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팔레스타인
홍미정.서정환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해서 나를 묘한 위치에 가져다 놓는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자기 땅 주장, 그리고 일방적인 영토 침략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영토 수복으로, 그리고 대다수의 온건 기독교인들에게는 영토 분쟁으로 받아들여진다. 극소수의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서 이스라엘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태도이다. 왜 이런 이상야릇한 태도가 형성되었는가? 원인을 구분해 보자면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다. 기독교의 기본은 성경이다. 그중에서도 개신교는 모든 행위의 기준과 권위를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한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과 블레셋이라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약속의 민족 이스라엘과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깡패 짓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을 동일시 한다. 물론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최대 라이벌 블레셋에 대해서는 대단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민족과 동일시되어 그 적개심을 고스란히 전가시킨다. 저자는 과거의 이스라엘 민족과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혈통적으로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사실이 서구에서 이미 학문적으로 연구되었고, 그 연구 결과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반론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여진 재구성된 신화는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이성적인 비판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둘째, 이스라엘을 약자로 생각하고 갖게 되는 동정심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들은 다윗과 골리앗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상황이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이스라엘의 목동 다윗의 신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막강한 화력과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등에 업은 골리앗 이스라엘과 짱돌로 탱크와 비행기와 같은 최첨단 무기에 맞서는 다윗 팔레스타인일지라도 우리는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약자요, 팔레스타인 민족은 골리앗과 같은 강자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다른 사람에 비해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고 있는 나조차도 가끔 이 사실이 헷갈릴 때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는 이스라엘이 오랜 세월 서구에서 핍박받은 민족이라는 역사적인 사실 때문이다. 2차 대전을 통하여 6백만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이 가스실에서 학살 당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반면 "팔레스타인 민족=이슬람=폭탄테러"라는 도식이 머리에 박혀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민족을 절대로 약자로 생각하기 않는다. 거기에다 더하여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집트, 시리아를 비롯하여 중동 국가들의 연합은 팔레스타인을 절대 강자로 오해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착실하게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번은 들었을 법한 이야기이다. 

  몇 차인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지만 중동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유태인들이 이스라엘로 전쟁을 치르기 위하여 자원하여 귀국을 했다. 그런데 한 노신사가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전쟁터에 나가기에는 너무나 나이가 많아 보여 옆에 있는 사람이 물었다. "지금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너무나 위험한데 왜 그곳으로 가십니까?" 그러자 그 노신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전쟁에 직접 참가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통곡의 벽을 붙잡고 나라를 위해 기도라도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로 들어갑니다." 

  나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빠지지 않았던 이야기다. 출처가 어디인지도 정확하게 모르지만 어린 마음에 그것이 사실인 줄 알았고, 이스라엘은 절대 약자이지만 이러한 나라 사람의 정신으로 수천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았지만 다시 건국했고, 중동의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잘 지키고 있구나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팔레스타인 민족이 중동 국가에서도 그다지 인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나로 모여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행했던 중동 연합이라는 것도 사실은 정치적인 필요 때문이지 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자신들의 동포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는 골치거리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영향이다. 한국 기독교만큼 미국 기독교에 종속되어 있는 곳도 드물다. 모르긴 몰라도 MB가 친미적인 이유 가운데에는 그가 내용은 어떻든 간에 형식적이나마 기독교인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신학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한국 교회 안으로 유입이 된다. 대다수의 신학교수들이 미국에서 유학하였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미국 기독교 중에서도 온건주의 노선과 복음주의 노선, 진보노선을 걷고 있는 교회들이 많은데 하필이면 근본주의 기독교만이 한국에 유입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근본주의를 복음주으로 포장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태도가 그대로 한국 기독교에 이식 된다. 토라를 불태우는 행위들, 막연하게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행위들, 팔레스타인 분쟁이 아마겟돈의 전초전이라고 보는 시각들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기독교 내에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전쟁 수행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한국 기독교인들은 철저하게 이스라엘 편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편을 드는 것은 크게 위의 세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 볼 것은 권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기독교인이라면, 이스라엘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무감 때문이다. 한장 한장 책을 넘길 때마다 팔레스타인 민족의 슬픔과 눈물이 곳곳에 스며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할 권리도, 행복할 권리도 모두 잃어버리고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절대 약자 팔레스타인과 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깡패 이스라엘의 만행이 묘하게 대비되면서 학생들에게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교사들의 슬픔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열심히 가르치면서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공부하면 머지 않은 미래에는 더 행복하게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희망마저 주지 못하는 교사들의 답답함은 집권자들의 횔포와 명박산성식의 소통에 물대포를 맞으면 덜덜 떨며 밤을 지새는 우리들의 울분과 묘하게 닮아 있다. 다만 우리는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참으면 된다지만 이들에게는 기약이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팔레스타인 문제가 조금이나마 나아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족의 자구책이 아니라는 것이 아쉽지만 다극화 되는 세계의 추세가 팔레스타인에게도 아주 조금씩이나마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견제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정치적인 결정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운신의 폭을 병아리 눈꼽만큼이나마 좁히고 있다니 다행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들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쫄지마! 아직 희망은 있어! 쫄지마! 이길 수 있어! 팔레스타인에 희망이라는 말이 이상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질 날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르치는 청년들을 위해서 5권의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을 올해의 마지막 읽을 책으로 선정한 것은 요근래 내가 한 선택 중에 최상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신론 2011-12-20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당신같은 분이 많으셔야 더욱더 많은 색안경이 벗겨질텐데 말이죠...

이재환 2012-04-11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삐딱한' 개신교 신자로서,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진실을 알리려고 애쓰시는 선생님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saint236 2012-04-12 00:08   좋아요 0 | URL
예수님도 삐딱하신 분이셨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불의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하지만 그 열매를 누리려고 하면 안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 한국 교회는 열매를 누리는 것에 관심이 있으니 걱정될 뿐입니다. 김용민의 개신교 비판 발언에 발끈하는 모습이 창피합니다. 그가 한 말이 틀린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MB정권 몰락과 함께 MB를 밀었던 교회가 돌팔매를 맞을 것이라는 것은 뻔한 예측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