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공부하는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면서 인간이 어떤 이유로 공부를 하며 각 문화권마다 문화와 공부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진행된 이 프로젝트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사실 텔레비전으로 보면 시각적인 효과는 참 좋긴 한데 머릿속에 기억이 많이 남는 것이 그다지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는데 다큐가 책으로 나오니 훨씬 더 집중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각 문화권에 있는 4명의 진행자를 뽑고, 한국을 기점으로 아시아, 이스라엘, 유럽, 아프리카까지 문화권마다 다른 공부의 형태를 볼 수 있게 했다. 진행자 4명을 뽑았는데 사실 나는 아프리카까지 갔다 왔으니 그쪽의 패널도 한명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학원 운영 중인 친구의 얘기에 적정부분은 공감을 했었다. 특히 내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3월은 공부를 안 시키고 적응 훈련을 하고 4월부터 한글을 좀 알려주고 난후 4월 중순부터 받아쓰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초등학교를 생각해보면 학교에 입학해서 한 달은 한글을 배우고 이후에 받아쓰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학교에서 한글을 며칠 만에 끝내고 바로 받침이 있는 받아쓰기로 돌입한다는 것이었다.

워낙 유치원 전부터 한글은 마스터하고 문장 공부며 문제집까지 풀고 들어가는 아이들이 많이 생기니 학교에서 한글을 알려줄 필요가 없다는 식의 반응인 것이다.

 

이미 습득하였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공부의 난이도에 접하게 되고 더욱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도태되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공부 환경 때문에 초등학교들어가기 전부터 학습지 열풍이 일어난다. 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사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사교육의 열기 때문에 더 많은 투자를 받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끼고 가르치지 않는 한, 사교육의 환경으로 보내져야 하며 스스로 공부를 하는 환경을 만들기 전까지 많은 투자로 아이는 성장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부유하고 많은 지원을 한 아이들이 확실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고, 요즘 공부는 부모의 지원이 얼만큼 이뤄졌는지에 따라 아이들이 성적이 얼만큼 나오는지 사실 눈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공부에 집중하며 많은 투자를 할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가난한 환경의 아이들의 부모들은 공부를 통해 좋은 대학에 보내기위한 뒷바라지가 눈물겹다. 특히 중국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절절한 두 부녀의 모습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을 구하고 고소득의 길에 접어들면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게 문화와 환경이 다르다고 다른 마음일까.

 

 

네 명의 진행자들이 우리나라 고시촌의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좁디좁은 그 방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인지 답답해하며 창의적은 사고를 억압하고 개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무시하는 단순 암기, 주입식의 획일화된 한국의 교육제도를 비판(P21)”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환경적인 요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면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알았어. 그러나 대학도 고등학교의 연장이야. 도서관에 가는 것이 생활의 전부야.” P28

 

 

나 또한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가 끝나는 줄만 알았는데 학교에 들어갔더니 훨씬 더 많은 숙제. 리포터가 있었다. 읽어야 할 책들이 훨씬 많고 무엇보다 창작을 해야 했던 과정이 정말 힘들었었다. 그렇다고 대학을 졸업하니 끝이 아니라 어쩜, 학교를 벗어나면 더 많은 시험과 공부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중국과 아프리카, 인도의 공부 환경을 보면서 선진국은 공부의 이념과 목표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일본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가 공부를 하는 최초의 목적은 지금보다 잘살아야 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면 좋은 직장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식의 방식은 어느 나라든 다르지 않고 일본 또한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 제수 삼수는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대학교보다 그 이전에 좋은 초, 중, 고를 가기위한 학원 수업이 훨씬 많고 대학보다 초등학교 혹은 사립 유치원의 등용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투자되는 금액과 시간의 노력은 어머 어마했다.

 

 

“가진 자가 교육열이 높고 고등교육을 독점하는 이런 현상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는 ‘유전유죄 무전유죄’, 즉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있다는 식의 사고습관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능력 있는 부모가 명문 사립 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P61

 

 

 

 

 

사실 나는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도 가업을 잊기 위해 시솔 촌부로 내려가 라면가게를 이어간다던지 하는 것에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극히 일부의 얘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인도의 치안문제로 사실 나는 인도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이 바뀌었지만, 어찌되었든 인도의 교육열에 좀 놀란 부분도 없지 않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왜 공부를 잘할 수 없겠어요?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어요. 우리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린 거니까요.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제가 바꿀 수는 없지만 제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어요. 환경이나 신분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는 거죠.” P80

 

 

인도는 카스트 제도에 의해 신분이 나눠져 특히 달리트에 해당하는 신분의 사람들을 천대하고 박해했었는데 그들의 차별을 1955년 이후 공식적으로 차별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실상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하층민이 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 달리트에 속하는 한 아이가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행복한 삶을 살기위한 모토를 가지고 공부에 전념하는 모습에 오래전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농자 짓고 서울로 보낸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하기만은 바라며 마지막 남은 소를 팔아 올려 보내는 그런 모습, 그리고 그런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족들의 모습. 어디든 이렇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똑같은 것이다.

 

 

 

 

 

소를 팔아 아들을 공부시키고, 아들이 자전거가 힘들어 학교에 다니니 힘드니 오토바이를 사달라는 아들 녀석을 위해 재산을 팔아 오토바이를 사 보내는 인도의 아버지나 모두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아들은 가족을 위해 공부를 한다.

 

 

“동양인들은 자신만의 명예나 부를 위해 공부하기보다는 가족, 공동체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공부하기 때문에 나태해지거나 좌절에 빠졌을 때에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P 111

 

 

동양인들이 벼농사를 지으며 쌀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동을 하는 것처럼 서양인들보다 끈기 면에서 남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공부의 주된 목표는 같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명분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동양인들이 느끼는 가족과 서양인들이 느끼는 가족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서양인들의 개인의 성취와 목표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목적은 아니겠지만 역시 동양인들의 목표와 목적이 훨씬 정이 더 많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간 한 인류가 가장 많은 학대를 받았던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교육방식에 많은 애정이 간다. 그동안 사교육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던 동양의 나라보다 훨씬 자유로운 공부를 할 수 있게 조성된 그들의 문화가 존경스러웠다. 어쩌면 이런 존경과 관심이 유럽인들이 싫었을 수도 있겠다. 그들은 확실히 공부는 부모로부터 시작되며 어떤 훌륭한 스승도 부모를 따라올 수 없다는 믿음에 가장 바람직해 보였다.

 

 

“유대인들에게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문화적 유산이 없었다면 그들은 지금과 같은 높은 학구열과 지적 성취를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곧 공부가 그 사회의 문화와 관습, 사고습관, 역사, 종교 등을 반영한 역사적 산물이자 문화적 자산이라는 증거다.” P214

 

 

어제 이런 기사를 봤다. 참치 음식점 간판에 욱일승천기가 그려져 있어서 이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지 물어봤더니 음식점 주인은 인테리어업자가 이렇게 해줘서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간혹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나오는 모델들이나 연예인들을 보여주며 중, 고등학생 이후 대학생에게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었더니 다들 디자인이 예쁘다. 마음에 든다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욱일승천기의 뜻을 말해줬더니 괜찮다고 한다고 했다는 말에 가슴이 답답했다. 하신 그들은 이완용도 누군지 모른다고 하더라.

 

 

우리가 공부를 하긴 하는데, 대체 어떤 공부를 하면서 살고 있는지 답답한 현실의 모습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부가 무슨 상관이냐며 우리나라 애들 역사 공부 좀 잘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하는 공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공부의 길을 정말 무엇일지. 무조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공부는 아닌지 마음이 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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