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논리로, 똑같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책임을 안고 있는 독일을 설명해볼까요? 독일인들은 자신이 전쟁에서 저지른 범죄를 절대 감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열하고 철저하게 조사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기까지 하지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끔찍한 시설들도 잘 보존하려 노력하는데,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독일인을 잔혹하고 야만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죽은 자는 바뀌는 법이 없습니다. 죽은자와의 관계가 변했다면, 이는 살아 있는 이들의 태도와 삶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독일은 자신들 때문에 희생된 자들을 끊임없이 불러냅니다. 그러곤 자신의 잘못을 거듭해서빌며 용서를 구하지요. 이는 독일이 나치 시절의 혐오와 광기에서 벗어나, 평화를 사랑하는 진정한 문명국가로 거듭났음을

물론 토인비는 특정 종교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종교적인 삶과 태도를 강조했을 뿐이지요. 파테이 마토스PatheiMachos는 그리스어로 고통에서 배운다는 뜻으로, 이는 토인비가 고등종교의 본질로 꼽는 가르침입니다. 이유 없이 오래가는 것은 없습니다. 고등종교들이 오랫동안 인류의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아픔을 보듬고 나아갈 길을 일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널리 퍼진 고등종교들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위대한 종교들끼리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더 많습니다. 토인비는 "자연에 대한 지배를 1마일 나아가게하는 것보다 자신과 이웃, 신과의 관계를 가꾸는 능력을 1인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탐욕으로는 빈곤한 정신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우리 문명의 위기를 구해낼 위대한 정신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토인비의 혜안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먼저 헤겔은 역사란 인간의 자유가 확대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문명사회가 한 사람만 자유로운 상황에서 몇몇 사람이 자유로운 세상으로, 마침내 모두가 자유로운 시대로 나아간다는 뜻이지요. 실제 역사도 헤겔의 주장과 비슷하게 펼쳐졌습니다. 예컨대, 서양 문명은 왕만 자유로웠던 고대 왕국들에서 소수의 남자만 자유인이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으로, 나아가 모든 시민이 자유로운 근대국가로 발전해나갔습니다.

자유의 확대는 결코 조용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언제나 사회에는 지배하는 자들과 억압받는 이들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끊임없이 이어지곤 했습니다. 이들의 싸움을 설명하는 공식이 바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나를 떠받들며 대접해주길 바라지요. 문제는 상대방도 나와 똑같이 생각한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을 더 중요하고 가

이처럼 사상가들 가운데는 자신의 주장과 사뭇 다른 삶을 산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위선자‘라며 손가락질하지요.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프랑수아 누델만 Francois Noudelmann (1958~)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과 생활이 딴판인 사람들을 섣불리 도덕의잣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충고하지요. ‘철학자의 거짓말‘은윤리적이지는 못해도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결과물을 낳기때문이라는데요, 이는 어떤 의미일까요?

누델만에 따르면 루소는 아이 다섯을 버렸음에도 「에밀」같은 교육론을 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 다섯을버렸기 때문에 『에밀』이라는 교육론을 쓸 수 있었던 것이지요. 사르트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지스탕스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의에 맞서 저항을 외쳤던 것이 아니라, 레지스탕스 활동을 안 했기에 적극적으로 사회참여와 저항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누델만의 이런 주장은 황당한 궤변처럼 다가오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꽤 일리가 있습니다

누델만의 해석에 따르면, 콤플렉스와 치부는 사상의 발전과 행동을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실 우리 또한 루소나사르트르처럼 처신하고 있지 않을까요? 세상에는 가난하다며 무시당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에 열심히 돈을 벌고, 거짓말을 해서 비난받았던 상처 탓에 정직한 사람으로 보이려애쓰는 이들이 얼마나 많나요? 물론, 누델만은 결코 루소나사르트르가 도덕적으로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주장하지는않습니다. 다만, 거짓을 넘어서 자신을 정당화해가는 가운데 피어났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해주라고 충고할 뿐입니다.

사실, 아이 다섯을 버렸다고 솔직하게 세상에 알린 사람은 루소 자신이었습니다. 사르트르 역시 자신은 레지스탕스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요. 두 사람은 의도적으로 남을 속이려 하지 않았어요. 자기의 과거행동을 정당화하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뿐입니다. 누델만은 이를 ‘진실한 거짓말하기men-tri-vrai‘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허물과 그릇된 처신을 아름답게 재해석해가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지요.

분노에 가득 차 경쟁자를 노려보게 되는 순간, ‘예수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라고 나 자신에게 되물으며 태도를 다듬으라는 것이지요. 옛 선비들은 끊임없이 공자의 삶을 자신의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공자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를 곱씹으며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다잡곤 했습니다. 불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부처라면 이럴 때 어떻게 처신했을까?‘라는 물음을 삶의 중심으로 삼는다면 우리 삶과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내로남불‘ 논리가 판을 치는 요즘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에 앞서, 내 욕망 역시 비난하려는 상대의 것과 똑같지 않은지부터 점검해보세요. 탁월한 욕망을 꿈꾸지 않는한, 우리 삶과 세상에 구원은 없다는 르네 지라르의 주장에귀기울여보기 바랍니다.

아들러는 말썽꾸러기 사내아이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아주 심심했구나. 그래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단다"라며 부드럽게 타일렀을까요? 그는 그러지 않고 되레 아이를 크게칭찬했습니다. "장난감을 정말 잘 늘어놓았구나. 대단해! 아주 멋져! 그렇다면 이제 장난감을 모아서 원래 자리에 놓을수도있니?" 그러자 아이는 신이 나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혼나지 않았고, 누구도 화내지 않았으며 집 안도 말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책 아들러의 추억Alfred Adler: As We RememberHim」에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아들러 심리학의 고갱이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원인 말고 목적을 바라보라"라고 충고했지요. 왜 아이가 집안을 어지럽혔는지에만집중하면 아이가 뭘 잘못했는지 따지느라 화가 치솟을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거실을 다시 깨끗하게 정돈할까?‘라는 목적에 집중하면 일을 대하는 방식이 건설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지만 낯선 이와 관계를 꾸리는 일은 어렵기만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윌 버킹엄 Will Buckingham (1971~)에 따르면이방인에 대한 두려움, 즉 ‘제노포비아xenophobia‘와 낯선 이에게 마음이 끌리는 ‘필로제니아 philoxenia‘는 인간 본성의 두측면입니다. 새로운 사람과 함께할 때를 떠올려보세요. 한편으로는 이상하고 독특한 캐릭터일지 몰라 경계하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이 일지는 않았나요?

환대의 순환고리에서 일대일 교환은 금기에 가깝습니다. 내가 만 원어치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상대에게 곧바로만 원을 건넨다면 어떨까요? 이는 당신과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의미로 느껴질 터입니다. 환대의 기본은 비대칭입니다. 받은 양과 상대에게 주는 양이 계산적으로 딱 맞게 떨어지지 않아야 해요. 나아가 주고받음이 거래로 느껴지지 않게끔 시차를 두고 천천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관계를 가꾸는 데는 이렇듯 섬세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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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가진 그날부터 ‘나는 구원되었다!‘라며 안심하고지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작가 시이나 린조는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고 제일 좋았던 것은 죽을 때 ‘고통스럽다.‘라든가, ‘죽고 싶지 않다.‘라고 보기 싫게 소리치며 죽어갈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죽을 때, ‘여러분, 감사합니다. 나는마음 편하게 죽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그나름대로 훌륭하다. 그러나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아.‘라고 하면서 죽어 가는 것 또한 신앙이다. 그 점을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모든 인간성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 약점이나 비애를 드러내 보일 마음을 지닌 것 역시 신앙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앙인이라고 하면, 세례받는 그날부터 모든 의문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방황하고 똑같이 괴로워합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제 방황과 괴로움을 기억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신자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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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에는 상황 탓이라여기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내가 누군가를 퉁명스럽게 대했던 일에는 ‘그날 아침에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던거야‘라고 핑계를 대고, 누군가가 내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일에는 ‘아니, 정말 무례한 사람이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연습을 하면 이런 편향에 빠지지 않고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인 편견을 놓아 보낼 수 있다. 공감하는 태도로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고, 상대방이 왠지 짜증 나는 행동을 할 때는 그 사람이 무례하거나 이기적이거나 바보 같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대신 상황 때문이라 생각하자. 그러면 여러분의 인간관계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탐험 1 ‘만약‘과 ‘적어도‘를 바꾸는 탐험이다. 정신적 회복탄력성을키워주는 짧은 사고실험으로, 필요에 따라 매일 즉석에서 해볼 수 있다.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후회에 가장 효과가 좋지만, 주의를 기울인다면심각한 문제에도 활용할 수 있다. ‘만약‘으로 시작되는 말 중 하나를 골라하향적인 가정법 사고로 바꿔보자. 아래 예시를 참고하면 된다.
•전송 버튼을 클릭하기 전에 메일을 확인했더라면적어도 회사 전체에 발신한 건 아니니까.
• 그 남자는 영 아니라고 다들 말해줄 때 귀담아 들었더라면적어도 결혼까지는 안 갈 정도의 정신은 있었으니까.
•발표에 대비해서 정확한 수치를 잘 알아뒀더라면적어도 다음에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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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죄종 일곱 가지 구원
황인수 지음 / 성바오로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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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예, 무소유가 아니라 만족이라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처음 베를린영화제에서 대상인황금곰상을 수상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가오나시라고 하는 캐릭터가 나옵니다.
황금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 캐릭터는 돈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을 족족 잡아 삼키는데 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는 주인공센에게만은 무력하지요. ‘탐욕‘ 자체를 표상하는 캐릭터처럼 보이는 가오나시는 잡히는 것들을 계속 집어삼키지만 더 배고파하는모습을 보입니다. 가오나시라는 이름 자체가 ‘얼굴이 없다‘는 뜻이

"화내는 사람은 아픈 사람이란다." 바키타Bakhita* 성녀의 전기 영화에서 만난 인상적인 대사입니다. 살다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때도 있고, 나에게 화가 난 사람의 분노를 뒤집어쓸 때도 있지요. 그럴 때면 성녀의 말씀을 다시 곱씹어 보게 됩니다.
아프리카 사람으로는 처음 시성된 바키타 성녀는 1869년 지금의 수단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열 살이 채 안 되었을 때 노예사냥꾼에게 붙잡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팔려 다니며 끔찍한 고초를 겪습니다. 그때 당한 고초 때문에 성녀의 몸에는 백 군데가넘는 칼자국이 있었다고 하니 그 고통은 차마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시간이 십여 년 지속되다가 이탈리아 사람을 새 주인으로 만났는데 이 사람이 그를 본국으로 데려왔다고 하지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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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횡단 탐험을 떠났다가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대원 전원 생환이라는 신화를 이룩한 어니스트 섀클턴이 좋은 예다. 탐험 중 얼음이 얼어 그 사이에 갇힌 배가 부서질 지경에 이르자 섀클턴은 탐험의 목표를 ‘탐사‘에서 ‘생존‘으로 수정하고 전 대원을생환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배를 버리고 근처의 빙하 위에캠프를 친 날, 섀클턴은 일지에 이렇게 썼다. "인간은 이전의 목표가 사라지는 즉시 자신을 새로운 목표에 적응시켜 나가야 한다." 13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어놓거나 기존의 계획을고수하려 했다면 절대 그토록 뛰어난 융통성, 적응력, 회복력을 발휘하지 못했을것이다

어떤 행동을 연속해서 하는 것을 ‘스트리킹streaking‘이라고 한다(옷을 벗어 던지고 달리는 것도 스트리킹이라고 하는데,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성공행진‘이라고나 할까. 내가 이어가는 성공행진, 즉 의식적으로 매일 하려고 마음먹은 습관은 꽤 많다. 각각의 습관에는 내가 추구하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이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실천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습관은 오랫동안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습관을 통해 일상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삶의 방향을긍정적으로 바꾸고 또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나 역시 조깅의 성공행진을 이어가며 무척 흥미로운 일을겪었다. 예전에는 "오늘 조깅을 할까?"라고 생각하던 것이("에이,
오늘은 달릴 기분이 아냐"라고 결론지은 날이 너무 많았다), "오늘은 ‘몇시‘에 조깅을 할까?"로 바뀐 것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의사결정이다. 조깅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려면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야 하지만, 몇 시에 달릴지 정하는 것은 가볍게 계획만 세워

탐험쓰기는 뇌에 내재된 센스메이킹 습관을 보다 의도적이고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진좋지 못한 생각의 악순환은 머릿속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거기서 벗어나려면 도움이 필요하다. 탐험쓰기의 도구상자에 들어 있는 가장 근본적인 도구인 자유쓰기는 여기서 엄청난 위력을발휘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뒤 2분, 3분, 때로는 4분이 지날 때까지도 아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계속 써나가자. 녹슨 펌프를 오랜만에 작동시키기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벌건 녹물만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계속 펌프질을 하면 갑자기 마법처럼 맑은 물이 뿜어져 나온다. 짧게는 몇 초에서 길게는 몇 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장담컨대 계속 쓰다 보면 머릿속의 녹이 모두 쓸려 나가고 맑고명료하며 반짝이는 물줄기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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