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처음 읽었을 때 만큼 결기가 선연하게 느껴지고, 가슴이 뛰는 문장이다.
이 문장이 어떻게 여성의 문제에만 국한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문장은 배제 당하고, 억압받고, 소외되어 본성을 왜곡하며 살아가는 모든 계층과 모든 인간인 소위 타자라는 존재라면 한번쯤 깊이 있게 느껴 봄 직한 문장인 것 같다.
문장의 구조도 좋지만, 특히나 문장속에 자리한 명사(철학용어)가 가진 힘이 대단해서 이 명사가 풀리면 마치 여의주속에 갇혔던 묵직한 기운이 뿜어져 나올것 같다. 절대 외우지는 못하겠지만, 절대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필사라도 해두고 싶다.
「우리가 채택한 관점은 실존주의 윤리의 관점이다.
즉, 모든 주체는 계획을 통해 자기 자신을 구체적으로 초월로 확립한다. 그는 다른 자유들을 향한 영속적인 초월에 의해서만 자신의 자유를 완성시킨다. 무한히 열린 미래를 향하여 자신을 확장하는 길 외에는 현 존재를 정당화시킬 다른 방도는 없다.
초월이 내재 상태로 떨어질 때마다 존재자는 즉자상태로 퇴보하고, 자유는 사실성으로 타락한다.
만일 이 전락이 주체에 의해 동의된 것이라면 도덕적 과실이고, 주체에게 강요된 것이라면 박탈감과 억압의 형태를 띤다. 두 경우 모두 절대 악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자 고심하는 모든 개인은 초월하고자 하는 무한한 욕구로써 자신의 존재를 경험한다. 그런데 여성의 상황을 독특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여자도 모든 인간처럼 자율적인 자유이면서 남자들이 타자로서 살도록 강요하는 세계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다른 본질적이고 주권적 의식에 의하여 끊임없이 초월될 것이기 때문에 객체로 고착되고, 내재 속에 갇혀 있기를 요구당한다.
여자의 비극은 자기 자신을 언제나 본질적인 것으로 확립하려는 모든 주체의 기본적인 주장과 여자를 비본절적인 것으로 구성하려는 상황의 요구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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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인의 기회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기회들을 행복이 아닌 자유라는 용어로 정의 내리게 될 것이다.」(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