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여름 공사장 근처를 지나다가 길가로 튀어나온 철근에 발바닥이 찢어졌었다.

처음엔 그냥 좀 많이 아프다고 생각하고 동생을 부축해서 반창고나 하나 붙일 생각으로 근처 약국을 찾아갔다. 발 좀 보자는 약사 말에 의식하지 못했던 발을 내려 보는데 슬리퍼는 이미 피로 젖었고, 양 사방으로 30센티 넓이로 피가 고여 있었다.

 

 

 

약사가 놀래 뛰쳐나와 상처를 누르고 피를 멈추게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몸 안에서 모든 피가 다 쏟아 내려지는 것 마냥 피가 멈추지 않았다. 붕대를 칭칭 감고 근처 큰 병원으로 갔다. 그날 나는 놀라지도 않고 아주 침착하게 택시를 탔고 놀라지도 않았다. 나도 이런 일이 한번은 생긴다는 신기함이 아픔을 누르고 있었다.

 

 

철 잔해가 들어가 있을지 모른다며 엑스레이까지 찍고 결국 12바늘을 꿰맸다.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고 컸다. 여름이라서 상처도 쉬 가라앉지 않았고 한번은 급한 일 때문에 뛰지 말라는 의사 말을 잊고 뛰었다가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한 달이면 치유될 상처가 두 달 걸렸고, 여름이라서 상처는 더 쉽게 아물지 않았고, 걷지 못해서 결국 친구들 경조사에 가지 못했다.

 

 

 

그런 상처는 결국 기상과도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며칠은 발바닥이 아려서 혼자 끙끙대곤 했다. 멀쩡한 날에도 상처를 꿰맸던 때처럼 바늘이 살을 관통하는 아픔이 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오면 다음 날은 정말 말짱한 하늘에서도 비가 내렸다. 한 번도 그 예측은 벗어난 적이 없다.

 

 

몸의 상처가 아프기 시작하면 비가 오고, 날이 흐렸던 것처럼 가슴 한 쪽에 아직 아물지도 않았던 상처들이 아파 오기 시작하면 그 한주는 내내 모든 것이 말썽이었다. 불편한 심기가 곧 감정으로 변해서 끝내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아문 상처가 그냥 그렇게만 끝이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냥 아팠던 기억만을 남겼으면 좋겠다. 어떤 조심으로 나타나 주지도 말고, 그냥 예전에 내가 이곳이 많이 아팠지, 하는 오래된 일로 치부되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은 상처가 자꾸만 옛일을 떠올리며 또 다시 그 순간의 일들이 오버랩 되어 맘을 달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가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싶지 않다. 몸 한곳이 아파 오면서까지 그런 기상을 예측하고 싶지도 않다. 마음을 베인 상처 때문에 똑같은 일로 아프고 싶지 않다.

 

 

어제 저녁 상처가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밖에 비가 오고 있다. 그냥 몸의 마디마디만 아픈 것으로 끝이 나고, 가슴 마디마디까지 올라오지 않기를.

 

 

이런날은 무조건 달달한 것들이 함께 하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하는 이 낯선 책을 만나 본다.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한 책에는 어떤 유혹으로 이 고통스러운 발바닥 통증을 잊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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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05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 복무했을 때 발을 다쳐서 병원에 두달간 입원했어요. 수술 끝난 뒤에 움직이지 못해서 침대에 계속 누워 있어야 했어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책읽기였어요. 역시 책을 읽으니까 통증을 덜 느꼈어요. ^^

오후즈음 2018-04-07 09:43   좋아요 1 | URL
책은 지루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죠. 저도 세번 병원에 입원 했을때, 가장 두꺼운 책을 가져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장소] 2018-04-0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에 난 상처로 피가 다 빠져나가는 상상을 해버렸어요 . 으헛~

오후즈음 2018-04-07 09:43   좋아요 1 | URL
어흑....정말 저때 아득했어요. 너무 아팠거든요.

AgalmA 2018-04-06 0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픔을 몸이 기억하고 있을 때 새삼 내가 나를 참 가혹하게 대하고 있었구나 할 때 있습니다. 그런 아픔들이 몸 곳곳에 있다는 걸 자주 느껴요.

오후즈음 2018-04-07 09:44   좋아요 1 | URL
사실 몸의 통증보가 마음을 다치는 일이 훨씬 더 오래가고 힘든것 같아요. Agalma님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