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
박홍갑 외 지음 / 산처럼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통의 정치라? 

  모든 위정자들은 소통의 정치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소통의 정치라는 정치철학을 삶으로 구현하며 살아왔던 위정자들은 손에 꼽는다. 소통의 정치는 텅빈 구호요, 자신들의 이익을 포장하는 화려한 포장지로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주면 그걸로 자기의 역할은 다 한 것이다. 군주도 그리고 군주를 보필하는 지배계층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지배 계층 중에도 소통의 정치라는 철학을 삶으로 구현하는 것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왕의 남자라 부른다. 그들은 왕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권력에 아부하지도 않고 목숨걸고 왕명을 제대로 출납하면서, 그날그날의 내용들을 장인정신으로 기록하였다. 승정원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이렇다. 물론 나는 이러한 저자의 장미빛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록 정신에는 존경을 표하지만 그들의 고고한 학처럼 그렇게 깨끗하게만 살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승정원 일기라는 제목을 통해 알듯이 승정원에서 그날의 상황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그날의 날씨와 정치적인 사안들, 이에 대한 왕의 대응과 정책의 실현 과정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책이다. 단편적인 기록들이지만 그것이 세월을 두고 쌓이게 된다면 대단한 자료가 된다. 일이십년만 쌓여도 대단한 것인데 그것이 수백년 동안 쌓였다면 그 가치는 말로할 수 없다. 전란의 역사 속에서 잃었던 일기들도 많지만 복구되기도 하고, 우연히 전란을 피하기도 해서 쌓여 있는 것이 200년 분량이 넘어가니 그 대단함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방대한 분량을 남기기 위하여 모든 열정을 투자한 왕의 남자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소통이 정치라는 제목답게 이 책은 승정원 일기를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통을 바라본다. 한 부분을 살펴 보자.  

  이날의 모임은 국왕 영조가 평소 커다란 민폐로 인식하던 공인과 시전 상인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하기 위한 자리로, 특히 이 시기 이후 국왕은 자주 공인 등을 면담하면서 그들의 문제들을 바로 해결하고자 했다. 오늘날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도는 모습들이 가끔 TV 화면에 나오긴 하지만, 문제점이 바로바로 해결됐다는 후일담을 들은 기억이 없다. 전통 왕조사회의 단순한 구조와 체제라는 점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영조의 대민 접촉은 분명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구중궁궐에 갇혀버리면, 그야말로 캄캄한 별천지 세상이기 때문에 국왕은 대민접촉을 중요시했던 것이다.(P.67) 

  왕과 백성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날지라도,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갈 수 있는 구중 궁궐이라고 할지라도 세상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세상과 분리되어 소통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는 왕의 자격이 없다. 왕이 백성들을 만나러 가고, 별 효용성은 없지만 신문고라는 제도를 둔 것도, 암행어사를 파견한 것도 결국 소통이라는 정치 철학의 구현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하여 약간이나마 개선이 이루어지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것을 만천하에 알려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어 그들의 불만을 희석시키는 것 또한 고도한 정치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요는 아주 티끌만한 것이라도 소통이라는 가치가 현실에 나타나는 케이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저자의 말마따나 대통령들이 재래시장을 방문한다. 국회의원들이 한표를 부탁하면서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정책을 제시한다.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그 말을 믿으며 반갑게, 혹은 황송하게 악수를 한다. 지지를 약속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그 말을 믿는 것일까? 내가 보기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 기분에 취해 황송하게 악수는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이 아닐까? 되면 좋고 안되면 원래 저래라고 지나가지 않을까? 그동안 오죽 많이 속았으면 이런 말을 할까? 그동안 얼마나 말만 무성했지 소통이 현실이 되지 않았다면 그럴까? 그 자리에서 표를 부탁하며 악수를 하는 사람도, 지지를 약속하면서 악수를 하는 사람도 모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으니 말그대로 소통은 멀리 사라지고 오직 불통만이 남아 있는 답답한 현실이 아닌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사라들에게 소통을 현실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SSM규제문제 같은 정책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반짝하고 지나가는 이벤트성 사업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서 떡볶이 한번 먹고, 순대 하나 먹고 "나는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네, 재래시장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네."라는 농담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이날 결손 가정 아이들을 초대해서 "어린이에 관심이 있네, 혹은 불우한 아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네."라는 농담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급식비 무상이라든지, 세금 감면이라든지, 그라민 은행같은 소액 대출 은행 제도를 만드는 것이 더 소통을 현실화 하는 것이 아닐까? 

  왕의 남자들은 투철하게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이 왕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대통령 옆에도 대통령의 남자들이 있다. 그들이 기록하는 국가 기록은 어떤 식으로 평가를 받을까? 과연 소통의 정치철학을 어떻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을까?  

  지금은 불통을 소통으로, 못살겠다는 몸부림을 북한의 지령을 받고 행하는 불순한 행동으로 둔갑시키는 둔갑술만 난무한다. 전우치도 울고가는 둔갑술이 아니라, 반짝 이벤트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G20같은 대형 이벤트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국민들이 느낀느 불평이 다만 한가지라도 해결되었으면 좋겠다.(코엑스 거리를 막아 놓은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불편함을 가져다 주었는지 알기는 아는 것일까?) 티끌만한 소통이라도 현실이 된다면 좋겠다. 비록 그것이 희망고문이요, 고도의 정치 기술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