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려했던 일이 막상 현실로 나타났을 때, 생각보다 약한 결과에 저으기 안심할 때가 더러 있다. 그것은 마치 약하게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번지 점프대에 올라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느꼈던 극한의 공포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뛰어내리고 나면 '에이, 별것도 아니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는 이렇듯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과도한 걱정과 근심을 안은 채 전전긍긍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이와 같은 경험을 얼마나 많이 겪게 되는 것일까. 우리 앞에 어차피 닥칠 불행이라면 그 결과를 미리 걱정하고 고민할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충실하게 즐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손에 떠밀려 번지 점프를 하게 될 테고 공중에 매달린 채 별것 아니라며 안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수능을 치른 학생들의 홀가분한 표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자신의 마음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결과로 인해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과 근심에 싸여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한 치 앞의 일도 미리 알 수 없는 청맹과니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우리가 이렇게 무식하고, 무례하고, 건방지기 짝이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리라고 누가 예측이나 했을까. 그러나 결과는 그렇게 되고 말았고, 그를 찍었던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자괴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게 되지 않았던가. 그러려니 하면서 말이다.
하물며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은 어떠한가. 절제가 불가능한 망나니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다시 뽑지 않았던가. 이렇듯 세상에는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일은 다시 또 반복적으로 일어나고야 말 테니까 말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명 박사나 천공의 예지력 덕분이려니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속 편할지도 모른다. 장은진의 장편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가 문득 떠오르는 금요일 오후. 다음주부터 기온이 떨어진다는데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주말은 주말처럼 즐겨야 하지 않을까.
"거리를 걷다 문득, 나는 이게 우리의 마지막 축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광란의 축제도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다. 시끌벅적한 축제 뒤에 남는 건 쓸쓸함과 허전함이다. 축제가 끝나면 마술처럼 풀렸던 금기는 마술처럼 다시 시작될 것이다. 어쩌면 축제의 뒤끝을 감당하지 못한 광기 들린 자에 의해 금기의 벌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광란의 밤이 어떤 자를 광란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