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희작가님의 "대온실수리보고서"를 읽는 동안 소설의 묘사와는 무관하게 머릿속에서 혼자 그려본 "어떨까?"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깡통만두"라는 가게에서 먹는 만두맛은 어떨까?, "야앵"이라는 단어가 참 매력적인데 그 기분은 어떨까?, 아무도 없는 새벽녁에 몰래 창경궁에 숨어들어 꽁꽁 얼어붙은 춘당지를 스케이트를 신고 달리면 기분이 어떨까?, 대온실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등등....
"어떨까?"의 궁금증 앓이 중 귀신과 같은 나의 보스는 왠일인지 서울 출장을 보내 주셨고 대온실수리보고서 야간 성지순례(대온실야앵?ㅎ)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 "깡통만두"라는 가게에서 먹는 만두맛은 어떨까?
소설속 영두와 순신이 자주 갔던 깡통만두 가게를 상상했을때 순대, 떡볶이, 튀김, 쫄면 등등을 파는 시장통 분식집 같은 분위기를 그려보았다.
그러나, 내가 소설 속 그곳이라 믿고 방문했던 북촌의 깡통만두는.....
수요미식회에도 나왔고, 블루리본이 주렁주렁, 웨이팅이 어마무시한 맛집이었다. 물론 소설 속 그 시절의 그 집과는 다르겠지만...
1인 웨이팅에도 친절하게 손님을 맞아 주시는 만두국 같은 따뜻함이 정성스런 한 그릇으로 식탁앞에 쓱~~~~
친구녀석에게 사진찍어 보냈더니 "자본주의적인 만두국 맛"일 것 같다며 어그로를 놓는다.
진한 사골국물이 적당히 베어가는 만두를 한 입 베어 물고 감탄하며 그 친구에게 카톡을 날려 주었다.
"이건 착하고 따듯한 자본주의야!", "만두국으로 뭔가 대접받는다는 느낌은 내 평생 처음!"
2. "야앵"이라는 단어가 참 매력적인데 그 기분은 어떨까?
夜櫻 : 밤에 벚꽃을 구경하며 노는 일.
이상하게 야앵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참 좋다. 조선말기 창경궁에 조명은 지금보다 어둡고, 아름답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그 시절로 돌아가 상상해 보면, 봄날의 어느날 궁궐에는 어둠이 내리고 수은등이든 남포불이든 누군가 불을 붙여 궁전을 어둠으로부터 희미하게 구해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밤하늘에서는 봄 밤의 달이 선물인 듯 은은한 달빛으로 창경궁을 감싸주면, 어둠에 향기를 잃어가던 벚꽃은 다시 한번 한 낮의 봄 기운을 펼쳐냈겠지?ㅎ 분위기 대박!
수은등과 달빛아래 흩날리는 창경궁 벚꽃길을 걸어가는 조선말 연인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왕족도 아닌 이들이 궁궐을 느리게 거닐며 데이트를 하는 그들은 어떤 기분일까?
3. 아무도 없는 새벽녁에 몰래 창경궁에 숨어들어 꽁꽁 얼어붙은 춘당지를 스케이트를 신고 달리면 어떨까?
영두와 리사가 갈등해결을 도모하기 위해서 스케이트를 탔던 그 새벽의 창경궁 춘당지!
아담하지도 거대하지도 않은 춘당지를 둘이서 스케이트 타는 모습은 은밀시원한 맛이었을까?
그보다 나는 르느와르의 그림 하나를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춘당지가 얼어붙고, 주변에 은은하게 등불이 켜져 오면 하나 둘 연인들이 모여들며 스케이트를 타고 달빛 아래 은반을 가르는 모습이 떠 오르며, 마치 조선말기 한 겨울 야외 무도장의 낭만은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하고 그림속 분위기와 춘당지의 스케이트장을 상상해 보았다.
진정 다정한 시선, 다정함 속에 무심한 시선, 무심함 속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선, 기다리는 시선으로 다가갈까 망설이는 시설들의 조화와 젊음의 활기 가득한 축제의 장소를.
4. 대온실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아마도 대낮에 대온실을 보았다면 이런 감동은 못 느꼈을지 모르겠다.
한밤중에 춘당지를 지나 돌아 어느 순간 불현듯 눈앞에 나타난 대온실은 한마디로 크리스탈 왕국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밤에 보았던 피렌체 대성당의 느낌도 물씬나는것 같고, 어느해 크리스마스인가 처음보았던 루미나리에도 떠오르고,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은색 구조물이 뒤섞여서 아름다움에 취하는 순간이었던것 같다.
그냥 한참을 와~~와~~를 연발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 외에 그 광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나마 정신을 잃지않고 소설책 인증샷을 남긴 것은 스스로 대단할 뿐!ㅎ
금희작가님 덕분에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을 저녁에 때 아닌 夜櫻 을 즐겨 보았다.
30대 초반이었나? 야앵은 아니지만 이곳을 거닐며 데이트했던 기억이 풍경이 물러간 자리로 밀려 든다.
그때는 풍경이 보일리가 없었지. 내 옆에 세상 최고의 야앵 풍경이 있는데 어딜 보고 뭘 봤겠어?하는 생각이 스치며 헛웃음이 나왔다.
그 시절 나는 왜 그랬을까? 왜 그래서 지금 혼자 야앵하며 청승을 떨고 있는거지? 둘이 보았다면 더 좋았을 아름다웠을 야앵 인데!
짧은 후회를 시작으로 창경궁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서울역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그 시절 아름다웠던 야앵을 계속했다. 계속 하고 싶었고, 어쩌면 계속 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가 아쉬웠는지 오랜만에 서재에 글을 남긴다는 핑계로 어제의 야앵을 또 이어간다. "어떨까?"에서 시작되었던 야앵이 "어땠을까?"라는 야앵이 되어 버린것 같다.
글 쓰는 동안 반복으로 틀어 두었던 싸이의 "어땠을까?"라는 노래가 빛을 잃어가는 걸 보니 진짜 야앵은 이렇게 끝이 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