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매너로 불리는 행위가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평가받을 일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보일 것입니다.
오늘날 예의 바르다고 평가받을 많은 풍습의 이면에는한 번쯤 의심해볼 만한, 때론 비양심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지요.
남녀가 동등하게 대우받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스칸디나비아 출신 남자들은 종종 문 앞에서 여자들에게 먼저 양보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곤 합니다. 그럴 때면 그런풍습이 생겨난 미심쩍은 역사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지요.
이 풍습은 성문에 암살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중세 기사들이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서 먼저문을 통과할 권리를 여자들에게 양보한 기사들의 의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반짝인다고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 라는 말은 매너의 역사에서도 효력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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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야. 햇볕에 말린 이불이 좋다고느끼는 것, 그런 게 바로 행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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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며,작가인 피에르 상소도 느리게 산다는것의의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며,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와 계절을 아주 천천히 아주 경건하게 주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하루 특별한 목적도 의지도 없이 놓아버리는 날, 권태가 아니라 평화를 느끼는 날이 있다. 너무 바삐 사느라 나를 바라볼 틈조차 없다가 나를 느끼는‘ 아주 느린 하루다. 느림은 빠른 속도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 니다. 모든 현재의 시간을 최대한 농밀하게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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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겸 번역가인 배수아는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번역하면서 "그의 산책이 곧 그의 글이 되었다. 걷기는 그의 스타일을 구축한 육체였다. 걷기를 통해서 그는 어디서나 살았고, 그 어디에서도 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글 안에서 하나의 내면이 되었고,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고 후기에서 서술했다. 나의 산책이 나의 글이 되려면 아직 더 내공을 쌓아야겠지만 그래도 실마리는 품고 있음을 안다.
산책은 몸으로 세상을 읽는 행위다. 그것은 저절로 사유로 이어진다. 무념무상하게 걸어도 어느 틈에 내 몸이 사유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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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 홀테인은 《어느 인문학자의 걷기 예찬》에서 "내가 아는 한 가장 효력 있는 안정제는 ‘자연과의 내밀한 교제다. 나무는 건강에 이로운 공기를 내뿜는다. 들판은 휴양지로 이끈다. 고요하고 안정감을 주는 약효가 벽도 없고 천장도 없는 땅 위로 퍼져나간다.... 자연속에서 걷다보면 생각은 부드러워지고 나쁜 관념은 훨훨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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