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 장하준의 경제 정책 매뉴얼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 부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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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 자동차 사태가 꽤 오랫동안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노조원들의 생존권 사수를 지지하는 측과 기업의 손해는 국부의 손해라 생각하면서 회사를 지지하는 측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미 쌍용 자동차 사태는 노조와 회사의 다툼이 아니라 브루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으로, 좌와 우의 이념 투쟁으로 번져 가고 있다. 평택에서 최루액과 볼트, 화염병이 날아다니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면 인터넷에서는 노조와 사측으로, 빨갱이와 꼴통 보수로, 전라도와 경상도로, 민주당 지지자와 한나라당 지지자로 나누어져 서로에게 화염병보다 더 거센 감정의 불길을 지피고 있으며 곤봉이나 너트보다 더 치명적인 촌철을 뱉으며 살인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좌우 우로 갈라진 양 진영들은 서로를 도무지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생존권을 부르짖고 한쪽에서는 국가 경쟁력을 부르짖는 시대에 나는 어찌 해야 하는가? 서로가 국미느이 편이며, 서민이라 주장하지만 도무지 진짜 서민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대중은 정치에 대하여 무관심 해지고 시니컬 해지고 있으며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설득과 토론을 통하여 타협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이기고 죽이고 없애야 하는 적이 되었다. 이런 모습이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전쟁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돌아서서 한마디 욕하고 말았는데 왜 요즘은 이렇게 서로를 죽여야할 필사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까? 

  난 신자유주의를 이것으로 이해한다. 이웃을 이웃이 아니라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대상으로 사물화 시켜버리는 것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 이해한다. 무한경쟁의 논리 가운데에서 단 한번이라도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호의를 베푼다면, 잠시라도 상대방을 이웃으로 생각한다면 상대방은 기꺼이 나를 밟고 올라설 것이라는 두려움을 우리에게 심어주면서 "경쟁은 좋은 것이여."라는 신자유주의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자유는 좋은 것이고, 경쟁은 좋은 것인가? 시장은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손이 되는가? 장하준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의 신화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 그것도 감정적인 제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서 조목조목. 거기에 더하여 단순한 반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책까지 제시한다. 그것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정말 존경해 마지 않는 경제 대통령 박정희의 정책과 치적을 실증으로 들어가면서.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신자유주의를 복음으로 생각하고, 박정희의 유산을 물려받은 한나라당과 MB정권에서 장하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하준을 친박계로 분류해 놓은 것인가? 

  몇십년전 영국에서 대처 수상이 "대안은 없다."라는 말을 모토로 영국의 경제를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게 재편한 일이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레이건이 레이거노믹스를 표방하면서 같은 일을 하였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자들의 사상이 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영미식 경제라는 무한경쟁의 경제체제가 생겨났다. 미국의 꼬봉인 우리나라는 박정희의 뒤를 이어 미국의 인정을 간절히 원하던 전통 노통을 비롯하여, YS DJ 놈현을 거쳐 MB까지 이르는 동안 영미식 경제제도를 착실하게 이식하였다. 그래서 왠만한 경제 관료들은 민영화는 좋은 것이며, 경쟁은 사회를 활력있게 만든다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고용 안정보다는 고용으니 유동성이 더 필요하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하고, 파이가 작으니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면서 4만불 시대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워졌는가? 

  이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하면서 밀어붙이는 방식들이 과연 바른 것인가? 합리적인 것인가? 왠지 이 물음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지는 것은 내가 애국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모순 때문인가?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가는 감정의 골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다시 발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장이 만능이 아닐진대 시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거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히틀러의 등장과 양차 대전을 불러 일으켰던 역사적인 사실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시장에 대한 막연한 희망, 만능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장 때문에 망하게 될 것이다. 쌍용차 사태는 이것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으까? 쌍용차 사태를 어떻게 푸는가에 따라 앞으로 한국이 발전할 것인가 퇴보할 것인가가 결정난다고 보는 것은 너무 무모한 생각인가? 쌍용차 사태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그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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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토 2009-07-23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을 처음 읽을 때, 카테고리를 잘못 설정하셨구나 싶었습니다.
오늘, 일식이 있었구, MB악법은 통과됐구, 저는 술 한잔 했습니다.
이 글, 안 읽고 잤더라면 후회했을 뻔 했습니다.
신자유주의,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 및 경제에 관한 탄탄한 생각이 단단하게 보입니다.
저는 철학도, 정치도, 이념도 잘 모르지만 탄탄한 글은 제법 구별합니다.

대위님이시네요, 남은 군생활 잘 마치시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saint236 2009-07-2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년 전에 전역했구요 사진이 없는 관계로 이 사진을 올려 놓았습니다.^^ 전 기독교인지라 한잔할 수는 없었고요 어제는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한나라당이 보수 꼴통이라 싫은게 아니라 그들이 오만하고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싫어하는데 어제는 오만과 독선의 끝을 본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