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나의 책읽기 - 01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처음 접하고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천재는 많지만 꾸준한 인간은 드물기 때문이겠지요. "행복한 책읽기"는 김현의 유고집입니다. 아마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 책은 출판되지 않았을 테죠. 이 책은 '김현의 독서일기'라는 부제를 달아도 좋을 책이죠. 그때 제가 그의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요. 어째서 대단하다고 하는지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단하다는 건 변함없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동안 난 뭘 했나 하는 부끄러움에서 오는 충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렇듯 흘러가듯 글을 씀에도 대상의 핵심에 접속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대한 감탄에서 오는 충격이었을 겁니다.

저는 10여년 전 대학에서 저보다 나이어린 동기들과 공부했습니다. 그때 저보다 나이가 서너살 어린 동기 중 하나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형 나이가 되면 분명 형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을 거라"고. "그래, 그렇겠지."라고 말하며 저는 웃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뒤 저는 그 사실을 잊었는데 그는 그걸 잊지 않았더군요. 10여년이 흐른 어느날 우연히 그 녀석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지금 나는 그 때의 형보다 훨씬 더 많이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때의 형보다도 책을 읽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잘난 척이나 하기 위해 이런 글을 끄적이고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책을 읽는가? 누군가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 겁니다. "닥치는 대로 읽어라. 그러다보면 읽는 법이 생길 거다."라고요. 그렇게 답해주면 질문한 이는 마치 제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숨기고 있으면서도 말해주지 않는 양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곤 합니다. "닥치는 대로 읽어라. 그러다보면 읽는 법이 생길 거다."란 말의 핵심이 어디에 있을까요? "닥치는 대로" 혹은 "읽는 법" 아마 아는 분들이 다 아실 겁니다. 이 말의 핵심은 "읽다"에 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애써 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 일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일인지... 깨워놓고 돌아서면 또 드러누워 버리는 게 애들이지요. 하지만 일요일 아침 명작 만화라도 할라치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 TV 앞에 앉는 것이 또한 애들입니다.

좋아서 하는 일도 힘든 법이지요. 하지만 즐기면서 맘 편하게 하는 일은 그만큼 덜 힘듭니다. 책을 읽는 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 제가 책의 맛을 알게 된 것은 나관중의 삼국지 때문이었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 무렵 처음 읽었던 삼국지에 빠져들게 된 것은 삼촌의 권유 때문이었는데, 그 무렵 삼촌은 삼국지를 3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며 삼국지를 권했습니다. 그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어린 제 손으로는 들기도 어려운 삼국지를 벗삼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삼국지를 100여번 가량 읽은 것 같습니다. 재미로 읽다가 중독되어 버린 것이죠. 지금도 삼국지를 붙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시 읽게 됩니다. 아마도 그것이 삼국지의 매력이겠지요.

책은 무엇보다 재미로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책이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요. 가령, 롤스의 "정의론" 같은 책은 재미로만 읽기엔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제게 '정의론'이 다른 책들 가령,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들의 배배꼬인 문장을 읽는 것보다 고통스럽거나 재미없었던 책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지요. 다시 앞의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서 책을 읽는다. 그 행위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 읽을 것인가의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아무 곳에서나 책을 읽고, 아무 곳에나 책을 두고, 특별한 자세 없이 읽습니다. 그렇게 읽어도 기억에 남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실험을 햇다고 하더군요. 1500명의 학생들에게 30장 분량의 역사책을 읽게 하고, 20분이 지난 뒤에 읽은 책에 대해 요약해보라고 시켰더니 단지 15명의 학생들만이 기본적인 주제에 대해 이해하고 있더란 겁니다.

저는 책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또한 책을 기억하기 위해 읽지도 않습니다. 기억하려고 일부러 공을 들여 읽지도 않습니다. 다음은 책 읽기에 대한 몇 가지 오해에 대해 많은 독서가들이 지적한 공통의 내용입니다.

1) 책 속의 모든 단어를 읽어야 한다.
- 앞서 분명히 오해라고 말했음에도 벌써 까먹은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책 속에 수록된 모든 단어를 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책을 읽으며 밑줄 긋고 요약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압니다. 핵심이 무엇이고, 이것을 요약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책도 역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장은 다시 단락으로 구성됩니다. 단락이 모여 하나의 주제 아래 소단원이 되고, 그것들이 모여서 한 장을 이루고, 1부가 됩니다. 그것을 역순으로 풀이해보면 모든 문장, 모든 단어가 중요할리 없겠지요.

2) 한 번만 읽으면 충분하다.
- 저는 극장에서 본 영화는 반드시 집에서 다시 비디오로 봅니다. 인간이 사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50분이라고 합니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죠, 영화의 평균 런닝 타임은 2시간 30분 가량합니다. 그런데 제 경우는 전자오락 할 때를 제외하고는 10분 이상 집중을 못합니다. 영화는 한 장면에 때로 책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에 저는 종종 영화를 보다고 남들은 다 봤다는 중요한 장면을 기억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한 번 본 영화를 두 번 볼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시간 낭비를 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두 번 볼 필요가 없는 책을 샀다면 반품하셔야 합니다. 몇 장 안 되는 동화책도 다시 읽으면 다시 새로운 장면이 등장하곤 합니다.

3) 건너뛰거나 너무 빨리 읽으면 이해력이 떨어진다.
- 계단을 걷다보면 때로 두 개씩 오를 때도 있습니다. 다리 길이만 충분하다면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법은 없지요. 마찬가지로 책을 읽다보면 중요한 대목과 그렇지 않은 대목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100미터를 질주하는 단거리 선수들도 스타트 순간과 스퍼트 순간, 골인 지점에서 힘을 안배한다고 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힘의 안배는 필요한 법이죠.

4) 내가 책을 읽지 못하는 건 빨리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 종종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 꼭 그들의 탓은 아니지만 러시아인들의 악명 높은 이름 때문에 등장인물조차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종종 제 집사람과 영화를 볼 때 제가 짜증내 하는 부분 중 하나는 저도 처음보고, 자기도 처음보면서 왜 저래? 하고 물어보는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매우 친절하게 스토리 라인을 짜맞춰 가기 때문에 제가 답하고 있는 동안 혹은 물어보고 있는 동안 다음 대목에서 작중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장면으로 충실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즉,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읽다보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다음 어느 순간엔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책은 종류에 따라 읽는 템포와 방법을 달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김성동의 천자문을 읽는다고 했을 때 처음부터 꾸준하게 정독하는 방법도 맞을 것이고, 어느 특정 부분부터 읽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 없는 것과 마찬가지요. 하지만 죄와벌을 건너뛰고 읽을 수는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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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중국고전명언사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고전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에게 석학(碩學)이란 헌사를 바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정확한 한자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일생일업(一生一業)이란 말이 낯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을 볼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보다 나은 문화적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된 공로만을 기리기 위한 것은 아닐 게다. 사실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내가 구입한 책은 아니고, 사무실에 굴러다니길래 며칠동안 공들여 읽었던 책이다. 이 책 이전에도 동양고전들을 다이제스트한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 책을 읽어 본 뒤 이 책에 "사전"이란 말이 들어간 것이 공연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에 조금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면(고등학교 때 다 배운다, 기억이 안 난다면 그건 수업을 열심히 안 들은 탓이겠지만) 서양의 고전 전통에 대해서 도표를 그릴 수 있다. 서양의 고전이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결합이고 어쩌고 하는 것 말이다. 헤브라이즘의 고전이라면 역시 성서를 들 수 있을 것이고, 헬레니즘의 고전들이라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메로스, 헤로도투스 그리고 그리스 4대 비극과 같은 책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스토아학파와 스콜라철학, 그리고 르네상스에서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임마누엘 칸트에서 헤겔과 포이어바흐 그리고 20세기의 메타이론이랄 수 있는 칼 맑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신좌파가 등장하기도 하고, 구조주의가 등장하기도 한다. 매우 거친 논법이긴 하지만 서양고전의 맥을 짚어보자면 대충 저와 흡사한 경로들을 밟아온다.

종종 우리 인문학자들 혹은 사회학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엄살은 아니다. 할리우드의 B급 영화들을 보다가 나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도시 뒷골목 삼류인생을 사는 허름한 술집의 바텐더가 어느날 셰익스피어의 한 구절을 멋드러지게 암송해내는 장면을 볼 때 나는 서양 인문학의 전통 혹은 그들의 "교양(Bildung)"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쌓아올려진 것이 아니며 우리들이 서구를 따라가기만 하는 동안엔 결코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이론들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적절한 사례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에 대해 우리가 동아시아 담론을 말할 때 참 맥빠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흡사하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답이 "동아시아? 그런 게 있었냐?"하는 투의 것이거나, "어째서 동아시아냐? 아시아에 한국과 일본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올 때도 매일반이다.(우리들은 잘 모르지만 베트남 역시 대단한 한자문화권이며, 그들도 한시를 짓고, 삼국지를 읽는다) 

중국이 거만하다는 비판을 하고 싶어서 꺼내는 말이 아니다. 최근 동북공정 문제로 인해 우리들의 비윗장이 상해 있는 것과 별개로 중국은 아시아 그 자체이거나, 최소한 그런 자부심을 주장할만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자존심을 보상받기 위해 이 리뷰에서 적당한 이야기들을 끼워넣을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종종 국학 내지는 우리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중국의 학자들에 비해 두 배 혹은 세 배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이 중국의 전통에 따라 공부하기 위해서 그들은 중국의 고전들만 읽으면 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고전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reference book"의 수가 우리에겐 저들보다 더 많아야만 한다.

'모로하시 데쓰지'라는 일본 학자에게도 역시 중국의 고전은 우리 학자들이 느끼는 천애의 절벽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겨준 "대한화사전" 집필은 물론 그 혼자 한 일은 아니다. 일본의 수많은 학자들이 "대한화사전"을 완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모로하시 데쓰지가 "대한화사전"의 집필에 착수한 것은 1929년의 일이었고, 모두 13권으로 완성된 것은 1960년의 일이었다. 무려 30년이 걸린 대역사였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대한화사전"을 만들다 보니 알게 된 지식을 활용해서 만든 책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그리스.로마신화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서양미술사를 함께 공부하지 않을 수 없고,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들을 함께 공부하지 않을 수 없듯이 이런 공부들을 하다 보니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책은 물론 그리스로마신화로 본 서양미술사, 그리스로마신화로 본 그리스 비극 등등의 여러 아이템들이 책으로 엮이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가 오늘날 인터넷을 사용하며 자주 쓰는 "콘텐츠(contents)"란 말, 문화적 인프라를 강화시키는 콘텐츠니 어쩌느니 하면서 사용하는 말이 지향하는 바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전세계가 얼마나 공유하고 있으며 흥미있어 하는가?"를 묻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중국의 나관중이 집필한 "삼국지"는 동양의 고전이다. 이때 고전이란 말은 일정한 존경이 묻어나는 말이다. 국제저작권법에 따르면 작가의 사후 50년간은 지적재산권을 보호받게 되어 있다. 만약 나관중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혹은 사후 50년이 경과하지 않았다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올라있는 "삼국지" 관련 도서 762종 중 태반은 매년 일정한 액수를 중국의 나관중 전담 에이전시에 내야 할 것이다. 물론 인류의, 한 시대의, 한 세계의 문화적 자산을 놓고 돈놀이 셈하듯 이야기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긴 하나, 현재 우리가 말하는 콘텐츠란 것의 의미가 그렇다.

순전히 산업적인 측면에서 고전에 접근했을 때, 오늘날까지 여전히 생명을 잃지 않고 있는 고전의 가치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에 실린 모로하시 데쓰지의 저자 서문은 이렇게 두툼한 책을 쓴 이의 서문 답지 않게 매우 짧다. 이 책의 페이지수가 전부 1,640쪽(거의 목침 두께이다)인 걸을 고려할 때 저자 서문은 불과 1쪽 원고매수로 계산해봐야 200자 원고지로 3장 안팎으로 보인다. 그는 이 짧은 서문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전에 실린 명언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어떤 때는 사람을 가르쳐서 인도하고, 어떤 때는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한다. 고전이 수천 년에 걸쳐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가르쳐서 인도하였고, 때로는 격려하고 위로하였다는 사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책의 저자 자신이 고전을 읽으며 절절하게 느꼈던 소감일 것이다. 앞서 나는 할리우드 B급 영화의 한 토막에서도 셰익스피어가 인용되고, 볼테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영화 혹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고전의 문구들은 인용되지 않을까?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우리들 자신도 이미 부지불식간에 고전의 향기에 취해있기에 그것을 인용하고 말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게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국의 고전들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 좌전, 효경, 충경, 근사록, 소학, 노자, 장자, 묵자, 순자, 관자, 한비자, 손자, 오자, 회남자, 당시선"에 이른다. 낯익은 "논어, 맹자"는 물론 "충경이나 관자"의 경우엔 나로서도 이 책을 통해 처음 듣는 것들이다. 동양의 고전은 그토록 우리들에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사전이면서 사전이 아니다. 이 책은 그간 쏟아져 나온 여러 종류의 "책에 대한 책"들과 같이 우리 시대의 정전(正典)에 대한 선별을 통해 갈고 다듬어진 실라버스(syllabus)이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아마 내가 헌사할 수 있는 최상의 헌사가 있다면 나는 이 책에 그것을 아낌없이 바치고 싶다. 모로하시 데쓰지는 이 책을 엮는데 8년이 걸렸다. 우리가 이런 책을 8년간 똑같이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8년간 꾸준히 읽는 일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8년간 읽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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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 2004-09-14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다른 곳도 없건만은 합쳐 놓으면 왜이렇게 예쁜 거죠??? 흥!

stella.K 2004-09-1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투하시는구나, 한나님. 후후.

마태우스 2004-09-1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정말 광채가 나는군요...

털짱 2004-09-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흑... 저도 심은하를 좋아하니까 이해할게요..가슴은 찢어지지만..ㅜ_ㅜ

stella.K 2004-09-14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 우리 그냥 마태님 심은하한테 줘 버립시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어디 마태님 한분 뿐이겠습니까? 저도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리 좋아하는 걸...ㅜ.ㅜ
 
 전출처 : 바람구두 > 신비의 손, 손의 신비

예전에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보면서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다분히 소설틱한 대사들이 무척이나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 한 대사 때문에 거슬림은 극에 달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형사가 된 설경구와 문소리가 해후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문소리가 그런다.

"너무 많이 변해서 영호 씨 아닌 줄 알았는데, 손을 보니까 영호 씨 맞네요."

너무나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손을 보니. 손을 보니. 도대체 손을 보니 라니.
그런데, 그 날.. 친구들을 만난 날.. 나는 어색한 친구들의 얼굴 대신 고개를 숙여 그이들의 손만 바라봤다.

"너무 많이 변해서 니가 아닌 줄 알았는데, 손을 보니까 니가 맞네?^^"

"나는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의 몸에 부딪혀 불쾌해하는 상대편의 표정을 만나게 되면 며칠 동안 마음이 무겁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두운 기억을 주고 싶지 않다. 상처는 더욱 그렇다. 나 때문에 낯선 사람이 잠시 동안 불행했던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 배수아 <붉은손 클럽> 중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과학자 뉴턴은 어째서 인간의 손에 대해서 그토록 감탄해 마지않았을까요. 우리도 함께 감탄하기 전에 정답이 뻔한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몸 속의 뼈 가운데 4분의 1 이상(27개 x 2)이, 인체의 피부 중 가장 많은 땀샘(1cm당 150개에서 340개 가량)이, 또한 1cm당 천여 개에 이르는 신경종말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의 쥐는 힘은 평균 40kg에 달하며 평생동안 2천 5백만 번 움직입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흔히들 "진화의 첫 걸음"이니 하는 표현과 같이 인류를 영장류와 구분하는 것으로 '직립 보행'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한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직립보행은 손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장하기 위해 일어난 일입니다. 자, 잠시 손을 들어 자기 눈  앞에 갖다 대봅시다. 손을 한 번 좌악 펴보시죠. 그리고 약간만 오므려 보세요.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볼록하게 살이 솟아오른 게 보이나요. 얼핏 생각해보면 별 쓸모 없는 살 덩어리같지만 이것은 우리가 과거에 네 발로 걸어다니던 흔적입니다. 그럼, 계속 손을 살펴보죠. 엄지손가락이 보이죠. 뉴튼은 어째서 엄지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고 말했을까요. 엄지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되묻고 싶은 분들은 당장 펜을 쥐고 엄지 없이 글을 써보시도록, 그리고 엄지 없이 물건을 잡아보도록 노력해보세요. 엄지 없는 손은 한쪽 집게가 떨어져 나간 것과 같습니다. 엄지는 다른 손가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벌리고 모으고, 굽히고 펴고,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회전하는 모든 일들을 자유자재로 해냅니다. 실제로 인간의 손이 하는 모든 일 중에서 45%의 일을 엄지가 해내고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가 "넘버 원"이라며 감탄할 때 엄지손가락을 자랑스럽게 일으켜 세우는 이유를 아시겠죠. 인류를 제외한 다른 영장류들에게도 엄지는 있습니다.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도 엄지를 갖고 있죠. 그러나 이들의 엄지는 검지에 비해서 매우 짧고 실제로는 그 용도를 다하지 못하는 장식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엄지는 다른 손가락들로부터 독립해 나머지 손가락들과 마주보는 형태로 진화해 나갔습니다. 영장류는 물론이요, 인간의 손가락 중에서도 다른 손가락들과 자유자재로 만날 수 있는 손가락은 엄지밖에 없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지금 당장 시도해보세요. 엄지만이 인지(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과 자유자재로 만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바로 옆에 붙어 있더라도 만남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1백 75만년 전 인류는 단순하게나마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손을 사용해 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류의 두뇌는 커졌고, 발달한 두뇌는 손의 쓰임새를 좀더 향상시키게 되었습니다(만약 스필버그의 영화 처럼 머리만 비대하고 손의 쓰임새가 자유롭지 못한 외계인을 발견하거든 약간 의심할 필요가 있겠죠). 우리가 흔히 수상학이나 운명의 신비를 살피기 위해 보는 손금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를 내리자면 '손바닥 피부가 속에 있는 근막과 단단히 붙은 구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손금은 손의 진화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화석이기도 하죠. 손바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요 손금은 생명선, 두뇌선, 감정선인데 생명선은 엄지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패는 피부 돌쩌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감정선은 새끼손가락 밑에서 시작해 집게와 가운데 손가락 사이로 이어지죠. 감정선과 두뇌선은 약간 간격을 두고 벌어져 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는 이 감정선과 두뇌선이 갈라져 있지 않고 일직선으로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집게손가락(인지)이 독립성을 가진 반면 영장류의 집게손가락은 다른 손가락들과 함께 움직이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손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시죠. 감정선과 두뇌선이 붙어 있다면 당신의 손금은 인간이 아닌 '원숭이형 손금'인 셈입니다.(이런 손금형을 가진 사람은 전세계 인구의 0.4% 정도라니까, 당신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죠. 다운증후군 환자들의 경우 이런 손금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범죄 수사 연구에서 지문은 범인을 밝혀내는데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 이유는 잘 아시듯 지문은 평생 변치 않는데다가 같은 지문을 가진 인간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당신을 복제한다 하더라도 그 복제 인간의 지문조차 같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군요.

당신은 왼손잡이인가요, 오른손잡이인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왼손에 대한 터부가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약 20만년 전 구석기 시대 인류가 만들어 쓴 손도끼들을 분석해 본 결과 당시의 원시인들 은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비율이 2:1정도로 오늘날처럼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이진 않았다고 합니다(오늘날엔 전세계를 통틀어 왼손잡이는 전체 인구의 5% 정도인 것으로 추정). 이렇게 왼손잡이가 점점 더 줄어들게 된 까닭은 인류가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하게 되면서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농경생활에 사용되는 농사도구는 공동 소유였을 텐데 이런 도구를 여럿이 돌려가면서 쓰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표준이란 것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표준이 된 것이 바로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죠.

오늘날에도 오른손잡이들은 잘 모르지만 왼손잡이들은 확실히 불편하게 문명이 발달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을 열고 닫는 방식이나 기타 여러 도구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말이죠. 야구 선수 베이브 루스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같은 왼손잡이들의 경우, 글러브나 일렉트릭 기타가 왼손잡이용이 없어서 생기게 된 일화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베이브 루스가 야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왼손잡이용 글러브가 없어서 수비할 때 글러브로 공을 잡은 뒤 글러브를 빼고 다시 공을 던졌고, 지미 헨드릭스는 왼손잡이용 기타가 없어서 기타를 반대로 들고 연주했다.)

인터넷상에도 왼손잡이 협회(http://lefthand.or.kr/)와 왼손잡이들만을 위한 용품 매장(http://www.leftland.com/)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어려서부터 은연중에 교육받고 훈련되었던 것은 이처럼 원시시대이래 계속 되었던 "오른손잡이가 되어라.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으리라"는 자기 암시 같은 것이었겠죠.

침팬지들도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므로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억지를 부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류의 진보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결과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죠. 침팬지는 고작해야 나뭇가지를 이용해 개미를 잡아먹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인류는 완전히 새롭게 고안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더 이상 직접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하지 않고, 다만 시장에서 도구를 구입해 이용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의 쓰임새는 좀더 다양해졌겠죠. 『손의 신비』를 지은 네이피어는 "인류는 도구 사용자에서 도구제작자로 진화했다가 지금은 다시 도구 사용자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인류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손을 사용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죠. 자, 우리의 손을 좀더 창조적인 용도로 사용해봅시다.

<200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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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파이어 1
우에수기 카나코 지음 / 대명종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언젠가의 인터넷 써핑을 하나 재미있는 이미지가 있어 이곳 알라딘 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것은 당신은 왜 이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쏠로냐는 것에, 예. 아니오를 화살표 방향대로 따라가 답을 찾는 것이다.  

궁금하면,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530205 를 보라.

거기에 따른 서재 주인장들의 댓글엔 '두려움'이라고 답한 주인장들이 많았다. 나 같은 경우엔 '미숙'이라고 나왔는데, 막연히 짝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만나겠지. 뭐 그런식으로 따라 가다가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난 미숙하기도 하고 두려움도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두려움이 있다고나 할까?  

결혼에 대해 아예 관심없는 것을 제외하면, 결혼을 하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들 것 같다. 가장 좋은 건 어느 한순간 상대에게 그야말로 뿅가서 결혼하게 되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하고, 빠르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기대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좀 더 강해지는데, 그럴 수 있는 확률은 현실적으로 가면 갈수록 희박해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나를 선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건 현실에서 그다지 많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결혼하려고 아둥바둥 거리는 것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히 자존심이 허락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딘가 운명의 짝이 있지 않을까? 나는 항상 이성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길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결혼 상대자를 만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유혹의 기술을 연마하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싶어한다면 미숙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화 '러브 파이어' 한 여자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고 결혼 상대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재치있고 사실적으로 그려간다. 

주인공 다카라는 스물 여덞에 결혼을 안하면 평생 독신으로 살게될거란 어느 정쟁이의 말을 듣고, 독신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좀 황당하지 않은가. 고작 점쟁이의 말을 믿다니. 하지만 이러한 설정도 나쁘지마는 않다. 결혼이란 자기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라고 다들 말하면서도 또 어느 누구는 그래도 몇살이 될 때까지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되지 않을까?

정말 결혼이란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당당히 할 수 있는 것일까? 말은 그렇게해도 막상 현실을 살아가노라면 그렇게 녹녹치는 않을 것이다. 결혼을 하기로 했다면, 어떻게 많은 사람을 만나 보지 않고 좋은 사람을 판별해 낼 수 있는가? 단순히 이상형만 가지고, 쪽지 하나들고 주소 찾아가듯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많이 만나 보는 과정에서 좌절의 아픔도 격고 그러면서 연애 철학자가 되는 것이기도 하겠지.

이 만화책은 총 두권으로 되어있는데, 왜 결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은 나와있지 않다. 그리고 결혼해서 어떻게 살 것이라는 계획도 없다. 그저 오로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그렸을 뿐이다. 거기서 인상적인 건, 주인공 다카라가 이성과의 만남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고 자위하듯 하는 대사였다.

"난 지금까지 인간이란 혼자서 사는 게 편하고 제일 좋은 생활이라고 생각해 왔어...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서 처음으로 알았어. 처음으로 알았어.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있는 게 좋은 것보다 기쁜 일이 많다는 걸."

그렇게 돈을 뜯기고 사기를 당하는 순간 이런 깨달음을 얻는 건 또 뭘까? 그러면서 비록 자기에게 사기친 사람을 오히려 두둔하듯,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만 있는 산노지에게 따귀를 맞자 "여자를 위해서 뭔가를 희생할 용기도 없는  남자한테 맞을 이유는 없어!"라고 절규한다.

어쩌면 연애나 결혼이 어렵다고 말하는 건,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지만, 기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용기가 없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 주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쟁취하려고 한다는 건 좀 유아적 아닌가. 그래도 다카라를 사기친 상대는 비록 목적은 다른 것에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 다카라에게 최선을 다 한다. 나중에 주인공에게 허무한 상처를 줄 망정. 과연 상대에게 최선을 다 한다는 점은 본받을만 하지 않은가?

끝마무리가 다소 싱거운 것 같아도 역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확정하는 순간, 현실에서 정말 이 사람이 내 사람 맞아? 하는 의구심은 가질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믿기로 하는 순간, 옛 애인의 방해 공작도 있을 법하다.

만화는 정말 보여줄 수 있는 한도내에선 충실하게 잘 짚어나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하다보니 주제 의식은 나름대로 있어 보이긴 하지만, 뭔가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인 것 같다. 적어도 진지한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겐 그랬다.

* 만화 리뷰는 처음 써 본다. 만화를 접할 기회가 그다지 않지 않은 나에게  아직 비교하고, 생각하고가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그래도 지난 번 로드무비 이벤트 때 선물 받고 좋은 독서 체험을 하게 돼, 로드무비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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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4-09-13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화를 꽤 좋아하는데 이 리뷰를 읽어보니 마구 읽고 싶어지는데요..^^

설박사 2004-09-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증맞은 표지와는 다른 진지한 서평이네요. ^^

stella.K 2004-09-1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예. 읽어 볼만 합니다.^^
설박사님/오랜만에 뵙겠네요. 제가 좀 그렇습니다. 설익은 진지과라고나 할까요? 하하.

마립간 2004-09-1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을 생각하신다면 <준비된 결혼이 아름답다> (홍일권 저/생명의 말씀사 출판) 도 읽어보세요. (마립간의 평 - 결혼전에 단점을 많이 보고, 결혼 후 장점을 많이 본다. - 결론 결혼 못한다.) 저는 제 자신이 배우자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하다고 느끼면 결혼 상대자를 찾으러 나설 생각입니다. 좋아하다면(사랑한다면) 희생 못 할까?

로드무비 2004-09-1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스스로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하다고 느끼는 날이 과연 올까요?
아무리 양심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도 평생 자신을 회의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지?
아이구참,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건방졌다면 양해해 주세요.
스텔라님, 아유, 세상에 리뷰까지 쓰셨네요.
잘 읽었고요, 스텔라님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아주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stella.K 2004-09-1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그 책 저한테 선물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하하. 농담이어요.^^
로드무비님/어제 졸려서 횡설수설하면서 쓴 흔적이 보입니다요. 그래도 이쁘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마립간님은 이상적이어요. 저도 그렇지만. 로드무비님은 결혼을 하셨으니 현실적인 충고겠죠. 전 왠지 로드무비님 말씀에 한표!^^

바람구두 2004-09-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한 눈에 뿅가서 결혼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까요? 흐흐.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