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졌다. 뚝 떨어진 기온만큼이나 사람들의 온정도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다. 세밑이 가까워 올수록 나보다는 주변과 이웃을 먼저 살피던 과거 우리네 세밑 풍경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아득한 과거로만 남은 듯하다. 그러한 집단의 기억들 중에는 바지사장, 아니 바지 대통령에 대한 추억(이라기보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바지 대통령의 기억. 결국 현직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하고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로부터 방을 빼게 했던 그날의 기억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그날의 기억들로 인해 대선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여야의 대선 후보가 참석했던 '글로벌 리더스 포럼 2021’에서 우리는 또다시 바지 대통령에 대한 트라우마를 떠올려야만 했다. 야당의 후보가 대선후보 국가정책 발표 연설을 위해 무대에 올랐지만, 연설문이 프롬프터에 뜨지 않아 약 2분간 침묵하는 방송 사고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멀뚱멀뚱 고개만 도리도리 움직이는 모습은 과거 바지 대통령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써준 연설문이 없이 말했다가는 치명적인 말실수로 이어질까 걱정되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자의적으로 단 한마디 말도 꺼낼 수 없는 그의 처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답답함은 향후 바지 대통령의 재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전두환 씨가 향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뉴스 전체를 장악했다. 바지 대통령의 재판이 우려되는 야당의 대선 후보 역시 자신의 국정 능력이 부족함을 인지했던지 전두환 씨가 정치는 잘했다고 말한 바 있다. 전두환 씨는 적어도 자신이 하고픈 말은 마음껏 할 수 있었으니 그의 입장에서 보면 속은 시원했으리라고 여겼을 터, 자신과 비교하여 부럽지 않았겠나. 하고 싶은 말은 마음껏 하고, 하고 싶은 행동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전두환 씨에 대한 향수는 바지 대통령의 입장에서 너무도 부러운 대통령상이 아니었을까.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그를 보며 깜짝깜짝 경기를 일으킬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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