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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평점 :
오랜만에 이와이 슌지 감독의 새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러브레터>, <4월이야기> 와 같은 작품에서는 첫사랑과 스무살의 반짝이는 느낌을 잘 살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번에 새로 찾아온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는 영화와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은 인물의 묘사가 조금 더 섬세하고, 이전의 일들을 조금 더 자세히 쓴 부분이 있어서 이해하기 좋은 점이 있을 수 있겠고, 영화는 배우의 연기와 대사, 음악과 영상으로 표현되어 그 순간 이들의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과 영화 두 가지가 서로 한 이야기를 상호보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나가와 나나미, 스물 두 살의 여성입니다. 시간제 교사로 중학교에 파견사원으로 일합니다. 조용한 성격이고, 자기의사를 강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SNS중에서는 마이너인 플래닛을 씁니다. 클램본 이라는 이름으로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과 인사를, 그리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느 날 인터넷의 맞선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처럼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을 올립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일생의 과정, 평범하고 안정적인, 어쩌면 이상적인 삶에서 멀어지지 않고 순행하기를 원했지만, 어쩌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때로 운명은 알 수 없는 일들을 일으키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나나미가 만난 사람들, 일어나는 일들은 마치 동화속의 주인공이 만나는 이상한 사건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의문의 서비스업을 하는, 란바렐의 친구로 자신을 소개하는 아무로 마츠유키가 있습니다. 나나미를 도와줄 것 같으면서도 자주 함정에 빠뜨리는 그는 돈만 주면 뭐든 해줄 것처럼, 모든 의뢰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나미는 이혼당했고, 집에서 쫓겨났고, 가짜하객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고, 동화속 버려진 저택같은 크고 엉망인 집의 입주 가정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SNS의 이름은 실제의 이름과 달라서 어느 날 바꿀 수 있습니다. 나나미는 클램본에서 캄파넬라로 이름을 바꾸었고, 립반윙클이라는 이름의 마시로를 만납니다. 조금은 과장되어 있는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하는 마시로, 잃었던 표정을 되찾아가는 나나미. 실제의 결혼식에서는 굳은 얼굴로 입고 있었던 웨딩 드레스도, 마시로와 함께 입으면 기쁨과 생기넘치는 표정으로 바뀌는 나나미.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친절이 부담스럽다고 말하던 그래서 대가를 주고 싶다고 말했던 립반윙클은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잠이 든 나나미는 눈을 뜹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지만, 그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빈 자리를 느낍니다. 이들도 그랬습니다. 서로 이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떠난 사람에 대한 슬픔을 표현합니다. 평범하지 않은 방식이라서, 더 미안해서 그런 눈물을 흘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인 <립반윙클의 신부>는 미국작가 워싱턴 어빙의 단편소설인 <립밴윙클>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산에서 이상한 사람들의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2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아내는 죽었으며, 나라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도 클램본, 캄파넬라 등도 동화나 다른 책에서 가져온 이름이고, 아무로 마쓰유키나 란바렐은 <기동전사 건담>을 연상하게 하는 이름입니다. 찾아보면 더 많은 이야기에서 온 것들이 있겠고, 이 이야기를 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이 영화가 흰색과 검정의 이야기가 아닌 컬러풀한 영화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영화는 다채로운 계절의 빛으로 반짝이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이어지고 만들어지는 세계를 가상의 세계라고도 말합니다만, 때로는 우리가 실제 얼굴을 보면서, 실제 이름을 알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얼굴이 보이지 않고, 진짜 이름을 쓰지 않아서 더욱 솔직한 말들을 적기도 하는 세계, 언젠가 내 옆을 지나가도 알 수 없었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세계. 랜선의 어느 쪽에 있을지 모르지만, 이 커다란 세상에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