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시대예보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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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함은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핵개인을 돕고,
협력은 작아진 단위에서 더 깊어집니다.
우리는 덜 소유하고 더 연결되며,
덜 의존하면서도 서로를 더 위합니다.
무겁던 질서는 해체되고, 느린 조직은 추락합니다.
이제 생존을 가르는 것은 덩치가 아니라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힘입니다.
이 문명을 먼저 이해하는 자만이 다음 시대를 살아남습니다.
‘경량문명‘의 탄생입니다.

각 전문가가 가진 정보는 인간의 두뇌와 근육 속에 내재되어 있기에 개인의 시간과 장소라는 물리적 한계에 종속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한계가 없는 분야별 인공지능이 상시 협업하며, 새로운 협업은 시공간의 제한을 넘어서기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은 모든 분야의 변화를 가속화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전문성의 파편을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확보할 수도있습니다. 전문적 지식과 숙련된 지능은 지금까지 소수의 전문가 집단에 귀속된 것이었지만, 이제 시스템과 함께 널리확산됩니다.

이 책에서는 협력의 방식이 바뀌게 된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입니다. 두 축의 패러다임 변화는 서로 호응하며 증폭하는 한 쌍이 되어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킵니다.

모든 이가 일상을 함께하고 공동체 중심으로 생산하던,
무거운 문명이 이제 저물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지혜가 각자의 인공 지능과 결합하고, 작은 규모의 모둠으로도 커다란 진보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이제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그 문명의 혜택을 함께 나누려는 수많은조직의 밑그림이 이제 막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볍고빠른, 그렇지만 더욱 깊어지는 문명, ‘경량문명‘의 탄생을 선언합니다.
거대한 변화의 시기, 가장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은 ‘가벼운 존재‘만이 생존할 것이라는 새로운 진리입니다.

경량문명의 시작은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육체를 가지지 않은, 인간을 모사한 새로운 지적 개체에서 시작합니다.
그 개체를 만든 것은 인간일지 몰라도 그 개체와 역할을 나누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닐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계획은 있지만 언제나 그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기업이 자사에 필요한 자원을 취하는 방식 역시 빠른 만남과 이별을 전제로 합니다. 무엇보다 소프트웨어와 인프라의 대중화로 인해 필요한 자원 대부분을 가볍고 손쉽게 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한몫합니다. 경량기업들은 로펌과 계약하기 위해 전문가를 찾고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 법률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디자인 에이전시의 경쟁 PT를 받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구독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리서치 회사에 제안요청서를 보내고 제안을 받는 것이 아니라딥 리서치 AI에 비용을 씁니다. 분석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그전에는애초에 리서치 회사와 계약하기까지도 몇 주가 걸렸다는이 더 중요합니다. ‘관계의 경량화‘와 ‘협업의 거리 단축‘이,
바로 협력이 가벼워지는 세계의 핵심입니다.

이 변화에 발맞춰 나가기 위한 전략으로 립프로깅Leapfrogging, 즉 ‘개구리 점프‘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소수의 실험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점핑, 한 번의 도약으로 단계를 넘어선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 조직, 기업, 정부가 시도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하나씩 단계를 밟아나가기보다 새로운 문명에서 처음부터 첨단 기법으로 무장하자는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케냐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 엠페사M-Pesa입니다. 케냐는 ATM이나 은행 지점이 넓게 깔리지않은 상태에서, 휴대폰만으로 모바일 뱅킹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기존의 발전 단계인 텔레뱅킹이나 PC 온라인 뱅킹을 뛰어넘고, 곧바로 효율적인 경량문명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AI 시대에는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곳이어도 새로운 문명의 도래가 가능합니다. 물리적인 통신망을 가지지 않더라도, 기간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 살고 있어도, 스마트폰을 가진 모두에게 경량문명이 동시에 도착할 것입니다. 모두가 변화의 중심에서 함께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가 발신되고 있습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빠른 전환자(fastchanger)‘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량문명에서는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경량문명의 구성원들은 올림픽의 스타가 아니어도 자신이 하루에 뛴 거리와 조금씩 당겨지는 기록에 행복해합니다. 한바탕 뛴 후에 함께 운동한 이들과 격려의 말을 나누고, 자신이 발견한 잘 뛸 수 있는 팁을 친절하게 알려주는것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명산 100곳을 완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자기 삶을 지탱하기 위한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고자 산에 오릅니다. 성취의 대상과 목표가 사회와 금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세운 나만의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단단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척박했던 시절을 빠르게 지나며 한강의 기적은 우리에게 ‘하면 된다‘라는 용기를 주었지만, 상호 경쟁 속 무한의쟁투는 개인을 갈아내어 ‘나‘ 없는 성취의 환상을 전시했습니다. 속도가 인간의 템포를 넘어선 경량문명의 주인공들은자신의 삶을 위해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묵묵히 살아가다,
뒤돌아보면 그 흔적이 자연스레 스스로를 설명하는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기는 언제 멈추어도 무방합니다. 혼자 뛰는 경기의 승자는 언제나 ‘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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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07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길영 작가님의 포인트 잡기는 정말 탁월하다고 느껴집니다.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의 연결을 묻는 카를로 로벨리의 질문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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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시는 여러 인터뷰에서 해당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예술가의역할이 관람자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점에서 "할 말이 없다"라는 표현은 그의 예술철학과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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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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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약해진 그는 높은 하늘에서 맴도는 새 한 마리를보았다. 심지어 그 새의 날개마저도 움직이지 않고정지해 있었다. 새의 그림자가 그의 무릎 위로떨어졌다. 그는 새 깃털을 헝클고 다시 쓰다듬기 위해모든 에너지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수술 후 내가 최초로 들은 아빠의 정확한 말이었다.
강렬한 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흐릿하게 지워져가던아빠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다! 아빠가 돌아왔어!"
너무 기뻤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아빠의명료한 말이 되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빠는 더 이상말을 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는 그 한마디말을 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불러" 모았던 것이다. 한사람의 인생이 한순간에 압축되어 나타날 수 있을까? 나는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평생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잘알아봤다.

아빠는 평생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빛을 발하며 떠나셨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에너지를 불러" 모아야 할 때마다나와 함께한다. 아빠는 나의 숨결이 되었다. 마치 마거릿애트우드가 한 말처럼, 우리는 자신이 한 줌의 먼지로화하리라는 관념에 저항한다. 그래서 대신 언어가 되길소망하는 것이다. 다른 이의 숨결이 되는 것.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물음이 전부였다. 이단순한 물음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밀려들곤 했었다.
위대한 계시가 밝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위대한 계시가 찾아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이나 등불, 어둠 속에서뜻밖에 켜진 성냥불이 있을 뿐이었다.

울프는 우리의 하루하루는 존재보다 비존재로 이루어지는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누구랑 뭘 먹고 커피를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잠시 후면 다 잊어버린다.
대부분의 날이 그렇다. 그냥 하던 일을 하고 빨래하고 밥먹고 뭐 좀 보거나 가족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잔다. 건강검진이나 시험 결과를 기다리거나, 큰 걱정거리가있거나 고통에 시달리면 비존재의 시간이 더 커진다. 어린시절도 비존재의 시간이 더 크다. 비존재의 시간은 흔적을남기지 않는 시간이다. 기억이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무슨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순간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일처럼, 마치 눈앞에 성냥불이 켜진 것처럼 생생한 순간들.
이것이 존재의 순간들이다. 비존재의 흐름을 끊어주는 시간.

울프는 삶의 의미는 엄청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그러나 강렬하고 빛나는, 어쩌면충격과도 같은 ‘존재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소중히 여기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등대로』에서 화가 릴리는 이렇게말한다.
내가 원하는 건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이건 의자고저건 식탁일 뿐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이건 기적이고저건 희열이라고 느끼는 거야.

"그대가 나를 두 손 벌려 맞이할 때, 그대는 그대 자신을맞이하는 것이다"라는 네루다의 시구가 생각난다. 남태령이야기는 가슴 벅찬 다정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순간에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맨다 고먼의 시구처럼, "우리가어떻게 감동받았는지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말해준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갈망한다. 우리는 이해할수 있고 이해받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나눌 수 있고 나눔을갈망한다. 혼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좋은‘ 관계를더 많이 갈망한다. 이것이 어른의 몸짓이다. 우리에게 또하나의 삶이 있다면 우리는 바로 이렇게 살고 싶어 할것이다. 아낌없이 나누며, 아낌없이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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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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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를 절어요.
평생 외롭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되었어요. 둘이 서로 사랑했지만 여자의 집에서 결혼을찬성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지나온 삶을 생각하고저는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결국 장모 될 분을만났어요. 그분이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가. 내가 이제부터 자네의어머니가 되겠네."

참 놀라운 순간이었어요. 그 고마움을 어떻게잊지 않고 살까 고민하다가 저도 사랑을 주기로마음먹었어요. 그것도 가능하면 오래가는 사랑을요.
그래서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어요. 내가 맛본기분을 다른 사람도 맛보았으면 했어요.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저는 불편한 몸으로 좁은경비실에서 날마다 같은 곳을 왔다 갔다 살지만마음만은 넓고 자유롭고 싶었어요. 그렇지 않다면어떻게 더 큰 세계랑 연결될 수가 있겠어요?

또 이런 문장도 기억한다. "맑은 하늘에는 무지개가 뜨지않는다." 이것은 「모비 딕」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이자,
피쿼드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될 운명인 이슈미얼이 고래가숨을 쉬면서 내뿜는 물줄기가 정말 물줄기인지 아니면수증기인지 따져보면서 한 말이다. 나는 맑은 하늘에는무지개가 뜨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이문장을 과학이자 시로 받아들였다. 낙담했지만 다시 용기를내야 할 때에는, 카프카의 "대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문장과 함께 이 문장을 얼른 떠올린다.

최근에는 여기에한 문장을 추가했다. 메리 올리버의 시 한 구절이다. "그누가 온화한 날씨로 음악을 만들었겠는가?" 이런 구절들은마음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멜빌은 무지개를
"비참함에 희망과 위로"를 속삭여주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는 그런 상징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문제적 상황을기회로도 보고 싶어 한다. 인간은 곤경과 희망을 뒤섞는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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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옷을 제대로 입었는지 걱정이 될 때, 자신의 전신 셀카를 찍은 후 인공지능에게 보여주고 코디네이션 의견을 묻는다는 학생이 있었다. 인공지능은 "그렇게 입지 말고 이렇게 코디하라"고 제법 깐깐하게 조언한다고 한다. "아침이라 물어볼 사람이 마땅치 않은데, 최소한 엄마보다는 나아요." 그 학생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이다.

-알라딘 eBook <트렌드 코리아 2026> (김난도 외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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