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미국사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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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우파에게는 “우방, 혈맹국가”로 좌파에게는 “제국주의, 오만한 패권주의자”로 불리는 미국! 한국 근대사는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신미양요를 통하여 처음 접촉하게 된 미국은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순간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고, 광복과 동시에 미군정을 시작하여 우리나라를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누었다. 반민족특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일제의 기득권층을 그대로 기용하였으며, 6.25에는 응원군으로서 참전하였다. 군사독재 정권을 승인하여 이 땅에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만들기도 하였고, 김대중을 풀어주라는 압력을 넣기도 하였다. 미순이 효선이 사건, FTA, 광우병, 핵우산, 조기 유학, 원정 출산 등등 한국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이야기하기가 불가능한 곳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동경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심지어는 어린 나이에 조기 유학을 가지만 정작 미국에 대하여 아는 것은 쥐뿔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껏 안다고 하는 것이 아파치, WWF, 헐리우드, 미군 정도일까? 

  제대로 된 미국사에 관한 책 하나 추천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미국사에 대하여 딱딱하게 쓰지도, 그렇다고 날림으로 쓰지도 않았다. 책임감을 가지고 최대한 쉽게 풀어 썼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미국사 교과서라고 하면 제대로 된 평가이려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 필그림 파더스에서부터, 서부개척, 남북전쟁, 1 ? 2차 세계 대전과 대공황,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깊이 들어가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다 다루고 있다. 전문서적으로서는 부족하겠지만 “처음 읽는 미국사”라는 타이틀에 충실하다. 역사 교과서이긴 하지만 어느 개인이 쓴 것이 아니라 전국 역사교사 모임이라는 단체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더 신뢰가 간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려 최대한 노력한 흔적도 보인다. 그렇지만 한국의 비정상적인 우파에게는 빨갱이 도서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미국에 유학을 가거나 혹은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것도 아니고 나처럼 미국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개론서로서 이 책을 한번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책을 읽으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에 대하여 한 가지 생각해 본다. 아무리 모든 것을 끌어다 붙여도 미화할 수 없는 미국 특유의 오만함 말이다. 자기만이 옳고 정의라는 이 오만함은 미국의 건국사 곳곳에 나타난다. 흑인에 대하여, 원주민에 대하여, 그리고 외국에 대하여 미국은 자기가 정의라는 오만함, 지극히 이기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아마도 이것이 오늘날 미국이 세계에서 욕을 먹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루이지애나 주인은 에스파냐, 프랑스, 미국으로 바뀌었지만, 다른 아메리카 땅과 마찬가지로 루이지애나 또한 조상 대대로 살던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그들에게는 아무도 땅값을 치르지 않았다. 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프랑스인들과 미국인들은 원주민들의 존재는 완전히 무시한 채 그들의 땅을 팔고 또 샀다. 원주민들은 마치 그 땅에 살고 있는 동물이나 식물처럼 취급되었던 것이다.
  이후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원주민의 땅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몰려갔다. 원주민들은 오랜 세월 살아왔던 자신들의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했다. 미국의 땅은 그렇게 커져 갔다.(P.150)  

  미국 땅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이주민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위에 인용한 구절처럼 투명 인간 취급하였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무시하고 쫓아낼 수 있는 존재로 여길 뿐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인디언 이주 정책이 시행되었고, 여기에 반대하여 자기 종족의 문화를 지키려는 많은 인디언 영웅들이 나타났다. 미국의 주류들(백인들)은 러시모어 산에 그들의 영웅을 조각하고 영원히 기억하기를 바랐지만 인디언들의 영웅은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버렸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러시모어 기념조각을 바라보는 블랙힐즈에 인디언의 영웅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이 만들어 지고 있는데, 미 정부의 지원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관광수입과 크레이지 호스 재단의 이익금만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왜 이들은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러시모어 산과 마주보고 있는 곳에 말이다. 원래 러시모어 산이 있는 블랙힐즈는 인디언들의 성지로 숭배되는 곳이었지만 금이 발견되면서 인디언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백인들이 차지한 곳이라고 한다. 이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전사한 수우족의 추장이 크레이지 호스라고 한다. 크레이지 호스는 러시모어 산에 조각되어 있는 4명의 대통령과는 다른 것을 의미힌다. 4명의 대통령이 영광스러운 미국을 의미한다면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상은 미국의 오만함과 패자의 설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미국의 영광이란 것은 때론 원주민을, 흑인을, 여성을, 이민자들을 짓밟고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미국이기에 미국은 더 나은 곳을 향하여, 인간이 인간다운 곳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음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 아닐까? 

  그러나 미국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오만하고, 여전히 이기적이다. 흑인을 차별하고, 원주민을 보호 구역이라는 미명하에 감옥에 가두어 둔다. 자신들의 삶만이 문명이라고 하면서 다른 이들의 전통을 파괴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중동을 공격하고, 자기들의 군대를 십자군이라 지칭한다. 원주민을 사냥하듯이 세계 곳곳의 약자들을 사냥하고, 자원을 사냥한다.  

  이런 미국 속에서 크레이지 호스가 응시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희망일까, 절망일까? 미국의 영광일까, 아니면 쇠락일까? 자본일까, 양심일까? 우리는 그를 어떻게 응시해야 하는가?

  또한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핏대를 세워가며 편을 드는 한국에서 우리는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에서 무엇을 봐야할까? 패자의 설움인가, 아니면 당당하게 기억되고 있는 원주민의 자부심인가? 자본주의의 오만함인가, 아니면 역사와 현재 속에 살아 있는 양심인가? 크레이지 호스에 대한 평가는 일단 뒤로 미루고 그의 당당함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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