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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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하여금 타인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알아갈 수 있도록 만든 신의 재치는 생각할수록 기발하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했더라면 가뜩이나 자만심 강한 인간이 시간을 쪼개어 타인을 만나고,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쏟아내고, 억지웃음을 짓거나 상냥한 말로 타인을 즐겁게 하려는 생각은 숫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은 타인과의 교제를 삼간 채 자신의 영역 안에서 평생을 홀로 지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나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게는 없는 타인의 능력을 칭찬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면 나의 능력을 기꺼이 제공할 수 있다는 헌신적인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다 신의 안배이자 재치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남과 어울려 살도록 한 신의 의도를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을 때 그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우열이 가려지게 마련이고, 작은 질투가 유발되며, 질투심으로 시작된 마음이 종국에는 미움이나 증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테디 웨인의 소설 <아파트먼트>는 우리가 청춘의 시기에 빠져들 수도 있는 타인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 그로 인한 실수와 상실의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나는 흔치 않은 문학적 재능과 우연히 마주친 것이었고, 동료 수강생의 탁월함에 설령 내가 어떤 질투를 느꼈을지는 몰라도 그런 질투의 감정은 빌리의 겸손함과 관대함 때문에 누그러져 있었다. 빌리는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모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p.38)

 

1996년 컬럼비아대학 순수예술 석사과정의 문예창작 프로그램에 등록한 여러 학생들 중 가을학기 소설 워크숍을 듣는 십여 명의 학생들이 만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서로의 작품을 합평하는 과정에서 나는 소설가로서 빌리의 재능을 눈여겨보게 된다. 미국 중서부의 쇠락한 도시 출신인 그는 가난하고 보수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과는 거리가 먼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자신감 결핍으로 인해 사람들을 멀리하고 나만의 영역 안에서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이었던 '나'와는 다소 상반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에게는 늘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던 '나'는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바텐더로 일하며 소설가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빌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정성의 화신이었고, 같은 남자로서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불법 전대를 하고 있었지만 맨해튼의 제법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나'는 바텐더로 일하면서 자신이 일하는 바의 지하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빌리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나'에게는 학비와 생활비를 주는 화학공학 기술자 아버지가 있었지만, 빌리에겐 금전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게으름뱅이" 노동자 아버지가 있을 뿐이었다. 빌리는 놀다가도 "시계에서 삑 소리"가 나면 일하거 가야만 했다. 빌리의 문학적 재능에 매료되어 '나'의 선의에서 비롯된 동거 제의에 대해 빌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파트 청소를 하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학기 도중 그만두었을지도 모르는 빌리의 학업은 '나'와의 동거로 인해 계속 이어질 수 있었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나'와 빌리 사이의 심리적 균열은 점차 짙어만 갔다.

 

"우리가 과거에 대한 기억 중 중요한 뭉텅이들을 무의식 속으로 억압하거나 삭제한다는 개념은 내게 실제적인 심리현상이라기보다는 작가들을 위한 극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저기 남아 있는 불쾌한 얼룩들을 지우기 위해 추억을 아주 미묘하게 변형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현재의 의식 속에 있는 쓰레기들을 카펫 아래로 숨기는 것만큼이나 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p.240)

 

내성적이면서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마음만 있지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탄탄한 육체와 잘생긴 외모를 통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여자들을 쉽게 매료시키는 빌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나'와 상층부를 비난하면서도 약자를 조롱하는 빌리. 진보적인 성향의 '나'와 가난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빌리. 누군가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고난을 극복해가는 빌리와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하고 있는 '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적 동지이자 모든 제약을 뛰어넘는 우정의 관계라고 믿었던 '나'와 빌리와의 관계는 서서히 파국을 향하게 되고...

 

우리는 종종 현재 맺고 있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가 더없이 두텁고 단단하여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믿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단단했던 관계도 한순간의 실수로 아주 쉽게 깨어지곤 한다. 한때는 소설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로까지 여겼던 빌리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내 소설에 대한 코멘트가 줄고, 아파트 청소를 거르는 날이 늘었으며, 자신에게 쓰는 돈을 "내 아버지 수입의 트리클다운(낙수효과)"으로 여기게 되지 않던가. 그럼에도 그는 내 손을 두고 "일해본 적 없는 아기 손"이라며 놀려대곤 했었다. 한 인간에 대한 선망과 증오의 양가감정이 '나'의 행동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며 소설은 끝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과 그러면 그럴수록 나로부터 멀어지려는 상대방. 우리는 사람 심리의 원심력과 구심력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청춘이라는 짧은 관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웠던 시절을 미처 되새김질할 시간도 없이 시나브로 늙어가는 것이다. 노년의 회상이 쓸쓸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은 시절에 아름다운 시간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노년의 회상 속에 서글픔처럼 스며들기 때문이다. 무모하지만 그렇게 진실했던 청춘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재능을 염탐하고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삶을 가늠하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청춘의 시간을 무작정 그리워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어쩌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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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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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말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선언이라고 여길지도 모르는 이 문구를 우리는 다만 불편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 있는 이 조항은 그저 수사적인 헌법 조항으로만 머물러 있다는 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2007년 차별금지법이 제출된 이래 수차례 무산됐던 것으로도 모자라 21대 국회에서도 국회 심사기간이 2024년 5월 29일까지 연장됐다. 사실상 폐기나 다름이 없다.

 

우리는 이렇게 미개한 나라에 살고 있다. 아무도 평등을 실천하지 않으면서(혹은 실천하려는 의지마저 없으면서) 민주주의를 논하고, 대한민국의 인권을 주장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이자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인 김누리 교수가 파헤친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사실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톺아봄으로써 우리의 문제를 독일처럼 '상식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이 책에 담겨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가진 나라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한 것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권력을 분점해 왔습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오늘날 정치 민주화와 경제성장,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 된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p.182)

 

책에서 저자는 촛불혁명을 통한 민주주의 최선봉에 선 대한민국의 실상을, 거듭되는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매년 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 심각한 불평등 구조를 갖게 된 원인을 파헤친다. 저자는 이에 대한 근본 원인을 68혁명의 부재와 기만적인 정치 구조, 맹목적인 야수 자본주의, 분단체제에서 찾고 있다.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창했던 68혁명이 전 세계를 뒤흔들며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노정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상식적으로' 해결해가는 동안 박정희 독재 정권의 억압 속에 있던 대한민국은 약 50년의 '문화 지체 현상'이 발생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사실 박정희라는 인물이 한국 사회에 끼친 해악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영락없이 박정희와 만나게 됩니다. 지역감정도 박정희가 만든 작품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지역감정이 없었습니다. 윤보선과 박정희가 대선에서 맞붙었을 때 박정희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곳이 호남 지역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박정희가 '농민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윤보선은 명문 양반 가문 출신이었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영호남 갈등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p.93)

 

198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상황을 지켜보았던 저자는 독일 사회에 뿌리내린 민주적 질서(경쟁 없는 학교, 등록금과 생활비 전액이 무상인 대학, 이사회의 절반이 노동자인 기업 등)를 부러워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복지 정책과 사회적 정의. 타국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본 모국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독일과 대한민국의 역사와 교육ㆍ정치ㆍ사회ㆍ문화를 꼼꼼히 비교하며 그 원인을 하나씩 밝혀낸다.

 

"한국에서는 미국과 갈등이 생기면 수구 세력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들은 정말 터무니없이 낡고 시대착오적인 냉전 논리로 엄청난 공격을 퍼부어댑니다. 그러면 민주개혁 세력은 그것이 두려워서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 수세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이런 관행이 지금까지도 수십 년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관행을 끝낼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p.253~p.254)

 

지금은 감옥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정권 초기였던 2008년 1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접했을 당시 "오바마는 시카고의 자동차 업계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됐는데, 선거 때는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라는 말을 했다가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부시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을 옆에 태운 채 체면 없이 골프 카트를 운전하기도 했던 그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모든 국가 권력을 동원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추앙하거나 지지하는 국민이 존재한다는 건 우리나라가 얼마나 비민주적인 환경 속에 처해 있는가를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 역시 보수라고 말한다. 소위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은 수구에 속하는 극우 세력이라고 본다. 그들 간에는 대부분의 정책이 비슷하거나 같고, 다만 대북 통일정책에서만 다르다고 한다. 맞는 지적이다. 그런 까닭에 어느 날 국민의힘 당원이었던 어느 정치인이 민주당 당원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민주당 당대표였던 자가 국민의힘 화합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념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사적 이익과 정치적 욕망만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차별금지에는 반대하는 해괴한 현상, 인권을 말하면서도 주 120시간 노동을 주장하는 어느 대선 후보,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덮어두고 두 나라의 미래만 걱정하는 현실, 권위를 내세우면서 수평적 관계를 말하는 본말전도의 논리, 평등한 교육을 말하면서도 반값 등록금에는 인색한 정치권, 상위 2%의 국민을 위해 종부세를 없애겠다는 어느 언론과 정치인들. 우리는 이러한 비민주적인 잔재 속에서 민주주의를 논하고 있다. 저자 역시 이와 같은 답답한 현실을 높디높은 벽으로 인식하였을 터,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수구 세력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비민주적인 환경을 지속하며 민주적 정권교체만 바라는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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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졌다. 뚝 떨어진 기온만큼이나 사람들의 온정도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다. 세밑이 가까워 올수록 나보다는 주변과 이웃을 먼저 살피던 과거 우리네 세밑 풍경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아득한 과거로만 남은 듯하다. 그러한 집단의 기억들 중에는 바지사장, 아니 바지 대통령에 대한 추억(이라기보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바지 대통령의 기억. 결국 현직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하고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로부터 방을 빼게 했던 그날의 기억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그날의 기억들로 인해 대선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여야의 대선 후보가 참석했던 '글로벌 리더스 포럼 2021’에서 우리는 또다시 바지 대통령에 대한 트라우마를 떠올려야만 했다. 야당의 후보가 대선후보 국가정책 발표 연설을 위해 무대에 올랐지만, 연설문이 프롬프터에 뜨지 않아 약 2분간 침묵하는 방송 사고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멀뚱멀뚱 고개만 도리도리 움직이는 모습은 과거 바지 대통령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써준 연설문이 없이 말했다가는 치명적인 말실수로 이어질까 걱정되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자의적으로 단 한마디 말도 꺼낼 수 없는 그의 처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답답함은 향후 바지 대통령의 재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전두환 씨가 향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뉴스 전체를 장악했다. 바지 대통령의 재판이 우려되는 야당의 대선 후보 역시 자신의 국정 능력이 부족함을 인지했던지 전두환 씨가 정치는 잘했다고 말한 바 있다. 전두환 씨는 적어도 자신이 하고픈 말은 마음껏 할 수 있었으니 그의 입장에서 보면 속은 시원했으리라고 여겼을 터, 자신과 비교하여 부럽지 않았겠나. 하고 싶은 말은 마음껏 하고, 하고 싶은 행동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전두환 씨에 대한 향수는 바지 대통령의 입장에서 너무도 부러운 대통령상이 아니었을까.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그를 보며 깜짝깜짝 경기를 일으킬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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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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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이라는 말은 그 말이 갖는 의미의 모호성으로 인해 쓰는 이들이 부담을 느낀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온도', '적당한 애정' 등 쓰기에 따라서는 꽤나 근사한 글이 될 듯한데 우리는 '적당한'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만 숨이 콱 막히는 것이다. 얼마쯤 떨어져야 적당한 거리인지, 보일러의 온도를 얼마나 높여야 적당한 온도인지, 아이에게 얼마만큼의 애정을 쏟아야 적당한 애정인지 도통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모호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나는 번번이 가벼운 절망을 느낀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데 말이다.

 

"나와 동생은 죽음은 평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죽음은 언젠가 우리를 맞으러 와 줄 베이비시터 같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신의 철모르는 갓난아기다."  (p.45)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절망'이란 미래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의 하루하루는 무미건조하고 탁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웨하스 의자>는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독신녀의 일상을 기록한다. 잠을 자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고, 때로는 섹스를 하고... 그렇다. 그것은 소설이랄 수도 없는 일종의 기록에 가깝다.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는 한 여인의 일상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속기사로서의 역할을 자청한다. 소설에서 서른여덟 살의 '나'는 몇 사람의 애인을 거쳐 지금의 애인을 만났고, 그는 골동품 가게와 헌책방을 하는,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둔 유부남이다.

 

"내게 인생이란 운동장 같은 것이다. 입구도 출구도 없고, 물론 어딘가에 있을 테지만, 있어도 별 의미가 없다. 무질서하고, 전진도 후퇴도 없다. 모두들 그곳에서, 그저 운동을 할 뿐이다. 나는 그곳에서, 어쩔 줄 몰라한다."  (p.77)

 

주인공인 '나'는 무의미한 현재의 일상 속에 과거의 기억을 더한다. 화가였던 어머니, 친절하지만 때론 엄했던 아버지, 동생과 나로 이루어진 한 가정으로부터 독립하여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동생과 나.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일찍 죽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그렇게 세 여인이 독립하여 각자의 삶을 살다가 4년 전 어머니마저 뇌출혈로 사망했다.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나의 집에는 택배 아저씨와 미술상, 내가 디자인한 스카프와 우산을 판매하는 부티크상, 길고양이와 7년째 만나고 있는 애인 등. 그런 환경에서 절망은 언제나 나와 가까웠다.

 

"나는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왜 자살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복잡하게 얽혔다가 풀리는가 하면 어지러울 정도로 방 안 공기를 휘젓는 교향곡을 들으면서, 나는 자신이 아주 홀가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죽음은 가벼움으로 나를 유혹한다."  (p.118)

 

우리는 각자의 고독을 서로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것은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켜를 이루고, 마침내 어찌할 수 없는 더께로 엉겨 눌어붙으면, 서로의 틈은 고독의 더께만큼 멀어진다. 기대가 멀어질수록 우리의 삶이 허점투성이의 무엇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무한대의 자유가 주어지면 삶은 속절없이 가벼워진다는 걸 에쿠니 가오리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틀 안에 가두어지고 길들여질수록 안온함을 느끼게 마련이라는 걸 작가는 은연중에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절망이 기대하지 않는 삶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고독은 얽매이지 않는 삶에서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한낱 누군가의 삶을 간섭하고 내 뜻대로 다스리려는 욕망에 불과하지만 인간이란 그 틀 안에서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헌납하려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생명이 유한한 인간이 나의 기억을 타인에게 이식하려는 작은 몸부림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 사뭇 진지하고 읽기에 따라서는 철학적 질문이 가득한 이 소설은 겨울로 가는 어느 길목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잠시 사색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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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보내며

 

세상으로부터

한 사람을 보내는 게

어찌

쉽기만 하랴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온 세상이 슬픔에 겨워 하루 반나절을 보낼지라도

한 뼘 마음속 깊은 슬픔은 끝내 헤아릴 길 없어

 

나는 핏발 선 눈동자를 거울에 비춰보며

고아로 남은 스스로를 위로하다

무시로 터지는 울음.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게 지난 월요일. 급작스러운 비보에 나는 그만 정신을 놓았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서울로 향하던 길. 퇴근 차량에 밀려 마냥 더디기만 하던 나의 차는 그야말로 애물단지. 길가에 차를 놓고 달음박질이라도 치고 싶었던, 영원과도 같았던 그 순간. 세상은 그렇게 누군가의 빈 자리를 잊은 채 무심히 흘러갔고,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누이 형제들과 검은 상복을 입고 제단 앞에 섰다. 산 사람은 산 자의 법을 따르고, 망자는 또 망자의 법을 따르는 게 세상 이치라지만 나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죄스러운 허기를 느낀다.

 

 

소식을 듣고 달려와 준 많은 지인들과 일가친척들. 어머니는 이제 아무리 기다려도 양이 줄지 않는 한 끼 젯밥을 드시는 처지가 되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메아리로 훈계하신다. '잘 살아라! 자식들 잘 키워라!' 사랑하던 당신의 손자는 어제 연세대 합격 소식을 전하는데, 미소로 화답해줄 당신의 모습은 영정 사진으로만 남아 산 자의 울음소리가 끝내 합창으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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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20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어머님 영원히 보내드렸군요.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따님 합격이 위로가 또 되었으리라 믿어요. 울집 딸들과 동문이네요.
한 사람이 하늘 아래 실제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지요. 시간이 조금 다독거려 줄 거라 믿어요.

꼼쥐 2021-11-27 16:16   좋아요 0 | URL
산 사람은 또 살아야 하는 까닭에 시간이 지나면 또 살게 마련이지만 그 터널을 빠져나가는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집니다.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오기도 하고 말이죠.

scott 2021-11-20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이에게 합격의 선물을 주신것 같습니다.
생명이 지고 난 자리위에 화알짝 피어오른 꽃봉오리 처럼
고인의 명복을 빌고
합격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꼼쥐 2021-11-27 16: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남들보다 일찍 학교가 정해진 까닭인지 남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가 봅니다. 보다 못해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여 다니고는 있는데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아주 귀한 시간이었다는 걸 지나고 난 뒤에야 느끼겠지요.

2021-11-20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7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21-11-20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어머니가 이제는 너무 작아지셔서 볼 때마다 짠해지네요.

아드님 합격 축하드립니다!!

꼼쥐 2021-11-27 16:23   좋아요 0 | URL
당연한 일이지만 살아계실 때 조금 더 관심을 표하는 게 후회를 덜 남기는 일인 듯합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오후즈음 2021-11-2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름 없는 어느 곳에어 분명 손자의 합격 소식을 기뻐하실거예요.

꼼쥐 2021-11-27 16: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실 것이라 믿습니다. 수능이 코앞이라 아들에게는 할머니의 사망 소식도 전하지 못했었는데 삼오제가 있었던 금요일 저녁 아들은 최종 합격 소식을 알리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