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는 겨울이 참 빨리 오는 느낌이다. 그닥 추운 것 같지도 않은데 오리털 파카를 입고, 11월이 되자마자 김장도 서둘러 한 집들이 많다. 김치가 떨어졌다는 소식에 배꽃 님네서도 한 통을 가져왔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딸아이 친구네서도 김치 몇 쪽을 보내왔다. 

그런데 며칠 전 베트남 새댁인 티미옌의 집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비닐 봉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선생님, 제가 담근 김치예요." 그러길래 "형님들이랑 같이 했어요?" 하고 물으니 배추 10포기를 사다가 모두 혼자 했다고 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았다. 가끔 김치를 직접 담갔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김장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 정말 장하다 싶었다.  

티미옌은 4형제 중 막내며느리. 사정이야 있겠지만 위로 형님이 셋이나 있는데도 86세의 병든 시어머니랑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사도 명절도 모두 티미옌의 차지인 듯했다. 처음에는 종종 다니며 한국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던 형님들도 1년이 지나면서 바쁘다며 발길이 뜸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젠 제법 제사 음식도 하고, 명절 때는 갈비찜이랑 잡채 같은 것도 직접 했다고 해서 칭찬을 해주었다. 한국 생활 2년차가 그 정도 음식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지 2~3년이 되어도 한국 음식을 만들기는커녕 먹지도 못하는 외국인도 많던데...

먼 타국땅에 시집 와서 처음으로 하는 김장인데 누가 와서 함께 거들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진짜로 한국이 살만한 나라라고 느꼈을 텐데... 본인은 먹지도 않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 며칠 동안 신경 쓰고 애를 썼을 티미옌의 마음을 생각하니 짠한 생각이 들어서 김치 봉다리를 안은 손으로 꼭 안아주었다. "고마워요. 귀한 김치 정말 맛있게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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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11-23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귀한 김치네요
정말요

소나무집 2010-11-25 00:25   좋아요 0 | URL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김장 하면서 별별 생각을 다 했을 거 같더라구요.

하늘바람 2010-11-23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다문화가정에 다니시며 수업을 하시나요?
정말 뜻깊고 좋은 일을 하시네요
소나무집 님 아이들은 참
보고 배우는 게 보람되고 뜻깊어서 바르고 올곧게 자라겠어요

소나무집 2010-11-25 00:26   좋아요 0 | URL
네, 원주 와서 고민하다 시작한 일이에요.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하지만 사실은 제가 더 큰 인생 공부를 하고 있어요.^^

세실 2010-11-2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특도 하지. 혼자 김치 버무리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님이 좋은 언니, 선생님 되어주셔서 덜 외로울 거예요. 에구.....

소나무집 2010-11-25 00: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참 많이 외로웠을 것 같아요. 그래도 늘 씩씩한 베트남 새댁이에요.

울보 2010-11-2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울컥하셨겠어요,
님이 잘해주셔셔 또 그분도 님에게 고마움을 표현한것이겠지요,
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타국에 사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님 참 멋지네요,,

소나무집 2010-11-25 00:30   좋아요 0 | URL
아마 일 년 가까이 같이 공부하면서 정도 많이 들고 그래서 뭐든 주고 싶은 마음이었나 봐요. 사실 선생님이면서 친구이기도 해요. 가족 이외에는 한국인 말벗이 거의 없는 그녀들이기에...

꿈꾸는섬 2010-11-24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울컥했어요.ㅠㅠ
자신이 먹지도 않을 김치를 혼자 담갔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 김치를 소나무집님께 나눠주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도 예쁘고 소중하네요.^^

소나무집 2010-11-25 00:32   좋아요 0 | URL
힘들었을 텐데 늘 괜찮다고 말하는 씩씩이 아줌마예요. ^^

엘리자베스 2010-11-25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좀 속상하네요. 형님들 미워~~~~~

김치 드린다고 약속해놓고 저는 드리지도 못했는데...죄송해요.
김치냉장고가 없는 관계로 저희는 맛김치만 조금 먼저 가져왔어요.
조만간 집으로 놀러갈께요. 김치 갖고^^

소나무집 2010-11-26 09:3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젠 김치 걱정 뚝~이에요.
이번 주말에 친정으로 김장하러 가니까 그냥 놀러 오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