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지,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다. 지난 달에 몇권의 과학책과 몇권의 소설을 주문해서 천천히 읽고 있긴 한데, 과학책은 워낙 그 분야에 대한 지적 욕심이 강해 끝까지 읽으려고 애쓰지만, 소설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심지어 가독성 좋은 일본소설조차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매번 책구입시 소설을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할 정도이다.
안 사면 되지 뭘 그러나 하겠지만, 나에게 소설이란, 책이 부족했던 어린시절부터 십대시절까지 읽을 책을 찾아 돌아다니며 재밌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느꼈던 기쁨을, 남들 연애하고 결혼할 때마다 뼛속까지 시리던 외로움을 달래군 구세주였으며, 아이들 키울 때, 책 한권 들고 나가 놀이터벤치에 앉아 아이들 노는 거 지켜보면서 읽은 심심풀이 땅콩이기도 하고, 밥하면서 식탁에 잠깐잠깐씩 앉아 조바심 되면서 읽었던 기억들이 나이가 들수록 기분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기에, 소설 읽는 즐거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남은 인생 더 이상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하는 약간의 두려움도 있고.
그래서 안 읽고 방치해 놓고 있을지라도 한달에 몇권의 소설을 꾸준히 구입한다. 유월엔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와 <오베라는 남자>가 눈에 띈다. 필립 로스는 <휴먼 스테인>과 <에브리맨>을 읽었는데, 두 권 모두 임펙트가 강했던 책들이라 <네메시스> 또한 기대만땅이고, <오베라는 남자>는 리뷰와 기자들 서평이 호평일색이어서 간만에 북유럽 소설에 살짝 기대하긴 하는데, 북유럽 소설들이 나의 소설적 기호와 그닥 맞지 않아서 이 소설은 어떨지 모르겠다. 심지어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도 선호하는 입장이 아니여서, 긴가민가하긴 한데, 기대해 보렸다.
과학서적분야에서는 닐 슈빈의 신간이 나왔다. 나 이 작가의 <내 안의 물고기>를 워낙 재밌게 읽었던 터라 추천 마법사에 신간이 뜰때 무작정 사 읽어야지했는데, 몇 년만에 신간이 나왔다. 과학책임에도 불구하고 현학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다. 인간의 기원이라고 해야하나, 사람이 어떻게 바다생물에서 육지생물로, 네다리에서 두 다리로 진화되었는지에 관해, 그 근거가 되는 화석을 찾으려는 노력담이라고 해야하나, 결국 네 다리 달린 물고기 화석을 발견함으로써 그의 진화 이론이 연결되는 과정을 재밌게 써, 작가의 신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꽤 오랜 기간 나오지 않다가 몇년 만에 나온 것이다. <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란 책이 어떤 책인지 추마에서 제목만 읽고 신간 소개 페이지까진 안 들어가봤는데, 이 작가의 유머스러운 입담을 믿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