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가 거의 없으니 책 빼고 나면 짐이랄 것도 별로 없는데 이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전라도 끄트머리에서 우리나라 지도상 중앙에 있는 도시로 오자니 실제 거리에 심리적 거리감까지 있어 이사 스트레스가 상당히 컸다. 이삿짐센터 구하느라 애를 먹기도.
하루는 전입 신고에 아이들 전학시키느라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이사했다고 알리면서 보냈다. 어제는 뒤죽박죽 꽂아놓고 간 책들 다시 빼서 정리하는 일만 쉬엄쉬엄 했다. 책이 무겁기는 무거운가 보다. 팔을 들어올릴 때마다 "아이고, 어깨야, 팔이야!!" 팔자 좋은 여자(완도에서 만난 한 모임의 대표 되는 분이 내게 붙여준 별명, 남편 덕에 전국 유람하며 산다고)가 안 쓰던 근육을 쓴 탓이리라.
원주다. 다들 남편이 서울에 있는데 왜 원주냐고 궁금해한다. 서울에 집을 구할 여력이 되었으면 이런 저런 핑계 안 찾고 냉큼 갔을지도 모르겠다. ... 치악산은 남편의 첫 근무지였다. 그래서 원주는 결혼 후 처음 내려와 두 아이를 낳고 살았던 곳. 생전 처음 남편 따라와서 살았지만 신혼의 추억 때문인지 과천 살면서도 생각이 많이 났다.(결혼 후 나의 이동 경로, 서울-원주-과천-완도-원주)
그리고 원주가 혁신 도시다 보니 남편 회사 본사가 이곳으로 내려올 예정이라고 해서 미리 와서 자리잡고 살자 싶은 마음이었다. (mb의 변덕에 의해 세종시로 가는 건 아닌가 요즘 불안하지만 mb랑 같은 동네 공기 안 마시는 것만으로도 좋다.) 본사가 안 내려오면 우린 내내 주말 가족이 될지도...
딸아이는 이번이 세번째 학교다. 내년에 6학년 올라가니까 금방 중학생이 되는데 사춘기에 자꾸 전학 다니는 것도 안 좋을 것 같고... 나도 3~4년에 한 번씩 먼 거리 이사를 다니다 보니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이젠 한곳에 붙박이로 살고 싶었다. 그동안은 어디 가서도 떠날 사람이기에 소속감 없이 여행자 같은 삶을 살았다. 이게 좋은 점도 있긴 하지만 완도처럼 작은 동네에서는 왕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서울 주변 사는 형제들이랑 친구들은 기왕에 이사 오는 거 좀더 무리해서라도 서울 언저리로 와야 아이들 교육(사실 이 부분에서 고민 좀 하긴 했다.)이 되지 않겠냐고 걱정들을 했다. 하지만 서울 주변으로 가도 학원에 기대며 아이들 교육을 시킬 게 아니기 때문에 큰 후회는 없다. 땅끝보다 더 먼 섬마을 완도에 살면서도 얻은 게 많았듯 원주에 살면서도 얻는 게 또 있지 않겠나 싶다.
일단 이사 왔기에 아이들도 나도 잘 적응해서 살 일만 남았다. 그런데 원주가 예전에 살던 원주가 아니다. 엄청 많이 변했다. 지금 현재 가장 좋은 건 아이들 담임이 모두 젊은언니(3학년) 젊은오빠(5학년)라는 것. 완도에서 3년 동안 경로당 보내는 줄 알았는데, (여섯 명의 담임 중 최연소가 58세였다.) 일단 그거 하나만으로도 너무 좋다.
그리고 원주에는 알라딘의 배꽃 님이 살고 있다. 알라딘 이웃이 진짜 이웃이 됐다. 어제 통화를 했는데 꼭 언니 같아서 완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