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라 고양이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안녕 고양이 시리즈 2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 난 길의 감식가야 평생 길을 맛 볼거야. 이 길은 끝이 없어. 지구의 어디라도 갈 수 있어> - 영화 <아이다호>

 

 

 

 

후미진 골목을 돌면 불현듯 나타나는 고양이, 언덕을 오르면 주차된 자동차 밑에 반짝이는 작은 두 눈동자, 공원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해 좋은 날 빌라 난간에 누워 잠을 청하는 고양이를 마주칠 때마다 아이다호의 기면증에 걸려 누워 잠이든 리버 피닉스가 떠오를 때가 있다. 고양이야 말로 길의 감식가가 아닐까.  

 

이곳으로 이사 온 날 그달에 가장 추웠던 날이었다. 어찌나 추웠는지 보일러를 틀어도 따뜻하지 않았다. 이삿짐을 풀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니 꽁꽁 얼어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발로 건들고 있는 노랑 고양이를 보았다. 모든 것이 다 꽁꽁 얼어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는 단단하게 얼어 있었고, 녀석의 발톱으로 생채기를 내지도 못하였다. 집으로 들어가 녀석에게 국물용 멸치를 가져와 바닥에 뿌려 주었다. 나는 녀석이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몇 마리 던져 놓고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녁쯤 나와 보면 멸치는 없었다. 녀석이 먹었는지 다른 길고양이가 먹고 갔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때부터 나는 녀석을 아주 가끔 볼 수 있었고 내가 나오면 후다닥 도망을 갔다. 어느 날부터 아주 조금 간격이 좁혀졌다. 도망은 가지만 정말로 아주 잠깐 내가 또 뭘 놓고 가는 것인가 확인을 하고 도망을 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녀석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삼 개월이 흘렀다. 이쯤 되면 나와 녀석이 좀 친해질 것도 같은데 그때쯤인가부터 녀석이 안 보였다. 여전히 멸치는 사라지지만 나와 눈인사를 딱 한번 했던 그 노랑이 녀석은 안 보였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읽고 길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나도 길의 감식가라는 길고양이 친구를 하나 만들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처음 이사와 마주친 녀석을 나 혼자 짝사랑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 추위를 견뎌 이제 봄이 왔는데 녀석은 길고양이의 습성처럼 영역을 옮겼는지 혹은 고양이 별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명랑하라 고양이>속에 처음 등장하는 “언제나 옳다”는 노랑 고양이 ‘바람이’의 등장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가 처음 정을 주었던 그 노랑이 녀석이랑 너무 닮았던 녀석이라서 더 반가웠다.

 

 

 

작가가 서울 생활을 접고 어느 공기 좋은 시골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만난 길고양이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은 이번 책은 지난번과 같이 계절별로 고양이들의 생활을 기록되어 있다. 화사한 봄을 지나 반짝이는 여름, 쓸쓸한 가을을 스쳐 눈처럼 사그라지는 겨울 속에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며 인간과 똑같이 삶을 살아가고, 자식을 낳고 자식이 올바로 자랄 수 있도록 지극정성 길러내는 모성애로 짧은 생애를 마치는 길고양이들의 얘기. 이것이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일지 모르겠다.

 

 

책속에는 우리의 삶과 똑같이 살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더 모질게 혹은 느긋하게 때로는 더 간절한 그들의 생활. 묘생이 전쟁일수록 더 많은 새끼를 낳아 희박한 생존율을 이겨낼 고양이를 낳는다는 축사 고양이들, 마치 애완견처럼 주인 할머니와 산책을 가고 배웅을 가거나 할머니가 마응 회관이라도 가시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달타냥.<녀석이 삼총사의 그 달타냥이 아니라 하도 담을 넘어 여기 저기 쏘다니기 때문에 지어 주었다는 이름>, 자식을 낳고 어마라서 투정도 못 보리는 까뮈네 식구들. 이런 접대냥을 꿈꾼다면 여기 있다며 보여주는 봉달이, 봉달이를 따라 같이 뛰는 덩달이, 어미이기 때문에 섭씨 30도를 넘어도 긴 행군을 이어가며 자식들에게 먹이를 나르는 여울이, 전원 고양이들 얘기로 마치 그 마을만 가면 만나서 인사라도 나눌 것 같은 다정함이 생긴다.

 

 

내가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노랑이 녀석처럼 ‘바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안 나는 것이 이상할 만큼 많이 속상했다. 녀석 그냥 그 집에 좀 빌 붙어 있지 어디를 며칠 동안 다녔는지 살도 다 빠져 나타나 그렇게 슬픈 모습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냔 말이다.

 

 

시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진다. 달나냥을 만나서 좁을 길을 걷고 싶고...(나쁜 고양이는 없다에서 달타냥의 죽고 말았다.) 덩달이와 함께 개울도 걷고 싶고, 전원 고양이들과 인사도 나누고 싶다.

올 겨울도 참 춥다는데 우리 동네 고양이들 얼지 말고, 죽지 말고 봄이 오길 견뎌 내주길. 명랑하게 살아주길.

 

 

 

 

 

 

바람이가 작가의 집에 도착했다. 밥을 먹거나 혹은 먹고 나서 하는 행동.

 

 

 

 

요런 귀여운 길고양이인 바람이.

 

 

 

 

바람이가 죽고 바람이가 걸어 다녔던 길목에 바람이를 묻어 준곳.

그때 심어 주었던 민들레는 올 겨울을 견디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고양이는 없다 - 어쩌다 고양이를 만나 여기까지 왔다 안녕 고양이 시리즈 3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달타냥이 죽고 말았다.  

 

길고양이가 가장 많이 당하는 로드킬이 아니다. 쥐 잡겠다고 놓은 약을 먹고 죽은 것도 아니다. 나이가 있으니 더더욱 자연사는 더 아니다. 그렇다면 달타냥이 왜 죽었을까?

시골하면 떠오르는 정겹고 정감 있고 정이 넘쳐날 것 같은 그곳은 길고양이들에게는 정이 없다. 어쩌면 도시 사람들보다 더 정이 없는 곳이다.  

 

땅을 파고 용변을 보는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간혹 상추씨를 심어 놓은 밭에 고양이들이 땅을 파헤칠 때가 있고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고 해서 작가가 살고 있는 그곳에서는 쥐약을 놓고 있다고 한다. 그 쥐약을 쥐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길고양이들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것 때문에 봉달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봉달이와 냇가를 활보하며 뛰놀던 덩달이는 봉달이를 보내고 혼자서 무더운 여름을 감옥 아닌 철창에서 보내게 됐다. 주인은 왜 덩달이를 철장에 가뒀을까 많이 미웠던 부분이었는데 문득 달타냥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

 

 

사람들은 길 고양이가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농작물의 조금의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바로 쥐약을 놓았다. 그리고 이상한 밥을 먹은 고양이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구름씨(작가의 집)네도 오지 않았다. 올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회관에 간혹 달타냥의 할머니가 들릴 때마다 고양이를 풀어 놓지 말라고 했다. 달타냥은 할머니가 마을회관을 갈 때마다 할머니를 지켜주는 개처럼 할머니의 산책길을 같이 걸었던 궁극의 고양이었다. 어떻게 저런 고양이가 있을 수 있나 싶은 그런 산책을 할 수 있는 고양이었는데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결국 할머니는 달타냥이 집에 있을 수 있게 묶어 놓는다는 것이 올무가 되어 달타냥을 질식사로 죽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길고양이도 아닌 집 고양이까지 묶어 놓으라며 할머니를 몰아세우지만 않았어도 달타냥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의 마지막 이야기 <나쁜 고양이는 없다>에서는 정겨웠던 고양이들의 이별소식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 전에도 바람이의 이별 때문에 한참을 울었던 적도 있었는데 작가의 마지막 동네 길고양이의 만남을 다룬 마지막 책에서는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들이 한없이 야속하기만 하다. 내 것 조금만 나눠주고 자연에서 길러진 것들 조금만 줬으면 참 좋겠는데 그게 이렇게 힘든 일인 것일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길고양이를 쓰레기나 뒤지고 인간의 음식이나 훔치는 도둑고양이 취급을 한다. 길고양이 세계에도 의리가 있고, 우정이 있으며, 인간 못지않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건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실이고, 부정할 수 없는 길고양이의 세계이다.: P85

 

 

"고양이가 여러 번 파헤쳐놓았어도 작년에 우리 집은 상추가 남아서 결국엔 밭에서 웃자라 버렸다. 고추도 남아돌았다. 설령 소출이 줄어서 몇 포기 손해 봤다고 치자. 그게 고양이를 죽일 만큼 엄청난 일인가? 어쩌다 시솔의 정과 인심이 이렇게 각박해졌을까?"P237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일은 많은 것을 참아야 하는 일일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이란 어쩌면 인간이 배려 심을 통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P364) 

 

 

"누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았다. 육남매 아기 고양이를 위해 몇 번이고 꽁치를 물어 나르던 여울이, 임신을 하고도 아랫배 동생들과 주변 고양이들에게 늘 구박받던 여울이. 그래도 꿋꿋하게 새끼를 낳아 건강하게 키워냈던 여울이. 늘 밝은 표정으로 묘생을 살던 여울이. 오래전 봉달이가 살아 있을 때 자주 함께 어울렸던 성격 좋은 고양이.“71P

이런 여울이도 누군가의 배려를 받지 못하고 고양이를 잡기 위해 놓은 쥐약을 먹고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고양이의 목숨은 오이 한 개, 살 한 톨, 고추 한 개보다 못한 목숨이 되었을까.

 

 

작가의 긴 노고를 통해 세권의 책이 나왔다. 그 마지막 책은 가장 가슴 아픈 시리즈의 종결이었다.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캣맘들 많던데 캣맘이 아닌 나도 가슴이 아련하고 아프다.

어두운 골목을 지날 때 음식물 쓰레기 속에서 빛나고 있는 고양이를 미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길고양이들은 살아도 3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짧은 생을 살아가는 그들을 위해 간혹 눈인사를 못해도 돌멩이는 던지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
서유경 지음 / 리더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때론 어느 하루는 황량한 사막에 서 있는 것 같다. 존재감 없는 어느 날은 더욱더 아무리 걸어도 그늘 하나 없는 사막 고비에 서서 해도 지지 않는 하루만 맞이하는 것 같다. 밤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고 백야도 아닌 백야를 맞아 온 몸을 태우며 서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날. 그 때는 그늘보다 눈부신 현실을 잠시 가려줄 작은 손짓이라도 필요하다. 그것이 함께 나눌 수 없는 부재된 공감일지라도 그 순간을 위로 받았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이는 긴 시간이나 짧은 시간을 통한 여행으로 치유를 할 수 있고,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 할 수 있다는 말처럼 상처받은 사람들과 멀어져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을 통해 상처를 보듬고 치유 받는 방법들을 찾는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놓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결론을 맞아 눈물 흘렸던 20대의 어느 날 나는 그 시간을 공유했던 음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치유 받았다. 그리고 길거나 짧은 문장을 통해 울고 웃으며 힐링 받았다. 그런 이유에서 <치유하는 책읽기>는 당신이 혹시 상처 받았다면, 치유를 통한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면, 혹은 새로운 사랑을 단단하게 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보통은 하루 길게는 삼일정도 책을 나눠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참 오랫동안 읽었다.

7개의 chapter로 나눠져 있는 책속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한국 문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간 알려졌던 문학 고전이 주를 이루지 않고 김훈부터 김애란, 황정은, 이은조 신인 소설가부터 이재니의 시까지 그녀의 에세이와 함께 적절한 대목들의 얘기들 속에 문학의 얘기들이 길잡이를 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책속의 나오는 소설들을 다시 마주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그녀의 방대한 독서는 한국 문학을 건너뛰며 읽은 나에게 추가 목록을 넣어준다. 읽고 싶었지만 어떤 책에 밀려 주문을 해 놓고 읽지 못한 책이라던가, 책이 출판 된걸 알았지만 지나치고 말았던 책들이 소개되고 부분 발췌 글이 소개 될 때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서 집에 있는 책이 있다면 찾아서 그 부분을 읽어야 했다. 물론 소장하지 않은 책들은 따로 구매를 한 책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책들도 많다.  

 

부지런 하지 못한 독서라서 늘 책장에 쌓아두기만 한 책들을 다시 펼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줬다. 그래서 <치유하는 책읽기>는 더욱더 오랫동안 읽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닫고 잊고 있던 나의 잃어버린 상실감속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편중된 책 읽기 때문에 끌리지 않는 작가의 책은 보지 않을 때가 많았던 독서였는데 이 책을 통해 김형경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녀의 오랜 소설 <세월>을 읽으며 그녀의 삶을 너무 고스란히 담아 놓아서 안쓰러웠다가 비슷한 그녀의 처지를 비관하는 소설을 읽고 자신의 인생을 팔며 글을 쓰는 그녀의 글이 싫었다. 그래서 그녀의 신간은 관심이 없었다가 <꽃피는 고래>에 대한 부분을 발췌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나에게도 딱 맞는 제목 때문이었다. 우리는 상실을 통해 어른이 된다는 것. 어쩜 우리는 상실과 치유를 통해 과거와 헤어지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일 테니 그 상실을 겁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게는 비가 오는 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비가 오면 나약하고 초라한 자신을 가려줄 우산을 쓰고 나가면 빗속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아픈 모습을 가려줄 우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보듬어줄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그녀에게도 어쩜 글속의 위로들이 찾아와 빗속을 함께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얘기들은 상실감이 많다. 그중에 가장 심하게 요동치며 공감했던 부분은 지인들의 연락처를 옮기며 사라지는 몇몇 번호들의 상실감을 얘기한 부분이다.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로 핸드폰을 바꾸면서 나는 일 년에 한 번도 연락이 닿지 않는 지인들의 번호를 과감하게 옮기지 않았다. 물론 일 년에 연락 한번 못하는 동창 녀석들도 있다. 그들의 번호는 그대로 옮겨 놓았다. 어쩌면 연락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연락이 닿지 않아도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순서에서 밀려난 이들의 번호가 사라졌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녀가 옮겨 놓은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가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사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은 어떤 책갈피를 만들지도 못하고 단번에 읽어버린 책이라 어린 주인공이 물을 끓여 먹는 과정을 말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주인공의 대견스러움을 말한다.

 

 

나는 주인공의 상황만 이해하며 읽었던 부분을 그녀는 그런 사소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대견함을 찾아내고 안쓰러워해 주고 위로해주고 있다. 그렇게 똑같은 상황에 놓은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 받을 것이다.

책속에 참 많은 책이 담겨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부터 이름을 들어도 잘 모르는 신인 작가까지 참 많은 작품들 속에 수많은 감정들을 꺼내 놓았다. 참 부지런한 독서가 아니라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끝임 없는 독서와 다신의 성찰, 감성의 치유까지 고루 스며있는 얘기들이다.

책을 읽으며 간혹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그녀 또한 책을 통한 마음의 치유를 했을 것이다. 지금은 또 어떤 책으로 치유의 과정에 있을까. 문득 지금 내 앞에 놓인 책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나는 잃어버린 나의 기억을 치유 받을 수 있을까. 혹시 책을 통한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들, 현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책속의 세상으로 잠시 나를 던져 놓고 그 시간을 즐기면 될 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5-01-30 0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엔 읽었으나 내것이 아닌 책. 그러나 두고 보고 싶은 작가들의 책들을 구입하는 걸..목표로..하고 있어요. 아마도 신간들보다는 묵은책들이 제 구매리스트가 될테지요. 책욕심은 갖지말자 했었는데...
얼마나 산다고..앞으로 인생에 있어 자녀에게 물려줄것이라면 차라리 책들이 가득한 내 공간을 주자..싶어서..그 망설임은 버리기로 합니다. 저보다는. 앞으로 제 딸이 사는데 치유의 시간들을 책들과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바라면서요.
감사히 읽고갑니다.

오후즈음 2015-01-30 12:31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로 책은 좀 줄이자...우선 산 책을 다 읽고 사자 했지만,
책을 사는 즐거움이 저의 삶의 즐거움중에 몇개 안되는 즐거움이더라구요.

그 즐거움을 포기 하지 말자며, 책을 계속 사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많이 읽자로 ^^
그장소님 또한 따님과 함께 꾸려 나갈 책이라고 생각하시고 더 멋진책 많이 들이시길!

2015-01-30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15-01-30 12:32   좋아요 1 | URL
ㅋ 제가 블로그에만 서평을 쓰고 알라딘으로 옮기지 않은 서평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래서 소개 하고 싶은 책은 옮기려고 했는데, 아 글쎄...자목련님 책을 알라딘에 안 옮겼더라구요!! 이럴수가 ㅋㅋ
조만간 예스24, 인터파크도 옮겨서 알려 놓겠습니다. ^^
 
여름을 삼킨 소녀 스토리콜렉터 2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타우누스시리즈로 유명한 넬레 노이하우스의 새로운 작품 [여름을 삼킨 소녀]는 그녀의 전작들을 읽었던 독자라면 다소 의아한 마음이 들것이다. 어쩌면 당혹스러운 마음이 훨씬 많이 들것 같다. 저자는 그동안 범죄 소설 시리즈를 내 놓으면서 탄탄한 재미를 쌓고 있던 그녀가 그동안 전혀 다른 얘기를 해 보고 싶다는 욕구로 쓴 소설이라는데, 나는 문득 요즘 방송하고 있는 모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의 얘기가 떠올랐다.



지는 게임이라도 잘하는 것을 하고 져야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유희열의 얘기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입장으로 작가들의 작품이 꼭 이겨야 하는 게임은 아니지만, 잘하는 장르를 더 재미있게 쓰는 것이 훨씬 좋은 에너지 발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1994년 미국 중서부 네브라스카 주의 작은 마을, 열다섯 소녀 셰리든이라는 주인공을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인물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고모할머니의 책을 빌려 읽는데, 하필 그 책이 19금에 가까운 책이었고 그 책으로 인해 잠들어 있는 소녀의 몸에서 여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사실 그간 나왔던 전작들보다 훨씬 빠른 흡인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후 그녀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예측 가능했던 불행을 가져왔다.



그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양어머니는 늘 학대와 구박으로 그녀를 스트레스 받게 하고, 그녀의 양 아버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떠나자 어쩔 수 없이(그건 아버지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렇다고 인정한다면) 그 언니와 결혼을 하서인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어 보인다. 세 명의 오빠들은 그나마 막내 여동생 셰리든을 좋아하며 아껴주지만 유독 못살게 구는 한명은 왜 그토록 비뚤어진 행동을 하는 것일까.


또한 셰리든을 거쳐 간 동급생 친구 말고 성인 남자들의 로리타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도 아니지만 유독 그녀와의 관계에 죄의식을 가졌던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배경으로 이뤄진 이 소설이, 사실 나는 매우 불편했다.

몇 년 전 유럽 여행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어두운 곳에 혼자 다니지 마라, 사람 많은 곳에 갈 때는 소지품 관리를 잘하면서 다니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정신 줄을 놓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며 다닌다고 해도 사건 사고가 나는데, 왜 낯선 곳에 잘 모르는 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셰리든이 그런 아이라고 생각된다.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하는 그런 아이들.



계절노동자를 자극해서 첫 관계 맺을 때는 어느 정도 호기심으로 시작된 철없는 아이의 불장난 같았지만 이후 관계를 맺게 되는 남자들은 더 철없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나이 많은 유부남 목사와의 관계는 참, 할 말이 없게 만든다. 나는 차라리 그녀가 마을을 떠나는 과정에서 좀 더 성숙한 남자를 만나서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풀고 자아를 찾아 갔으면 했는데, 떠나긴 하지만 그 끝이 매우 깔끔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딸이 셰리든같이 매력적인 아이라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일들이 꼬여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내 딸을 죽도록 팰것 같아 걱정이 되기 때문에, 넬레 노이하우스가 빨리 그녀의 재미있는 범죄 소설 시리즈로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1-29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15-01-29 15:42   좋아요 0 | URL
아, 주인공이 농장의 딸로 나오는데요. 너무 넓은 농장이라서 여름 한 계절에만 일꾼을 부르는데 그런 일용직 노동자를 소설에서 계절 노동자로 묘사 했더라구요.
 

 

 

 

 

 

 

 

 

 

 

모처럼 주말에 혼자 여유를 부렸던 시간이었다. 배도 고프고 책도 읽고 싶어서 잘 가지 않는 패스트 푸드점을 찾아 햄버거 하나 시켜 놓고 먹으면서 책을 뒤적거렸다. 그런데 사실 그때 읽은 책은 뭘 먹으면서 볼만한 책이 아니었기에 스마트폰을 잠깐 검색을 했다. 그렇게 한동안 햄버거를 먹고 콜라도 마시고 감자튀김도 먹는 사이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남녀의 모습이 자꾸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 고개를 들어 보았을때 그들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였는데 이미 햄버거는 다 먹고 마주보지 않고 옆자리에 앉아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내가 엎드리지 않는한 그들의 실루엣정도가 보이는 상황이라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의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그들은 계속 입을 맞추고 있었다. 잠시 얘기를 하고 입을 맞추고 또 얘기를 하며 까르르 웃다가 입을 맞췄다. 점심시간이 지난 페스트 푸드 점이었지만 끊이지 않게 테이블 교체를 이룰 만큼 사람들이 들어왔었다. 입을 맞추는 그들의 옆에도 모두 사람들이 2명 혹은 4명이 앉아 있었고 혼자 앉은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햄버거를 먹었던 20여분의 시간동안 그들은 처음에 입맞춤을 하다가 이내 키스로...아주 짧은 키스 정도로 바뀌더니 이내 서로의 몸을 밀착하기 시작했다.

처음 어린 학생들이 잠깐 입 맞추는 것에 뭐, 요즘 애들은 참 서슴없구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그들의 행동에 불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주변의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나 좀 더 나이 있어 보이는 연인들은 그들의 행동에 전혀 관심 없어 보였다는 것이 사실 더 충격이었던 것 같다. 아니, 나처럼 생각은 하지만 안쳐다 보는 것인가? 햄버거를 먹고 책을 보겠다고 온 이 장소는 분명 잘못 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절대로 이렇게는 오지 말자고 생각하며 일어서며 그들에게 “얘들아, 공공장소에서는 적정한 애정 행각을 좀 하렴”이라고 말할 뻔 했다.

 

 

 

꼰대가 되어 가는 것인가, 아니면 요즘 아이들이 이런 것인가. 하긴 내가 가르쳤던 고딩1학년 아이는 학교에서 저런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 하던데. 나도 어린 시절 기성세대들에 반항하며 꼰대라고 조롱했던 날들이 분명 있었는데, 나는 그날 페스트 푸드 점에서 있었던 그 아이들을 이해하기엔 부족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날, 내가 햄버거를 먹으면서 보려고 했던 책은 <눈먼 자들의 국가>였다.

 

 

그 책속에는 더 이상 햄버거 집에서 남자친구와 입맞춤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의 얘기가 담겨 있었다. 아, 너희들.....

 

 

 

 

 

 

 

 

 

 

 

 

 

 

 

 

 

두 책을 같이 읽어야 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1-23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상황이라면 기분이 묘해요. 어느새 내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니까요. 나는 분명히 어린 상대방을 위해서 올바른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이게 아이 입장에서는 잔소리로만 들리니.. 한순간에 꼰대되기 쉽죠... ^^;;

오후즈음 2015-01-25 16:0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만, 아닌것은 또 아니라고 말해줘야 하는 것이 어른인데..뭐 저런 꼰대가 다 있나 그런 말은 또 듣고 싶지는 않구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