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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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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보았던 드라마들의 집들은 늘 한결같다. 특히 주말극이나 일일극들의 드라마속의 집들은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 건너 채까지 딸린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산다. 하지만 드라마속의 집과 다르게 우리는 마당이 있는 집보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어야 하는 빌라들이거나 철문을 덜컹거리며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아파트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간혹 몇십 억짜리 빌라에 살고 있다는 연예인들의 집들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의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현실이라는 땅에 주춧돌을 놓아 기둥을 세우고 처마를 내리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집은 그런 집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드라마속의 집들 때문에 언젠가 그런 얘기들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드라마들이 많은 아시아 나라에 수출이 되고 있는데 물론 그들도 드라마와 현실의 간극을 이해를 하며 알아가겠지만 마당이 있는 그런 집, 처마가 내려진 그런 정겨운 집들을 모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네모난 아파트, 빌라가 아닌 겨울이면 고드름이 얼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를 가지고 있는 집들을 구경한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그런 집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정서라는 것보다 더 그리운 것은 나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추억이 사라져버린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이라는 이 책속의 많은 건축들이 고마운 책이다. 사실 집을 어떻게 짓는지도 모르고 집이란 그저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순간부터 내게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뿐, 다른 의미 속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책은 우선 평명을 다스리는 일부터 얘기를 해주고 있다.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 공간이 이루어재는 모양, 그 속에 단위 건축의 평면형이나 실 분화 특성을 지난 건축의 평면형등 평명의 유형에 대해 알려준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책을 읽기위한 스스로의 공감이 필요했다. 책을 읽을수록 전문적인 서적이라는 느낌이 농후하면서 읽을수록 어떤 지식을 얻는다는 느낌보다 활자를 그저 읽고 있다는 생각이어서 첫 장 평면이라는 부분은 며칠을 읽고 또 읽었다.

평면 속에 드디어 집을 지울 수 있게 되었다. 집을 짓기 위해 기단을 세우고 초석을 놓는다. 이곳에서 한국 건축의 지혜를 가장 많이 엿볼 수 있었다. 막돌을 이용한 석출기법은 많은 노하우가 있어야만 자동적으로 생기는 어른들의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초석위에 드디어 기둥이 세워진다. 언젠가 보았던 배흘림기둥의 모양의 설명을 들으며 보았던 절이 있었는데 그 모양이 대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궁금했던 궁금증만 증폭이되었던 적만 있었지 이론서로 만나는 그 정체성은 남다르다고 할까? 읽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놀라운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둥위에 가구가 세워지고, 지붕이 오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는 공포라는 것이 있다. 지붕사이에 붕 떠 있는 곳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 것 같은 그 공간, 공포라는 곳을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첫 번째의 지식이었다. 그리고 지붕, 곡선을 간직해서 더욱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지붕의 얘기는 참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 책이 주는 어떤 전문적인 우리나라의 건축의 지혜를 알게 해줄 것 같은 느낌에 읽을수록 어떤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사실 그런 특별한 지혜를 느낄 수 없었던 부분이 가장 큰 딜레마를 간직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비교되는 대상이 있어야 우리 건축의 훌륭한 점을 좀 알겠는데 가까운 중국과 일본의 예들로 그것을 입증하기에 너무나 빈약한 예들이었다. 물론 다른 나라들의 예를 들며 그들의 건축과 문화를 폄하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간 우리나라의 집들이 모두 서구화 되어 버려 한옥이 거의 없다고 하겠지만 건축의 설명 대상이 모두 궁궐이나 절들이라는 것에도 안타깝다. 우리 건축의 우수성의 예로 들어주는 대상들이 궁궐밖에 안 남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온돌방이 있는 집에서 살았었다. 그리고 이후 아파트로 이사를 갔었는데 작은 집, 장독대도 있었고 좁은 마당도 있고 겨울이면 따뜻한 온돌방에 식구들끼리 두꺼운 밍크 이불속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았던 그때가 간혹 그리울 때가 있다. 편안하게 누워 있는 소파보다 그때의 그 따뜻함과 정겨움이 유년시절의 늘 그리운 감성을 만들어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온돌방이 그립다. 그런 온돌방의 정겨움을 아이들이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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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중국을 말하다 - 위기론과 불패론 사이에서
랑셴핑 지음, 차혜정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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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미국 다큐였던가. made in china라고 쓰여 있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보는 다큐였는데 어두운 밤, 불을 켜 주는 전등마저 쓰여 있는 china라는 이름 때문에 불까지 꺼야했었던 에피소드를 본 기억이 난다. 전혀 생활이 되지 않는 일상이 되고 말았다. 중국이 만들어내는 수 만 가지의 제품이 온 지구를 덮고 있다고 생각된다. 대체 중국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아이폰 화이트를 사온 동생의 핸드폰 뒷면에 선명하게 쓰여 있는 china라는 글씨에 다시 화들짝 놀라버렸다. 애플사 또한 china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에게 중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기술력이나 기획력을 가진 지적인 나라보다 뭔가를 만들어내고 찍어낼 줄만 아는 ‘노동의 나라’라는 인식이 크다. 하지만 중국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역사를 만나고 나면 그들의 벽돌 찍어내듯 뭔가를 자꾸 찍어내고 있는 공장의 물건들은 또 어느덧 잊고 만다.

 

<새로운 중국을 말하다>라는 책은 내게 인식되었던 공장이 가득할 것만 같은 중국의 또다른 이면을 안겨주었다. 이미 외환위기를 맞은 지 벌써 10년이 지난 한국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중국에게 닥친 외환 위기와 그늘 속에서 다시 살아나려는 중국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그런 중국에게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도약의 여러 가지 제안들은 그간 잊고 있었던 십여년 전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또 한 번 투영 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몸이 아파 병원에 드나들면서 느낀 것은 어떤 부분이 아파오면서 몸의 다른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검진을 통한 신체의 부실을 여실히 깨닫고 말았다. 위기가 닥쳐오면 하나만 오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것처럼 중국 또한 6대 악재와 금융위기를 통해 그간 병들었던 중국의 경제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증세는 절대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병의 원인은 이미 투자환경의 악화와 과잉생간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 내려졌다. (P42)

그런 중국을 통해 6대 처방이 내려졌다.

그중 세 번째로 내 놀은 4조 위안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으로 제시된 철강 사업은 또 다른 위기를 몰고 올 처방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조 할 수밖에 없다.

현재 경제 대통령이라고 하는 MB 정부 또한 벌려 놓은 건설업 때문에 나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사람들로 인해 파괴된 자연은 아플 때로 아파 있었다. 새만금간척사업을 통해 해류의 움직임이 바뀌어 모래 갯벌에서 진흙으로 바뀌어 가고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도요새들이 얼마 전 먹을 것을 먹지 못해 때죽음을 맞이한 일 또한 나라의 부강을 위한 갈망이 더 큰 악재로 남는 경우가 아닐까.

 

경제의 가장 큰 핵심을 쥐고 있는 미국은 중국의 경제까지 침투되고 있는 상황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많은 나라들의 움직임이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국의 거품 소비가 중국의 수출의 극대화로 번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줄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중국은 더 많은 자연환경을 회손 시켰으며 자원을 낭비하게 되었다. 육식을 즐기는 서구화된 식단으로 인해 아마존의 숲이 매년 가축을 기르기 위해 타들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기 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는 중국인들의 자동차의 시장이 활성화 되고 있다고 한다. 삶의 질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경기침체가 되면서부터 그동안 바빠서 돌보지 못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여가 생활을 즐기고 여행을 가기위해 자동차의 수요가 늘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에 중국의 자동차 성장이 잠시의 발전일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립스틱 효과와 같다고 생각되어지는 일이라고 여겨야 할 것인가. 경제침체가 되면서 소비를 줄이다보니 립스틱만 진하게 발라서 최소한의 사치를 부릴 수밖에 없는 현상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효과는 또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자동차의 소비 증가로 중국의 경제 시장이 활발해졌고,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는 그래도 중국의 경제에 대한 관망은 긍정적이다. 경제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그의 생각에 긍정의 기운을 한국에도 넘겨주고 싶다.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아갈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고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고 하니 살아남을 방법 역시 어디에 숨어 있을 것이다. 다시 가치가 높아져 위기를 극복할 중국을 생각하며 병들어가고 있는 국토에 대한 걱정이 많다.

환경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요즘 여기저기서 틀어주고 있는 환경 다큐에 눈물이 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연이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인간의 지혜가 너무 짧다는 생각에 가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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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 - 열정의 승부사, 이나모리 가즈오의 삶과 경영 이야기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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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나는 꿈을 얘기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마치 꿈이라는 단어는 십대와 이십대를 위한 청춘에게만 어울리는 단어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 그 단어 하나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말은 피 끓는 청춘의 한 이면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 뭔가 배우며 살아가는 도전이 인생에 많은 에너지를 주고, 그 에너지를 통해 삶의 방향이 얼마나 밝아질 수 있는 것인지 느끼게 된 몇 번의 기회를 통해 우리가 말하는 꿈이라는 것이 단지 청춘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던 기회였다.

 

대부분의 석세스 스토리에 나오는 인물들은 가난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성공이라는 단어와 어울릴 수밖에 없는 국한된 상황에서 오는 희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집안에서 좋은 가정환경의 배경으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이 인생의 성공을 이뤘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들도 나름의 지위를 지키는 성공의 의미는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튼 <좌절하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의 저자 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일본인인 이 사람의 가정환경 역시 남다르지 않다. 어려운 집안 환경, 많은 가족 구성원의 하나. 시대의 우울한 접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늘 그런 사람들이 뭔가를 이루기 위해 투지를 불사르는 얘기는 드라마에서 보았던 성공의 히스토리와 틀리지 않다. 간혹 나는 이런 사람들은 어쩌면 세상에 얼마 없을 그런 인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부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투지가 대체 어떤 것이기에 그런 환경 속에서도 저렇게 멋지게 살아남아 있는 것일까.

 

그가 인공보석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정말 눈물겨웠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닌 또 다른 연구들은 또 다른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세라믹을 재결정 보석으로 개발한 것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을 인공 관절을 만들어 아픈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그가 만든 인공 보석에 대한 찬반 의견에 사실 나는 반대의 의견보다 찬성의 의견에 더 많은 공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부의 의미를 타파시키는 것중에 하나인 인공 보석은 악용도지 않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라는 것이 오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은 늘 시련을 만나고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훨씬 많다. 인공 세라믹 관절을 만들고 그것이 약사법 위반 혐의를 받아 마음고생과 연구한 사람들의 노력이 범죄로 치부되는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주공인공의 당연한 운명이 아닐까.

그런 시련을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말에 일어서야 할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시련 앞에 일어서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얼마 전 노래 참 잘하는 가수가 또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가 앓았다는 우울증을 앓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젊은 가수들에게 대선배가 한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치지 말고 싸워, 죽을 때까지 싸워. 세상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 시련 앞에 기회가 저기 있으니 넘어져서 일어설 때 기회라는 녀석의 한쪽 손을 잡고 일어서라고 얘기하고 싶다. 물론 그 얘기는 나에게도 포함되는 얘기일 것이다.

좌절하지 않은 한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꿈을 이뤄질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제발,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줬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도 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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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명의 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01명의 화가 - 2page로 보는 畵家 이야기 디자인 그림책 3
하야사카 유코 지음, 염혜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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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 화질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된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 장정일 <보트 하우스> 중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의 구절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은 소설속의 중인공이 가지고 싶던 그 뭉크 화질이 내가 가지고 싶었던 나이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미술책에 소개된 뭉크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그의 그림이 소개된 화질이 너무 가지고 싶어서 한동안 수능을 앞두고도 도서관을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의 불안한 그 모습에 불길하게만 뻗어나가는 내 청춘의 마침표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뭉크의 화질을 가질 수 없었고 나의 우울했던 십대는 사라졌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뭉크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은 생각나질 않는다. 다만 그때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그림속에 표현된 불안과 절망이 나와 닮아 있을지 터무니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고흐의 그림보다 고흐의 일생 때문에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고, 클림트의 황금빛 때문에 클림트의 일생이 궁금해졌었다. 마네와 모네의 차이를 알기위해 두 그림들을 비교 해가며 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작가를 알게 되면 그림을 알게 되고, 그림을 알게 되면 작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으로 차츰 그림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고흐와 동생 태오의 편지가 수록된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흐의 지난 일생이 더 애잔했고 그의 말 때문에 용기도 얻기도 했다. 그림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하는 일인 것도 같다.

 

작년에 우연치 않게 아동도서 전시관에서 획득한 화가 전집이 있었는데 10권짜리 전집을 읽으면서 작가들의 생애를 살피는 것은 또 다른 역사공부가 되어서 즐거웠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101명의 화가의 얘기를 다 볼 수 있는 앙증맞은 책을 받아들고 살피면서 10권짜리 전집보다 더 알차게 준비되어 있는 짜임이 괜찮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101명의 화가라는 것에 101마리의 달마시안도 아니고 제목이 왜 이럴까 했는데 다소 아쉬운 101명의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에곤 실레의 얘기가 빠져 있어서 아쉬웠다. 워홀이나 후지타같은 작가들 빼면 서양미술사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괜찮은 역사책같은 느낌이다. 다만 궁금했던 몇몇이 빠져있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작가가 선별해 놓은 작가들중 사실 절반은 들어는 봤지만 대표작을 모르겠는 작가들도 많았는데 작가의 대표작을 표시해 놓은 부분에 간혹 그에 따른 그림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수고가 있었기는 했지만 그렇게 또 수고를 한번 하므로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이 되었다. 두 페이지로 작가의 일대기를 모두 담아내는 것이 어찌 보면 작가의 욕심일 수 있지만 괜찮은 읽을거리인 듯하다.

 

가장 눈에 담아 두었던 두 화가가 있었다.

한명은 프리다 칼로다. 그녀의 얘기는 아주 오래전에 영화로 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과 그녀의 일대기에 이미 많이 알고는 있었는데 다시 그녀의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이 허전했다. 언젠가 읽은 책에 체코의 체 게바라가 프리다 칼로를 만났다면 근사한 예술가가 되었을 것 같다는 얘기에 수긍이 가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녀의 불운한 몸을 사랑해주며 더 오래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내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화가, 피카소. 나는 화가 중에 피카소를 제일 싫어했다. 이유는 참 간단하다. 보통의 화가들은 살아생전에 예술가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은 경우가 허다하고 혹은 인정을 받았다고 한들 모두 요절하였다. 고흐는 평생 그림 한편 팔아 본 것이 전부였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피카소는 살면서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하며 살았던 화가였다. 그 이유가 내가 피카소가 싫었던 아주 간단한 허접한 이유였다. 그런데 그의 절친 카사헤마스의 죽음으로 그의 그림이 바뀌게 된 것과 파리 생활이 그에게 화려하지만은 않았다는 것. 잠잘 수 있는 침대가 한 개라 친구와 밤낮을 바꿔가며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에 천재였고, 너무도 쉽게 인정을 받은 화가라는 고정관념이 좀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80세에도 결혼을 하고 91세까지 살다간 정말 화려한 노후가 있었으니 젊은 시절의 고생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내게 이런 저런 고정관념을 조금 깨준 이 작고 귀여운 책은 아마도 오랫동안 책상 위에 머무를 것 같다. 다 읽고도 화가가 생각나면 다시 들쳐보게 되는 책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에곤 쉴레의 얘기가 빠진 것이 영 섭섭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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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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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책을 표지만 보고 고르거나 표지 디자인이 좀 감각이 떨어진다고 해도 작가와 상관없이 생각하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정치인들이 표지로 나오는 이 표지에 어떻게 거부감을 안 가질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사람이 손으로 하트까지 하고 있는 이 표지가 그려진 책을 받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사실 일부러 이 책은 절대 선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책이었는데 나와 생각이 많은 분들이 계셨는지 내 품으로 들어와 버렸다. 덜컥 겁을 먹으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굽시니스트라는 시사만화를 그리고 있는 작가의 이력을 살피면서 그도 참 다양한 삶을 살았으니 남들이 보지 못한 현명한 풍자를 그려주겠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며 책장을 열었다.나름 통찰력이 있다고 하시니 그의 통찰력을 믿으며 책을 볼 수밖에. 시사 주간지 <시사IN>에 <본격 사가인 만화>를 연재했던 약 3년 정도의 만화가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2009년이라면 참 나라가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국장을 두 번이나 한 나라가 있을까? 그것도 한 사람은 자살을 한 대통령이라니. 시대에 가장 악독한 행위를 저지르고 정치범아닌 정치범이 되어 모든 국민 앞에 청문회까지 열고도 수백억의 돈이 있으면서도 돈이 없다며 세금도 내지 않는 뻔뻔한 전대통령 잘 살고 있는 마당에, 자살을 한 대통령이 있었던 한해의 풍자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들이 많았다.

 

정치를 풍자한 만화를 그러거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나조차도 내가 싫어하는 정치인들은 무조건 좌파로 생각을 할 만큼 꼬일 대로 꼬여있고 그들의 행적이 아무리 옳은 일은 한다고 한들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굽시니스트의 시사만화가 내게는 전혀 맞지 않는 양념을 뿌려댄 음식과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의 이런 시각을 바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던 부분은 우리나라 공주님의 얘기였다. 그녀의 얘기에 솔직히 수긍가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미쳐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공주님의 논리에 허를 찔렀다고 할까.

 

2010년 5월 15일자에 연재한 <중국, 중원에서 답을 얻다>편은 작가의 지식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회였다. 물론 이런 사자성어식의 풍자가 많이 있기는 했지만 그간 본 연재 중에서 읽으면서 세상에를 몇 번씩 외치며 읽었던 회였었다. 그래서였는지 그 다음 편부터 읽는 굽시니스트의 시사만화가 표지에 있었던 비호감이 슬슬 사라져가는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내가 싫다고만 생각했던 정치가 절대로 멀리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또 한 번 느낀다. 우리가 바뀌지 않으면 그들도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일 테고 의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절대로 싫다고 떠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옛 속담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하지만 떠나면 안 되는 절도 있는 것이다.

사실 어떤 화에서는 전혀 몰랐던 얘기라서 너무 정치에 무지한 내가 부끄럽기까지 했다. 분명 잘 알았다면 나도 웃으면서 넘어갔을 얘기였는데 너무도 심각하게 몰랐는걸 이라며 나의 무지를 탓하기만 했다고 할까. 그렇게 넘어가면 되었던 지난날의 정치가 그랬던 것 같다.

 

선거일 때만 반짝이는 그들의 시민 사랑도 구역질나게 싫었지만, 그들을 못 믿어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며 있던 나의 국민적 의식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몇 년 전 나는 북유럽으로 이민을 가고 싶었다. 그들의 나라가 부러웠기 때문도 있었지만 부끄러운 대통령의 나라에 국민으로 세금 내며 살고 싶지 않았다. 한 어플에는 대통령 임기를 알려주는 어플도 있는걸 보았다. 간혹 임기가 며칠 남았는지도 확인을 해 보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다. 무지한 백성이 무지한 임금을 섬기고 사는 것 같은 날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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