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만 느껴지던 추석 연휴도 이제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휴일이라는 게 사실 그동안에 쌓인 피로를 씻고 재충전하고자 함이 일차적인 목표일 텐데 명절 연휴는 언제나 반대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쌓인 피로를 풀기는커녕 쌓인 피로에 새로운 피로를 더 얹어서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게다가 성장기에 있는 조카들이나 연로하신 어른들을 뵙고 나면 나 역시 잊고 지내던 세월의 흐름을 불현듯 느끼게 되어 정신적인 피로감도 만만치 않게 작용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자본주의라는 게 본디 돈과 권력으로 사람들의 서열을 매기는 까닭에 철이 들면 들수록 진실로부터 멀어지도록 부추기지 않던가. 자신의 처지나 속마음을 숨긴 채 몇 날 며칠을 부대끼며 연기를 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말이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누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듯 기진하여 영 맥을 못 추게 되고 만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군에 입대한 아들을 면회하여 특별 외출로 잠시 집에 데리고 왔다가 다시 데려다주었고, 짬을 내어 처가 식구들과 '매드포갈릭'에서 외식을 했다. 자영업이 위기라는데 식당을 찾은 방문객들이 어찌나 많던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여념이 없고, 나는 그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잠시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들어가는 저 배추밭처럼 사람들 역시 시간 속으로 제 몸의 수분을 끝없이 밀어 넣다 보면 언젠가 거울 속에서 주름이 깊게 팬 푸석푸석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메말라가는 것이다.
길었던 연휴 기간 동안 읽고 싶은 책은 많았지만 게으름과 이런저런 약속에 발목 잡혔던 나는 이 책 저 책 기웃대기만 했을 뿐 어느 것 하나 끝까지 읽어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박성원이라는 소설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던 것일까. 바보처럼 말이다. 그의 단편소설 <하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과연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