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당대비평, 평화네트워크 공동 기획
노암 촘스키 외 지음 / 삼인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9.11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대명콘도에 있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후 함께 모여 라면을 끓여 먹던 중 텔레비전에서 비행기와 충돌하여 무너져 내리는 쌍둥이 빌딩의 마지막 모습을 중계해 주고 있었다. 무슨 영화가 저렇게 다큐멘터리 화면같이 나오냐라며 투덜거리던 우리는 그것이 뉴스 화면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어린 시절 내가 알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빌딩 목록에 이름을 올리던 그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자본주의 제국인 미국의 핵심인 맨하탄에 무너질 것처럼 버티고 서 있던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이 장면을 기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멍한 상황이 지나간 다음, 각자가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세미나가 끝난 다음 주 수업의 모든 주제는 9.11로 모아졌다. 특히 내가 전공하던 윤리는 더욱더 날카롭게 이것들을 분석할 것을 내게 요구하였다.

  몇주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난 또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이다. 물증도 없이 자신들의 심증만 가지고 오사마 빈라덴을 9.11의 배후로 지명하였다. 그리고 오사마 빈라덴을 내 놓지 않는 탈레반 정권을 응징하기 위하여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탈레반 정권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들을 포장하였다. 항구적인 자유를 위하여 독재 정권, 반인권적인 정권 탈레반을 무너뜨리는 거룩한 사명을 미국은 자처했던 것이다. 현격한 무력의 차이는 탈레반 정권을 수도에서 몰아 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소련화 맞장떴던 전력이 있던 사람들이다. 소련을 상대하던 똑같은 전법으로 미국을 상대하기 시작하였고 전쟁이 시작된지 7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다. 다음은 사담 후세인이었다. 대량 살상무기가 테러에 사용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 나는 미국이 북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의 속내는 이라크에 있었다. 사담 후세인은 아버지 부시에게 걸프전에서 얻어맞고 이젠 아들에게 조차 얻어맞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이번에는 얻어 맞는 것으로 부족해서 미국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판결을 받게 되었다. 재판 결과 후세인은 교수형을 당했다. 죄명은 시아파 학살과 쿠르드족 학살이었다.

  이제 미국은 이란과 북한을 조준하고 있다. 특히 이란에 대한 조준은 그 강도가 심상치 않다. 미국에 대하여 더 강경한 북한에 비하여 덜 강경한 이란을 미국이 정조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은 미국에 하등의 쓸모가 없는 땅이나 이란에는 미국에 막대한 부를 안겨줄 석유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중국 포위라는 거대한 전략을 완성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까지 감안한다면 필연코 차지해야 하는 땅이다. 그러나 미국은 결코 이런 자기들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유와 평화라는 빛좋은 선물로 멋있게 포장해 버릴 뿐이다.

  자유와 평화는 미국이 자기들의 대규모 테러를 포장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이 말에 속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이러한 포장지에 의심을 갖는 것은 반민족적이요, 반자유적인 이적행위로 간주되어 버린다. 이미 이 땅에서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요, 우리의 혈맹이요, 형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프간과 이라크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이라크 재건을 위한 인도적인 차원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사실은 미국에게서 무엇인가 단물을 얻어먹기 위함이 아니던가? 어째 하는 짓이 지구촌 양아치 미쿡이 보여주는 모습을 꼭 닮아 있다. 그러니 우리 나라가 미국 똘마니 취급 받는 것이 아니던가?

  진짜 평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면, 자유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탈레반, 오사마 빈라덴, 후세인을 키워주고 그 위치에 올린 사람이 누구인가? 자유라는 미명하에 민간인을 학살하고 굶어 죽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슬로건 하에 록히드 마틴을 비롯하여 미국의 군수산업을 먹여 살리고 세계에 무기를 유통하는 이가 누구인가? 이것을 기억한다면 미쿡의 행위가 여지없이 양아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하여 미국 본토의 안전을 유지하겠다고 한다. 더 강력한 국방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경찰로서의 역할, 두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해 이길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MD체제라는 새로운 장난감을 마련하려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를 해도 스타워즈라는 망상을 버리지 못한다. 맘에 안들면 약속을 파기하면 되지 않겠나, 내가 하는 일에 신경꺼라, 꼬우면 니들도 힘을 키우던가라는 식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해댄다. 그러면서도 평화를 이야기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진짜 평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미국같은 양아치 놀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말이 과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미국의 행동은 양아치 딱 그대로이다. 으슥한 곳에 진치고 있어서 지나가는 동네 꼬마들 불러 삥뜯는 양아치다. 자기보다 강자는 건드리지 않고 약자는 철저하게 우롱하고 빼앗는 양아치이다. 문제는 미국보다 강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미쿡이라는 양아치 형님의 똘마니로 들어서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한 구역 분할받을 것이라는 부푼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니 지구촌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한 일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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