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에서 돌아왔다. 4월 12일에 집을 떠나 어제 아침에 돌아왔으니 딱 20일 만이다. 지치고 힘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해지고 싶었던 내 나라는 우리 가족을 반겨주지 않았다.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나라가 난리가 나 있었다.
인천공항에 들어선 우리는 무슨 범죄자라도 되는 듯 건강 체크에 여행 기록에 사진까지 찍히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진원지인 미국은 사실 너무나 조용했는데 말이다. 여행지 숙소에서 본 CNN 뉴스에서 돼지 인플루엔자에 관한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미국은 조용했다. LA 국제 공항엔 신종 인플에 대한 방송이나 안내문 하나 없었다. 우리가 너무 호들갑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이런 게 미국 얘들하고 우리하고 다른 민족성인가 싶기도 하고...
원래 계획은 동생네 집에서 하루를 보낸 후 친정으로 내려가 이틀 정도 더 보내고 올 예정이었지만 모두들 오지 말라고 난리였다. 미국에서 들어온 사람하고 접촉하고 싶지 않다나... 처음엔 황당하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만일에 대비해서 우리가 조심해주는 게 낫겠지 싶은 마음에 심야 버스를 타고 광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두어 시간 광주터미널 대합실에서 놀다가 첫차를 타고 완도로 왔다. LA를 떠나 길에서 30시간을 보내고 들어선 집이다. 와, 진짜 좋다.
돌아와 그동안 못 먹어서 한이 맺혔던 김치랑 밥을 실컷 먹고 열 몇 시간인가 내처 자고 나니 오늘 아침이 되어 있었다. 이젠 오지 말라고 내쳤던 친정 식구들이 너무나 고마울 정도로 푹 쉬었다. 가슴 아프게도 남편은 미국 생활 3개월 만에 7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앞으로 우리 음식 실컷 먹여 원상태로 복귀시킬 일이 나의 의무로 남았다.
오늘 하루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여행을 다녀온 게 실감이 난다. 렌트카를 타고 네비도 없이 지도만 의지해서 다닌 여행이었다. 그야말로 무식한 가족의 무모한 여행이었다. 미국 국립공원 아홉 곳, LA에 있는 디즈니랜드, 미술관과 박물관, 천문대 한 곳을 다녀왔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길을 잃어 하루를 허비하기도 했고, 기름은 떨어졌는데 주유소는 없어 가슴 졸이기도 하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아이들을 쫄쫄 굶긴 적도 있다. 막판엔 아들이 집에 가고 싶다고 찔찔 짜기도 하고...
여행 사진과 이야기는 천천히 올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