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아고라 - 조선을 뜨겁게 달군 격론의 순간들!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몇 가지 법안을 묶어 미디어법이라고 지칭하는 법안들이 논란 끝에 통과 되었다. 여야협상 결렬, 여야 국회 동시 점거, 배후에서 작전지휘하는 국회의장, 일선에서 경호권 발동과 동시에 직권상정하는 국회부의장, 빠른 시간내에 투표하는 한나라당 의원들, 허를 찔릴 야당 의원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등등 국회는 간만에 활발한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곳이 되었다. 물론 활발한 에너지가 넘펴 흐른다고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가르쳐 줬지만.  

  권력의 무상함이랄까? 불과 몇년 전에 헌법 수호라는 명목하에 의장석을 점거하면서수세에 몰렸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제는 법안 통과를 위해서 국회 의장석을 점거하는 공세의 입장이 되었다. 야구처럼 공수 교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짓거리도 참 재미있겠다 생각을 해본다. 미디어법 통과에 맞추어 국회는 우리에게 블랙코미디를 선사해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쪽팔려 못살겠다하고, 어떤 사람들은 국회를 개들이 점거했다고까지 표현한다. 미디어법이 통과되어야지만이 서민경제를 살릴 수 있다,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미디어법이 통과되어야 한다면서 서민경제를 인질로 삼아 국민을 협박하는 한나라당의 오만함과 독선은 민주주의의 죽음을 보여준다. 도대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회의 결정을 다수결의 원칙을 따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주주의라 표현한다면 세상에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 어디있겠는가?  

  각설하고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문득 "그 때도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의 역사에 수없이 많은 논쟁들이 있었는데, 이 논쟁의 마지막이 혹시 이번 국회의 모습같지는 않았을까? 왕을 앞에 두고 문방사우가 날아다니고, 상대방의 수엽과 상투를 잡아 뜯으며 개싸움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즐거우면서도 씁쓸한 상상을 해본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의 주장을 정력적으로 개진하면서 싸운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 국회는 활발한 토론의 장이다. 그러나 토론의 모습이 예송논쟁을 거치면서 보여줬던 서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를 용납하고 의견을 좁혀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없애야 할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성을 보이는 모습, 그리고 자기편의 주장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반성하지 않는 모습, 무슨 수단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모습은 조선의 왕마저도 택할 수 있다며 택군을 이야기했던 서인들의 오만함이 아니던가? 그들의 모습과 다수결의 원칙으로 통과되었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생각이 국민의 생각이요, 자기와 반대하면 빨갱이요 헌법 파괴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한나라당의 모습과 무엇이 닮았는가? 거기에 더하여 박근혜 대표의 기가막힌 낚시질까지 감안한다면 닮은꼴이 아니라 판박이가 아니겠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왕 앞에서 멱살잡고, 상투잡고 수염뽑으며 드잡이질 하다가 왕이 발동한 경호권에 의해서 내시들에게 손발이 잡혀서 끌려나가는 대신들, 아수라장 끝에 바닥을 치우면서 한숨쉬는 상궁들.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 아닐까? 

  조선 아고라, 다음의 아고라를 빗대어 잡은 주제일 것이다. 책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질문한다. "토론이란 소모인가 상생인가?" 그리고 스스로 대답한다. "토론은 상생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는 진짜 토론의 모습이 없다." 그러면서 조선 시대 격론을 소개한다. 한양천도, 공법실시, 1, 2차 예송논쟁, 문체반정 이렇게 다섯가지의 토론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격론들이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충분히 토론을 거친ㄷ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간다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이 논쟁을 보면서 저자의 의도와는 모순되게 묘한 생각을 가져본다. 이 책이 현재 한국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말이다. 

  한성천도 논쟁은 결국, 기득권 세력인 왕과 신하 사이에서 좀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태조와 태종이 신하들을 얼르고 달래서 밀어붙인 일이 아니던가? 흡사 군부독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태조와 태종이 무인출신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억측은 아닐 것이다. 한성천도는 말이 논쟁이지만 사실은 왕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었던가? 국민들의 여러가지 말과 의견을 무시하고 독재를 저질렀지만 다행이도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는 면에서 본다면 어떨까? 

  공법 논쟁은 YS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끝에 시작했지만 그 내용을 보완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린 공법의 시행 과정을 보면서 분명히 필요하지만 외호아 위기를 기점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열어버린 개방은 당연히 부작용이 나타나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법은 오랜 세월토론을 거쳐서 보완했지만 우리는 과연 세계화에 대해서 얼마나 숙고하면서 폐해를 보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가? 

  예송논쟁은 DJ 놈현 MB시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생각으로 숫자와 권력으로 밀어 붙이는 모습, 왕까지도 택했던 오만함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를 밀어붙인 한나라당의 모습은 달마도 너무 닮아 있다. 서인(산당과 한당)과 남인, 북인으로 나누어져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모습은 한나라, 친박연대, 자유선진당과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의 이합집산산과 다를 거이 무엇인가? 

  문체반정은 논쟁이라기보다는 왕의 독단이 아닌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이 아니었던가? 결국 문체반정은 실패로 끝났는데 요즘 MB정권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들, 청와대의 독주. 조만간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편지를 날릴지도 모를일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토론의 부재라는 역사도 돌고 돈다. 토론의 문화가 없다. 현재 한국에서 토론은 상생이 아니라 소모일뿐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토론을 가장한 감정싸움이 아니겠는가? 감정싸움은 서로를 소모시키고 죽이는 일일뿐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감정싸움 끝에 사라져간 인물들이 한둘이었는가? 토론부재의 역사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되풀이 되고 있다. 토론의 장인 아고라가 아니라 아집과 고집과 구라의 아고라만이 한국 사회에 편만해 있다. 토론의 부재, 감정대립, 내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PS 사진의 출처는 연합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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