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극한알바 국내편이 작년에 방영했던가, 언제 방영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무한도전 극한알바 국내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극한 알바체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한도전 멤버들끼리 이런 저런 말이 오갈 때, 김태호 피디가 그러면 해외 극한 알바는 어떠냐면서, 인도편의 빨래터 의 한 장면을 보여 주었을때였나보다, 같이 티비를 보던 남동생이, 누나, 쟤네들은 저기서 평생 살아, 저기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바꺝세상은 못 보고 저 안에서 갇혀 산다. 다른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해,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저 빨래터 밖을 절대 벗어날 수 없어. 오로지 빨래만 하다가 죽어, 인도가 저런 곳이야. 라고 말하며 인도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이 있었다.
많은 작가들이 영적인 인도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과 달리, 나의 남동생은 인도의 현실에 반감과 혐오감을 평상시에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했다. 남동생은 회사일로 인도에 6개월간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그 전만해도 인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고 관심도 그다지 많지 않았던 터라, 인도에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 있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인도 체류 6 개월동안, 인도의 현실을 접하고 나서 인도관련 베스트셀러책에 소개되는 인도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다른지 깨닫고 인도에 혐오감을 나타내곤 했다. 무엇보다 인도 체류시, 기차를 타고 가다 평민인지 하류층의 한 청년이 어느 기차칸( 브라만들만 탈 수 있는 칸)에 들어왔다가 개 패듯이 맞는 것을 보고,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현지인도에 얼마나 뿌리 박혀 있는지, 그 신분제도가 종교의 절대성과 연결되어, 신분간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기득권의 갑질과 그 갑질을 고스란히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도 받아들이는 인도라는 나라에 회의감을 느꼈던 것이다.
누나, 거기 가서 사람들 사는 모습 보면 더럽고 불쌍하고 브릭스, 브릭스 하는데, 솔직히 인구만 많다뿐, 있는 놈들만 쌓아놓고 사는 거지, 가진 거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구매력이 떨어져, 거기서 사업할 생각 하지 말아야 해! 천민들로 분류된 사람들도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사는 게 인도야. 웃기는 나라지! 라며 경멸스럽게 말하곤 했다.
인도를 가본 적도 없고 그들의 삶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동생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동생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신문에서 간혹 기사화되는, 방글라데쉬의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는 기사가 생각 났다. 나는 그 기사를 볼 때마다 코웃음을 치곤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방글라데쉬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이유는 본인들의 삶과 비교할만한 대상이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 다들 가난하게 사람들이고 가진 자들의 삶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너 행복하냐고 물으면 당연 행복하다고 하지, 나 이렇게 살아서 불행해요, 라고 말할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난하고 무지한 체 사는 사람들이다. 다른 차원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다른 차원이 어떤 세상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다. 이차원 세상의 사는 사람들은 삼차원의 세상을 모르고, 삼차원에 사는 사람들은 다중차원의 세상을 알턱이 없는데, 무슨 행복 드립을 치는지.
그런데 저 똑같은 질문을 저 빨래터에서 평생 살아야하고 이게 자기가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저 인도빨래터 하층민들에게 물어보면, 그들도 아마 행복하다도 할 것이다. 그러니깐 지금까지 인도에서 카스트제도가 만족스럽게 유지되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막대한 부를 차지하는 동안, 저들은 저 삶에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들이 가난하고 무지한 체 살면서도 신을 위해 살고 신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평생을 빨래터에서 사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잘 못 된 거냐고, 행복하면되지 않냐고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우리가 싸워온 것은 수천년동안 지배해온 불평등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평등한 세상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투쟁의 역사였고, 그 위대한 세기동안 우리는 그마나 여성투표권도 얻고, 인종차별에 반기를 들었으며, 게이나 레즈비언같은 소수의 인권을 위해 투쟁해온 시대였고, 무엇보다 부의 평등을 이루려고 노력하는데(물론 미국 자본주의의 탐욕이 기득권의 부를 옹호하긴 하지만), 왜 인도나 방글라데쉬에서 사는 사람들은 세계가 싸워 이룩한 결과물들이 그들의 제도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만족하면서 사는 건, 계속해서 한 차원의 세상만 보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묻지 말아야 한다. 혹독한 노동만이 전부인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건 정말 잔인하다. 나는 저런 기사를 볼 때마다 기득권의 행복지수 조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ㅇ리같은 사람들에게 봐라 가난한 방글라데쉬 사람들은 없어도 행복해 하지 않느냐, 너희들도 그러니깐 노동권이니 부의 쏠림이니, 주는대로 받아 먹으라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
분명한 것은 방글라데쉬 사람이든 카스트제도에 희생되는 인도의 하층민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 시스템의 결과물이지, 그들의 삶이 행복해서 행복다하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