 교육은, 아이에게 자신의 피를 나눈 사람들과 인종이 모든 타자들보다 우수하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가져야 한다.(179쪽)”는 구절을 인용한 저자는 히틀러의 제3제국이 권위에 대한 복종과 인종적 증오를 양대 축으로 한 체제를 구축했다고 주장합니다. ‘복종 배우기’야 말로 제노사이드를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핵심요소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무방비한 민간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에 참여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권위화, 일상화, 비인간화라고 하는 세 가지의 사회적 과정을 거쳐 승인된 학살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답한 켈먼과 해밀턴의 이론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한 사회화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바로 ‘제노사이드의 고리를 끊어내는 길’ 역시 교육에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저자는 삶을 보존하기 위해 죽음에 대해 연구한다고 합니다. “죽음을 조장하는 데 있어서의 기억의 영향과 역할을 인정하는 것은 삶을 보존하는데 기억을 사용할 것을 고려하도록 이끈다. 삶을 보존하는 윤리는 죽음을 조장하는 데 있어서의 기억의 역할을 확실히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277쪽)”는 저자의 주장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악순환을 일으키는 근본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가정이기도 합니다. 교육을 통하여 집단의 나쁜 기억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과정이, 역시 용서와 화해를 교육하는 것으로 선순환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보건의료분야와 관련된 내용을 조금 언급하려 합니다. 독일의 아우슈비츠수용소나 일본의 731부대에서 의사들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질병을 치료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어야 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의사가 거꾸로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가능했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자아가 두 개의 기능적인 통합체로 분할되어 부분 자아가 완전한 자아로 행동하는 이중화를 통하여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 의사들은 시민사회에 재통합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당수는 의료업무로 돌아와 은퇴하거나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지만, 패전후 자살하거나, 전범재판결과에 따라 복역하거나 도망친 의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군진의료와 직접 관련이 없는 포로의 심문과 관련된 의료자문에 관한 논의(맥스웰 그렉 블록 지음,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 청년의사 펴냄; http://blog.joins.com/yang412/12510155)나 사형집행에 의료인이 참여하고 있는 점에 관한 논의(아툴 가완디 지음,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한다, 동녘 사이언스 펴냄; http://blog.joins.com/yang412/10272224)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사협회의 윤리강령에는 의사가 사형집행과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사형수의 사망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의사의 역할이 독극물주입으로 사형방법이 바뀌면서 사형의 집행과정에 개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권력을 쥔 자의 정책적 결정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게 되는 비극적인 제노사이드는 광신적인 애국주의의 산물로서,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인류가 풀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제노사이드라고 하는 맹목적인 집단폭력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제전쟁법과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함께 묶는 것, 인도주의적 개입의 도구를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제노사이드와 정치적 학살을 부추기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 메커니즘을 공식화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국제적 합의를 통하여 민족이라는 틀에 갇혀있는 시각을 협력적 국제주의로의 전환시켰을 때 비로소 제노사이드가 종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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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이긴다
데이비드 호사저 지음, 방영호 옮김 / 알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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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읽게 된 자기계발서입니다. 대리점과 본사 사이가 갑을관계라는 시니컬한 비유가 유행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안겼던 사건을 비롯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강조되는 분위기에다가, 정치분야 역시 불신이 극으로 달리고 있는 작금의 우리사회를 돌아볼 때 아주 시의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진정한 성공을 일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만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기업 역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랜 연구를 통하여 확인하고 그 내용을 <신뢰가 이긴다>를 통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금 이해되지 않는 점은, 스스로의 신뢰를 강화시키는데 주력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보며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지 말라는 저자의 당부입니다.

 

저자 데이비드 호사저(David Horsager)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비즈니스 전략가라고 합니다. 조직문화 전환에 관한 연구조사와 컨설팅, 교육을 진행하는 ‘호사저 리더십(Horsager Leadership, Inc.)’의 대표로서, 신뢰가 삶과 비즈니스에 반드시 필요한 신용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정의하는 신뢰란, “어느 한 대상이나 일에 대해 가지게 되는 세 가지 확신”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둘째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확신, 셋째는 어떤 상황에서든 늘 한결같을 것이라는 확신(18쪽)”입니다. 그리고 신뢰우위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얻어내는 경쟁우위라고 주장합니다. 신뢰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넘어야 할 장벽으로는 이해충돌, 소송의 증가, 고객충성도, 언론이 쏟아내는 각종 스캔들, 정보가 순식간에 확산되는 소셜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 두려움, 나쁜 경험, 개인주의, 다양한 사고, 즉각적인 만족감,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태도 등 열두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먼저 책을 요약하면 제1부에서는 신뢰가 왜,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신뢰를 쌓는데 어떤 장벽이 있는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2부에서는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여덟 가지 요소들-명료함, 배려, 성품, 역량, 헌신, 관계성, 기여, 일관성 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신뢰가 가져올 수 있는 기대효과와 예기치않게 신뢰를 잃게 되었을 때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4부에서는 스웨덴의 가구업체 이케아, 아마존과 이랜드, 이베이 등의 사례를 통하여 신뢰가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부에서는 신뢰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을 읽으면서 기업이나 사람의 삶이다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공감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갤럽조사연구소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와 감독자를 떠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직원들은 존중받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해서, 관심을 얻지 못해서 회사를 떠난다(94쪽)”는 구절에서 저의 경험과 비추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소한 불평불만 따위는 그만 늘어놓으라는 충고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새롭게 깨달은 점도 있습니다. 최근 우리는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다양성이 혁신과 창조성 성공의 요체임에 틀림이 없지만,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의 다양성이 지나치게 크다면 신뢰수준이 낮아져 생산성과 사기가 저하된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역부근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에 들어가 보면 안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고 있지만 대부분 맛이 없다는 사실이 여기에 딱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한번 지나가고 다시 보지 않을 손님이니 맛이나 서비스와 같이 고급스러운 전략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서 나온 현상일 것입니다.

 

저자가 마침 제가 공부하던 미네소타출신이라서 가끔씩 튀어나오는 미네소타와 관련된 인용들이 반갑고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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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연애하는 법 : 미국 뚜벅부부의 배낭여행기 2
이호철.김승란 지음 / 예린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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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니 20년도 넘은 옛날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미국 구경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행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여행을 하고, 어떻게 느꼈고,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구와 연애하는 법>은 미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의 미국 여행기라고 하니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고 적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내신 이호철수석 부부의 미국 배낭여행기입니다. 미국비자를 받기 위하여 미국대사관에 가서 인터뷰를 받으면서 모멸감을 느끼면서 정서적으로 미국이란 나라는 마음의 지도에서 지웠다고 했는데, 배낭여행에서 만난 미국사람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자랑질에 솔깃해졌던 모양입니다.

 

책을 열자마자 미국지도가 나오고 저자들이 밟아나간 길이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와 연애하는 법-중국에서 유럽까지>의 여정을 표시한 지도가 다음 페이지에 나옵니다.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2년정도 미국에 살면서 나름대로는 구경을 다녔다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두분이 다녀온 곳 가운데는 제가 가본 곳도 있을 것이고 가보지 못한 곳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도에는 참으로 많은 곳을 방문했구나 싶은데 본문에 나오지 않는 곳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넘치는 감동을 옮겨놓은 글의 분량이 너무 많아 책에 담을 수 없어 아쉬움 속에서 골라내는 아픔이 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보니 열다섯 곳 가운데 일곱 곳은 저도 가보지 못한 곳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짠 여행동선에 포함시키는데 애로사항이 있었거나 지금처럼 인터넷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정보가 충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자들의 국립공원 방문기는 저도 참고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적고 있는 여덟 개 도시들 - 뉴욕, 워싱턴, 보스턴, 시카고, 산타페와 타오스, VLA, 라스베가스와 불의 계곡, 샌프란시스코 - 가운데에서도 두 곳은 역시 가보지 못한 곳입니다. 미국을 잠시 방문해서 도시의 속살을 제대로 구경할 수 없어 주마간산식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많은 것을 보고 느낀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글들은 아마도 여행하면서 일어난 소소한 사건을 적은 것 같습니다. 이 가운데 미네소타를 방문하게 된 동기가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을 위한 축제의 장에 참석하게 된 이야기를 읽으면서 먹먹한 느낌이 들면서도 반가운 것은 그래도 2년 동안 살던 곳의 익숙한 이름을 다시 볼 수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다소 차이가 있는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블랙힐 지역에 관한 내용가운데 러쉬모어산에 조각된 4명의 미국대통령-조지 워싱턴과 토마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그리고 아브라함 링컨-을 여기 새겨 기념하게 된 것은 미국의 탄생, 성장, 보존과 발전을 의미한다고 적었는데(42쪽), 저는 워싱턴은 신생 미국의 탄생을, 제퍼슨은 영토의 확장, 링컨은 연방의 평등, 그리고 루즈벨트는 20세기 미국의 세계적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블랙힐 지역에 거주하던 수우족 인디언들을 ‘sue’가 아니라 ‘sioux’로 표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더, 스탠포드대학에서 보게 된 로댕의 조각작품 <깔레의 시민>에 얽힌 이야기도 조금 보충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체 줄거리를 같습니다만, 여섯 명의 명망가들이 교수대로 향한 것이 아니라 처음 자원했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를 비롯하여 일곱명이 자원하게 되자 제비를 뽑으면 행운을 바라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며, 다음날 제일 늦게 도착하는 사람을 제외하자 제안한 외스타슈가 집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고, 이에 감동한 에드워드3세의 왕비가 깔레의 시민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청원하여 받아들여졌다는 결말입니다.

 

절대 가보지 않을 것 같은 미국을 구경하고 느낀 점을 정리하는 글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제를 처음 만든 미국은 국민에게 권력을 창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교육을 박물관에서 하고 있다. 우리처럼 길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배우지 않는다.” 그렇다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다수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부정하는 우리의 현실이 잘 못되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옳다는 것인가요?

 

그리고 보니 나이아가라폭포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도 방문한 것 같은데 책에서는 빠져있어 조금 섭섭하였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준비가 되는대로 저도 무언가 보여드릴 게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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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즐거움
임희택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책읽기도 특정 분야를 몰아서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의 책읽기는 ‘기억’에 몰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이기도 합니다만, 최근 탈리 샤롯의 <설계된 망각>,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이어 임희택원장님의 <망각의 즐거움>입니다. 망각의 의미는 <설계된 망각>에서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 많이 정리가 된 셈입니다. 즉 인간은 긍정적 기대, 즉 낙관편향이 생존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확인되었는데, “낙관편향은 미래에 틀림없이 닥쳐올 고통과 고난을 정확하게 지각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인생의 선택권을 제한된 것으로 보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이런 낙관편향을 유지하기 위해 뇌는 무의식적 망각을 설계해두었다. 그 결과, 스트레스와 불안이 줄면서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 행동하고 생산하려는 동기가 강해진다.(탈리 샤롯지음, 설계된 망각, 16쪽)”고 정리하였습니다.

 

스트레스를 연구하는 임희택원장은 만병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망각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망각의 즐거움>은 스트레스에 관한 다양한 사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관하여 저자가 알게된 몇 가지 사실은, 첫째, 몸과 마음은 생각했던 것보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 둘째, 잊어버린다는 것이 기억하는 능력보다 인간에게 더 중요하다는 것, 셋째, 우리를 강력하게 붙잡아두는 신념이나 원칙, 진리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등입니다. 스트레스에 관한 문제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망각의 중요성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생각을 한다는 것, 그 생각은 기억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생각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고통을 불러오는 것인데, 이를 버린다면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찾아낸 구절,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모든 속박으로부터 그대 자신을 해방시켜라. 그리고 존재하라(33쪽)”가 바로 정답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2장을 통하여 망각의 효능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으로 인하여 받게 되는 스트레스의 기전에 대하여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는 개인의 심리적 환경에 달려있다.’고 전제하고, 승화, 억압, 투사, 전위, 합리화, 반동형성, 그리고 퇴행 등 일곱 가지의 기제를 가지고 스트레스에 대처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 욕망, 개인화, 비교, 불만, 그리고 분노 등을 잊어야 생각으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서문의 말미에 “솔직히 말하자면, 망각은 어떤 면으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전제하였습니다. 자신이 온전하게 망각하면서 살아보았더니 몸과 마음은 확실하게 편안해졌지만, 기억력이 떨어지고 나태해지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적절한 망각이 해답이라는 것입니다. 적절한 망각이란 바로 몰입인데, 몰입은 망각과 기억 사이의 중용이라고 보았습니다. 특정사안에 몰입하는 경우에 다른 것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몰입은 완전한 무지도 아니고, 너무많은 생각도, 잡념도 아닌 어느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얻는, 없음과 많음의 적절한 알맞음이다.(272쪽)“라고 정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자의 생각이 뇌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방대한 책읽기에 놀라게 됩니다. 책의 말미에 17종의 참고문헌 목록을 정리해두었습니다만, 그밖에도 헤아일 수 없는 다양한 경구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인용문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인용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놓다보니 자칫 논점이 흩어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는 점입니다.

 

정리해보면, 기억을 바탕으로 한 생각에 매달리면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안을 설명하고 있는데, 망각도 그 해결방안의 하나일 수 있지만, 기억과 망각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몰입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하고 있어 <망각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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