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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를 찾아라
배혜경 지음 / 수필세계 / 2015년 11월
평점 :
요즘 시내의 큰 서점에 가면 책들은 여러 코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세련된 표지를 한 책들이 하루에도 참 많이 세상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도 매일매일 새로운 책이 소개되곤 합니다. 책들은 우리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읽는 동안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그리고 공부를 도와주거나, 일상생활을 조금더 즐겁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예전에 국어나 문학 교과서에는 여러 작품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설명문이나 논설문과 같은 실용문도 실리지만, 시와 소설, 수필과 희곡과 같은 문학작품들도 조금씩 소개됩니다. 그 시기의 학생들은 수험생활이 바쁘기 때문에 고전과 문학을 접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교과서에 실린 글이어서 읽었던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좋은 글들도 많았습니다.
이 책 <앵두를 찾아라>는 배혜경 작가의 수필집입니다. 예전에는 수필이라고 많이 했는데, 요즘은 에세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표지에 소개되어 있는 것처럼, 수필집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립니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읽었던 그 수필의 느낌과 향기가 다시 찾아오는 것 같았으니까요. 이 책은 크게 5부로 나뉩니다. 1부에서 3부까지는 일상생활과 추억이 담긴 글들이, 4부는 영화와 연극, 5부는 문학관 기행에 관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표제작인 <앵두를 찾아서>를 비롯한 이 책에 실린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의 과거의 추억과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것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 부모님에 대한 기억, 학창시절의 이야기에서는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마음 속에서는 생생히 살아있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담담한 편이지만, 일화를 소개할 때나 대상이 되는 소재를 표현할 때에는 조금 더 세밀하고 가는 붓으로 쓴 것처럼 섬세한 표현도 느껴졌습니다. 또한 책에 실린 영화나 연극의 후기에서는 같은 작품을 보았던 독자라면 읽으면서 그 영화를 보고 느꼈던 점을 다시 되살려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많은 책이 나오고, 그 중에서 에세이도 많은 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예전 교과서에서 읽었던 수필을 만난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 순간 순간은 나중에는 모두 추억이 됩니다. 그 때보다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된 추억을 한 번 더 꺼내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 배혜경 작가님께서 이 책을 보내주셔서 감사히 읽었습니다.
"예전에 선배가 준 책인데 나보다는 학생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꼭 원하는 곳에 합격할 거야. 열심히 해." 아저씨의 마음이 묵직한 책의 무게로 안겨 왔다. 책을 받은 두 팔 만큼이나 가슴께가 뻐근했다. 그 후 어느때인가보터 가게문이 늘 닫혀 있더니 젊은 부부의 행로도 알 길이 없었다. 막막하던 시절에 빛이었던 얼굴이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하다. "건강해라"는 낮은 목소리마저 까마득하지만 어딘가에서 한 자루 촛불로 살고 있을 부부를 떠올려 본다. 산다는 것은 끝없이 빚을 지는 일이다. 오래도록 기억의 창고에 묻어 두었던 그 빚을 슬며시 쓸어 본다. 빈 손으로 와서 많은 것들을 얻어 쥐고 살아가는 나는 젊은 부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그때의 친구들에게도 빚꾸러기다. 내 빚쟁이들은 단 한번도 빚 독촉을 하는 일이 없지만 이제는 조금씩 빚잔치를 하며 살아갈 때가 되었다. 산다는 것은 빚을 갚아가는 일이지 싶다. - 페이지 108 <빚꾸러기> 중에서
뱅뱅 돌아서 나온 문이 어떻게 들어갔던 문 그대로였을까. 우리의 출발지가 어디였든 도착지는 따로 정해져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 융이 말하는, 무의식이 데려다 주는 운명에게로. `운명의 장난` 이라는 말은 우스개가 아닐 지도 모른다. 내비게이터가 우리에게 장난을 건다면 어떻게 될까. OO도 OO군 OO읍 OO리 XXX번길. 주소를 입력하고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전방을 주시한다. 드높은 하늘에 자유로이 떠 있는 뭉게구름이 방랑자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인생의 비감(悲感)을 인정하는 낙천주의자의 화창한 날이 유랑의 심정을 부추긴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왠지 낯설지 않은 마을로 들어선다. 다시 구불구불 이름 모를 산길을 돌고 돈다. 하늘 아래 높이 매달린 절영(絶影)의 해안가 아찔한 절벽, 유턴도 불가한 지점에서 내비게이터가 시키는 대로 "전방 2미터 계속 직진하세요." 가속 페달을 힘껏 밟는다. 시퍼런 바닷물을 박차고 비상(飛上). - 페이지 122, <내비게이터 사용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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