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 삶의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서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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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려 하기보다 스스로 ‘배우려는‘ 태도를 간직할 때 정말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 이런 기본 태도가 학생에게 옮아가기때문이다. 학생들이 계속 경탄하게 하고 질문으로 이끈다는 것도뮐러 선생님의 강점이었다. 그와 더불어 탐구하며, 궁금했던 질문에 ‘아하‘ 하고 깨닫는 경험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었다. 깨닫는 기쁨을 누리는 건 상당히 소중했다. 학생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유머없이 거의 주입식으로 떠먹여주는 수업이 아니었다. 언젠가 뮐러가 교사는 사실 학생보다 단 한 시간만 앞서면 된다며, 그거면 충분할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그의 연구소의 물리학자들, 엔지니어들과 함께하는 금요일 오후의 토론회에서 나는물론 그때 나는 지적으로 토론을따라가기조차 버거웠다-그동안 몰랐던 훌륭한 학자로서 뮐러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늘 질문자의 눈높이에 맞춰 답변했다. 한번은 그에게 우리같이 전문지식이 없는 바이올린 제작학교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약간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며, 어떤내용을 ‘쉽게‘ 표현할 수 없으면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가 그에게 내용을 이해하도록 강요했던 셈이라고 할까?

무력함과 권능은 공명을 이룬다. 체념만 있거나 능력만 있는곳에서 상호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힘겨운 시간들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자 한다. 예수의 길을 따라가며, 예수의 무력함을닮는 기회로 말이다. 그런 시간에 나는 받는 자로서 하늘을 향해손바닥을 열고자 한다. 그렇게 성령의 탄식에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자 한다.

정말로 영리한 사람은 삶이 방해받고 빗나갈 수 있는 여지를허락한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확신하는 바만 고집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 뜻밖의 일을 통해서도 좋은 일이 일어날 수있다. 우리는 때때로 커다란 지혜가 뜻밖의 길로 인도하는 것에놀라곤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돌아보며 ‘아, 정말 좋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런 경험이 종종 불운해 보이는 일을 통해적어도 예기치 않았던 일을 통해 당장은 참고 견뎌야 하는형태로 다가온다 해도 말이다.

뜻밖의 것에 놀라거나 방해받거나 때로 좌절할 용기가 없을때, 우리는 가능성에 못 미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럴 때 큰 지혜는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의 최대 실수는 네가 그르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시도한 일이 너무 적었음을 보여준다." 용기가 없는 자는 은혜의 길을 갈 수 없다. 우리는 확실한것만 취한다는 말로 우리의 용기 없음을 변호한다. 하지만 자신이확신하는 것만 부여잡고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을 때 진리에는 얼마나 많은 먼지가 앉을까. 막스 프리슈Max Frisch는 이렇게 말한다.
"전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선조들이 당대의 문제에 맞섰던 그용기로 자기 시대의 과제를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그 외 모든 것은 모방이요, 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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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는 안단테 - 김형석 에세이
김형석.스토리베리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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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졸업할 때 은사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창작의 영역에서 스승이란, 제자의 손을 잡고 만리장성 앞까지 와서 제자가 스승의 등을 밟고 올라가 만리장성을 넘어가게 해주는 사람이다. 제자가 그 만리장성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그의 세상이다."
은사님이 내게 해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안내하고받쳐주는 스승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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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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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의 원서는 ‘인간답다Umana‘라는 단어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의미심장하다. ‘인간답다‘ 함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덕목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지만, 신과 달리 재난과 운명에 취약하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이런 불운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감, 연민, 예의 바른 태도, 다정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 정원이 기적을 행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14세기 피렌체에 살았던 열 명의 남녀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잠시나마 함께 웃고 울며, 기쁨을 주고 위안을주는 곳이 될 수는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식의 탐구와 실천 자체는 무해하지만, 방향성을 잃은 탐색은 이렇게 위험하다. 여기에는 정원 일도 포함되는데, 어디 허리라도 다치기 전에 끝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 모든 것에 실패하고 인생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된 이들이 다시 필경을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들은 머지않아 또 정원 일을 시작할 것이다. 정원은 그런 것이다.

소설은 낙원과 같던 핀치콘티니 가문의 세계가 인종법과 파시즘, 홀로코스트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몰락 직전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담히 보여준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와 동시에 금방 닥칠 겨울의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눈부신 가을은 그 이후의 역사를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더욱더 비극으로 다가온다.

조르조는 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아 핀치콘티니가의정원과 그곳에 있던 이들을 기억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기도 한 작가 엘리 위젤Elie Wiesel은 글쓰기란 "묻히지 못한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보이지 않는 비석"이라고 했다. 하나의 단어가 한 사람의 얼굴, 하나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 홀로코스트와 같은 수많은 죽음을 수긍하는 일은 이를 부인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억하고 기록하면 이들은 그저 숫자로 추상화되는 익명의 망자로 지워지지 않고, 이름이 있는, "언젠가 산적이 있는 사람들"이 된다. 이들의 눈부신 시절을 기억하고, 또 기록하여,
이를 다시 역사 속에 놓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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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상대측과 마주치고 말았다. 우리 쪽 둘, 상대 쪽 둘. 네 명 모두 숨 한번 크게 쉬지못하고 좁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의 숫자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때, 상대 쪽 직원이 별안간 침묵을 깼다. 그가 한 말은 귀를 의심해야 할 만큼 그 상황에서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혹시... 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 전까지 발톱을 내세우고 으르렁거리며 나를 공격해온 사람이 내게 사인 요청이라니. 무려 법원에서 조정을 앞두고 어색하고 뻘쭘한 얼굴로 내게 요구하는 게 고작 사인이라니…

사인이라니. 허탈함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긴장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결심했다.
‘오늘 합의해줘야겠다.‘
화가 나고 서운했던 대상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 사람과 나를 그렇게 만든 ‘세상‘
에 화가 난 것이었다. 그날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작은 새처럼, ‘현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사람과 사람 간에나쁜 감정이 없어도 사회와 세상이 정한 역할에 따라 서로미워하고 등 돌릴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역지사지의 의미를 알려준, 운명의 엘리베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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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는 안단테 - 김형석 에세이
김형석.스토리베리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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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소소한것이었다. 비유하자면, 좋아서 노를 젓던 카약을 탄 것과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작은 카약은 강물을 벗어나 바다로가는 돛단배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모터가 달린 크루즈가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아날로그와디지털을 거쳐 A.I.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하고 싶은 이야기도 조금씩 쌓였다. 음악, 프로듀싱, 제작,사업, 작곡, 사람들과의 관계 등 내가 삶에서 만나고 있는것에 대한 고민이 하나둘 이어져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쓰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슬프게도 나는 음악을 업으로 삼은 이상 ‘리스너’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이 음악을 좋아하는가?
어떤 지점에서 이 음악이 ‘좋은 음악‘으로 평가받는가?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에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 수도 없는질문을 던지며 음악을 분석하는 것이 내 일이다.
누구보다 마음을 다해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만으로 음악을 대할 수 없는 것이 작곡가의 숙명이다. 음악의 설계자라면, 영감은 마음에서 얻더라도 설계는 머리로 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음악이 나아갈 길을 생각하면더 그렇다. 의상, 춤, 가사, 여러 마케팅까지, 음악은 더욱많은 곳에서 응용될 것이다. 분석, 또 분석해서 대중이 음악을 사랑하는 바로 그 지점, ‘마스터키‘를 찾아내야 내가음악인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모순적이다. 마음도 바쁘지만, 머리도 바쁘다. 음악이 나아가야 할 길, 내가만드는 음악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마음과 머리를 굴린다.

많이 읽은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한다. 누구보다 그림을 많이 보는 사람은 화가들일 것이고, 요리를 많이 한사람은 요리사일 것이다. 음악도 그렇다. 많이 들어본 사람을이겨낼 도리가 없다. 내게는 음악이 생활 그 자체였다. 세수하고 이 닦고 밥 먹는 것처럼 피아노 소리는 항상 내곁에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버릇이 하나 생겼다. 어디선가 멜로디가 들리면 이런 생각을 했다.
‘나 같으면 다음 멜로디는 이렇게 쓰겠어.‘
가요든 동요든 가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다음 멜로디를 상상했다. 그러다 다음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내가상상한 멜로디와 비교해보기도 했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썼네. 멜로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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