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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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하여금 타인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알아갈 수 있도록 만든 신의 재치는 생각할수록 기발하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했더라면 가뜩이나 자만심 강한 인간이 시간을 쪼개어 타인을 만나고,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쏟아내고, 억지웃음을 짓거나 상냥한 말로 타인을 즐겁게 하려는 생각은 숫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은 타인과의 교제를 삼간 채 자신의 영역 안에서 평생을 홀로 지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나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게는 없는 타인의 능력을 칭찬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면 나의 능력을 기꺼이 제공할 수 있다는 헌신적인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다 신의 안배이자 재치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남과 어울려 살도록 한 신의 의도를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을 때 그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우열이 가려지게 마련이고, 작은 질투가 유발되며, 질투심으로 시작된 마음이 종국에는 미움이나 증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테디 웨인의 소설 <아파트먼트>는 우리가 청춘의 시기에 빠져들 수도 있는 타인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 그로 인한 실수와 상실의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나는 흔치 않은 문학적 재능과 우연히 마주친 것이었고, 동료 수강생의 탁월함에 설령 내가 어떤 질투를 느꼈을지는 몰라도 그런 질투의 감정은 빌리의 겸손함과 관대함 때문에 누그러져 있었다. 빌리는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모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p.38)

 

1996년 컬럼비아대학 순수예술 석사과정의 문예창작 프로그램에 등록한 여러 학생들 중 가을학기 소설 워크숍을 듣는 십여 명의 학생들이 만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서로의 작품을 합평하는 과정에서 나는 소설가로서 빌리의 재능을 눈여겨보게 된다. 미국 중서부의 쇠락한 도시 출신인 그는 가난하고 보수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과는 거리가 먼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자신감 결핍으로 인해 사람들을 멀리하고 나만의 영역 안에서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이었던 '나'와는 다소 상반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에게는 늘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던 '나'는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바텐더로 일하며 소설가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빌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정성의 화신이었고, 같은 남자로서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불법 전대를 하고 있었지만 맨해튼의 제법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나'는 바텐더로 일하면서 자신이 일하는 바의 지하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빌리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나'에게는 학비와 생활비를 주는 화학공학 기술자 아버지가 있었지만, 빌리에겐 금전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게으름뱅이" 노동자 아버지가 있을 뿐이었다. 빌리는 놀다가도 "시계에서 삑 소리"가 나면 일하거 가야만 했다. 빌리의 문학적 재능에 매료되어 '나'의 선의에서 비롯된 동거 제의에 대해 빌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파트 청소를 하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학기 도중 그만두었을지도 모르는 빌리의 학업은 '나'와의 동거로 인해 계속 이어질 수 있었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나'와 빌리 사이의 심리적 균열은 점차 짙어만 갔다.

 

"우리가 과거에 대한 기억 중 중요한 뭉텅이들을 무의식 속으로 억압하거나 삭제한다는 개념은 내게 실제적인 심리현상이라기보다는 작가들을 위한 극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저기 남아 있는 불쾌한 얼룩들을 지우기 위해 추억을 아주 미묘하게 변형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현재의 의식 속에 있는 쓰레기들을 카펫 아래로 숨기는 것만큼이나 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p.240)

 

내성적이면서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마음만 있지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탄탄한 육체와 잘생긴 외모를 통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여자들을 쉽게 매료시키는 빌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나'와 상층부를 비난하면서도 약자를 조롱하는 빌리. 진보적인 성향의 '나'와 가난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빌리. 누군가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고난을 극복해가는 빌리와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하고 있는 '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적 동지이자 모든 제약을 뛰어넘는 우정의 관계라고 믿었던 '나'와 빌리와의 관계는 서서히 파국을 향하게 되고...

 

우리는 종종 현재 맺고 있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가 더없이 두텁고 단단하여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믿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단단했던 관계도 한순간의 실수로 아주 쉽게 깨어지곤 한다. 한때는 소설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로까지 여겼던 빌리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내 소설에 대한 코멘트가 줄고, 아파트 청소를 거르는 날이 늘었으며, 자신에게 쓰는 돈을 "내 아버지 수입의 트리클다운(낙수효과)"으로 여기게 되지 않던가. 그럼에도 그는 내 손을 두고 "일해본 적 없는 아기 손"이라며 놀려대곤 했었다. 한 인간에 대한 선망과 증오의 양가감정이 '나'의 행동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며 소설은 끝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과 그러면 그럴수록 나로부터 멀어지려는 상대방. 우리는 사람 심리의 원심력과 구심력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청춘이라는 짧은 관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웠던 시절을 미처 되새김질할 시간도 없이 시나브로 늙어가는 것이다. 노년의 회상이 쓸쓸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은 시절에 아름다운 시간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노년의 회상 속에 서글픔처럼 스며들기 때문이다. 무모하지만 그렇게 진실했던 청춘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재능을 염탐하고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삶을 가늠하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청춘의 시간을 무작정 그리워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어쩌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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