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귀 파주는 가게 즉 귀청소방이 성행한다는 기사를 보고 회사 사람들과 한참 웃으며 별의별 방이 다 생긴다고 말했었다. 요즘 이상한 방이 참 많이 들어온다. 그런데 요 귀청소를 해주는 방이 만화책이 있었다는 사실, 몰랐다.

[심야식당]의 저자 아베 야로의 책이다. 그것도 [심야식당]을 쓰기 전에 초기작이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라고 해서 [심야식당]을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저자의 초기작이 궁금했다.

귀 청소방이 성행했었던 일본에서 실제로 이 작품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 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자가 그리고 나서 이후에 만들어진 귀청소방이라고 하니 나름 좀 속상 했겠다.

 

 

언젠가 백희나씨의 동화 [달샤벳]의 제목과 같은 걸그룹이 만들어 진다고 할 때 저자는 완강히 그 이름을 거부하며 쓰지 말아달라고 했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의 제목이 걸그룹의 이름으로 쓰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속상해 하셨는데...가끔 이렇게 미묘한 저작권 문제 때문에 불편한 진실들이 있어서 아쉽기는 하다.

[심야식당]도 내용이 어떤 부분은 19금에 가까운 내용이 있거나 여성의 누드 사진이 포함된 컷이 많았는데, 역시 그의 초기작 또한 그렇다.

 

 

지인들이랑 귀청소방 얘기를 하면서 뭔가 저속한 장소에 대한 인식이 훨씬 많았고 서비스를 받는 것이 단지 귀 청소뿐일까 했는데,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는 정말 귀청소만 해준다. 어떤 신의 손을 가지고 계신건지 혹은 귀 청소 기구가 남다르신지 그 집에서 귀청소를 하기위해 멀리서도 찾아가는 이유가 뭘까 참 궁금했는데 그녀의 특별한 기술은 딱히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 참, 아쉽다. 체험으로만 절대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 귀 파주는 가게의 비밀은 아마도 여주인의 정갈한 손놀림도 있기는 하겠지만 마지막에 후 불어주는 그 입김에 있는 걸까. 그전에 여주인에 귀를 맡기고 귀를 파는 동안 사람들이 모두 에로틱하게 변하던데, 역시 귀라는 공간은 다소 그런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사연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추억을 찾고 마음을 얻어가고, 잃었던 사랑을 다시 만들어도 가는 공간이기도 하니 이런 곳이 있다면 나도 한번쯤 들려 보고 싶은데 우리나라도 찾아보니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의 모티브를 얻어 그림까지 가져와 열어 놓은 사진을 봤는데 뭐랄까...나는 그곳은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역시 이곳은 나이든 중년의 아저씨들이 음탕한 마음을 먹고 들어가는 곳같은 느낌을 저버릴수 없다는 것이 이집의 큰 함정일수도..물론 젊은 분들도 많이들 가시는것 같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엄마 무릎에 누워 귀를 팠던 이후 한번도 누군가 나의 귀를 파주었던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누군가 귀를 파준다는 행위는 어린시절의 향수를 가져오는 것일 것 같다. 그래서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를 가게 되면 태아의 그 시절로 돌아가는 향수를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심야 식당]의 아베 야로의 새로운 작품을 봐서 좋긴 한데, 시리즈로 묶어져 나오는 심야 식당과 달리 딱 한권으로 끝이 나버린 책이라서 좀 아쉽기는 하다. 연재 중단에 대한 얘기가 자세히 없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몇 화 정도는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공부하는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면서 인간이 어떤 이유로 공부를 하며 각 문화권마다 문화와 공부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진행된 이 프로젝트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사실 텔레비전으로 보면 시각적인 효과는 참 좋긴 한데 머릿속에 기억이 많이 남는 것이 그다지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는데 다큐가 책으로 나오니 훨씬 더 집중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각 문화권에 있는 4명의 진행자를 뽑고, 한국을 기점으로 아시아, 이스라엘, 유럽, 아프리카까지 문화권마다 다른 공부의 형태를 볼 수 있게 했다. 진행자 4명을 뽑았는데 사실 나는 아프리카까지 갔다 왔으니 그쪽의 패널도 한명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학원 운영 중인 친구의 얘기에 적정부분은 공감을 했었다. 특히 내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3월은 공부를 안 시키고 적응 훈련을 하고 4월부터 한글을 좀 알려주고 난후 4월 중순부터 받아쓰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초등학교를 생각해보면 학교에 입학해서 한 달은 한글을 배우고 이후에 받아쓰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학교에서 한글을 며칠 만에 끝내고 바로 받침이 있는 받아쓰기로 돌입한다는 것이었다.

워낙 유치원 전부터 한글은 마스터하고 문장 공부며 문제집까지 풀고 들어가는 아이들이 많이 생기니 학교에서 한글을 알려줄 필요가 없다는 식의 반응인 것이다.

 

이미 습득하였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공부의 난이도에 접하게 되고 더욱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도태되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공부 환경 때문에 초등학교들어가기 전부터 학습지 열풍이 일어난다. 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사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사교육의 열기 때문에 더 많은 투자를 받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끼고 가르치지 않는 한, 사교육의 환경으로 보내져야 하며 스스로 공부를 하는 환경을 만들기 전까지 많은 투자로 아이는 성장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부유하고 많은 지원을 한 아이들이 확실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고, 요즘 공부는 부모의 지원이 얼만큼 이뤄졌는지에 따라 아이들이 성적이 얼만큼 나오는지 사실 눈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공부에 집중하며 많은 투자를 할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가난한 환경의 아이들의 부모들은 공부를 통해 좋은 대학에 보내기위한 뒷바라지가 눈물겹다. 특히 중국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절절한 두 부녀의 모습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을 구하고 고소득의 길에 접어들면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게 문화와 환경이 다르다고 다른 마음일까.

 

 

네 명의 진행자들이 우리나라 고시촌의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좁디좁은 그 방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인지 답답해하며 창의적은 사고를 억압하고 개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무시하는 단순 암기, 주입식의 획일화된 한국의 교육제도를 비판(P21)”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환경적인 요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면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알았어. 그러나 대학도 고등학교의 연장이야. 도서관에 가는 것이 생활의 전부야.” P28

 

 

나 또한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가 끝나는 줄만 알았는데 학교에 들어갔더니 훨씬 더 많은 숙제. 리포터가 있었다. 읽어야 할 책들이 훨씬 많고 무엇보다 창작을 해야 했던 과정이 정말 힘들었었다. 그렇다고 대학을 졸업하니 끝이 아니라 어쩜, 학교를 벗어나면 더 많은 시험과 공부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중국과 아프리카, 인도의 공부 환경을 보면서 선진국은 공부의 이념과 목표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일본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가 공부를 하는 최초의 목적은 지금보다 잘살아야 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면 좋은 직장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식의 방식은 어느 나라든 다르지 않고 일본 또한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 제수 삼수는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대학교보다 그 이전에 좋은 초, 중, 고를 가기위한 학원 수업이 훨씬 많고 대학보다 초등학교 혹은 사립 유치원의 등용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투자되는 금액과 시간의 노력은 어머 어마했다.

 

 

“가진 자가 교육열이 높고 고등교육을 독점하는 이런 현상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는 ‘유전유죄 무전유죄’, 즉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있다는 식의 사고습관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능력 있는 부모가 명문 사립 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P61

 

 

 

 

 

사실 나는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도 가업을 잊기 위해 시솔 촌부로 내려가 라면가게를 이어간다던지 하는 것에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극히 일부의 얘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인도의 치안문제로 사실 나는 인도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이 바뀌었지만, 어찌되었든 인도의 교육열에 좀 놀란 부분도 없지 않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왜 공부를 잘할 수 없겠어요?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어요. 우리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린 거니까요.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제가 바꿀 수는 없지만 제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어요. 환경이나 신분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는 거죠.” P80

 

 

인도는 카스트 제도에 의해 신분이 나눠져 특히 달리트에 해당하는 신분의 사람들을 천대하고 박해했었는데 그들의 차별을 1955년 이후 공식적으로 차별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실상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하층민이 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 달리트에 속하는 한 아이가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행복한 삶을 살기위한 모토를 가지고 공부에 전념하는 모습에 오래전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농자 짓고 서울로 보낸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하기만은 바라며 마지막 남은 소를 팔아 올려 보내는 그런 모습, 그리고 그런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족들의 모습. 어디든 이렇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똑같은 것이다.

 

 

 

 

 

소를 팔아 아들을 공부시키고, 아들이 자전거가 힘들어 학교에 다니니 힘드니 오토바이를 사달라는 아들 녀석을 위해 재산을 팔아 오토바이를 사 보내는 인도의 아버지나 모두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아들은 가족을 위해 공부를 한다.

 

 

“동양인들은 자신만의 명예나 부를 위해 공부하기보다는 가족, 공동체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공부하기 때문에 나태해지거나 좌절에 빠졌을 때에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P 111

 

 

동양인들이 벼농사를 지으며 쌀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동을 하는 것처럼 서양인들보다 끈기 면에서 남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공부의 주된 목표는 같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명분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동양인들이 느끼는 가족과 서양인들이 느끼는 가족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서양인들의 개인의 성취와 목표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목적은 아니겠지만 역시 동양인들의 목표와 목적이 훨씬 정이 더 많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간 한 인류가 가장 많은 학대를 받았던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교육방식에 많은 애정이 간다. 그동안 사교육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던 동양의 나라보다 훨씬 자유로운 공부를 할 수 있게 조성된 그들의 문화가 존경스러웠다. 어쩌면 이런 존경과 관심이 유럽인들이 싫었을 수도 있겠다. 그들은 확실히 공부는 부모로부터 시작되며 어떤 훌륭한 스승도 부모를 따라올 수 없다는 믿음에 가장 바람직해 보였다.

 

 

“유대인들에게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문화적 유산이 없었다면 그들은 지금과 같은 높은 학구열과 지적 성취를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곧 공부가 그 사회의 문화와 관습, 사고습관, 역사, 종교 등을 반영한 역사적 산물이자 문화적 자산이라는 증거다.” P214

 

 

어제 이런 기사를 봤다. 참치 음식점 간판에 욱일승천기가 그려져 있어서 이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지 물어봤더니 음식점 주인은 인테리어업자가 이렇게 해줘서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간혹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나오는 모델들이나 연예인들을 보여주며 중, 고등학생 이후 대학생에게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었더니 다들 디자인이 예쁘다. 마음에 든다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욱일승천기의 뜻을 말해줬더니 괜찮다고 한다고 했다는 말에 가슴이 답답했다. 하신 그들은 이완용도 누군지 모른다고 하더라.

 

 

우리가 공부를 하긴 하는데, 대체 어떤 공부를 하면서 살고 있는지 답답한 현실의 모습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부가 무슨 상관이냐며 우리나라 애들 역사 공부 좀 잘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하는 공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공부의 길을 정말 무엇일지. 무조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공부는 아닌지 마음이 싸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지음/봄아필

 

[침대와 책]을 통해 알게된 그녀다. 나는 그녀의 차분한 글솜씨가 부럽다.

때로는 차가운 칼날같이 다가오는 구절에는 나도 모르게 아픈 가슴 한켠을 쓰담고 있을때도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신작은 어쩌면 두려운 선택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그녀의 사소한 단어조차도 아름답게 지나갈것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다.

 

 

 

2.    고양이 섬의 기적 - 이시마루 가즈미 지음, 오지은 옮김, 고경원 해설/문학동네

 

 

이용한 작가의 고양이 시리즈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이 고양이에대한 인식이 많이 안 좋다는 것을 느꼈다. 시골 인심은 더 좋을것 같았는데, 시골은 농작물의 피해를 말하며 고양이에게 쥐약까지 먹여 죽이고 있다는 얘기에 인색한 서울보다 훨씬 각박한 고양이에 대한 인심이라고 느꼈다.

 

그런 고양이가 살고 있는 섬. 그 섬속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느껴보고 싶다.

 

 

 

우다다, 삼냥이 - 황인숙 지음, 염성순 그림/오픈하우스

 

 

이렇게 귀여운 책이 있을까?

시인이 키운 고양이는 또 어떤 느낌일까.

거기다 귀여운 그림까지 있다.

만화책을 좋아하기때문에 가끔 고양이는 만화가의 동물이라고 생각할때가 많았는데

시인도 이렇게 고양이를 키우며 마음을 나누고 있다.

무엇인가 키우거나 함께 늙어간다는 것. 얼마나 즐거울까. 그들의 일상을 보고 싶다.

 

 

짧았던 2월때문에 3월을 알차게 보내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4월이 와버렸다.

이상하게 4월은 바람이 참 많이 불다가 5월을 맞이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벌루션 No.0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을 좋아했었다. [GO]의 영화를 보고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책을 찾아 읽었는데 가슴이 따뜻하다가 아픈 게 이 사람의 삶이 고단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 소설이었다. 이후 일본 드라마의 홍수에 빠지면서 그의 단편 소설이 영화가 된 것도 보면서 참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다며 그의 소설들을 무작정 찾아 읽었는데 그의 첫 번째는 [GO]에서 그리고 다음은 [레벌루션 NO.3]로 이어졌다.

 

 

아마 그의 소설을 즐겨 읽은 사람이라면 좀비 시리즈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레벌루션 NO.3]의 시작으로 된 그들의 행적은 [플라이, 대디, 플라이]로 이어지고 마지막은 [스피드]로 끝이 났었다. 그 소설 시리즈속에서 “순신”을 만났고 그 순신은 가네시로 자즈키의 다른 면을 부각시킨 인물일 것이다.

 

그는 그 스스로가 재일 교포이며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총련계 학교를 다니고 그때 빠졌던 독서가 아마도 그를 이렇게 키웠을 것이다. 순신이 싸움을 잘하면서 무뚝뚝한 의리를 지키면서 고독한 순간에도 책을 놓지 않는 모습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모습이 아닐까.

 

 

[레벌루션 NO.0] 또한 순신과 그의 무리들이 나온다. 이 얘기는 [레벌루션 NO.3] 이전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아주 짧은 이야기다. 그들이 그 학교로 몰릴 수 있었던 얘기. 그리고 한반이 되어서 학교가 행하는 음모를 알게 되고 그 음모를 어떻게 저항해 나가는 것인지 보여주는 며칠의 모험담으로 끝이 났다.

 

왠지 우리나라에는 이런 학교는 이제 없을 것 같지만 내가 아는 내 동창 남학생들도 이런 폭력적인 학교의 생활을 하며 3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남학교의 모습이 나온다. 지금은 선생님이 회초리를 든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바로 찍어 교육청 사이트에 올리는 시대라지만, 어디 앞니가 빠지도록 아이들을 구타하는 학교가 얼마나 있을라고.

 

학교에서 메이저의 아이들이 아닌 마이너의 아이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성장이 그러했고, 남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생생한 모습을 그려 넣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말했던 좀비란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인간은 아닌 것. 즉 자신은 일본인이지만, 재일 교포이며 학교에서 또한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이 자신이 어쩌면 좀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가 느낀 단절된 감정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레벌루션 NO.3]속에 아이들은 개구지고, 의리 있고, 박력 있고, 믿음직스러웠었다. 그 이후 스피드까지 가면서 좀비 시리즈들이 좀 시들한 맛이 있고 무엇보다 너무 우려 먹는것 같은 느낌이 많이 나서 사실 [스피드]에서는 좀 실망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들의 소식이 궁금했었던 것은 있다. 특히 우리의 순신이 어찌 지내시는지 너무 궁금했고, 순신으로 한때 영화까지 찍었던 오카다 준이치의 소식 또한 궁금했으니까. 무엇보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속에는 명대사들이 참 많았다.

그가 언제부터 영상을 만들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어쩌면 그의 소설들의 대부분이 영화화 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일지 모르겠고) 그가 한때 오카다 준이치와 츠츠미 신이치와 함께 드라마 [SP]의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이 좀 놀라웠었다. 그의 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직접 시나리오 각색을 할 때 나는 참 말리고 싶었다. 사실 그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이제 [레벌루션 NO.0]을 마지막으로 좀비 시리즈는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하시니 순신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좀 아쉽다고나 할까.

 

 

오래전에 사 놓고 읽지 못했던 [영화처럼]만 읽는다면 그의 작품은 모두 다 읽는 것인데, 그의 신간 소식을 좀 듣고 싶다. [GO]와 같은 소설을 또 기대한다면 그를 너무 괴롭히는 일이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작으로 여러 번 들었던 그녀의 책을 처음 접했다. 이 책을 읽고 텔레비전으로도 방송이 된 <달의 제단>을 읽고 나서 나는 그녀의 팬이 되었다. 왜 이제야 그녀의 작품을 읽었을까.

 

 

<나의 아름다운 정원>아 내게 시선을 끌지 못했던 부분 하나는 표지에 있다. 유명 작가는 표지가 어떠해도 아는 작가라 읽고는 하는데 생소한 작가는 표지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표지에 사실 민감하다.

이 소설의 내용을 다 읽고 나면 사실 표지속의 의자가 어떤 의미였을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뭔가 소설의 내용과 전혀 맞지 않는 부분이다. 또한 제목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아름다운 정원보다 그 이면의 다른 부분에 훨씬 더 많이 가슴이 아리기 때문이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접하고 그녀의 팬이 되기로 했었던 십여 년 전, 나는 성장소설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성숙되지 못한 자아를 달래기 위해 혹은 아직 크지 못한 나를 채워나가기 위해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성장소설을 읽고 나면 뭔가 쑥 가슴에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있기는 하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도 동구의 성장소설이다. 동구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여동생이 탄생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70년대, 80년대의 우울한 시대를 거쳐 간다. 암울했던 정치적 시대를 동구는 잘 모르겠지만, 동구가 사랑했던 담임선생님이 80년 5월 광주로 자신을 길러준 외할머니를 만나러 내려간 후 다시는 학교로 돌아 올 수 없는 장면을 맞으면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알게 된다. 초등학생인(그때는 국민학생이었던) 동구가 감당해야 할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에 같이 마음이 아프고 혼자 남아 있는 동구의 모습에 안쓰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무뚝뚝하고 때로는 폭력으로 사랑하는 엄마를 대하는 아버지나 중졸도 아니고 중퇴의 여자가 고등학교 중퇴인 자신의 아들의 피를 빨아 먹으며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식하고 무지하고 독한 시어머니, 친할머니의 모진 욕설을 받으며 살고 있는 엄마를 지켜보는 동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약한자를 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친다. 엄마의 심성을 그대로 담은 동구는 참 착하고 따뜻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 영주를 그렇게 예뻐하고 사랑했으리라 믿는다.

 

 

딸을 낳았다고 처다 보지도 않았던 친할머니 때문에 산후 조리도 없이 며칠사이 부엌으로 나가 일을 하던 엄마도, 외출을 하게 되면 자신이 홀대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며 예쁜 옷은 전혀 입지 않고 가장 추레한 옷을 걸쳐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힐긋거리며 자신의 엄마를 더욱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할머니 때문에 어쩜 동구는 더 철이 들었을지 모른다. 할머니는 깔끔한 엄마에게 재앙과도 같은 그림자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 엄마를 위로하고 구출하기위해 자신의 희생이 필요한 시점을 너무 잘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희생으로 저런 할머니와 어떻게 살아, 나 같으면 할머니와 절대 못사는 나와 달리 동구는 엄마를 위하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의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고 할머니와 고등학교까지는 그곳에서 머물겠다는 그 말에 가슴이 탁 막혔다.

아, 동구야...넌 어쩜...

 

 

너희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라고. 엄마가 꿈꾸던 구라파풍의 아름다운 정원을 푸성귀로 가득 찬 작은 시골 텃밭으로 만들고 향기가 진하게 났던 백합들은 모두 발로 짓이겨져 있었던 그 광경을 보며 대성통곡을 하는 엄마에게 미친년이라고 욕하던 할머니가 아니던가. 자신의 밥 먹을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나서 상을 차리면 바로 상을 엎어버리던 대책 없는 할머니라고.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대부분 이렇게 할머니의 모진 행동이 참 많이 그려져 있다. 자신의처를 모질게 대하는 어머니를 방관하기 일쑤인 아버지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때로는 방관을 하다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때로는 속상한 마음에 시집살이의 설움을 얘기하면 그날은 엄마의 매타작이 시작되었던 그 순간을 견디며 참아왔던 동구의 시선은 차갑지 않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 또한 열려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동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접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큰 사건을 남겨두고, 한 뼘 더 성장한 동구가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던 풍경의 묘사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정원에 아마도 철딱서니 없는 손목이 건진 돌팔매에 맞아 죽었거나 사라진 것 같은 곤줄박이는 어쩌면 동구가 그토록 찾고 싶은 박선생님일 것이다. 그녀 또한 죽었거나 데모로 세상에 나타나지 않기 위해 꽁꽁 숨었는지 모르는 일이니까.

 

 

자서전 같은 이 소설의 주인공의 화자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는 것이 좋다. 성숙하지 못한 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한 번 비춰줬던 순간을 기억하려하니 짠한 마음에 눈물이 뚝 떨어졌던 마지막 장을 읽고 나는 사는 일을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어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엄마를 지키기 위해 강둑에 서서 할머니와 함께 시골로 내려갈 생각을 하는 동구를 생각하니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좋은 작가의 발견은 가슴 벅찬 일이다. 그녀의 남은 장편들도 모두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