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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수필 어딘가에 이런 글이 있다. 자신은 태어나서 한번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일본 세습 정치에 대한 환멸을, 그는 정치적 기권으로 강경하게 표현했지만, 겉멋만 잔뜩 들었던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하루키의 한숨 섞인 그런 글은 왠지 자국의 정치에 대한 환멸을, 세계적인 작가의 좀 있어 보이는(깨어 있는) 정치적 의식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런 글을 읽고 일본 정치와 도끼니 개끼니 수준인 우리 정치에 반감을 느껴 몇 번인가 투표권을 행사 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그의 그런 정치적 기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건 미드 <콜드 케이스>에서 여성참정권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고 난 이 후였다. 몇 시즌의 에피소드인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하루키의 영향을 받고 몇 번인가 투표장에 가지 않았던 그 참정권 때문에, 100 여년전에 미국의 수 많은 여성들은  유권자인 남성으로부터 그리고 같은 성의 순종적인 여성으로부터 위협과 조롱 그리고 살해위협 속에서 참정권이라는 정치적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인다. 드라마 특유의 과장이 없던 것은 아니겠지만, 참정권을 얻기 위한 투쟁이 그렇게 녹록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는 참정권을 위한 모임에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루키의 투표권 포기가 멋지다는 이유만으로 투표권 행사를 포기한 나로서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도 그 때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느꼈던 순간적인 기억을 나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나는 어리석었던가.  

당대의 아동문학평론가들에게 스타일이 후졌다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 되었던 아동문학가가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오즈의 마법사>의 작가 프랭크 바움. 그의 문학적 상상력을 인정한 것은 디즈니였으며 레이 브레드버리의 단편 <Exile> 정도로 그의 초기 문학적 평가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큼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들만 셋을 둔 프랭크 바움은 열혈한 공화당원이었으며 또한 한 때 적극적인 여성운동가였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위해 그는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역신문의 여성 신장운동과 평등권 문제, 참정권리에 대한 여성운동가들과의 연대, 여성참정권을 반대하는 여성들과의 호전적인 싸움등. 그리고 마침내 그는 도로시라는 소녀를 여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물론 저 평전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는 언제나 낭비벽이 심해 돈에 쪼달렸고 오즈의 마법사도 돈때문에 시리즈가 계속해서 나왔다). 저널로 시작한 글쓰기였기에 그의 글 스타일은 사무적이었지만, 그의 문학적 판타지만은 미국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이 여자 아이었다는 것이 과연 그의 여성참정권 운동과 연결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바움과 같은 남성작가들도 여성참정권 운동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오랜 기간 참정권을 얻기 위해 애쓴 것에 비하면,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부여 받아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목적을 드러낸 것은 실로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은 1920년, 영국은 1928년 그리고 프랑스는 1946년에 이르서야  여성의 참정권을 획득하였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기가 2010년, 여성 참정권 시작의 역사가 100년이 되기 위해서는 20년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

올해로 정확히 여성의 참정권을 획득한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80년동안 많은 일들이 있어왔을 것이다. 20세기를 뒤흔들었던 것은 세계를 양분화했던 이데올로기나 과학의 발달뿐만 아니다. 여성의 의식 또한 급진적으로 변했다. 여자가 남자들에게 순종하거나 사랑받기 위해 목 매달았던 호시절이 사라져 버린 것(아, 그것에 비해 우리나라 걸구룹의 Oh!는 얼마나 오그라드는 순종적인 표현인지). 이러한 배경에는 수 많은 글로리아 스타이넘같은 여성운동가들, 수잔 손탁같은 뛰어난 여성비평가들, 그리고 일반적인 개념을 뛰어 넘은 애니 리버비츠같은 이미지 사진작가들의 활약을 무시 못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성적인 여성들 저 너머에 있는 팝의 여제 마돈나의 등장이야말로 여성의 순종적인 이미지를 확 벗어버리고, 끊임없이 뮤비를 통해 남성을 지배하려는 이미지를 대중화 확산이야말로 20세기 후반의 여성운동의 결정체일 것이다.   

나는 최근에 나온 미국에서 한참 말많았다고 하는 레이디 가가의 뮤비 <Alejandro>를 보면서 과연, 19세기에, 20세기 초반 참정권을 위해 열심히 운동했던 수 많은 여성들이 레이디 가가의 뮤비를 지금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사회적 억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코르셋에 꼭 낀 옷을 입어야만 했던 그 여성들이 지금 현재, 저 레이디 가가의 남성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레이디 가가를 찬양할지어다.   

   

뮤비가 너무 야하고 신성모독이여서 18禁,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프랑스 영화 <델리카트슨> 세팅 분위기에 마돈나의 Like a prayer와 Express yourself 의 뮤비를 섞어 놓은 것 같다. 이래나 저래나 레이디 가가는 명백한 마돈나의 후예일 수 밖에 없으려나. 3분 51초 베드씬 민망하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움. 클레인 사람 뭐 하는 양반이길래, 어떻게 저런 라인을 찍을 수 있을까 싶었다. 현재 유투브 조회 49,758,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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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이 참 괜찮은 음악일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아들애하고 들으면서 알았다. 락이나 팝세대인 난  80년대 후반에 새로운 음악쟝르로 등장한 랩음악에 익숙하지 않아 좀처럼 내 귀를 끼여맞추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음악을 듣지 않았다.  

루헤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은근슬쩍 등장인물들을 통해 내뱉는 말, 랩은 쓰레기 음악이나 마찬가지야라는 말에 수긍하고 동감했는데, 요즘 음악의 주류가 랩이다보니 그런대로 귀에 익기 시작한다. 하기사 이제 랩역사가 근 20년이다. 익숙할 만도 하지 않겠니. 여하튼 뭐 새롭게 랩음악을 들으면서 영어야 운율적이라서 랩이 잘 어울리지만 우리 나라말은 (번역도 그런 문제제기를 많이 하지만) 랩이 참 안 어울리는 산문 언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그러한 내 편견이 글러먹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21이나 브아걸의 파워풀한 걸의 랩이 맘에 들고 아웃사이더는 내 생각을 비웃듯 피에로의 눈물 전체를 랩으로 올렸다.  

은근 괜찮다. 아니 걍 괜찮다라고 해야하나. 이거야 말로 편견타파가 아니고 뭐냐! 우리 나라 노래도 이제 랩이 잘 어울린다고 하고 싶어진다. 영어처럼 리듬미컬하기 보다는 약간 껄끄럽긴 하지만 아웃사이더의 노력에 경의를.... 그래도 가사 참조는 필수 하하하.

옛날 꽤나 아주 먼 옛날 옛적이야기
시골 조그만 마을
눈물이 없는 처녀가 살고있었지
가난했지만 항상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아름다웠고 옆나라에 수많은
부자들과 남자들이 끝없이 청혼을했지만
모두가 거절을 당했고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사람은 가난하지만 성실한 청년 피에로
어느 날 그가 찾아와서 청혼을 했어
그녀는 승낙을했고
그 뒤로 그 뒤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데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바늘에 손이 찔렷어
한번도 울지않았던 아내가 눈물을 흘렸어
그런데 다르게 눈물이 다이아몬드로 변해버렸어
어 그래
믿기지 않은 상황
그때부터 피에론 아내를 때렷어
다이아몬드를 얻었고
흥청망청 다이아몬드를 다 써버렸지
그리곤 다이아몬드가 다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때렸어
그녀의 가슴에 상처를 새겼어 
두눈 가에 핏물이 흘러와
웃음을 짓거나 춤추네 내 맘 안에
나도 몰래 새겼던 상처가 이렇게 번져가
애타게 너를 찾는데
그렇게 한달이지나 두달이지나 몇년이 흘럿어
다 써버린 다이아몬드를 가지로
집으로 돌아온 날도 술에 취해
아내를 불럿어
그손에 쥔 새빨간 다이아몬드를 보고는
피에론 깜짝 놀랏지
아내의 손에서 빛나는 커다란 다이아몬드에
마냥 기분이 좋앗지
뜨겁게 사랑했던 자신의 피보다 새빨간
그 다이아몬드의 의미를 몰랏지
굳센 사내를 위한 아내의 마지막선물
그리곤 그녀는 목숨을 끊엇지
빨갛게 물드는 양탄자는
활활 타오르던 두 사람의 사랑보다
진하게 바닥을 수놓았어
목놓아서 울어봤자 그녀를 영원히 볼수없어
피에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앗지만 이미늦엇어
그녀는 떠나갓어
그 뒤로 피에론 자신의 얼굴에
분장을할때 눈물을 그려넣고는
미친듯이 웃었어
슬픔을 잊으려 애써 춤을춰봐도
불타는 지나간 사랑의 후회만큼
미소만큼 더
두눈 가에 핏물이 흘러와
웃음을 짓거나 춤추네 내 맘 안에
나도 몰래 새겼던 상처가 이렇게 번져가
애타게 너를 찾는데
(왜그랫을까 그땐 왜그랫을까)
(대체 왜그랫을까 나는 왜그랫을까)
돌이킬수 없다는걸 알아
이미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수 없다는걸 알아
떠나간 그녀를 추억하면 그냥살아
꿈에서 그녀가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두번다시는 너를 놓지 않을께
다짐햇지 텅빈 집안 구석 너의 향기로 가득한데
아득해져만 가는 너의 아름다운 미소
다투기도 햇지 눈물에 감추기도 햇지
두눈을 마주친채 바보같이
밤새도록 바라보기만 햇지
왜 그랫을까 그땐 왜그랫을까
가진것 없어도 난 너만 있으면 행복햇는데
대체 왜그랫을까 나는 왜변햇을까
영원히 변치않을꺼라는 약속 계속햇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게는 말도못하고
얼마나 많이 아파햇을까 아무런 힘도없는
그녀를 때리며 웃고있던 나를 영원히 저주할께
용서 하지마 나 제발 부탁할께 눈물흘리지마
두눈 가에 핏물이 흘러와
웃음을 짓거나 춤추네 내 맘 안에
나도 몰래 새겼던 상처가 이렇게 번져가
애타게 너를 찾는데 
두눈 가에 핏물이 흘러와
웃음을 짓거나 춤추네 내 맘 안에
나도 몰래 새겼던 상처가 이렇게 번져가
애타게 너를 찾는데

내가 랩에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딸애가 이 책 읽어달라고 가져와 읽어 주고 있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던 우리 아들이 엄마, 나 이거 랩으로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러면서 수줍많은 녀석이 정말로 으로 이 글을 읽었다능~~~
두 놈이 나보고도 랩스탈로 읽어보라고 하는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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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욜에 아들애친구 엄마랑 영화 <블랙>이란 영화 보러 갔다가 <트루어글리>라는 광고 할 때 흐르던 음악. 사실 난 개인적으로 힙합음악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은 영화 광고보면서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는. 아니 이게 뭔일이래!  

내 MP3가 망가지는 바람에 아들애 MP3로 음악 담아 들으며 동네에서 운동하는데, 아들애가 담은 음악들은 그냥 스킵. 빅뱅, 소녀시대, 카라 등등 아들애가 선택한 음악은 t감각적으로 신나고 들썩거리기는 하는데 들을 만한 거 하나 없었다. 아들애세대가 힙합세대라 그런가. 하여튼 진짜 세대차 나는구나, 하며 대신 내가 들을 음악 담아서 놓고 운동하면서 듣는데, 이 노래는 괜시리 신나더라는.  

아들애한테 <heartbreaker> 대신 이 음악 들려주었더니 빅뱅의 노래인줄 알더라는. 근데 왠일이라니, 이 음악은 소스 제공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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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아빠가 지난 목요일부터 연수라 오늘 일요일 늦은 시간에나 온다. 음하하핫, 유부남들은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완죤 천국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애엄마한테 진정한 휴가란 바로 이런 것. 아이들하고 대강 밥 차려 먹고 대강 공부 봐주고...시간이 제법 남아 돈다. 남아 도는 시간, 책이나 읽을까하다가 좀처럼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유투브에서 음악 서핑하고 있다는. 나이 딱 마흔이 되니깐 이상하게 10대 시절에 남동생하고 함께 들었던 음악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영화도 그렇고. 언젠가 말했지만 난 재즈나 클래식보다 10대 시절에는 남동생하고 락을 들으면서 성장했다. 딱 메탈리카까지 듣고 클래식으로 전환했다는. 락음악은 다시 안 들을 줄 알았는데 요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락 음반 들으면서 10대 들은 음악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 다시 들어도 좋구나라는 말밖에.

Layla

 

제프 벡과 지미 페이지가 한 무대에 섰다. 한 40대 정도로 보이는데 젊어서 그런지 역시 힘이 있다...(옛날 라이브라서 라이브 녹음은 젤로 후짐)

   

이 화면보면서 나이 든 연주자들의 모습이 보여 짠했다는. 저 나이에도 아직도 락을 좋아해 음악하고 같이 늙어가는구나.

    

일렉하고는 다른 맛이 나는 언플러그드

에릭옹, 원더풀~~ 원더~~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 하리오.    

나중에 아들애나 보여주려고 유투브 영상보고 이거 질렀다.  노트북 오디오가 후져서 제대로 음이나 감상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만서도. 그냥 돈 더 주고 음반 살 걸하는 후회도 되고. 그래도 음반은 에릭옹의 모습을 볼 수 없잖아! 에릭 옹이 이렇게 멋질줄이야.  나 아무래도 나이 든 남자한테 끌리는 이유가 뭐야. 마돈나를 롤 모델로 삼아야 하는데, 흑, 이영애를 롤 모델로 삼다니. 

 슬슬 이제 청소나 해야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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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영화까지 챙겨보던 20대 시절과 달리 한 십년간 애 키우면서 영화와는 담 쌓고 살았다. 지난 10년간 본 영화를 대라고 하면 아이들하고 같이 본 애니메이션 정도. 그러다 둘째가 학교 들어가면서 아침 시간이 뻥 뚫려 한 두편의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영화 보러 다니면서 안 사실이지만 조조가 그렇게 싼 줄이야. 아침 일찍 서두르면 영화 한편 값이 단 돈 4천원(와아~~ 싸다,싸!)  영화 상영 되기 전에 기다리면서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값이 더 비싸다는.

블러거들의 영화 소개를 보고 <걸어도 걸어도>라는 영화를 알았다. 가만히 보니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 감독의 예전 영화 <원더풀 라이프>을 인상적으로 본 터라, 영화의 재미를 떠나 혼자서라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보러 간 날 역시 커피값이 더 들었다.

영화는 무난했다. 영화홍보를 위해 큼직하게 쓴 엄마의 비밀이라는 카피가 낯뜨거울 정도로, 이야기의 흐름상 엄마의 커다란 비밀 따윈 없었다.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큰 아들 준페이의 기일이 되어 모인 가족의 하루를 묘사한 일반 가족 드라마였고 정지된 듯한 화면의 싱그런 여름 풍경 속에 녹아든 적막감이 이상하게 정겨운 영화였다. 

큰 아들 기일에 모인 둘째 아들 료타는 아들 하나가 있는 유카리와 함께 고향집을 방문한다. 먼저 와 있는 누나 식구들과 밥을 먹으면서도 그는 부모와 다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떨떠름한 가족 상봉. 본가에서 보내는 그날 하루가 그에게 가시방석이었지만 그를 지켜보는 관객인 나도 가시방석이었다. 부자간의 어색한 관계가 낯설어서만은 아니었다. 나 또한 아버지와 다정다감한 사이는 못 되었으니깐.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랬다. 나는 부녀지간의 다정함보다는 도리에 더 무게를 두었다. 문득 걸어도 걸어도 닿을 수 없는 곳은 부모의 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인의 맘 속 깊은 곳을 우리는 애초부터 닿을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고 부모 자식간에도 타인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부모 자식간의 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 개인의 인생살이를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나 또한 로탸처럼 부녀간의 관계설정이 저렇지 않았을까. 같은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삶에 고집을 부리며, 서로 시건방지다거나 권위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 영화의 결말처럼 살면서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화해없이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영화의 결말에 가족의 넉살좋은 화해따윈 없었다. 우리의 삶처럼.

저 위에 유투브에서 업어 온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라는 노래는 아내 몰래 바람 핀 남편이 불륜녀의 집에서 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역근처의 레코드점(?)에서 아내가 산 음반의 노래였다. 아내가 자신이 바람 핀 것을 모를 것이라는 알았던 남편이 아내의 추억담에 잠시 당황한 모습, 그리고 흘러나왔던 음악이었을 것이다. 블루라이트~요코하마라는 노래는 경쾌했고 내 뒤에 앉아 계셨던 두 할머니중의 한 분이 저 노래를 끝까지 따라 불렀다. 몇 사람 되지 않았던 텅빈 극장에서 울려퍼졌던 할머니의 엥카는 그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묘한 울림을 동반했다. 귀찮다거나 불쾌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저 노래가 무슨 노래이길래 나이 지긋한, 적어도 6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저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을까. 저 노래가 당대의 히트곡이었나. 할머니는 소녀 시절이나 젊은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나? 아니면 일본인?  영화가 끝나고 그 할머니 두 분하고 같이 극장밖을 나왔는데 두 분은 분명 우리 나라말로 주고 받았다. 순간이었다. 할머니들과 말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할머니, 잠깐만요! 저하고 잠깐 얘기 하실 수 있으세요. 잠깐이면 되는데 저한테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들을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영화를 왜 보러 왔는지... 그 노래를 어떻게 아는지. 할머니들은 영화를 평소 좋아하셔서 이렇게 두 분이 같이 다니시는지. 그리고 책 또한 좋아하세요? 등등.

하지만 끝내 말을 건네지 못했다. 화장실까지 할머니를 따라 들어가기도 하고 졸졸 그 분들의 뒤를 쫓아 다녔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평범한 모습의 할머니들이었는데도. 내가 직업적인 인터뷰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아줌마의 명함으로는 그 두 분을 잡을 수 있을만한 명분이 없었다. 마침내 말걸기를 포기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철로 향했다. 아쉬움이 집에 와서도 남았다. 내 용기와 주변머리 없음에.... 어쩜 이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텅빈 극장에서  울려퍼진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와 함께 기억되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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