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범 주간조선 기자 sbkim@chosun.com

 


 

#정치

다시보는 저우언라이 / 이경일 편저/ 우석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두만강·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땅이었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이는 모두 역사학자의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1963년 6월 저우언라이·周恩來)

저우언라이는 1976년 서거 후 30여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중국 인민의 벗’이다. 그의 추도비에는 “총리와 인민이 동고동락해 인민과 총리의 마음이 이어졌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저우언라이가 경고했던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다. 총리와 인민의 마음이 끊어진 것일까. ‘다시보는 저우언라이’는 저우언라이의 조명을 통해 한·중 역사 관계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한다. 1만원

#경제

공산당도 팔아먹는 중국재벌 / 미야자키 마사히로 지음·김현영 옮김/ 모색

중국의 GDP는 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에 이어 세계 6위다. 휴대전화 보급 2억6000만대, 자동차 생산 444만대, 석유소비량 세계 2위. 중국은 세계 중심의 경제 대국이다.

이런 중국은 누가 움직이는가? ‘세계의 공장’ 중국 수출의 52%를 외국계 자본의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그 외국 자본의 34%는 홍콩에서 투자한 것이고 대만(10% 내외), 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 화교가 뒤를 잇는다. 외국 자본의 70%가 해외 화교 자본인 것이다.

‘공산당도 팔아먹는 중국 재벌’은 실제 중국을 움직이는 해외 화교를 비롯한 중국 기업의 연혁과 그 인맥을 정리해 중국 경제의 실태를 검증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권과 자본의 결탁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중국의 재벌들이 공산당을 팔아치우지 말란 법이 있을까. 1만2000원

#역사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 차이위치우 외 지음·김영수 편역/ 들녘

중국 역사상 수많은 모략가들이 흘러 지나갔다. 이들은 중국 역사를 창조해나간 주역이기도 하다.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는 한비자(韓非子)·손무(孫武·손자병법 저자)·측천무후(則天武后) 등 중국을 대표하는 모략가들의 스타일과 특색을 소개했다. ‘모략가’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많이 드는데, 이는 ‘모략’이라는 단어에서 ‘속임수’나 ‘중상’이라는 의미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사회 현상에 대한 인식과 그 인식을 바탕으로 정립해놓은 가치관’이 바로 모략이라고 정의한다. 모략은 삶의 기술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인 것이다. 역사 속 인물에게서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2만1000원

#문화

루쉰의 편지 / 루쉰·쉬광핑 지음·리우푸친 엮음·임지영 옮김/ 이룸

“일주일에 겨우 한 번뿐인 선생님의 (소설사) 강의 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학생이랍니다. 선생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담배연기로 자욱한 중국의 현실이 가엾지도 않으신가요?”

1925년 3월 11일 중국 신문화의 기수였던 루쉰(魯迅)은 베이징여자사범대 학생인 쉬광핑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사제지간이던 둘은 이후 170여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눴고 결혼에 이른다. ‘루쉰의 편지’는 그 중 43편을 골라 실으면서, 당시 삭제됐던 부분을 복원했다. 하지만 단순한 ‘연애 편지 모음집’이 아니다. 격동기 중국을 살아간 남녀의 사상적 논의와 자아 분석이 담겨있으며 루쉰의 인간적 품성이 묻어나온다. 1만7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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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0-26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은래의 말이 인상깊네요. 역시 위대한 사람은 요즘 잔챙이들처럼 놀지는 않는군요.
 
 전출처 : 브리즈 > 표현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글쓰기

                           나이가 들면 옛 생각이 많이 난다고들 하던데, 바쁜 나날들 속에서도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예전에 들었던 음악들을 다시 찾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과거의 나에 대한 태도는 “그때가 좋았어” 식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때는 그랬지” 식이 대부분이다. 즉, 회한이나 그리움처럼 나 자신에게 밀착해 생겨나는 감정보다는 무덤덤함처럼 스스로에게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만나는 허허로움 쪽이다.


  하지만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하는 동안 어찌 아쉬움이나 회한이 없으리. 그때 좀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그때 좀더 용기를 냈었더라면 하는 해묵은 후회의 감정들은 때때로 가슴을 무겁게 한다. 그럴 때면 보통은 담배 한 개피를 피우며 연기에 풀어 날려보내고 말지만, 어떤 날은 담배 한두 개비로는 성이 차지 않아 머릿속이 제법 엉켜들기도 한다. 요즈음처럼 머릿속이 깊어져 생각이 자주 고이는 때는 더 그렇다.


  나는 김훈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김훈의 소설을 두 권 갖고 있는데, 한 권은 어찌어찌 생긴 것이고, 한 권은 읽기 위해서 직접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두 권 모두 책이 생겼던 때에 읽을 시간이 마땅치 않아 읽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니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김훈의 소설을 몇 장 읽었지만, 나는 더 읽어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김훈의 소설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쪽이냐면, 나는 김훈을 산문가로 기억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은 김훈의 첫 책으로, 지난 89년 처음 나왔고,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은 개정판이다. 15년 전에 나왔던 것을 최근 김훈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펴낸 것이다. 다시 펴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은 89년에 나왔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서 시에 관한 부분들만 떼어내 '김훈의 시 이야기'라는 부제까지 달아 내놓은 축약판에 불과하다. 활자 크기가 작았던 당시에도 300쪽을 넘었던 책이기 때문에 분량을 줄이느라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이것을 개정판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책은 책값이 1만1,000원이나 하는 축약판일 뿐이다.


  대략 90년 초에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읽었던 것 같다. 그 전에 문예지와 한국일보 들을 통해 김훈의 글을 알고 있었고, 책을 읽으면서 한 줄 한 줄 김훈의 매끄럽고 아름다운 문장 속에 빠져들었다. 그 문장은 매끄럽되 찬란함을 갈구하지 않았고, 아름답지만 치장의 누를 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매끄럽고 아름다운 문장들 속에 숨쉬는 거센 자의식의 싸움,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지적 성찰이 마음을 오래 끌었다.


  그것은 작가나 시인의 자의식과는 다른, 그러니까 정형화된 형태를 띠지 않는 자의식이었다. 뒤늦게 나는 그것이 지식인의 자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또한 그 속에는 지식인의 자의식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김훈 특유의 자의식이 배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것은 독학으로 문학을 익힌, 즉 혼자 힘으로 세상을 익힌 자의 '죽기살기'였다. 그것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나는 새로 나온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축약판 운운하며 깎아내렸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김훈의 글들은 여전히 내 마음을 움직이며, 절판됐던 책이 다시 나오게 된 것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가령, 김훈이 미당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에 대해 쓴 글은 요사스럽다고 할 만큼 산문(山門)의 율법을 희롱하고 있는데, 그 솜씨는 김훈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는 자신의 글을 통해 독자들을 미당의 시세계가 그리는 신화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는 무의식적 의도가 스며든 결과로 보이는데, 기실 이러한 글쓰기는 김훈의 글 곳곳에서 나타난다.


  김명인의 시릍 통해 동해 바다의 상상력을 짚어보고 있는 글을 보면, 도입부에 동해 한류 이야기가 나온 후 칼날같이 찬 겨울바다에서 투망질을 하느라 손금이 닳아 없어질 지경인 뱃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고 나서 “이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명인의 시들은...”하며 글을 풀어간다. 이 글이 씌어질 당시에 비록 김명인은 뱃사람이 아니라 교사일 뿐이었지만, 김훈은 김명인의 시에 드리워진 바다에 대한 이미지나 상상력 속에서 이러한 생생한 동해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이나 작가가 표현해 놓은 세계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진 후에야 몇 줄의 글을 써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김훈이 독학으로 문학을 익힌, 즉 혼자 힘으로 세상을 익힌 자의 죽기살기로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표현함으로써 익숙해지고, 표현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이해하고 경험한 세계와 그에 대한 성찰인 자신의 글을 합일시키고자 하는 노력 말이다.


  산문의 정의 중 하나로 자신이 이해하고 경험한 세계를 온전히 기록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김훈의 산문은 그러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비단 산문뿐만 아니라 문학의 의미이기도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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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는 명문가 출신이지만 민중이야기 쓰며 봉건 극복"

사계절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벽초 홍명희는 전통과 근대를 바람직하게 종합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전통 문화와 서구의 새 학문에 두루 능했고, 봉건 사회의 최상층 집안 출신이었지만, 왕조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지 않았고, 소설 ‘임꺽정’을 통해 민중 문화를 되살리면서 봉건제의 극복을 지향했습니다. 그는 1920년대부터 좌우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좌우 협동노선을 주창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만해 한용운이 광장설(廣長舌)로 유명했다면, 벽초는 차분하면서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 종용술(從容術)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를 20년 동안 연구해 온 국문학자 강영주 교수(상명대)가 ‘벽초 홍명희 평전’을 펴냈다. 벽초의 문학 세계 연구에 관한 한 가장 권위있는 학자로 꼽히는 강 교수는 “벽초가 1928년 조선일보에 소설 ‘임꺽정’ 연재를 시작한 동기는 당시 학교에서 우리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니까, 일반 대중에게 우리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려고 했던 것”이라며 “벽초는 처음에 소설이 아니라 대중적 역사물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작가로서의 천부적 재능이 드러나 소설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번 평전을 통해 벽초와 가상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벽초의 글과 대담 자료 등을 총동원해 꾸민 이 대담에서 벽초는 ‘임꺽정’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시절의 일화를 공개했다. “내가 신간회 민중대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경기도 경찰부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조선일보사에서 당국에 교섭하여 며칠간 유치장에서 집필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유치장 집필‘인 셈인데 당시 조선일보 기자로 있던 파인 김동환군이 멋있게 표현하느라고 ‘옥중 집필‘이라고 뻥을 친 것입니다.”


▲ “북한을 방문해서 벽초 홍명희의 후손들을 만나보는 것이 꿈”이라는 국문학자 강영주 교수. / 한영희기자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던 벽초는 해방 이후 좌우 양쪽에서 모두 존경받는 명망가였고, 중도파 정당인 민주독립당 대표를 맡았다. 벽초는 1948년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연석회의에 참가했다가 그대로 남아 북한 부수상까지 지냈다. 김일성은 벽초의 환갑 잔치를 성대하게 치러주고, 항상 깍듯하게 모셨다고 한다. 강 교수는 “벽초는 김일성이 나중에 그처럼 비정한 정치인이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북한 지도부의 통일 의지를 믿었다”며 “그러나 벽초는 북한에서 글을 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벽초가 1960년대에 ‘천리마’에 구한 말부터 식민지 시대 초기까지 회고록을 썼지만, 강 교수는 “자세히 읽어보니 벽초의 글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본래 문학에서 ‘사실’을 중시하고 ‘반항정신’을 예찬하는 리얼리스트였던 그는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북한 체제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지 못할 바에는 아예 집필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동시에 강 교수는 “만약 벽초가 남한을 선택했다면, 진보적 정치가였던 조봉암과 비슷한 운명을 겪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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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4-10-2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분이 참 좋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깨고 나오신 분들이요.
아쉽기는 많은 일을 하실만한 분들이 독재자들의 압제에 비참한 운명을 겪으시고,
한국사회의 진보에 힘을 더 보태시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오늘은 좀 길게 쓸 작정입니다. 내내 마음 속에 품어왔던 "욕설"에 대한 못마땅함을 쓰려합니다. 사실 저는 욕을 전혀 입에 담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후배에게 화를 내며 "이런 개자식!" 한 번 했다가 "그럼 우리 아버지 0 0 0씨가 개야?"하며 바로 주먹이 날아온 정도였습니다. 이상하게 제가 아주 가벼운 욕을 해도 상대방은 굉장히 기분 나빠하는 독특한 억양을 지녔나 봅니다.

 

영국에 늦깍이 유학을 다녀 온 한 선배가 징검다리 홈페이지 게시판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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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이곳에서 한국의 청소년들을 상대로 유학연수 비지니스를 시작한 친구와 식사를 함께 했었다. 이 친구는 최근에 한국의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아이들 약 20여명을 모집해서 약 4주동안 이곳에서 영어 연수를 실시한 바 있다.

모처럼 만난 친구의 얼굴이 무척이나 근심섞인 표정이고, 더군다나 목소리까지 쉬어 있었다.

"지난 번 연수는 어땠어?"
"말도 마, 질렸어.. 완죤히 질려 버렸어.."
"무슨 말이야?"
"한국애들한테 완전히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렸다니까!!!"

굉장히 마일드하고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지난 여름에도 약 30여명의 아이들 연수단을 경험하곤 부부가 다 병원신세를 질 정도로 고전한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나는 대충 감을 잡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번 애들도 그렇게 극성이디?"
"말도 말라니깐.."

쉰 목소리에 약간의 짜증까지 섞여 있었다.

"이 아이들을 데리고 westminster사원엘 갔었는데, 한 10명의 아이들이 진입금지지역 안에를 들어가서 천방지축 날 뛰는 바람에 경비원들이 달려오고 그곳에 있는 여행객들 한테 얼마나 면박을 당하고 창피를 당했는지 말이야. 그리고 줄을 서라고 해도 도무지 말들을 들어 먹질 않어. 새치기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툭툭치고 말이야."

이곳에서는 사람의 통행을 멀리서 아주 조금만 방해해도, 정중하게 "sorry"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을 치고, 새치기하고 했다하니 이야기만 전해듣는 나도 얼굴이 화끈 거리기 시작한다.

"그것 뿐인 줄 알어. 위탁 영어 교육 받는 영국학교에 가서는 온갖 악기들을 부숴 버리고, 문짝을 걷어 차고 다니고, 괴성을 질러 대고 하는 통에 그 곳의 교장 선생님으로 부터 이번 위탁 연수가 마지막이라는 통보를 결국 받게 되었지."

나는 좀 의아해서 질문을 던진다.

"네가 너무 무르게 한 것 아니야? 혹은 네 지도력이나 통솔 방법론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구 말이야?"

" 너도 알잖아. 내가 이곳에 온 이래 지난 15년동안 교회학교 선생님으로서는 베테랑이라는 거 말이야. 이곳 한인교회에서 초,중등학생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가르쳐왔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곳에서 크는 애들하고 한국애들 하고는 완전히 달라. 무슨 다른 족속들 같아. 한국의 애들은 무슨 미쳐 날뛰는 망아지 같다니까"

"그리고 왜 그렇게 애들의 말이 거칠어 졌는지 모르겠어. 입만 열었다하면 욕이야. 예컨대, 이년 저년은 욕도 아니래. XX같은 년, X같은 거.. 등등등.. "

그말을 듣자니, 지난 8월 한국으로 돌아간 딸들이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아빠 왜 그렇게 아이들이 욕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어. 말 끝마다 욕이래니까"
나는 말하기를..
"그런 애들하곤 함께 있더라도, 절대 섞이면 안된단다."
"아빠 그럼 놀 아이들 찾기가 힘든 걸"
". . . . . ."

이것이 최근 한국의 어린이들에 대해서 내가 접했던 단면들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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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선일보 청소년학교에서는 절대로 욕을 못하게 합니다. 욕을 하면 몹시 혼을 냅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에게 욕이 얼마나 상대방을 모독하는 언어인지를 일깨우고 가르칩니다. 이제부터 바로 욕설의 본디 뜻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무심코 쓰는 저속한 단어에 대해서도 얘기 하고자 합니다. 중학 때 물상선생님, 대학국어 강사님, 대교출판에서 근무하시던 L 부장님 등의 열강을 통해 우리 욕설의 의미를 많이 깨달았음을 밝힙니다.


[씨팔]

"니미(네 어머니) 씨팔(씹을 할)"이 줄어 "씨팔"만 남았습니다. "니미", "니미랄(럴)", "닝기미"... 다 같은 뜻이죠.  이 함축적인 단어의 본디 뜻은 "너희 어머니와 성관계를 할"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의 "Mother Fucker!!"의 의미와 동일합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패륜적인 행위를 일컫는 이 말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나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좆만아]

"젖"에서 "좆"이 나왔답니다. 그저 남자의 성기를 일컫는 말이 어떻게 하찮다는 의미의 욕이 됐을까요? 저는 "좇만아"라는 욕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디말로 늘이면 "야! 이 쥐좆만한 아이야!"라는 얘기이지요. 본적은 없지만 쥐의 것이 작기는 작을테니까요. 무지막지한 상대 비하 언어입니다.

 

[좆도]

원래 "좆도 방위"지요. 군대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파주 법원리에는 군인을 상대로 하는 술집이 많이 있었답니다. 술집 아가씨들도 군인들을 상대하다 보니 당연히 계급에 민감하겠죠. 어느 날 방위병 한 무리가 술집에 놀러 갔는데 아가씨들이 다짜고짜 "방위 주제에...."하고 깔봤나 봅니다. 화가 난 방위들이 일갈, "(내 처지가 방위지)좆도 방위냐?"

 

[육시랄]

육시 (戮屍)는 부관참시()와 같은 뜻입니다. "육시를 할 놈"이라는 뜻인데 죽은 사람의 관을 쪼개서 다시 목을 베는 끔찍한 처형을 당할 것이라는 지독한 저주의 욕설입니다. "오사랄"과 쌍벽을 이룹니다. 오사 (誤死)는 명(命)대로 죽지 못한다는 역시 저주의 말입니다.

 

[개~]

"개~"라는 접두어가 붙으면 대개 나쁜 것, 하찮은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에게 사랑받는 개가 왜 평가절하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개의 아무데서나 교미하는 모습이 우리 조상들의 눈에 거슬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만두 못한 눔" 하고 욕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엄청난 모욕입니다.

 

[엿먹어라]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좆먹어라"였습니다. 또는 남사당에서 여자의 음부를 가리키는 은어가 "엿"이라고 하는데 역시 마찬가지의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기는 "더럽다"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디 뜻은 "네 성기나 빨면서 가만히 있어"이죠. "조지나"라는 욕설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건 너무합니다.  

 

 

꽤 오래 전에 "비버리힐스 캅"이라는 영화에서 에디머피가 주절대던 "F"로 시작되는 일련의 대사를 듣고 뜻은 잘 몰랐지만 꽤 저속함을 느꼈는데 이젠 우리 오락영화에서 한순간이라도 욕이 안나오면 영화가 되질 않습니다. 욕설이 무슨 서민들의 친근함을 나타내는 언어로 착각하나본데 위에서 밝혔듯이 욕은 그저 남을 심하게 비하하고 저주하는 버려야할 우리의 언어입니다.

욕을 내뱉으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구요? 저는 그저 화장실에 가거나 눈물 한 방울 흘리겠습니다. 

 

* 다른 의견 있으시면 가르치신다는 마음으로 댓글 달아 주세요.

출처:글기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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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아빠가 들려주는 기분째지는 째즈(JAZZ)이야기"

얼마 전에 정동극장에서 끝난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재즈콘서트 제목입니다. 퇴근길에 광화문 지하도 입구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고 아무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음에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몹시 기분이 좋을 때에 "기분이 째진다"는 표현을 씁니다. 뭐가 찢어질까요? 생각해보셨습니까?

무심코 쓰지만 뜻을 알면 남 앞에서 입밖에도 못낼 우리 말들이 너무 쉽게 쓰여지고 심지어는 방송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번 살펴보죠.

 

[빼도 박도 못한다]

엄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부부가 있었습니다. 살림이 궁핍해서 단칸방에서 사는지라 부부관계는 꿈도 못 꿀 지경이었죠. 어느날 시어머니가 외출한 틈을 타 부부는 방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절정에 다다를 무렵 한참 있다가 올 줄 알았던 시어머니가  "에미 뭐하냐?"하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남편이 바로 "빼도 박도 못할 처지"에 처한 것이죠. 

 

[기분 째진다]

변강쇠를 만난 뭇 아낙네들이 아마 자기 몸 상하는 것도 모르고 "기분 째진다"고 외쳤을 것입니다. 시집도 안 간 젊은 처자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표현을 하면 제 얼굴이 다 빨개집니다.

 

[열나게 ~하다]

원래 "좆나게" 또는 "좆빠지게"의 순화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여과 없이 그대로 쓰다가는 20XX년도 우리 나라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표어가 "나게, 빠지게"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해서 좌중의 웃음을 자아낸 적이 있습니다.

 

[박살낸다]

박살(撲殺)이란 말은 형벌에서 비롯되었는데 칠 박(撲), 죽일 살(殺). 글자 그대로 죄인을 때려 죽이는 형벌입니다. 누구를 박살하시겠습니까?

 

[찍쌌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뻑하면 ~한다]

"툭하면 ~한다", 혹은 "걸핏하면 ~한다"가 맞는 말입니다. 우리 사전에는 "뻑하다"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영한사전에 보니 비슷한 발음으로 "Fuck"이 있더군요.

 

[찢어지게 가난하다]

몹시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으면 풀뿌리, 나무껍질 밖에 못 먹죠. 이 섬유질이 뱃속에 쌓여있다가 나올려면 정말 찢어질 수 있답니다.

 

[이런 경을 칠~]

옛 형벌이 또 나오는군요. 이마나 팔뚝에다 "노상방뇨" 하는 식으로 죄명을 문신으로 새겨서 평생을 죄업을 안고 살아가게 하는 비참한 형벌이 바로 경()입니다.

 

*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댓글 달아 주세요.

출처:  글기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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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10-2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흐흐...

stella.K 2004-10-2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