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을 만나다
태안 삼존마애불은 태안이 고향인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서산 마애삼존불을 보러가기 전에 먼저 들러보는 게 어떻겠냐고.
잡다하게 아는 게 많은 남편을 둔 게 피곤할 때도 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호기심이 점점 줄어드는 차에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해주니 감사해야지 싶다.
태안 마애삼존불은 태안 읍내를 벗어나 태안여고 앞에서 원북 쪽으로 방향을 잡아 1~2분이면 가볼 수 있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 마애삼존불의 유명세 덕에 관심을 끌게 된 유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간 날도 상당히 추웠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여럿이었다.
태안 마애삼존불은 태안에서 유명한 백화산(284미터) 중턱에 있는 국보다.
백제 시대 6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불상으로 서산 마애삼존불보다 시기가 앞선다.
입구에 태을암이란 암자가 있고, 태안 마애삼존불은 보호각 안에 있다.
좌우에 여래입상과 중앙에 보살입상을 조각했다.
이는 중앙에 본존불을,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불 배치와는 다르다고.
지금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마애삼존불이라는 역사적 가치에 비해 많이 훼손되어 있어 좀 안타까웠다.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이 머리였다.
머리 모양이 그동안 보아온 우리나라 부처님과 달리 중국 부처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는 중국의 석굴 바깥쪽에 새겨진 불상들과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백제는 475년에 한강변 지역을 고구려에게 빼앗긴 후 공주로 옮겨 왔는데
중국과 교류하던 통로가 막히자 새로 찾은 통로가 바로 태안반도의 항구였다.
그래서 태안 마애삼존불, 보원사지 금동여래입상, 서산 마애삼존불상 등
태안 서산 공주 부여로 이어지는 이 주변에 불교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초기 불교 유적인 태안 마애삼존불이 중국 냄새를 팍팍 풍기게 된 이유다.
태안 삼존불 이후 1세기가 지나서 조각된 서산 마애삼존불은
둥글둥글 부드럽고 편안한 백제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100년 만에 우리 것으로 만들어 1400년 동안 전해진 백제인의 얼굴이
앞으로 만년 동안 더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삼존불이 새겨진 화강암의 뒷모습이다.
바위가 지금도 부슬부슬 부서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태안 마애삼존불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구나 싶을 정도로 바위가 약했다.
태안 마애삼존불 주변에서 바라본 태안의 모습.
멀리 보이는 건 하늘이랑 맞닿아 있는 바다다.
여기도 날 좋은 여름에 보면 풍경이 한폭의 그림일 듯했다.(고향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