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서른에도 알았더라면 - 천 개의 인생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이의수 지음 / 토네이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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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나이와 관련된 생존 매뉴얼의 책이 유난히 많이 출판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의식하지 못하다가 나이와 관련된 나의 깨우침이 더 많은 책들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 나이에 꼭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책을 보면 그런 것은 꼭 스무 살, 서른에만 필요한 것들이 아니지 않나하는 반문을 해 본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배우 심혜진이 토크 쇼 프로에 나왔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니 벌써 10년도 전에 일인것 같은데 그때 나는 스무 살 좀 넘었을 때였기 때문에 그녀가 했던 그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녀가 이혼을 하고 혼자 생활을 하면서 각각 나이에 맞는 여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코너가 있었다. 그때 그녀는 서른을 맞이하는 여자들에게 가장 먼저 얘기를 했던 것이 돈을 많이 모아 놓으라고 했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모우며 서른을 맞이하라고 했다. 그때 그녀의 얘기에 아니, 서른에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하다고 돈을 모우라는 것일까, 의아했지만 서른을 넘어서는 나이가 되니 사실 그것은 딱 그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말했던 것은 노후를 위한 자금, 혹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길 원하는 그녀 자신에게 하는 얘기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알고 있는 걸 서른에도 알았더라면]속의 챕터들은 총 5가지의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어떤 이유로 다섯 가지로 나눠 놓았을까 살펴보니, 일, 사랑, 감정 혹은 마음, 행복, 마지막은 비전과 관련된 것으로 꾸며져 있다.

 

 

“우리는 언제나 너무 빨리 나이 들고, 너무 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젊은 날에는 불안과 조바심에 찬 삶을 살고, 나이 들어서는 그렇게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가 많아진다.”P07

 

 

앞에 저자의 서문처럼 경험에서 오는 것들을 살피면 늘 깨달음은 한 발짝 늦게 오는 것 같다. 그 깨달음을 한발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그때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되고 빠른 깨우침이 없어 속상하며 자아 성찰이 부족한 나를 탓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런 인생이 너무 얄미워 질것 같다.

일적인 얘기 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역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그 시절을 다시 보낼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 내가 다시 서른 살로 돌아간다면, 나는 실적의 고민보다는 ‘성과’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할 것 같아요.” P19

 

 

그런데 실적보다는 성과를 더 생각하며 일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또 달라진다. 나는 성과를 위한 반성을 하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상과보다 실적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행복한 관계 유지를 하고 살면 좋겠지만 관계중 가장 힘든 인간관계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인생의 하나의 숙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보다 공감의 마음이 훨씬 많기 때문에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조언해주는 저자의 마음에 사실 조금 가슴이 울렁거렸다. 같은 상처를 치유하며 살면 얼마나 좋겠냐만, 어디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계속 유지해나가는 그 시간이 또 호락호락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른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겸손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며,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미덕이기 때문에 겸손을 가진 사람만이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얘기에 반기를 들고 싶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실천해줄 이십대들을 위해 나 또한 이런 부분을 충고해 주고 싶다.

이미 서른을 훌쩍 지나버린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 책이 말하는 삶의 남겨진 미래에 대한 준비나 마음가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앞으로 대비하면 살면 되겠다. 서른이 훌쩍 넘어 버린 나에게도 다독이며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자고 말해본다.

 

 

“경제적 자유의 획득만으로는 마흔 이후의 삶에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동시에 성숙하고 독립된 인격체가 되고자 하는 노력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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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꿈맛 - 꿈을 안고 떠난 도쿄에서의 365일 청춘일기
허안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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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한번 가볼까 하고 블로그 서핑을 좀 해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배낭여행을 많이 갔다 오고, 계획하고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의 여행 블로거가 아니더라도 많은 블로거들의 여행 일기로 하루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이들이 이렇게 여행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간 나의 무료하고 심심했던 일상이 다소 불쌍하게도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었을까 올해 남은 일상은 좀 많이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니 사실은 런던과 파리 여행으로 도무지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어딜 떠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작년 체코와 오스트리아 여행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유럽병에 걸려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내게 덜컥 잡힌 이 책 때문에, 나는 나의 지난 20대를 떠올리게 되었다.

 

 

 

 

 

 

 

 

[도쿄는 꿈 맛]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배워 보겠다고 일본 도쿄로 1년 유학을 가서 그간의 생활을 책으로 쓴 얘기다. 꿈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것이다. 그 행복한 일을 위해 도쿄로 떠난 작가의 얘기를 읽고 있자니 작가의 20대가 어찌나 부럽고 질투가 느껴지는지.

 

 

[도쿄는 꿈 맛]이라고 하는데, 대체 그 꿈 맛이라는 것이 어떤 맛일까. 어느 날은 짜고, 어느 날은 너무 달콤하고, 어느 날은 눈물이 쏙 날만큼 맵고, 어느 날은 코끝까지 찡해지는 신맛이 나는 그런 일상이 외국 생활이 아니라도 지금 현실에도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삶이고 인생일 테니. 물론 그런 맛이 타국이라면 더 강하게 느껴질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어디는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

 

 

 

작가의 도쿄 생활의 팁들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역시 사람들의 얘기가 참 좋다. 무엇보다 작가가 아르바이트 했던 아자카야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타국에 있으니 당연히 우리 나라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해서 주문을 받아서 줄때 손님의 인상에 맞게 얘기 하며

 

“저기 싸가지 없는 애. 저기 입 나온 애...등등”이라고 했는데 어머, 우리말을 다 알아 들어~어이쿠야!!뭐 이런 느낌, 그때의 당황스러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 부분에서 진짜 나도 모르게 카페에서 읽다가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작가의 그림도 있었지만 그림이 없다고 해도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 너무 절실하게 그려지는 작가의 얼굴은 안 봐도 비디오다.

 

 

 

1년 동안 도쿄 생활의 그녀의 도쿄 적응기, 돈도 벌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 그녀가 안쓰럽다가 보다 젊을 때 이런 고생을 나는 왜 못해 봤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는 모태 인 서울 사람이고, 한 달 이상 다른 나라에 채류하며 살아본 적이 없다. 제일 길게 서울을 벗어났던 적이 제주도에서 보름기간 동안 혼자 여행을 했을 때였다. 도미토리, 게스트 하우스 때로는 혼자만의 밤 시간을 위해 호텔에서도 잠을 잤었던 그때가 가장 나에게 자유로웠던 날들이었지만 역시 그때는 진짜 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나름의 낭만과 생각할 시간의 여유는 줬지만 참 재미는 없었다.

 

 

 

나의 20대는 무조건 글쓰기가 전부였다. 물론 그때 그렇게 미치게 썼지만 지금은 이따위로 밖에 리뷰를 못쓰는 내가 안타깝지만, 그때 나의 모든 고민은 오로지 글 ,이 삶의 전부였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본다던가, 여행을 가는 것은 없이 도서관, 작가실, 방송국으로 20대를 보내고 나니 삶의 경험을 그래프로 그려 보라면 거의 평면밖에 나올게 없는 인생이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가서 혹은 그곳에서 몇 달을 살아 보거나 공부를 하는 것이 사실 나는 무서웠다. 유학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20대 마지막 공모를 앞두고 있을 때 진짜 절망할 대로 절망한 나의 글쓰기 능력의 한계를 알아버려서 나는 죽고 싶었다. 그때 나의 절친 친구가 유럽 배낭여행을 간다며 전화가 왔는데, 참 부럽다며 좋겠다 잘 다녀오라는 전화를 끊고 나는 그날 진짜로 한 시간을 바닥에 앉아 울었다. 작가실에서 모두 나에게 말을 걸어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가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준 그때의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에게 이제 와서 참 고마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서른에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 등등 나이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데 다 필요 없다. 나이와 관련 없이 지금이 중요한 것이고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고,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많이 느낀다.

 

나에게 딱 한번 시간을 돌릴 시간을 준다면, 20대 후반으로 돌려서 유럽 여행을 간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을 때로 돌려놓고 싶다. 그때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을까. 그때 나도 나의 20대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내 나이 이십대에 하지 못한 일중에 가장 안타까운 일이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더 간다. 내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한 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더 많이 녹아든 애정일 것이다. 꼭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봐야 인생의 깊이를 더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 문화의 차이가 주는 것에서 느낀 나만의 가치관은 견고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그 견고한 가치관과 나만의 이념이 꼭 외국 생활에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이십대에 그런 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의 삶이 맹탕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20대에 하고 싶었던 다른 나라에 가서 살기가 부러웠던 이 책, [도쿄는 꿈 맛]을 읽으면 분명 잊고 있던 나의 지난 시절이 떠오를 것이다. 작가의 아기자기한 그림도 참 예쁘지만 글씨도 귀엽다. 지금 책을 쓴 작가가 인도 여행기를 올려놓고 있는데 진짜 재미있다. 그녀의 인도 여행기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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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셔츠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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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전에 얀마델의 장편소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소설이 나왔을 때 읽지 못했었는데 이 책은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개정판이다. 개정판이 다시 나왔기에 이벤트에 신청해서 받아 놓은 책이라 빨리 읽어야지 마음을 다독이며 읽었는데 이게 무슨 마음인지 전혀, 내용이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아 한 장 읽는데 하루가 걸리는 때도 있었다. 내용이 어렵거나 그렇지 않아도 소설 속의 내용이 머릿속에는 그려지지만 [왜?]라는 의문만 가득한 채 이 소설을 얀마델이 왜 썼을까 궁금했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겪은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역사의식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왜 홀로코스트의 얘기를 가지고 나왔을까. 그는 동유럽의 사람도, 독일계도 유대인도 아닌 그가, 일류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한 가장 잔혹한 역사를 끌고 왔을까.

 

 

얘기를 다 읽는 동안 이런 의문이 계속 남았었는데, 그의 말처럼 “셔츠가 어디에든 있듯 홀로코스트 또한 어디에든 있다”는 그의 말을 빌려 본다면, 아이들의 학교에서도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회사의 이익 구조들도 모두 이름만 다른 홀로코스트일 것이다.

 

 

동물을 박제하며 파는 박제사를 통해 헨리는 소설을 하나 건네받는다. 그리고 그에게 받은 희곡을 통해 두 마리의 동물을 소개 받았다. 당나귀와 원숭이,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다.

단테의 신곡을 읽었다면 소개되는 두 동물들에 대해 쉽게 이해가 와 닿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단테의 신곡을 떠 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 헨리가 읽고 있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얘기만 따라가 가면 된다.

 

 

 

이야기는 헨리가 박제사와 만나면서 희곡을 읽는 과정에서 생기는 얘기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초반까지는 이야기가 상당히 지루하다. 길지도 않은 이 얘기가 왜 이렇게 지루하고 무료하게 읽힐까 생각했는데, 홀로코스트라는 무거운 얘기를 꺼내야 하는 작가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얘기의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고백의 순간에 놓여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였을지 중분부터 탄력 받는 얘기의 몰입이 좋다. 그렇다고 그 뒤부터 술술 잘 읽히는 것은 아니다.

 

 

 

박제사가 쓴 희곡은 이야기의 또 다른 얘기를 하나 가지고 있다. 두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현실을 얘기하고 있는 우화라고 생각하며 읽기보단 두 동물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읽는 것을 택하고 후반부를 읽으니 사진속의 셔츠로 두 동물이 들어가서 다른 세상을 보는 것처럼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단테의 신곡 속 두 동물을 선택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작가가 왜 당나귀와 원숭이를 택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원숭이는 영리하고 민첩한 동물이고, 당나귀는 우직하고 근면한 동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이 살아남으려면 그런 특성을 띠어야 합니다. 그래야 융통성과 재치를 발휘해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P142

 

 

 

영리하면서 우직한 두 동물의 마지막 죽는 장면은 처참해서 읽을 수가 없다. 또한 너무나 이유가 불분명한 그들의 죽음이다. 가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학살 속에 있었던 유대인들도 그랬을 것이다. 잠을 자다가 혹은 일을 하다가, 때로는 책을 읽다가, 가족의 식탁을 차리다가 갑작스럽게 닥친 그들의 죽음은 무슨 이유가 있었단 말인가.

 

 

어느 누구에게도 다 있는 셔츠, 보편적인 감응이 있다는 그 셔츠 속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의 셔츠라는 나라에 살고 있고, 그 셔츠 속에서 감춰진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박제사의 얘기에 이제야 왜 표지가 셔츠 그림이었는지 알게 되는 아주 단순한 순간이 온다. 그리고 이해하게 된다. 작가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끝은 참 모호하고 절망적이다. 헨리는 박제사의 진심을 알지 못했을 것 같고 버질과 베아트리스 또한 너무 허무하게 죽어서 속상하기까지 하다.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일까 궁금할 때가 참 많은데 이 작품이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답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대부분이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써서 얘기를 한다면, 이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얘기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허구의 세상으로 빠져 들 수 있다. 분명 역사적인 사실을 하나의 카테고리를 두고 썼지만 그 이상의 상상을 만들어 낸 작가의 노고가 빛난다. 아직 읽지 못한 파이 이야기를 빨리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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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성실록 - 우리 역사의 맨얼굴을 만나다
정명섭 지음 / 북로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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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기록된 가장 하찮은 순간들  

 

 

 

텔레비전을 틀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사극이 나온다. 이제는 전통 사극보다는 판타지가 가미된 사극도 나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왔던 밤에 한 사극을 보며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렸던 기억도 난다. 소재가 늘 유명한 숙종과 세조, 세종, 영조, 정조 혹은 인조의 얘기 비운의 단종의 얘기도 모두 나오다 보니 이제는 소재가 고갈되어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사람의 초점을 맞춰 새로 판을 짠 사극이 나오기도 한다. 늘 왕좌를 오르기 위해 몸부림치는 두 파의 갈림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얘기가 어느 날은 참 재미있는데 어느 날은 다 똑같아서 좀처럼 몰입이 되지 않는다. 그럴 때 왕의 시선이 아닌 그 이면을 다룬 드라마들이 신선한 소재의 소개로 새로운 역사가 또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 또한 왕이 아닌 조선 시대의 백성들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실록이다. 하지만 역시 권력 중심에 있는 왕의 얘기는 빠질 수 없고 왕의 선택에 의해 죽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는 그간 알고 있었던 얘기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각 단락마다 지어놓은 제목이다. 어찌나 구미 당기는 제목으로 요즘에 맞게 잘 짜 놓았는지 제목만 보고 혹해서 다른 편은 건너뛰고 읽은 것도 있었다. 단락마다 연결되어 있는 소설식 구성이 아니고 에피소드 형식으로 짜져 있으니 책을 펼치면 보이는 단락부터 읽어도 크게 무리 없이 읽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이 책이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리 없이 읽히지만 역시 책이 큰 매력이 없다. 그렇다고 책이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가 어떤 예쁜 여자를 보았는데 그냥 예쁘다고 생각되는 여자가 있고 예쁘기보다 매력적이라 뒤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그런 매혹적인 느낌의 분위기가 있는 여자가 있다. 이 책은 후자의 느낌이 없다.

 

 

조선 시대의 정형화된 그림보다 민화가 더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다가오듯이 그간 텔레비전에서도 알지 못했던 백성들의 재미난 일상들, 억울하고 서러웠던 얘기들이 더 재미나게 엮어져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뭔가 얘기를 엮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어떤 에피소드들은 정말로 깜짝 놀랄만한 얘기들이라서 어쩜 이럴까 생각도 들고 역시 500년이나 훨씬 지난 얘기지만 사람 사는 곳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이념과 사상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많이 들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고아원이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 양반들이 부리는 노비는 자신들의 재산이라고 생각하여 매질로 죽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래도 사람 목숨이라는 것을 가지고 함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아주 저차원적인 나의 생각도 달라졌다. [경국대전]이라는 법전이 있는 거야 알았지만 그것대로 나름 법을 통치하며 살았다는 것이 왜 이제야 좀 놀라울까.  

 

 

 

“실록의 곳곳에는 오늘날 높은 자리에 앉아 자신의 권력과 인맥과 재력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법치 정신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조선을 무지와 야만의 시대로 오해하곤 한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일부 지배층이나마 자신들의 의무를 망각하지 않고 책임을 다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128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권력을 쥔 자들이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요즘은 왜 국회의원만 뽑아주면 뽑아준 이유를 망각들을 하시고 사시는 걸까. 배지를 달면 레드썬들을 하시는 걸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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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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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면서 익숙한 것을 발견할 때 그 아늑한 즐거움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그런 아늑한 즐거움을 주는 몇 안 되는 작가가 내게는 김려령이라는 작가였다. 그녀의 첫 번째 작품 [완득이] 때문에 두 번째도 좋았고, 세 번째도 좋았다. 언젠가 내가 배웠던 교수님이 작가나 감독등,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든 세 번째 이후부터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동안 자신이 하고 싶었던 얘기, 주변에서 경험했던 얘기들을 소재로 써 먹고 나면 그 이후부터 진짜 작가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너를 봤어]는 엄밀히 따지면 청소년 문학을 써 왔던 김려령의 첫 번째 성인(?) 장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작품을 그녀의 다섯 번째 장편 소설로 보기 어렵다고...나는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너를 봤어]는 그녀가 정말로 작정하고 쓴 청소년의 꿈과 희망과는 이제 멀어져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약한 어른의 이야기다. 그녀의 이색적인 행보라는 생각도 들지만 뭐, 장르 소설 쓴 작가가 계속 장르 소설을 쓰라는 법이 있겠는가. 하지만 역시 뭔가 좀 어색한 것은 있다. 그녀의 기존 작품을 기다렸던 독자, 팬으로 어쩌면 나는 여전히 그녀의 머물러 있는 정체성을 그리워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또 다른 완득이가 달려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유명한 소설가 수현은 편집자가 되었다. 그리고 유명한 소설가 아내는 그녀의 이복형제가 함께 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며 갑의 지위를 지키며 부와 명예를 쌓았다. 하지만 그녀와 수현은 이상하게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이 없다. 간혹 나는 이런 설정이 너무 식상하다. 사연없이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아무런 감흥 없이 부부로 살아가며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정, 이게 뭐 산뜻하지가 않고 특별하게 호들갑을 떨며 둘의 관계는 왜 이런 거냐는 궁금증도 안 일어난다.  

그런 그들이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 올 것이고 그리워 할 것이고 불륜을 일으킬 것인데 뭐 뒷일도 궁금하지 않겠다며 책장을 덮고 싶었는데, 역시 나의 예상대로는 진행되지는 않는다.  

 

수현 사이에 놓인 영재와 이제 떠나가 버린 부인과의 묘사에서 사실 나는 계속 부인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부인이 계속 수현의 사이에 머물고 있는 줄 알았지만 수현이 사랑하지 않았던 부인을 놓아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가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그 반짝이는 보료에 앉혀 놓고.

 

 

어른이 된 어른이 이제 사랑을 해 보겠다고 하는데, 그 순간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에서 역시 인생은 순탄하게 가지 않는 것이 진짜인가, 생각하게 되는 순간 소설은 끝이 났다.

 

 

소설의 표지가 왜 물속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름 이유 있는 표지 선택이라서 의미가 있었지만, 역시 나는 작가의 반전 소설에 살짝 당황스럽다. 나는 대체, 그동안 그녀의 소설을 어떤 것을 읽은 것일까.

그렇다고 늘 그녀가 완득이 같은 소설만 쓰길 바라지는 않는다. 작가의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길 바라마지 않지만 너무 순식간에 변한 모습이라서 당황스러운 느낌은 떨칠 수 없다.

 

 

그동안 전작들의 소설에서 대사들이 참 살아 있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번 소설의 대사들을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작가만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함축적인 얘기가 너무 많고 입에 붙지 않는 대사들이었다. 무엇보다 어색한 혹은 필요 없는 대사들의 줄 간격이 아주 많이 눈에 보여서 내가 엔터를 치며 줄어 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역시...나는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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