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인 Saeculum Aureum(황금의 시대)는 오현제, 다섯 명의 현명한 군주(five good emperors)가 로마를 다스린 시대를 뜻한다. 로마는 제정으로 변모된 뒤에 여러 위기를 겪었고,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만큼 벼랑 끝에 몰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딛고 다섯 명의 군주가 차례로 나타나 로마를 최전성기로 이끌었다. 그 군주들은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일컫는데, 로마제국 쇠망사, 를 지은 에드워드 기번의 말을 빌리자면 이 오현제 시대(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는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로마의 쇠망의 불씨를 품게 된 시대이기도 했다. 이 글의 목적은 다섯 명의 왕에 대해서 사료를 모으고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데 있으며, 각 황제에 대하여 개인적인 평가는 내리지 않을 생각이다. 이건 여담인데 사실 오현제에 대한 책이나 자료가 너무 없었다. 특히 왕조의 시작인 네르바, 그리고 자비로운 안토니누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쓰기를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그래도 조금 끄적여보련다.

 

 

 

1. 배경.

 

  아우구스투스 이래로 첫 왕조, 율리우스-클라디우스 왕조부터 시작된 로마제국은 칼리굴라, 네로 등과 같은 폭군을 연달아 배출함으로써 삐걱거리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황제들이 모두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저 왕조에는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속하는데, 아우구스투스의 다음 제위를 계승한 티베리우스는 치세 기간 중 실적은 좋았지만 로마 원로원과의 관계가 최악이었고, 클라우디우스는 건실하기만 했을 뿐 앞서 칼리굴라가 야기한 혼란을 수습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황제라는 직업은 매우 특이하여 너무 건실하기만 하면 또 곤란하다. 게다가 클라우디우스는 나약하기까지 했으니 더 힘들었을 것이다. 보면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4명 중 3명이(아우구스투스를 제외하면) 모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황제들이었다.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을 반쯤 속여가며 이룩해낸 제정이 그 시작부터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클라우디우스가 그나마 온화하고 괜찮은 황제였지만 그를 이은 것은 네로였다. 왼쪽의 책,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는 로마 초기 제정 시대의 사료를 모아서 소설로 재구성한 역작이다. 물론 어느 정도 야사를 참조한 경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칼리굴라-클라우디우스-네로로 이어지는 혼란의 과정,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충돌에서 권력이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리는가, 등의 모습을 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 책의 내용을 완전히 진실로 믿으면 또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네로 이후에 첫 왕조는 끊어지게 되고, 로마 제국은 내란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 내란을 종식시킨 황제는 베스파시아누스였다. 그리고 플라비우스 왕조가 시작되게 된다. 플라비우스 왕조의 황제들은 상당히 뛰어난 황제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왕조에서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로마인의 삶이 이어졌다. 오른쪽의 책은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이라는 책인데, 음.. 오른쪽의 책에서 로마의 공중화장실을 소개하면서의 소변을 수거하는데 세금을 물렸던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사실 너무 예전에 읽어서 내용이 확실하지가 않다.) 이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치세때 일어난 일이다. 그것으로 판단한다면 저 책에서 그려지는 로마의 하루는 대략 이 왕조(플라비우스 왕조)에서 아래에 다룰 오현제 시대의 왕조 정도까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 있던 플라비우스 왕조도 그 날개를 도미티아누스 황제때문에 접게 된다. 황제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상상해보면, 우리는 아무나 가볍게 처형하고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정치에서 그런 행위를 하면 꼭 역풍을 맞게 된다. 특히나 이 왕조까지만 하여도 황제의 권력이 완전히 반석 위에 올려지지 않은(아우구스투스의 이원집정제 ; 황제와 원로원이 권력을 나눠가지는, 때문에 황제 자신의 권력은 공고하지는 않았다.) 상태였기에 원로원의 힘은 여전히 존재하였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황제의 모습처럼 도미티아누스가 자신을 위해서 권력을 마구 남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는 원로원을 자극했고 결국 도미티아누스는 폭군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암살당하고 만다. 로마제국에는 다시금 내란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2. 네르바.

 

  이런 상황에서 원로원은 그들 나름대로 정국을 장악하기 위하여 당시 노령(70세)인 네르바를 황제의 자리에 앉힌다. 황제의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황제를 왕위에 올리게 된다면 피의 숙청이 다시금 닥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로마의 권력은 원로원과 군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황제는 양 쪽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껏 황제는 군의 힘을 바탕으로 왕위에 올랐고(군이 없다면 내란에서 승리하기란 불가능하다.) 원로원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때 원로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네르바였다. 네르바는 나이도 많았고 자녀도 없었다. 네르바는 제위에 오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전에 티베리우스 치하에서 공직생활을 했던 그로서는 황제위가 비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로마에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제위 기간 동안 원로원들을 절대 처벌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했으며 그것은 오현제 시대 전체를 통틀어 계속 지속된다. 사실 그가 오현제의 시작으로 꼽히긴 하지만 제위에 있었던 기간은 매우 짧았고, 설령 어떤 웅대한 뜻을 품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뜻을 펼치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원로원의 뜻에 따라, 전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잘못 처리한 부분들을 되돌리는 것 뿐이었다. 그가 한 정책으로는 농지개혁 정책 정도가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건물은 네르바 포럼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네르바가 오현제에 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후계자를 잘 지명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후계자를 지명한 것도 네르바의 뜻과는 어쩌면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미티아누스는 원로원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군과는 사이가 좋았다. 비록 원로원은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록 말살형(생전에 이룬 업적들을 모두 기록에서 지워버리는)에 처했지만 근위대와 군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네르바를 유폐시키고는 도미티아누스를 암살한 자들을 잡아 복수를 하라고 요구하였고, 네르바는 위기에 빠졌다. 결국 네르바는 당시 군공이 높았던 트라야누스를 양자로 삼고 후계자로 지명하기에 이른다. 트라야누스를 지명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그는 원로원과 군 모두에게서 환영을 받을만한 인물이었고, 로마는 다시금 혼돈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양자계승을 한 것 외에는 네르바가 제위에서 업적을 이룬 것은 사실 없다시피 했고, 요즘의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네르바는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은 지위를 차지하였던 것은 아닐까, 그의 제위 기간이 길지 않은 것이 도리어 다행이다, 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네르바 황제가 선량한 황제였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왼쪽의 데릭 손더스가 편집한 로마제국 쇠망사에서는 네르바의 선량함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네르바 시대에 살았던 율리우스 아티코스, 라는 사람은 가문이 몰락했었지만, 운이 좋게도 자신의 낡은 집 침대 밑에서 거액의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그 보물은 황제의 몫으로 넘어가는게 그 시대에서는 일반적이었으나, 당시의 황제였던 네르바는 공명정대하게도 조금도 받지 않고 보물 전체를 율리우스 아티코스의 몫으로 건네주었다. 하지만 율리우스 아티코스는 황제가 언제 마음이 바뀔지 두려웠는지 거듭해서 물었다. 일개 개인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거액이라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모르겠노라고 말이다. 그러자 선량한 네르바 황제는 화를 내며 네 멋대로 사용하라, 그것은 너의 재산이니까, 라고 답했다. 율리우스 아티코스는 황제의 명을 충실히 따라, 자신의 재산을 열심히 불리고 그 대부분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였다.

 

 

 

3. 트라야누스.

 

  트라야누스는 지고의 황제Optimus Princeps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초인이었고, 검소했으며 특히 군사적 재능이 매우 뛰어난 황제였다. 트라야누스가 특히나 유명한 까닭은 왼쪽의 시오노 나나미가 이야기했듯이 최초의 속주출신 황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의 조상들은 아마 로마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인들이 속주에 정착하면서 그 지역의 여성들과 결혼을 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속주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황제 즉위는 일종의 상징적인 평등성이었다. 속주 출신도 제위에 오를 수 있다, 라는. 트라야누스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아버지는 로마 제국에서 관리로 활동하였고(그의 집안은 세도가로 짐작되지만 정작 관리의 길에 오른 것은 그의 아버지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아버지를 따라서 트라야누스 본인도 군단을 지휘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기에 벌어진 반란을 진압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트라야누스가 네르바에게서 제위를 받았을때는 45살 무렵이었다. 제위에 오르기 전에 그는 플로티나와 결혼했으며 금슬은 매우 좋았다고 알려져있다. 플로티나는 매우 중요한데, 그녀는 이후의 황제가 될 트라야누스의 사촌 하드리아누스(트라야누스는 하드리아누스의 종형이었다.)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고, 사료가 없어서 잘 알려져있지만 하드리아누스의 황제 계승에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이는 하드리아누스를 다룰때 다시 언급할 것이다. 사실 트라야누스는 남자라면 한창때에 더이상 올라갈 수 없는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제위에 오르고 아우구스투스의 유훈이라고 할 수 있는 영토 확장을 정면으로 거스르게 된다. 도미티아누스가 포기한 다키아 원정을 다시금 시작한 것이었다.

 

다키아의 용맹한 왕 데케발루스는 만만치 않은 적수였다. 하지만 트라야누스는 더 뛰어난 군략가였고, 두 차례의 전쟁이후에 다키아는 정벌당하고 데케발루스는 자살하고 만다. 데케발루스는 로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으로 다키아를 키우고 싶었지만 그 꿈은 무산되었고, 로마로서는 상당한 이득을 얻게 된다. 다키아와의 긴장으로 인하여 계속 유지해야하는 군비가 많이 감축되었고, 수많은 값진 전리품으로 경기는 매우 좋아지게 된다. 특이하게도 트라야누스는 다키아에 대하여 철저한 말살정책을 수행하였고, 금광과 각종 광물자원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자원들을 통하여 트라야누스는 로마 제국 전역에 공사를 시행한다.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로스는 공회장을 새로 설계하였고 트라야누스 기념주를 세웠다. 지금은 파괴되었지만 트라야누스 광장과 다리 또한 그의 업적으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어느 정도 경기를 회복시킨 뒤에는 그는 다시 원정길에 오르게 된다. 이번에는 파르티아를 향해 칼날을 겨누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키아처럼 성대한 승리를 거두기는 힘들었다. 파르티아의 영주들은 다키아처럼 철저하게 파르티아가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었다. 그리고는 게릴라 활동으로 트라야누스의 진군을 막았다. 적이 확실히 눈 앞에 보인다면 싸워서 승리할 수 있지만, 공격하고 마치 물이 흡수되듯이 사라진다면 힘만 들 뿐 수고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파르티아의 수도를 합병하기는 하지만 때마침 일어난 유대반란과 새로 정복한 영토들에서의 반란때문에 로마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안티오크(파르티아 전쟁에서의 보급처)에 일어난 지진의 영향도 컸다. 지진에서 트라야누스는 겨우 살아날 수 있었고, 건강도 악화된 상태였었다. 비록 그는 페르시아 만까지 당도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가 그의 진군의 끝이었다. 어쩌면 그는 알렉산더 대왕을 내심 경쟁자로 마음 속에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 알렉산더 대왕 만큼의 명성을 얻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탄식했었다고 한다. 결국 로마로 돌아오던 그는 셀리누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위에 보이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권, 에서 그때의 급박한 순간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저 책의 중후반부에서는 트라야누스가 죽고 어떻게 하드리아누스에게 제위가 넘어가는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비록 역사서가 아닌 소설이지만 엄밀한 부분이 많기에 참고할만하다. 사실 트라야누스 시절의 로마는 영토로서는 거의 최대 확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수많은 재물로 로마의 경기 또한 풍족하였다. 하지만 파르티아 원정은 가지 않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시대는 일종의 정오였다. 태양은 가장 높이 떠올라있었다. 하지만 당신도 알 것이다. 가장 높이 올라간 태양에게 남은 것은 저무는 것 뿐이라는 것을. 쇠망은 이때부터 벌써 다가오고 있었다.

 

 

 

4. 하드리아누스.

 

   오현제 중 가장 복잡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가진 황제는 하드리아누스였다. 그런 그에게 매료되어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는 소설을 남겼다. 이름하여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의 1권은 하드리아누스가 그의 세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드리아누스는 그의 종형 트라야누스가 황제에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축하하러 그가 있는 곳까지 이동한다. 하지만 그는 매부인 율리우스 세르비아누스에게 방해를 받고, 그 방해는 그가 제위에 오른 뒤에도 계속된다. 그리고 트라야누스 다음의 제위에 오르게 되고 동방의 회담길에 올라 어느 요기를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2권은 그가 제위에 올라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그가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누구보다도 복종할 수 있는 존재라 그렇다고 말한다. 그가 정책에서 추구했었던 것은 인성Humanitas, 행복Filicitas, 자유Libertas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하드리아누스는 일생동안 점성술에 빠져있던 사람이었고 신비주의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왼쪽의 책은 그런 면모를 시인, 황제 등의 목소리로 바꾸어가면서 잘 서술하고 있는 역작이다. 실제의 하드리아누스도 위의 책에서 그려져있는 면모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사료를 바탕으로 저 소설을 지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 소설에는 의도적으로 역사와 다르게 진행하는 부분(하드리아누스가 미트라교에 심취했었다던가, 요기를 만났다던가)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거의 비슷하다.

 

하드리아누스의 아버지는 상당한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시 대대장에 불과했던 트라야누스에게 하드리아누스의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하드리아누스의 후견인이 되어달라고 한 것이었다. 누가 그 당시 트라야누스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겠는가, 물론 하드리아누스의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친인척이었기에 맡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트라야누스는 황제가 되었고 덕분에 하드리아누스도 황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특히 그는 트라야누스의 황후인 플로티나와 상당히 친했었는데, 그녀의 총애에 힘입어 트라야누스의 증손녀인 사비나와 결혼하였다. 사실 둘 사이는 좋지 않았다. 하드리아누스는 동성애자였고 속주 시찰로 외부를 돌아다니기만 했었기 때문이다. 사비나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로만 둘러싸인 조그마한 울타리 안에서만 평생 살았다. 하지만 황제의 인척이라는 것, 그리고 결혼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그에게 큰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한동안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집정관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 후 그의 출세는 주춤하게 되었다. 파르티아 원정 당시 하드리아누스는 지휘를 맡아 군공을 세웠으나, 확장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자주 내비쳤기에 시리아 총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어쩌면 트라야누스가 좀 더 살아있었다면 하드리아누스는 제위에서 멀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트라야누스는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사망하게 되고, 때마침 사망시 트라야누스의 곁에는 하드리아누스를 지지하는 플로티나가 있었다. 죽기 전까지도 제위를 누구에게 계승시킬 것인가, 에 대하여 묵묵부답이었던 트라야누스였기에 어쩌면 플로티나가 어떤 술수를 부린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있다. 군대는 바로 하드리아누스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리고 하드리아누스는 제위에 오르자 트라야누스의 정복전쟁들을 포기하고 귀환한다.

 

하드리아누스는 매우 변덕이 심하고 베풀때에는 모든 것을 베풀었지만 수틀렸을때에는 매우 타산적인 정책을 펼쳤다. 자리에 오르자마자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원로원 의원 4명을 숙청한다. 하지만 그 또한 현제의 일원, 트라야누스의 정복 전쟁때문에 점차 균열이 가기 시작한 로마 제국을 부흥시키기 위하여 거대한 시찰길에 오르게 된다. 어쩌면 이는 그 스스로가 트라야누스가 정복한 땅들을 모두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자인한 것과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결정이 어리석지는 않았다. 갈리아,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 스페인, 발칸 반도, 아나톨리아. 단순한 지명만 열거하니 잘 와닿지 않지만, 동서로 길쭉한 로마 제국을 가로질러 끝에서 끝으로 향했다고 보면 된다. 그는 순방하면서 모든 부족한 방위체계를 고쳤다. 물론 이는 크게는 로마 제국의 균열을 메우기 위함이었지만 작게는 그 개인적인 호기심도 작용하였다. 그는 그야말로 어느 문필가가 말하듯 흥미로운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는 탐구자Omnium curiositatum explorator였다. 그런데 그의 호기심이 특히나 깊게 머문 곳은 그리스였다. 제우스 신전을 짓고 그들의 법률을 유리하게 고쳐주었으며 그리스인들에게 특혜를 많이 베풀었다. 특히나 점성술과 신비제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엘레우시스 비의에 그를 입문하게 만들었다. 그리스에게 배운 것은 그런 신비적인 의식만은 아니었다. 예술에 대한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덕분에 발달된 그의 예술가적인 성향은 그로 하여금 시를 짓게 만들고 건축물을 설계하게 하였다. 판테온 신전을 다시 지은 것도 그의 치세의 일이다. 오른쪽의 만화, 테르마이 로마이, 는 하드리아누스 치세에 있던 루시우스라는 사람이 일본으로 이동해서 목욕 문화를 배워서 다시 로마에 그것을 적용한다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아무 생각없이 즐기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고증도 제법 잘 따라가는 편이다. 저 책에도 하드리아누스의 모습이 어느 정도 그려져 있다. 하지만 변덕스럽고 예민한 황제는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악몽이었다. 황제는 할례 금지령을 내렸는데, 유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었고, 그 외에 유대교에 대한 로마 황제의 오해와 예민한 황제에 대한 두려움 등이 겹쳐서 유대인들은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하드리아누스는 유대인들을 매우 난폭하게 다루었고 잔혹한 처벌을 집행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복되는 반란에 지쳐 하드리아누스는 유대인들을 예루살렘 지역에서 모조리 쫓아내기에 이른다.

 

하드리아누스는 속주의 순방 이후에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로마 제국은 매우 거대하였기 때문에 기력을 많이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질투심과 변덕스러움도 그의 건강이 나빠지는데 한 축을 담당했으리라. 그리고 건강이 나빠지고 투병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의 변덕스러움과 난폭함은 더욱 더 심해지고, 사납고 잔인해졌다. 그의 변덕은 후계자 선정에서도 나타났다. 그의 난폭함과 변덕스러움이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대부분의 결정은 공정하고 온당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계자를 선정할때는 위험이 따랐다. 바람둥이이며 평이 좋지 않았던 아엘리우스 베루스, 라는 귀족을 후계자로 선정한 것이었다. (사실 아엘리우스는 하드리아누스가 숙청한 원로원 의원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어쩌면 원로원 의원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이 작용했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일찍 죽었기에 오현제의 시기는 좀 더 지속될 수 있었다. 결국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되는 17세의 안니우스 베루스, 였고, 그를 세손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바로 다음 후계는 누구를 삼아야 될까? 하드리아누스는 그의 분별력으로 안토니누스를 고르고, 그에게 제위를 넘기는 대신 그 다음 자리는 마르쿠스의 자리가 되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르쿠스 외에 아엘리우스 베루스의 아들이었던 루키우스 베루스도 양자로 삼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가 동시에 공동 통치를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요하였다. 안토니누스는 그 말을 따랐다.

 

 

 

5. 안토니누스 피우스.

 

  안토니누스는 본래 원로원 의원이었다. 공직 생활에서 흠을 보이지 않았던 그는 어쩌면 당연히 황제 후보에 오를만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드리아누스가 실제로 그에게 황위를 물려준 것은 다른 속셈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 안토니누스는 본래 하드리아누스가 점찍었던 세손, 마르쿠스에게 제위를 넘기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이었으리라. 하지만 안토니누스는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도 오래 살았다. 그는 온화한 성품이었고, 그의 가문은 상당한 명문가였다.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모두 집정관이었으니 말이다. 보통 명문가의 자식은 세태를 잘 모르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지만 그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랐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오현제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특히 두 안토니누스 황제에 대한 설명으로 그 대장정을 시작한다. 책에서 말하는 두 안토니누스 황제란 여기서 다루고 있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다음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이다. 왼쪽의 대광서림에서 나온 책은 일본어판 중역본으로 알고 있고, 아래의 민음사에서 나온 책은 완역본으로 알고 있다. 민음사판을 중심으로 참고하는 수준에서 읽어나간다면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이 책들에 따르면 안토니누스 황제는 매우 온후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전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는 변덕스러웠기에 원로원 의원들은 그에게 신격을 부여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가 된 안토니누스는 그들을 설득하여 신격을 부여하고, 그외에 자잘한 일들을 처리함으로서 피우스(자비로운 자)라는 명칭을 얻었다. 그의 치세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고 외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사실 이런 기회를 틈타 그는 다른 황제들 이상의 업적을 쌓을 수도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그의 제위 기간 중 가졌던 가장 긴 여행은 로마의 궁전에서 근처의 별장에 이동한 것 뿐이었고, 대부분은 로마의 궁전에서 통치하였다. 하드리아누스와 비교하자면 정말 차이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로마인들은 그의 치세를 태평성대라고 여겼고, 실제로도 그랬다. 

 

안토니누스 황제 시대에서는 다음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학문에 대한 열기가 높았다. 그가 아테네에 세운 학교에서는 국비로 철학과 수사학 등을 가르쳤고, 철학자들을 고용하여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철학자들의 급여는 매우 높았고, 이런 경향은 아테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가 정신적인 수양만 쌓고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라는 것은 아니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에 따르면 그는 연극을 좋아했다고 하며, 전 황제와는 달리 여성의 매력에 관심을 기울였다고도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양아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자신의 딸, 파우스티나와 결혼하게 만들었는데 그녀는 미모도 아름다웠지만 미모만큼이나 그 염문과 불륜으로도 유명했다. 철인황제라 불리게 되는 마르쿠스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6.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오현제 중에 영화 글레디에이터, 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게 알려진 황제가 바로 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일 것이다. 그 외에 왼쪽의 책, 명상록으로도 매우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사실 명상록의 내용 자체는 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 잘 생각해보면 그럴 듯한 이야기이다. 마음의 평화를 위한 금언 모음집이랄까. 정의의 가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높이 평가하는 등의 내용을 품고 있다. 하지만 별로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내용을 떠올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예시로 누구나 선이 옳고 악이 그르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말이 정말 필요할 때 입 밖에서 나오는 일은 드물다. (선과 악이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지는가, 와 같은 의문을 접어두자면.) 생각해보면 사실 그는 이런 책을 쓸 수 밖에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어렸을때부터 그는 소박하고 근면하고 생각이 깊었으며 열두 살 때부터 이미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 깊이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17살의 나이에 공동 황제로 오르기로 예정되어있었다. 하지만 안토니누스가 오래 사는 바람에 40살이 넘어서 제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안토니누스의 자리를 빨리 획득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지 않았고, 적법하지 않은 수단으로 그의 자리를 뺏으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철학은 그에게 이성의 힘과 정신의 힘을 가르쳐주었으며 사악한 마음을 피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긴 예비황제 기간은 그에게 통치술과 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기간이기도 하였다. 파우스티나와 결혼한 뒤에는 예비황제로서 안토니누스와 함께 국정을 의논하기도 하였다.

 

앞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이야기를 하며 루키우스 베루스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언급했을 것이다. 루키우스 베루스는 방탕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야말로 황제로서의 모든 덕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황제가 된 루키우스는 통치는 그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맡기고 그가 누리지 않는 향락들을 모두 자신이 누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루키우스에게 유일한 장점이 있었으니 그는 대부분의 결정을 자신보다 뛰어난 형, 마르쿠스에게 맡겼던 것이었다. 무능하기만 하고 게으르기만 하다면 유능한 인물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면 된다. 그야말로 중국 삼국지의 촉의 유선이 제갈량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능하고 게으른데다가 거기에 귀가 얇고 간신들을 가까이 하여 국정을 방해하면 그것은 정말 나쁜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유선이 정말 많이 제갈량의 발목을 잡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정사에서도 딱히 다르지 않다. 그 점에 있어서 루키우스는 유선보다 나았다. 전쟁, 전염병, 미풍양속 바로잡기 등 대부분의 업적은 마르쿠스가 행했다. 루키우스는 그저 마르쿠스를 따르고 그보다 나은 형을 존경할 뿐이었다. 하지만 제갈량은 결국 과로를 못이겨 사망했다. 마르쿠스도 마찬가지 길을 걸을 것이었다. 오른쪽의 평전은 그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대한 자료를 모아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물론 루키우스 베루스가 아예 게으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형과 함께 게르만족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결국 루키우스는 싸움이 끝나고 (169년)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며, 마르쿠스는 그를 마음 깊이 애도했다.

 

평화로웠던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시대와는 달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치세는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파르티아가 침공했다. 게르만족이 침공했다. 그들을 격퇴하기 위해서 그는 전장으로 향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프랑스의 문필가 몽테뉴가 프랑스로 잡혀온 야만족 추장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대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을 왕이라고 부르는가? 그러자 추장이 몽테뉴에게 말했다. 전쟁에서 가장 앞서 달려나가는 사람이 왕이다, 라고 말이다. 그야말로 왕의 이름에 걸맞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항상 최전선으로 뛰어들어갔으며 국경선을 유지하였고 외적을 막았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뛰는 황제라도 전염병을 막을 수는 없었다. 파르티아의 시리아 침공에서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군공을 세웠고 그는 동부의 로마군 총지휘관의 자리에 오르고 이집트까지 그의 지배하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파르티아의 침공을 막은 뒤 돌아온 뒤 그의 군대가 퍼뜨린 전염병은 수많은 로마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선이 지루하게 길어지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북부에서 한동안 돌아오지 못하자 로마에는 마르쿠스가 죽었다, 라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 그 소문을 들은 아비디우스 카시우스는 자신이 황제 위에 오른다고 (175년) 선언하고 반란을 시작하지만, 이 때 마르쿠스는 한달음에 로마에 달려와 군사들 앞에사 긴 연설을 한다. 로마의 안녕을 위해서는 카시우스에게 황위를 물려줄 수도 있다, 나는 늙고 지쳤고 힘들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카시우스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이다. 갓 북부 지역의 부족들과 평화조약을 맺고 돌아온, 그야말로 로마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을 다 바친 늙은 황제의 초라한 모습은 군인들의 마음에 연민을 불러일으켰고 카시우스는 이윽고 부하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럼에도 마르쿠스는 자신의 말에 한 점 거짓이 없었다는 듯, 카시우스의 지지자들에 대한 원로원의 복수를 막았다.

 

파우스티나의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황제의 아내였던 파우스티나가 이 카시우스의 반란에 참여했다는 말이 있다. 카시우스가 황위에 오르면 자신의 황후 자리도 위협받게 될까봐 카시우스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사료가 신뢰성이 없다고 하는 말도 있다. 파우스티나는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행실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명상록에서 마르쿠스는 항상 자신의 아내가 정숙하고 현명하며 사려깊다고 말했다. 황제는 그녀의 애인들을 높은 자리로 승진시키기도 했었고, 심지어 그녀를 여신으로 선포하도록 원로원에게 요청하기도 하였다. 모든 남녀는 이 '정숙'한 여신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하여야 하였다. 아마 마르쿠스는 자신의 아내의 음행을 전혀 몰랐거나, 혹은 믿고 싶지 않았거나, 또는 들어도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갔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덕으로 유명한 황제였지만 아내를 여신으로 선포한 일은 그의 오점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끊임없는 사랑, 이라면 사랑이 통했던 것일까, 파우스티나는 마르쿠스의 힘든 원정에 두 번이나 함께 동행하였고 이윽고 원정길에서 죽었다.

 

마르쿠스는 177년 아들 콤모두스를 공동 황제로 선포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알다시피 콤모두스의 실정이 이어진다. 마르쿠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사악한 마음을 사라지게 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게 하려고 철학자의 강의를 많이 듣게 하였지만 모두가 마르쿠스 그 자신 같지는 않은 법이다. 한창 놀고 싶을 때의 나이인 콤모두스는 나약한,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젊은이였다. 사실 나약하고 게으르기만 했었다면 로마 제국은 다시 내란으로 빠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신들의 득세로 점차 잔인해지고 말았다. 마르쿠스는 이 모든 것을 내다보았을까? 아마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르쿠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제위를 주지 않는다면 나라가 반으로 쪼개질 것이고, 그것은 그야말로 내란의 시작일테니 말이다.

 
 

 

7. 오현제의 공통적인 특징.

 

  다섯 명의 현제는 공통적으로 양자계승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네르바는 트라야누스를 양자로 삼았고, 트라야누스는 하드리아누스를, 하드리아누스는 안토니누스와 마르쿠스를 예비했다. 하지만 이 양자계승은 친자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친자가 있었다면 그들은 마지막 현제, 마르쿠스처럼 친자에게 권위를 조금이라도 쥐어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 여겨진다.(황제의 친자, 라는 권위는 정통성 확보에 가장 유리하다. 이것이 반란의 명분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양자계승을 했고 그 계승은 성공적이었다. 모두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유능하였으니 말이다. 로마 시민들은 그들의 치세를 황금 시대Saeculum Aureum라고 불렀으며 황제들의 유능함을 칭송했다. 이 시기에는 이원집정제는 그 힘을 잃어갔으며 이윽고 로마 공화정의 주축을 이루었던 원로원에는 황제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물론 황제가 원로원과의 다툼을 피하였던 것도 컸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제외하면 원로원 의원 중에서 처벌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황제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모습을 낳았고, 이는 이후에 콤모두스가 향략을 벌이거나 공포 정치를 행할때 아무도 쉽게 나서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저렇게 한 곳으로 권력이 모이게 되면 나라 내부의 반란은 쉽사리 일어나기 어렵지만 지방직으로 내려가는 것을 일종의 좌천으로 여기게 되는 경향도 생기게 된다. 오현제 시대는 그 빛이 너무나 찬란했지만 동시에 이렇게 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맺는 말을 대신하여 몇 마디 덧붙인다. 사실 현대 정치를 볼때, 저런 다섯 명의 왕의 특성이 좀 계승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양자계승과 같은 특성말이다. 계파나 이념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지명하고 나라를 이끈다면, 그런 정치가가 있다면 마음놓고 두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선정은 정직한 사람들이 무참한 꼴을 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워낙 사료가 없어서 그녀의 책을 참조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녀의 책에서 얼핏 보이는 생각들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터라 대부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저 말만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선정이라는 것은 분명 그런 것이다. 중국의 요순임금시대를 태평성대라고 불렀던가, 요임금의 치세에는 임금이 있는지조차 백성들이 몰랐다. 진정한 치세는 그런 것이며 정직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저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지워진다 : 좋은 왕은 죽은 왕뿐이다. 정치가와 왕은 다를 것이라고? 하지만 정치가라면 다른 정치가들을 세뇌라도 시키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저런 선정을 베풀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정을 관철시키려 한다면 그는 왕, 전제권력자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는 뛰어난 한 사람의 전제정치와 다수의 어리석은 인물들의 중우정치의 대결로 귀결된다. 나는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다수의 어리석은 인물들을 싫어한다. 제대로 내용을 모르는데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엄밀하지 않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그리고 검증이 없이 한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행태를 증오한다. 현대식으로 보자면 SNS의 무분별한 리트윗들을 정말 혐오한다. 물론 혼자서 모든 정보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정보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럴지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은 증폭되고 오해는 지속된다. 특히 민감한 정치나 종교, 계층 등의 주제에 대해서 더욱 경향이 심화된다. 고백하자면 사실 이 증오 또는 혐오의 칼날은 나 자신도 피해갈 수 없기에 자기혐오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나는 나 자신을 혐오스러워한다. 나 또한 아직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런 어리석은 대중들이 정치를 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어리석은 정치가 가장 위대한 왕의 통치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정치는, 적어도 인류의 진보를 위한 정치는 가능성에 그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반론할 수 있다.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데 현실의 발전과 미래의 가능성, 둘 중 어디를 택하는게 옳겠는가? 혹은 다수의 어리석은 인물들이 모인다고 해봤자 1+1=1 이상이 나오겠는가? 1+1=2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그럴바에야 처음부터 100을 고르는게 낫지, 라고 말이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100은 하나의 틀을 넘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더하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1은 다르다. 사실 무엇보다도 1+1이 하나의 결과, 1 혹은 2로만 표현된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각 개인의 합은 단순한 덧셈이 아니다. 1+1은 1+1의 가치를 가지지 2라는 가치로 합쳐지는 것이 아니다. 1+1=2라면 100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1+1이 1+1이라면 100과는 비교기준 자체가 설정되지 않는다. 이는 틀을 넘는다는 이야기와 같다. 덧붙이자면 각 개인은 각성에 따라서 그들의 능력이 개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1+1은 100+100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언제나 어리석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관점만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관점도 있다, 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적으로 본다면 정치나 어떤 활동에 있어서 개인들 각자는 그들의 특성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하나의 힘을 발휘하는 그런 모습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다중Multitude이라는 개념과 설명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쉽게 다중이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 같다.) 그리고 현실의 발전과 미래의 가능성 중 무엇을 고르는 게 옳겠는가, 라는 질문에는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현실의 발전에 노력해달라. 나는 미래의 가능성에 걸겠다, 라고. 이는 가능성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다양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수한 사람들이 가진 무수한 가능성들은 각자의 무수한 다양성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 다양성은 사회가 어떤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기반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헛된 망상처럼 보이는 수많은 가능성에 몸을 던진 사람들로 하여금 성숙되어 왔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오현제는 필요없다. 그들이 아무리 흥미롭고 위대하더라도. 그리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번민하라. 우리 시대에게는 오현제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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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일종의 실용주의자라서 종이책 자체를 소유하는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책의 정보와 내용만 온전하다면 굳이 종이로 만들어진 책, 이라는 형상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책의 내용이다. 그렇기에 내가 책을 고르게 될 때에는 아무래도 표지보다는 내용을 우선으로 보게 된다. 물론 아무런 정보도 없는 책을 고르게 될 때에는 표지를 보게 되고, 뛰어난 표지디자인에는 감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기준은 내 안에서는 순위에서 밀려나있다. 그러다보면 늘 내 손에 잡혀있는 책들은 두꺼운 책들 뿐이다. 이 말이 두꺼운 책이 내용면에서 얇은 책에 비하여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심정적으로는 그렇게 주장하고 싶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책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아무리 얇은 책이라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변명을 한다면, 일반적으로는 두꺼운 책을 쓰기 위해서는 얇은 책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정보의 탐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임에는 분명 틀림이 없을 것이다. 무언가 조사한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다면 500페이지를 넘어가는 책을 쓰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일반적으로 얇은 책에 비하여 두꺼운 책은 정보를 많이 담고 있으며, 이는 내가 말한 내 기준, 내용을 더 우선시해서 보게 되는, 에 부합한다. 또한 두꺼운 책은 얇은 책에 비하여 항상 위험성을 내포한다. 논리적 연결이 어긋날 위험, 같은 말을 반복할 위험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두꺼운 책을 쓰면서도 논리적 연결이 온전하고 같은 말의 반복이 그리 많지 않다면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글 안에서도 번뜩이는 재치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빛이 과연 뛰어난 통찰에서 온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바꿔말하자면 우리로서는 그것이 깊은 사유의 산물인지, 우연의 산물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긴 글은 문학적 수식을 배제하고 살펴본다면 정말로 뛰어나게 쓰지 않는 한 자신의 결점이 그대로 폭로된다. 그 중에서도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아래에 읽거나 읽은 책들 중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엄밀하게 1000페이지를 기준으로 삼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만족할 만큼 소개하기 힘들기에 단행본 기준으로 주석을 포함해서 900페이지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 몇 번이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 책은 제외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생각의 역사1, 1239쪽.

수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읽다보면 저자의 지식의 폭에 진정으로 놀라게 되는 도서이다. 생각해보면 머리로 떠올려보는 역사는 지금껏 어느 나라, 어느 곳의 역사였었다. 그 역사또한 초기의 혼합된 형태에서 갈수록 세분화되어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한 지역에서 그들 나름의 역사를 발전시켰을때, 다른 지역 또한 자신들의 문화를 발전시켜왔었다. 어느 한 곳만 아는 것은 불완전하다. 이 책은 그런 불완전성을 최대한으로 완전성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의 결과물이고, 그동안 세분화되어 발전되어온 각종 과학과 기술을 과거의 흔적에 유감없이 쓰여지도록 하는 장을 열어준다. 1권의 경우 그 범위가 '불에서 프로이트까지' 로 설정되어있는데, 그렇다고해서 단순한 인명이나 물질적 지식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저 범위는 말 그대로 전체적인 시야에서의 한 부분이며, 그 부분안에 있는 모든 사상과 역사를 다루고 있다.

 

 

 

생각의 역사2, 1328쪽.

왜 위의 책과 같은 책인데 이렇게 다르게 소개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 책은 위의 책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묻는다. 왜 기존의 예술이 '과학에 대항해야 된다' 고 주장하면서 발달해왔는가? 그리고는 답을 내리는데 그것은 과학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20세기 지성사, 에서는 과학의 비중이 서술에서 종종 드러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역사나 인문의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서 세계 각지의 모든 부분에서 발전되어온 지식들의 변천사를 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전문적인 과학적 지식을 이야기하기에는 힘이 조금 모자라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 핵심은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으나, 대부분 이해를 위해서 비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짜임새는 이 책은 1권 이상의 수작의 반열에 올려준다.

 

 

 

지식의 역사, 924쪽.

사실 이 책은 위의 책들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위의 책들에 비하자면 많이 모자란 편이다. 위의 두 책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이 책을 구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으나, 만약에 위의 두 책이 부담스럽다면 이 책을 구입해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위의 두 책에 비하여 훨씬 접하기가 쉽고 읽기가 쉬운 편이다. 크게 두 가지의 단점이 눈에 보이는데, 누구나 훑어보면 알 수 있듯이 서양 중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뒤의 미래에 대하여 저자가 나름대로 예측한 부분은 맞지 않는 이야기가 종종 보인다. 저자 스스로가 밝힌 것 처럼 예측이 '판타지에 기반' 한 것이라고 할 지라도 개정판을 내면서 조금씩 추가하고 수정해났다면 훨씬 좋은 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런 단점을 제외한다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판형이 조금 작은 편이다.) 지식의 나열과는 달리 저자의 생각과 통찰을 의문형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스탈린, 976쪽.

 히틀러에 비견될만한 독재자를 찾는다면 스탈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감추지않고 아무렇게나 확대재생산시켜왔던,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든 높이 올려서 남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히틀러와는 달리 스탈린은 자신의 기록을 철저히 숨겼다. 자신의 어린시절부터의 기록은 스스로의 신격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조금의 실마리만 남아있으면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이미 불태워진 기록을 두고 이야기는 할 수 없는 법이라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많이 누락이 되어있다. 그리고 책의 중반, 레닌 밑에서 권력을 잡기까지의 그의 행적은 지루하기까지하다. 또한 스탈린 중심으로 서술된 책이다보니 아무래도 2차세계대전의 기록은 간략화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탈린, 이상으로 그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책은 없을 것이다.

 

 

 

촘스키, 사상의 향연, 936쪽.

 꽤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우리 시대에 가장 뛰어난 지식인 1위에 촘스키가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목록에는 움베르트 에코, 크리스토퍼 히친스, 리처드 도킨스 등 쟁쟁한 지식인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는데,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이나 쟁쟁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 촘스키가 가장 두드러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사상과 연구를 문답법과 그 자신이 직접 지은 글을 제시함으로써 그의 육성을 직접 느끼는 듯한 효과를 가져오며 이를 통하여 그에 대한 이해를 좀 더 폭넓게 한다. 좀 더 책을 읽는데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은 글자 크기와 (미묘하게 큰 것 같지만) 여백이 커서 눈에 쉽게 들어오는 편이다. 시원시원스럽다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 말하자면 제책 방식에 따라서 페이지 수가 달라질 수 있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1, 2. 합쳐서 1774쪽.

책 소개에 보면, 1권이 960쪽이고, 2권이 1774쪽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책은 1, 2권 모두 합쳐서 페이지를 매기고 있기에 1권이 960쪽이면 2권은 814쪽이다. 단권으로 내기에 부담스러운 크기라서 적당히 반으로 자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페이지 수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은 정말 위대한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이 책은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유대인들을 파괴한 사람들에 대한 책이다. 이는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을 얼핏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책보다 훨씬 깊은 연구와 자료조사, 그리고 성찰을 배경으로 가지고 쓰여진 책이다. 여기서 저자는 각종 도표와 지도를 들어가면서 어떻게 파괴기계, 라는 것이 그 행동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를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저자의 무서울 정도로 불타오르는 집념일 것이다. 저자는 파괴 과정을 알고 싶다고 말했지만 유대인으로서의 저자의 출생까지 고려해본다면 어쩌면 진실로 그가 묻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리라. 왜? 왜 유대인들이 파괴되어야만 했는가? 잘 벼려진 그의 열정은 딱딱해보이는 문체 속에서도 숨겨지지 않고 순수한 빛을 발한다.

 

 

 

앞서 촘스키의 책을 소개하면서 이야기했듯이 사실 페이지 수는 제책 방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여기에 소개한 책들 외에 10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은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같은 책들은 20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이다. 하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1000페이지라는 숫자는 상징적이다. 저런 1000페이지 책들을 곰곰히 살피면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로 평전과 역사의 개괄 부분에서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들이 자주 보인다. 순수 사상과 연구만으로는 1000페이지를 넘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런 점에서 1000페이지가 그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 말이 평전이나 역사에서 10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이 사상을 다룬 책들에 비하면 모자란다, 라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울 수는 있겠지만.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두꺼운 책을 읽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400페이지 남짓의 얇은 책을 읽을 때에는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마음이 조급해진다. 조금만 더 읽으면 끝, 이라는 감정과 조금만 더 남아있었으면 하는 생각 사이에서 말이다. 하지만 1000페이지 가량의 책을 읽을 때에는 읽어도 읽어도 끝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다 읽게 되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면 더욱 더 좋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두꺼운 책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덮는 것은 한 세계의 끝이다. 나는 이왕이면 내 눈으로는 세계의 끝을 최대한 늦게 보고 싶다. 그리고 이는 내가 쓰는 글들이 왜 길이가 그럭저럭 긴 편인가, 에 대한 답도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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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12 22:24   좋아요 0 | URL
저는 페이지수에 크게 부담갖진 않는 편이지만 올리신 책들은 부담되네요. 내용상으로 어려울것 같아서요. 전 저 책들중 하나만 읽어도 뭔가 대단한걸 이룬 기분이 들 것 같아요.

가연 2012-09-13 01:18   좋아요 0 | URL
이 중에 한 권만 택하라면 마지막의 홀로코스트, 에 관한 저서가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한 권이 아니네요, 아하하, 가장 쉬운 책은 지식의 역사, 가 아닐까, 싶네요.

비로그인 2012-09-23 15:14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를 읽고보니 책장 한구석에 있는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로 눈길이 ^^;;
책을 덮는 것은 한 세계의 끝. 어쩐지 복잡미묘한 서글픔이에요..

가연 2012-09-24 08:08   좋아요 0 | URL
그렇죠, 끝없는 이야기..ㅎㅎ 그런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미하일 엔데, 의 책은 예전에 읽어보기는 했는데ㅎㅎ 읽는 순간에는 행복했는데 읽고나니까 또 허망하더군요, 풋.

플라네타리움 2012-12-07 16:00   좋아요 0 | URL
책을 검색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네요.. 정말 대단한 분 같아요 ... 저는 책을 좋아해서 매월 몇십만원씩 구입만 하고 그 중에 읽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 있으니 자꾸만 쌓여만 가는데도 자꾸 사게 되는 이상한 병에 걸려 있거든요. 가연님 글을 읽게 되어 영광이고 앞으로 또 쌓여가는데 일조할듯 하지만 이곳을 발견하게 되어 정말 기쁘네요. 외람되지만 읽으신 책 중에 5권 내외로 뽑아서 분야에 상관없이 아끼는 사람에게 혹은 미래의 자녀에게 꼭 읽으라고 권해주고픈 책을 꼽아달라고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

가연 2012-12-29 01:45   좋아요 0 | URL
아하하.. 감사합니다. 음.. 권해드릴만한 책을 뽑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기억에 남는 책은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 번 써볼까, 합니다.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불꽃나무 2013-11-08 10:33   좋아요 0 | URL
쓰신 페이퍼가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가연 2013-11-11 19:40   좋아요 0 | URL
ㅠㅠㅠ 답이 많이 늦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니까 다행스럽습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의 사상과 철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서사시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7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사순옥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여기에 부끄러운 글을 적었다가 지워버렸던 적이 있다. 나는 술을 안마시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세상에는 절대, 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너무나 사는 게 힘들고 괴로우면 술을 마실 수도 있는 것이고, 나 또한 절대, 와 같은 말에 별로 구애되지는 않는 성격이라서 조금 마셨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마신 걸까, 그리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제법 취기가 올랐었다. 나는 보통 술을 마시고 나면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자리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안하고 그냥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편이지만, 혼자서 자작을 하는 경우에는 그냥 어지럽다고 그냥 잠이 들거나, 혹은 긴 글을 썼다가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블로그를 하게 된 이후에는 블로그에다가 음주 후에 헛소리를 적기도 했었고 말이다. 물론 내 블로그는.. 최대한 방문객들을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하루 평균 방문자수가 0명에서 1명을 웃도는 수치였고, 그 덕분에 나는 이중적인 감정, 그러니깐 이 곳은 공개된 곳이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공간이다, 와 같은 감정에 몸부림치며 자기만족적인 욕구를 쉽게 채울 수 있었다. 원래는 전화를 했었다. 술을 마시고 친한 친구에게 말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민폐다. 나만 상대방을 친한 친구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곤란하고, 설령 둘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더라도 새벽에 술취해서 전화하는 것은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힘든 일이다. 그러다보니 점차 블로그에다가 음주 포스팅을 올리는 나날들이 많았었다. 술을 마셨을 때는.

 

며칠 전에도 마찬가지로 술이 취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다가(여기에서 서재활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정말 가끔 블로그에 들렀는데, 그러다보니 점차 뜸해지게 되고 최근에는 거의 안쓰고 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 서재에 들어와서 글을 끄적거렸다. 물론 여기 서재는 책을 글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블로그에 비해서 좋은 편이며, 나 또한 최근에는 거의 여기에서만 활동하니까 그렇게 글을 끄적거렸던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서재는 내 블로그와는 달라서, 생각보다 방문자수가 많은 편이다. 이 말은 부끄러운 글을 끄적거리게 되면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 물론 어차피 얼굴을 드러내놓고 쓰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신경쓰냐, 지나친 신비주의다,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능력, 그러니깐 죄과를 빨리 폭로하여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와 동시에 일종의 일기장을 빙자하여 진솔한 양 스스로를 멋지게, 혹은 뛰어나게 꾸밀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무슨 잘못을 했을 때 자신이 먼저 폭로해서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은 용납할 수 있지만 타인이 '야, 그거 너 잘못했잖아' 라고 말한다면 왠지 모를 자괴감이 들고 부끄럽게 된다. 바꿔 말하자면 타인이 나에게 비난을 던지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익명의 글쓰기는 나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어왔지만 실제로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라는 뉘앙스를 가진 글을 쓸 수도 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이정도 학식을 가지고 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알게 뭔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정말로 알고 있는지 혹은 모르는지. 부끄러움은 최소화하고 자신의 공은 최대화한다. 이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조심해야 할 부분일테고.. 설령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는 항상 그런 위험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지나친 자기검열이다, 라는 비판을 분명 들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겨우 두 세시간 뒤에 정신을 약간 차린 나는 겨우 겨우 그 글을 지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성, 의 이름을 빙자한 자기검열, 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실 아주 부끄러운 내용을 적은 것은 또 아니다. 그냥 사는게 힘들다, 원래 난 안이랬는데 뭐 이런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 의 수레바퀴 아래서, 를 틀로 가져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나는 실제로는 꽤 뛰어난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내용의 결말은 그래도 살아야지,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어느 정도 술이 깼던 내가 집어든 책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였다. 정말 이상하게도 이 책이 읽고 싶어졌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 머릿속에서 짜라투스트라, 의 한 구절이 자꾸만 맴돌았었다.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이 나무는 이곳 산간에 외롭게 서 있다.

 

나무는 너무 높게 솟아있었다. 산과 동물 모든 것을 뛰어넘어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굽어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너무 높게 솟아 있는 존재는 그의 말을 이해할 존재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고대한다. 무엇을 고대하는가?

 

이 나무가 고대하고 있는 것은 뇌신이 아니었을까?

 

바로 저 어구였다. 저 어구만이 나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너무나 힘들 때 읽었다. 나는 광인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고, 감정은 나를 불사르고 나의 외형을 지우고 이윽고 밖으로 뻗어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랬다. 선이 있었다. 그 선을 넘으면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선을 느끼는 나날이었다. 소크라테스에게 몇 번이고 귀에다가 이야기를 해주며 그를 바른 길로 이끌었다던 데몬은 나에게 이르러 그의 반대의 길로 나를 몰아붙였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결코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광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그 '선'을 넘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를 지탱하던 것은 우습게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가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에서 구축되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도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나를 따뜻하게 보아주는 시선과 나를 경멸하는 시선 그 모두가 나를 다시금 선 안으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다시금 나는 그때의 막막함을 느끼고만 말았다. 어두운 밤 홀로 깨어있는 나, 그리고 너무나 어색하게 보이는 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낯설음 속에 나는 마음 속으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절망했다. 내가 고대하고 있던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었기에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내가 고대하고 있던 것이었나? 그들의 인정이 내가 필요한 것이었나? 그 말이 그르다고 할지라도 이 마음 속의 어둠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전에 선 안으로 다시 들어온 나는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었다. 광인과 깨달은 자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어설픈 광인이나마 되어볼 뻔 했던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나는 스스로를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나무가 높이 자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뿌리가 깊어야한다. 물론 나무의 생육조건에는 적절한 물과 햇빛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높이' 자라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튼튼해야 하리라. 그러나 줄기와 잎은 빛의 세계에 속한 것이다. 햇빛을 직접적으로 받는 부분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뿌리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비유적인 이야기를 풀어서 쓰면 이런 것이다. 어떤 정신적으로 높은 단계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그 어둠도 깊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마음 속의 어둠은 깊어지고 짙어진다. 나무는 뇌신을 고대한다고 말했잖는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뇌우가 나무를 흔들  것이며, 그 뇌우에 흔들리지 않는 꼿꼿한 모습을 겉으로는 보여줄 지라도 나무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겉으로 보여주기 위해 '더 땅 속으로 깊이 파고 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 만큼이나 나 자신을 낮추어 보게 되었다. 나는 실제로는 뛰어난 사람이라고? 무엇이 뛰어난 사람인가? 스스로를 마주보라. 내 마음 속의 어둠은 이렇게도 깊은 것인가? 그야말로 마음이 병들었다는 말에 딱 들어맞지 않은가. 그리고 그날 밤 다시금 막막함에 마주서서 절망에 빠져들고 말았다.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 에서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죽음은 어떤 물리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상학자이자 실존주의자였고, 한편으로는 기독교적인 성향을 그 뒷받침에 두고 있던 그에게 죽음은 그런 기독교 세계의 종말이었고, 기독교적인 비의와 생명의 상실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후에 니체가 등장하였다. 니체는 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역설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었다! 왜 죽었는가? 신은 인간에 대한 동정이 넘쳐 죽었다. '동정을 초월하지 못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모두 슬픈 자들이다.' 신은 슬픈 자이다. 인간을 동정하고, 인간을 동정하고만 자신을 동정하고, 이윽고 죽고 만다. 하지만 신의 죽음은 타살이다. 인간은, 인간은 자신의 어둠과 치부를 구석구석 바라본 자를 살려두지 않는다. 신은 우리 인간의 치부를, 추악함을, 그리고 그 심연을 구석구석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 참견쟁이는 이윽고 우리의 손에 의해서 죽게 되고마는 것이다. 그의 지나친 호기심과, 호기심으로 그를 이끈 동정심이 그를 죽이고 마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의 어둠을 보게 된 나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이는 나의 파멸이다. 나의 어둠, 치부, 그리고 추악한 생각을 알게 된 '나' 는 나의 손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나와 '나' 사이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자기자신을 사랑한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 아, 이 말은 얼마나 추악한 것인가? 나는 '나'를 배제하지 않고서는 나를 사랑할 수 없으며, 동시에 나를 배제할 때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고결하지만 그 마음에 어둠을 감춘 내가 아닌 동정의 독에 빠진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무는 뇌우를 고대한다. 뇌우에 맞아 쓰러지기를 고대한다. 이것이야 말로 '위대한 몰락' 이다.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어가려는 몰락이다. 짜라투스트라가 그의 산에서 벗어나 인간 세상으로 그의 '몰락'을 시작한 것 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선택은 '나'를 죽여 몰락을 완성시키는 것 뿐이었으리라.  하지만 최후의 순간 나는 머뭇거렸고 몰락은 실패했다. 나는 아직 몰락할 만큼 충분히 높이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 번지점프를 하듯, 잠깐 하늘을 나는 기분을 맛본 것에 불과한 내가 어찌 몰락할 수 있었겠는가? 짜라투스트라는 다시금 이렇게 말한다.

 

아직까지 내가 범하지 않은 그 마지막 죄란 도대체 무엇인가?

 

몰락을 시작한 짜라투스트라는 정오의 빛을 등지며 걸어나간다. 찬란한 태양은 그의 빛이다. 그를 살찌우게 할 양식이다. 동시에 그는 번개의 예언자이다. 번개는 우리가 느끼기 전에 그 빛이 먼저 우리에게 다다른다. 우리가 모든 죄를 범하고 쓰러질 때, 번개는 우리를 태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은 밧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충분히 죄를 짓지 못했다. 나는 나의 삶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별 너머에 더 넓은 우주공간이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이 삶은 그야말로 과정이다. 하지만 아직 죄를 짓지 못했기에 죄를 짓기 위해 살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죄가 '나'를 죽음에서부터 끌어내리는 것이다. 왜 죄를 지어야 하는가? 그것은 예비작업이다. 수많은 죄와 나 스스로를 부정하는 작업을 통해서 나는 부서지고 깨지고 이윽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은 척하는 행위는 미망이며 도리어 진실된 깨달음을 방해한다. 죄의 끝은 징벌이고, 그 징벌은 번개와 같이 날아오리라. 그리고 입을 벌릴 수 조차 없는 그 짧은 시간이 밧줄은 타버릴 것이고 결국 나는 번개와 함께 살리라. 그것은 모든 미혹을 지우는 금강의 무기이다. 바로 그때 나는 비로소 제대로 몰락할 수 있을 것이다. 대지로 일직선으로 내려꽂히는 저 번개처럼. 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그 모든 죄를 지을 만큼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그대도 살아가는 것이다. 우수함도 부끄러움도 잘못도 모두 내려놓고 살아가는 것이다. 스페인 민간 전설을 모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왕이 자신을 숨기고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 여행했었다. 결국 왕이 얻은 결론은 '사람은 부끄러움을 안다' 였다. 우리는 항상 부끄러워한다. 삶에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능력이 모자람에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에 비교하면서 항상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그 부끄러움이 지나치면 잘못으로 기울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부끄러움이 없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 신이든 악마든 그 무엇인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삶은 항상 과오와 거기에 따른 부끄러움으로 점철된다. 이는 인간으로서 가지는 일종의 천형이다. 그러나 그렇게 '삶이 아무리 그대를 괴롭힐지라도', 그대가 아무리 큰 후회를 안고 살아가더라도, 아무리 큰 잘못을 했더라도 일단은 살아라.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다. 앞서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가? 신은 결국 죽었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가 한 일을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에 대한 동정의 결말을, 그의 지옥의 결말을 끝내 그는 두 눈으로 지켜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는 인간을 짓밟고 살아남았다면 그는 자신의 행위를 돌이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었고 이제 우리 인간의 문제가 남았다. 그렇기에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이라도 그대가 되돌리겠다는 믿음이 있고, 그 전에 어떻게든 살아있다면 그 일을 되돌릴 수 있다. 이는 그대가 되돌릴 수 있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대가 살아있기에 다른 사람이 그대에 관해서 되돌리고 싶은 일을 되돌릴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 그대가 용서를 할 수 있는가, 는 별개의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아예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신의 지옥이 인간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라면 우리의 지옥은 상대방 그 자체이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 자체를 태워버릴 것 같은 그 지옥의 업화속에서도 우리는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헛되다하여 누가 어리석다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가능성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가능성은 살아있음으로써 획득된다. 그렇기에 발로 땅을 딛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땅 속으로 아무리 발이 파고들어가더라도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의 어둠을 바로 마주하라. 그것은 그대의 눈이 하늘을 바라본다면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짜라투스트라가 등졌던 저 찬란한 정오의 태양으로 대표되는 니체의 생명력 예찬에 대한 우리의 답가인 동시에 그가 우리에게 주는 죄라는 이름의 선물이다. 물론 삶을 되돌리는 것은 내가 한 것처럼 버튼 하나로 서재 글을 지우는 것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몇 번이고 돌아가야만 할 것이고 때로는 갔던 길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걸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으니깐. 그것이 영원회귀이자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초극하기 위해서 지어야 할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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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2-12 22:47   좋아요 0 | URL
'삶이 아무리 그대를 괴롭힐지라도', 그대가 아무리 큰 후회를 안고 살아가더라도, 아무리 큰 잘못을 했더라도 일단은 살아라.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다.

이 말 좋네요 되돌릴 수는 없더라도 좀 더 나아질 수는 있겠죠
살아있다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조금 삐딱한 마음


희선

가연 2013-02-13 23: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아질 수는 있겠죠? 아니, 최소한 나아지려고 마음은 먹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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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유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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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족기담.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 나로서는 영화관에 가면 최대한 공포 영화는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꼭 봐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다른 일행들이 모두 공포영화를 택한다면 나로서는 그들의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으니깐 말이다. 물론 피와 살의가 난무하는 영화를 보는 것은 고역이지만, 혼자서 다른 영화를 보겠다고 다른 상영관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좀 낫다. 일단 보게 되면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영화를 보려고 한다. 이왕 보는데 눈을 감고 보는 것도 돈이 아깝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떤 괴물이나 살인자가 나와서 칼을 휘두르는게 무서운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주인공과 그 주위의 엑스트라들이 예정된 운명(밖에서 보는 우리는 온갖 복선을 통해서 어떻게 주인공들이 당할 것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을 깨닫지 못하고 그 운명으로 한 발짝씩 걸어들어갈때의 그 긴장감, 앞으로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왠지 복도에 장치된 살인기계가 휙 날아와 목을 뎅겅, 하고 잘라버릴 것 같은, 그런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긴장감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 그 긴장감은 일종의 필연성과 맞닿아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피할 수 없구나, 하는 그런 운명이랄까. 그러다보면 한참 고조된 긴장감은 우울감으로 바뀐다. 그런 상황들 때문에 나로서는 공포 영화에서 흥미를 느낄래야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어쩔 수 없이 공포 영화를 보게 될 때 사용하는 전략이 하나 있으니, 바로 지식화, 다. 바로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귀신이 덜컥 하고 나타났다고 하자. 그러면 그 귀신을 보고 이렇게 분석하는 것이다. 분장이 덜 됬네, 부터 시작해서 컴퓨터 그래픽 잘 쓴 것 같다, 등처럼 말이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귀신이나 살인마의 심리를 생각해본다. 저 살인마가, 혹은 귀신이 굳이 저 엑스트라를 죽였어야 했나, 저주에 얽매여있다면 그 저주에 맞게 행동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때로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아마 그런 것이 현실과 더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어처구니 없는 이유나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게 되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촘촘하지가 않아, 하고.

 

저런 식으로 잣대를 들이대다보니, 어느 순간 다른 영화들에게도 저런 잣대를 조금씩 들이대는 경우도 생겼다. 예시로 초능력자들이 나오는 영화를 생각해보자. 엑스맨, 에는 정말 수많은 초능력자들이 나온다. 자비에 교수의 텔레파시, 부터 그의 대극에 위치한 자기장을 조종하는 매그니토까지. 그런데 매그니토가 그의 자기장능력을 사용해서 물리적인 공격을 막아내려고 한다면, 도대체 어느정도의 자기장이 집적되어야 될까? 이런 의문들이 저런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불쑥 고개를 내밀때가 있다. 남들이 보면 정말 재미없게 영화를 본다고 말하겠지만, 의외로 나는 이런 식으로 보다보니깐 도리어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런 식으로 무언가 분석적이고 어쩌면 과학적일지도 모르는 잣대를 들이대어 영화를 보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닌지라, 이미 영화나 소설 등에 슈퍼맨이 날아가면 그 반동은 어느 정도일까요, 배트맨은 재산이 얼마나 되는 걸까요, 와 같은 엉뚱하다면 엉뚱할 수 있는 분석들에 나름 현실적인 답을 내려놓으려고 시도한 책들도 나와있기는 하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일종의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행간을 읽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뒤집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에 적용하면 실제로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사실 이런 어떤 영화나 소설 등에 재해석을 가하는 경향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신화에 재해석을 가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널리 알려진 트로이 전쟁에서 정말 신들이 나타나서 바람을 훅 하고 불어주었을까? 정말 각종 무구들을 신들이 자신의 후원자들에게 나눠주었을까? 신의 이름만 빌린 것이 아니었을까? 신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를 제거해보면 우리는 신화에서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트로이 전쟁 뿐만 아니라 미노타우르스의 전설을 생각해보자. 미노타우르스를 미궁에 가둬놓고 공물을 받는다. 나라 간의 역학 관계를 의미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 옛날, 신이 인간과 함께 웃고 떠들던 시대에도 한편으로는 '삐딱하게' 사물을 보던 사람들은 그렇게 신을 제외하고 자기들만의 해석을 내려보기도 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여러 역사가들,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굳이 신이라는 딱 봐도 비현실적인 존재가 있어야만 재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공자의 춘추, 그러니깐 노나라의 역사서를 보라. 후대의 사람들은 공자가 기록한 단 한줄에서 수많은 내용을 뽑아낸다. 공자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똑같은 뜻을 가진 한자가 따로 있는데 왜 굳이 이 한자를 썼을까? 거기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바로 좌구명이 쓴 춘추좌씨전이다.

 

이런 재해석의 칼날은 설화나 민담과 같은 고전이야기도 피해나갈 수 없다. 아니 고전이기 때문에 도리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고전이야기들은 그 이야기가 횡행할 때의 사회인식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은 당시의 사회인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발달해왔는가, 혹은 도리어 저하되었는가, 와 같은 변천사를 알아볼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이런 재해석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어찌 보면 전세계적인 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서, 수많은 고전들, 조웅전, 박씨부인전, 춘향전, 아기장수전, 옥루몽, 사씨남정기, 등과 같은 고전들이 재해석의 기회를 맞이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족기담, 이라는 책도 그러한 관점에서 쓰이진 책이다. 고전문학을 연구한 저자가 현실의 경향과 고전이 쓰여질 때의 경향을 교차시켜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책, 가족기담에서는 고전을 가족의 '관계' 로 묶어서 우리에게 제시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첩과 남자의 관계, 본처와 첩의 과계, 본처와 남편의 관계, 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이 책의 시작을 여는 손순매아, 와 장화홍련전을 보자. 손순매아, 는 말 그대로 손순이라는 효심깊은 아들이 부모를 위해서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눈에 묻어버린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권선징악이라는 우리 나라 고전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주제에 걸맞게 해피앤딩으로 끝이 나지만, 저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아무리 부모를 위해서라지만 아이를 눈에 묻어서 살해를 저지르겠다고? 이는 영아살해다. 범죄이자 패륜이다. 장화홍련전은 어떤가? 왜 배좌수는 과년한 자신의 딸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낙태했다는 계모의 말만 듣고 죽이라고 하는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왜 시집을 보내지 않는가? 이 책에서는 부녀간의 부적절한 관계, 가 있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시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 라는 말을 듣고 '아니 다른 남자가 있단 말인가' 와 같은 심정으로 딸을 죽이라고 명한 것이다, 라고. 물론 이런 것에 대해서는 그저 물음표만 던져볼 뿐이다. 실제로 배좌수가 그저 가문의 명예를 중시한 것인지, 혹은 딸의 남자에 대한 꼴사나운 질투때문인지, 혹은 그저 멍청했던 것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동안 배좌수가 어리석다, 가문의 명예를 중시한 사람이다, 등과 같은 해석을 해왔다면 이제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 전혀 다른 방향의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재해석을 통해서 우리는 좀 더 고전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첩과 남편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영웅은 삼처사첩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군담고전소설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주인공들은 항상 수많은 여자를 거느리는 것 처럼 보인다. 구운몽의 주인공도 그렇고, 옥루몽과 같은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첩의 인권은 처의 인권에 비해서 항상 떨어진다. 처가 눈을 부라리면 첩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러나 처는 자신의 남편을 첩에게 뺏겨도 결코 질투해서는 안된다. 만약 질투를 하고 첩을 괴롭힌다면 비현실적인 힘, 의 개입을 받아 꿈에서 교화되게 된다. 옥루몽, 이라는 고전 소설에서 그런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옥루몽은 구운몽과 비슷한 내용을 가진 이야기인데, 천상계에 노닐던 사람이 지상의 태를 빌려 나와서 장원 급제하여 나라의 위기를 막으며 많은 여성들을 처와 첩으로 거느린다는 이야기이다. 이때 두번째 처가 첩에 대해서 질투를 일삼으며 괴롭히고, 죽이려고 든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도리어 꿈에서 질투가 많은 여자, 라는 죄목아래에 끊임없는 고통을 받게 되고 결국 교화되어 순종적인 아내로 바뀌게 된다. 고전에서 읽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무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처와 첩은 그들의 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위협당할 수 있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되풀이해서 말하자면, 이런 군담류의 소설에서는  처와 첩이 손을 잡고 주인공을 내조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본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문제가 되는 처나 첩을 응징한다. 그리고 그들의 반가정적인 성향을 뜯어고쳐서 주인공을 뒷받침하도록 만든다. 결과적으로 남성중심주의가 만연하는 것이다.

 

이런 고전에 대한 분석과 재해석을 통해서 이 책, 가족기담은 우리에게 그야말로 고전이 감춰둔 살인, 근친상간, 패륜, 등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물론 그렇지 않을까, 와 같은 문제제기 수준에 그치는 내용도 있고, 조목 조목 구절을 근거로 들어가며 이야기하는 고전소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삐딱하게 보는' 책의 서술은 몇 가지 단점을 낳는다. 먼저 첫 번째 단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고전은 앞서도 말했다시피 당시의 사회인식상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는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가부장적이었고, 유교적인 가치가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였다. 두 번의 큰 난리, 왜란과 호란을 통해서 가치가 뒤흔들렸을수도 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고전과 같은 소설에서는 그런 중심되는 가치들, 가부장적인 가치나 유교적 가치를 더욱 더 강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고전 소설은 실제 현실에 비해서 더욱 더 가부장적인 요소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고전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전, 이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놓아두어야 할 부분도 존재할 것이다. 저런 강화된 가부장적인 가치, 가 바로 그대로 놓아두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부연하자면 현대에 들어서 누가 저런 가부장적인 가치를 그대로 따르겠는가. 그러나 고전에서 가부장적인 가치와 유교적 가치를 빼면 그야말로 '기담', 과 '도술'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한 쪽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뼈를 이루는 부분이다. 물론 현실에서도 가부장적인 가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가장이 이런 고전의 영향을 받아서 가부장적인 인식을 획득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가치, 남자중심주의를 비판한다면 그 결말은 일종의 반동으로 여성의 권리, 에 대한 논증으로 끝나게 된다. 첩과 처의 관계에서 이 책이 분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굳이 고전을 재해석하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다른 단점이 또 하나 있으니, 이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 타자화, 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타자화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종의 차별이다. 누구든지간에 자기자신이 사실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인격과 성격이 자기 자신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보면 타인은 나에게 못미친다. 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는데 저 사람은 그렇지 않다. 저 사람은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다. 결과적으로 타인을 나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게 되고, 더 나아가면 일종의 물체로 보게 된다. 그들도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이나 인격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물론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그렇다면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물체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타자화라고 부른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인류학사에서 가장 큰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식민지로 파견가서 연구를 하는데, 식민지의 사람들도 그들, 지배하는 사람들처럼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 처럼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을 그동안 그랬던 것 처럼 지배할 수 없으니 그들의 인격은 모조리 무시하고 더욱 더 물체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이를 두고 피식민지인들을 타자화시켰다고 부른다. 이 책, 가족기담에서는 이 타자화, 를 가져와서 어떻게 고전에서 여자가, 그리고 심지어 가장까지 타자화되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렇게 타자화에 대한 분석이 시도되었다면 그 다음 순서는 당연하게도 타자화에 대한 해결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서는 그런 해결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보이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가족의 가치, 에 대한 강조로 마무리를 짓고 만다. 기술적인 문제를 한참 이야기하고 끝에서 사랑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렇다, 분명 가족의 사랑은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나 가족의 가치는 언제든 강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중간에 여러 단계를 건너뛴 해결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고전에서 이야기하는 가치를 우리는 그대로 별 비판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절개가 중요하다고 하면 절개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되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 말을 쫓아 남편에게 순종해야만 하는가? 이런 질문만으로도 이 책은 우리에게 큰 전환점을 줄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너무 당연하게도 절개를 지킨 춘향이는 참 좋은 여자다, 열녀다, 놀부는 그야말로 나쁜 놈이다, 벌을 받아 마땅하다, 등과 같은 인식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저런 인식만 배우게 된다면 우리는학교에서 줄을 잘 맞추어 시키는 대로 이야기하는 앵무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학급이 돌아가려면 선생님이 안볼때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칠판에 선생이 판서하는 내용을 삐딱하게 쳐다보는 아이도 있어야 할 지도 모른다.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이 학급에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야말로 획일적인 집단이라면 외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저런 삐딱함, 은 불확실성을 높여 그 집단이 환경, 사상, 인식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무수한 세월을 거쳐서 지금껏 살아남은 생물 집단들처럼 말이다.

 

어느 광고에서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광고가 한창 유행할 시기, 나와 친구들은 우스개소리로 모두가 YES할 때 혼자 NO하면 따돌림당한다, 혹은 두들겨 맞는다,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분명 모두가 예, 라고 말할때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좀 더 삐딱하고, 좀 더 특이한 시각으로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그런 사람말이다. 기존의 해석이 굳어내려져온 고전을 독해할 때, 특히 그런 시각이 필요하다. 고전이라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고전 자체를 일종의 가치로 생각하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필요할 지 몰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다각적인 비판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고전 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주류로 내려오고 있는 어떤 가치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가치들을 남들이 따른다고 해서 그대로 따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인식에 우리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삐딱하게 쳐다보아야만한다. 그리고 이 가족 기담, 과 같은 책이 그 첫걸음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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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10 16:15   좋아요 0 | URL
리뷰를 읽어보면 이 책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막상 제가 읽으려고 책을 펼치면 다 못읽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연님의 리뷰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


가연 2012-09-10 19:17   좋아요 0 | URL
사실 별로 길지 않은 책이에요..ㅎㅎ 제가 자꾸 도입부에 공을 들이다보니, 푸핫, 리뷰가 자꾸 길어지네요. 뭐랄까, 약간 불친절한 부분이 있는데 설명을 고전 내용을 우리가 거의 다 알거라고 가정하는 부분이 쫌 있기는 해요. 뭐, 사실 장화홍련전이나 옹고집전은 거의 다 알긴 하겠지만..ㅎㅎ

2012-09-10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0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1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1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2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13-09-28 01:04   좋아요 0 | URL
무서운 영화를 보는 방법 재미있네요 그것뿐 아니라 다른 것을 볼 때도 그러는군요 그냥 보기만 하는 것보다 좋겠습니다


처와 첩이 손을 잡고 주인공을 내조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본다.

제가 이 말을 잘못 봤습니다 처와 첩이 손을 잡고 남편한테 맞선다로...^^ 다시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잘못 보고 떠오른 소설이 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역로>에 나오는 '옅은 화장을 한 남자' 예요 처와 첩이 손을 잡는...

고전을 다르게 해석한 이야기 재미있을 것 같네요 가연 님은 거기에서 문제점을 조금 찾아냈군요 삐딱하게 보기, 필요한 일입니다


희선

가연 2013-10-03 21:09   좋아요 0 | URL
처와 첩이 손을 잡고 남편에게 맞서는 경우도 있겠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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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한 달을 시작할 때는 바쁘고 한 달이 끝나갈 때는 별로 안바빠서

이번에도 그런 식이라.. 별 수 없이 빨리 골라놓게 되네요.

 

 

 

중세의 가을.

사람이든 사물이든 흥망성쇠를 겪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사람의 일생을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데, 이는 사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헤로도토스가 그의 저서인 역사에서 어느 나라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었던가요, 한 나라가 태어나서 번성한 후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압제를 저지른 뒤 이윽고 무너진다, 고. 이는 자연의 계절에 비유할 수 도 있겠습니다. 봄, 모든 생명이 눈을 뜨려고 하는 계절, 여름, 생명의 기운이 충만해서 파랗게 자라나는 계절, 가을, 이윽고 정점에 달한 황금빛의 계절. 하지만 언제나 달도 차면 기울듯, 다가올 쇠망을 예견하는 계절. 겨울, 이윽고 하얀 눈 속에 파묻히는 계절. 요한 하위징아는 중세 시대를 부분으로 나누고, 이윽고 쇠망이 시작되는 단계를 가을이라고 규정하고, 왼쪽과 같은 책을 펴내었습니다. 중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원하는 사람들은 저 책, 중세의 가을, 을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 물론 에두아르트 푹스, 의 풍속의 역사, 에 덧붙여 읽으면 더 좋겠지요.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제가 서경식을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책, 언어의 감옥에서, 를 읽으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전에는 서경식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만, 그 후에는 의식적으로 서경식의 글을 찾으며 읽게 되었습니다. 저 언어의 감옥에서, 는 제가 제일 처음 신간평가단을 시작했을때 선정되어 받은 책이었지요. 처음 그 책을 받았을 때를 기억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건 무슨 책인가, 하고 읽어나가던 저는 어느 순간 그가 쓴 글에 깊게 동감하게 되었었습니다. 다 읽고 리뷰를 쓰며 스스로를 돌아보니 하나는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책을 읽기 전의 저와 그 책을 읽은 후의 저는 완전히 의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그런 그의 글이기에 여기에 추천합니다. 그동안 그는 크게는 적극적인 일본 내 우경화 세력들과 작게는 재일 조선인 문제를 축소시켜서 현안을 흐리는 세력들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에 따르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정리해두었습니다.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부의 도시 베네치아.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베네치아에 여행해본 적은 없고, 그저 물의 도시라는 위명만 들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여행을 하게 된다면 꼭 들러보고 싶은 도시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물의 도시는 언제부터 물의 도시였을까요? 베네치아는 원래 공화국이었고, 투표를 통해서 지도자를 선출하였습니다. 주변의 강국으로는 비잔틴 제국, 신성로마제국이 있었지요. 그런 강국들의 사이에 끼여있었다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강국에 통합될 가능성도 배제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흡수되지 않았고, 도리어 독점으로 큰 부를 모으게 됩니다. 이는 베네치아의 교묘한 외교가 빛을 발한 것으로, 처음에는 비잔틴 제국의 이름을 빌려 신성로마제국의 개입을 막고, 그 후에 십자군 전쟁과 더불어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기까지 하지요. 그 힘은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작접 확인해볼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늘 신간 추천 페이퍼에 과학 책을 적어도 하나는 꼭 포함시키는 저로서는 이번에는 조금 난감했었습니다. 확 끌리는 책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 책도 사실 그리 끌리는 책은 아니지만 (제목을 그냥 원제 그대로 했었다면 좀 더 나았을지도.. 원제는 beyond UFOs입니다.) 그럼에도 여기 일단 놓아둡니다. 사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합니다. 다른 책들이 그렇듯 역사적 연원을 살펴본 뒤,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고, 태양계, 우주 전체로 그 인식의 범위를 넓혀갑니다. 그런 인식 뒤에 과연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가, 라는 주제로 넘어가게 되지요. 아마 이 책의 제목인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라는 제목이 나오게 된 계기는 그런 주제와 연결되어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일견 식상해보이는 책의 내용임에도 이렇게 놓아두는 이유는 이 책의 출판사가 제공한 소개처럼, 이 책이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그런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말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사실 이 책은 매우 특이한 책이라.. 소개글을 쓰기가 정말 난감하고.. 잠깐 훑어본 것에 지나지 않아서 (아무래도 미술평론이나 미학쪽에는 별로 조예가 깊지 못한 상태라..) 다만 감으로밖에 추천할 수 없네요. 감이라니.. 사실 이렇게 추천하는 것에 좀 저항감이 들지만, 하지만 아마 선정되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책으로 보여지네요.. 원제 Ways of seeing을 번역한 책이 이전에 몇 권 나왔었지만, 번역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이 많은데.. 이번에 나온 이 책은 번역과 글 흐름이 원작과 거의 비슷하다고 하니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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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09-01 09:22   좋아요 0 | URL
중세의 가을하고 역사의 증인, 찜이요 ^^ ㅎㅎㅎ 저도 어서 맹글어야하는데 ㅎㅎㅎ 신간도서를 볼 시간이 없어서 ^^;; 가연님의 추천도서, 요 두가지가 눈에 확 띕니다 ^^
제가 추천하는 도서는 하나도 안되서요 ^^;; 슬퍼요 ㅋㅋ

가연 2012-09-07 15:32   좋아요 0 | URL
ㅎㅎ이번에는 되면 좋겠네요.. 그런데 워낙 경합이 치열해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