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에서 카메라고 고장이 났었다. 그것도 내 카메라 아니라 빌려온 카메라였다. 물론 이 카메라는 두 번의 수리를 받은 전적이 있었다. 한번은 이탈리아 가서 떨어뜨린 후 고장이 나서 여행에 사진을 한 번도 못 찍고, 스페인에 도착해서 딱 열장 정도 찍고 똑같은 증상으로 카메라를 사용을 못했었다. 그리고 다시 고쳐 그리스까지 참 잘 다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독일 온지 한 달간은 잘 찍혔는데, 막상 긴 여행을 떠나 사진 좀 찍어 보려고 했더니 마지막 날 지난번과 같은 증상으로 카메라는 자신의 소임을 다 했다며 더 이상 렌즈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사용했던 내 카메라는 캐논 6D였고 너무 무거워 장기 여행이 될 독일은 함께하지 않는 걸로 결정하고 그동안 같이 여행을 다닌 지인의 것을 빌려 온 것이었는데, 젠장…….앞으로 한 달 남은 여행을 재미없게 만들었다.

 

 

 

내 여행은 3번으로 나누어 떠나기로 했다. 한번은 이미 다녀온 서쪽 지방이었고 이번에는 북부에서 동독으로 가는 루트다. 그리고 후배네 집으로 이틀 머물러 다시 짐을 정리하고 남부 여행이 시작된다. 아직 여행이 2,3 파트가 남은 상황에 나라를 잃은 듯 한 상실감으로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지인의 사촌과 연락이 닿아 다는 그녀에게 카메라를 살 수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했다. 이곳도 하이마트 같은 곳이 있으니 전자 상가를 알려주며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녀가 알려준 사이트를 통해 카메라를 살펴보니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도 있고 훨씬 더 비싼 것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DSLR이 아닌 일명 똑딱이 하이앤드카메라가 많이 보였다. 내겐 지금 가벼운 카메라가 필요하니 그걸 좀 사보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씻고 빨래하고 상가를 찾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인지 좀처럼 상가에서 본 카메라와 타협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에 들면 너무 비싸고, 가격이 맞으면 이곳보다 한 단계 높은 카메라를 사고 싶어졌다. 물건 살 때 엄청 까다로워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 하는 타입인데, 이제 그런 피곤함을 같이 얹혀줄 사람들이 없으니 혼자 진상을 전자상가에서 치러야했다. 독일제로 유명한 ‘라이카’를 사보려 라이카 매장을 찾았더니 헉 소리 나는 가격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사실 돈만 있다면 이런 고민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나는 아직 시티은행에서 가져간 내 현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 사용해야 할 판에, 카드까지 긁으며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만 가면 중형 중고차 값인 카메라가 있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냥 핸드폰으로 찍으면 어때? 하지만 그 물음 뒤에는 우울함이 깔려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지인이 알려준 독일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혹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짐을 처분하기 위해 카메라를 팔지는 않을까 싶어 찾아 봤더니 있었다. 그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아직 팔리지 않았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막상 안 팔렸다고 하니 금액이 문제였다. 언젠가 내가 한번 써보고 싶었던 미러리스였던 그 카메라는 참 오래된 기종이고, 지금 한국에서 산다고 해도 30만원이 안 되는데, 그녀는 그 가격 그대로 팔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한국에서 지금 팔고 있는 중고가를 얘기하며 혹시 이 가격에라도 팔겠다면 내가 당장 가지러 가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그녀와 내가 있는 거리가 문제였다. 내일 도착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녀는 기차로 3시간 거리였고, 내일 출발하는 기차 값은 50유로 였다. 그녀가 팔겠다는 카메라 가격은 한국 중고 가격으로 맞춰 준다고 했는데 차비가 더 나오게 생겼다. 이런 조건이라면 중고를 살 필요가 뭐가 있나, 혼자 스타벅스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그녀가 있는 도시로 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노선을 변경하려고 했더니 그녀는 이번 주 목요일 새벽 비행기로 한국을 간다고 했다. 시간이 없었다. 그녀와 내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딱 이틀뿐이었다. 내가 집에서 상주하는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택배를 받을 수 없고, 무엇보다 카메라가 잘 찍히는지 그것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했다. 나는 당신의 카메라를 정말 가지고 싶고, 새 카메라를 사고 싶은 마음이 없다. 가격도 딱 좋다. 그러니 우리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 어때요?

 

 

한국에서도 한 번도 안 해본 직거래를 하자고 했다. 그녀는 한동안 카톡의 대답이 없더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때부터 답답한 내 얼굴이 나 스스로 느끼기에도 활짝 웃고 있었다. 독일에서 얼굴도 모르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사러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도시를 가게 되었다. 오늘 그녀와 만나기로 한 도시의 기차표를 끊었다. 미리 끊으면 싸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나의 여행에 그녀가 안겨준 이 기쁨에 나는 오늘 하루 종일 흥얼거렸다. 그녀의 카메라는 전자상가 매장에서 살까 고민했던 카메라와 가격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기찻값을 생각하면 그냥 새 카메라를 사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카셀의 헤라클라스 동상을 보는 것을 포기했다. 그녀에게 가면 아침에 가려고 했던 이 루트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타지에서 만난 어떤 이가 자신도 시간을 포기하고 나에게 와 주는 것이 아닌가. 그녀도 1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나를 만나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와 달라고 했는데 거절 없이 온다고 한 그녀는 분명, 아름다운 여자일 것이다. 나에게 희생해줘서가 아니다. 진짜다. 그런 그녀를 만나기 이틀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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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7-25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를 만나기 이틀 전! 흥미진진합니다. 부디 원하는대로 이루어지길! ^^

오후즈음 2017-07-25 14:1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oren 2017-07-25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용케 중고카메라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렸군요.
사진 찍고 싶을 때 카메라가 덜컥 고장나면 정말 난감하더라구요. 특히나 해외에서요.
저는 캐논 5D 마크투 쓰는데 히말라야 갔을 땐 배터리가 다 닳아서 정말 난갑하더군요. 마침 저랑 똑같은 기종을 쓰는 ‘사진작가님‘을 어렵사리 만나서 간신히 충전기를 빌릴 수 있었답니다. 밤길에 그 분 숙소까지 혼자 찾아가느라 애먹었지만요...

오후즈음 2017-07-25 14:13   좋아요 0 | URL
한국이라면 참 쉬웠을 일이 해외 나오니 당황스럽더라구요. 아직 그녀를 못 만났지만 여행 일정을 반나절을 포기하고 가는데도 참 마음이 후끈합니다!

jeje 2017-07-28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다른짐이 많아서 카메라를 포기하고 왔는데. 도착한 그 순간부터 아쉬워하고 있어요...무척이요 무척... 가져왔더라면 이동할때마다. 후회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