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신비의 손, 손의 신비
예전에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보면서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다분히 소설틱한 대사들이 무척이나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 한 대사 때문에 거슬림은 극에 달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형사가 된 설경구와 문소리가 해후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문소리가 그런다.
"너무 많이 변해서 영호 씨 아닌 줄 알았는데, 손을 보니까 영호 씨 맞네요."
너무나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손을 보니. 손을 보니. 도대체 손을 보니 라니.
그런데, 그 날.. 친구들을 만난 날.. 나는 어색한 친구들의 얼굴 대신 고개를 숙여 그이들의 손만 바라봤다.
"너무 많이 변해서 니가 아닌 줄 알았는데, 손을 보니까 니가 맞네?^^"
"나는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의 몸에 부딪혀 불쾌해하는 상대편의 표정을 만나게 되면 며칠 동안 마음이 무겁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두운 기억을 주고 싶지 않다. 상처는 더욱 그렇다. 나 때문에 낯선 사람이 잠시 동안 불행했던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 배수아 <붉은손 클럽> 중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과학자 뉴턴은 어째서 인간의 손에 대해서 그토록 감탄해 마지않았을까요. 우리도 함께 감탄하기 전에 정답이 뻔한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몸 속의 뼈 가운데 4분의 1 이상(27개 x 2)이, 인체의 피부 중 가장 많은 땀샘(1cm당 150개에서 340개 가량)이, 또한 1cm당 천여 개에 이르는 신경종말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의 쥐는 힘은 평균 40kg에 달하며 평생동안 2천 5백만 번 움직입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흔히들 "진화의 첫 걸음"이니 하는 표현과 같이 인류를 영장류와 구분하는 것으로 '직립 보행'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한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직립보행은 손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장하기 위해 일어난 일입니다. 자, 잠시 손을 들어 자기 눈 앞에 갖다 대봅시다. 손을 한 번 좌악 펴보시죠. 그리고 약간만 오므려 보세요.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볼록하게 살이 솟아오른 게 보이나요. 얼핏 생각해보면 별 쓸모 없는 살 덩어리같지만 이것은 우리가 과거에 네 발로 걸어다니던 흔적입니다. 그럼, 계속 손을 살펴보죠. 엄지손가락이 보이죠. 뉴튼은 어째서 엄지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고 말했을까요. 엄지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되묻고 싶은 분들은 당장 펜을 쥐고 엄지 없이 글을 써보시도록, 그리고 엄지 없이 물건을 잡아보도록 노력해보세요. 엄지 없는 손은 한쪽 집게가 떨어져 나간 것과 같습니다. 엄지는 다른 손가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벌리고 모으고, 굽히고 펴고,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회전하는 모든 일들을 자유자재로 해냅니다. 실제로 인간의 손이 하는 모든 일 중에서 45%의 일을 엄지가 해내고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가 "넘버 원"이라며 감탄할 때 엄지손가락을 자랑스럽게 일으켜 세우는 이유를 아시겠죠. 인류를 제외한 다른 영장류들에게도 엄지는 있습니다.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도 엄지를 갖고 있죠. 그러나 이들의 엄지는 검지에 비해서 매우 짧고 실제로는 그 용도를 다하지 못하는 장식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엄지는 다른 손가락들로부터 독립해 나머지 손가락들과 마주보는 형태로 진화해 나갔습니다. 영장류는 물론이요, 인간의 손가락 중에서도 다른 손가락들과 자유자재로 만날 수 있는 손가락은 엄지밖에 없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지금 당장 시도해보세요. 엄지만이 인지(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과 자유자재로 만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바로 옆에 붙어 있더라도 만남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1백 75만년 전 인류는 단순하게나마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손을 사용해 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류의 두뇌는 커졌고, 발달한 두뇌는 손의 쓰임새를 좀더 향상시키게 되었습니다(만약 스필버그의 영화 처럼 머리만 비대하고 손의 쓰임새가 자유롭지 못한 외계인을 발견하거든 약간 의심할 필요가 있겠죠). 우리가 흔히 수상학이나 운명의 신비를 살피기 위해 보는 손금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를 내리자면 '손바닥 피부가 속에 있는 근막과 단단히 붙은 구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손금은 손의 진화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화석이기도 하죠. 손바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요 손금은 생명선, 두뇌선, 감정선인데 생명선은 엄지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패는 피부 돌쩌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감정선은 새끼손가락 밑에서 시작해 집게와 가운데 손가락 사이로 이어지죠. 감정선과 두뇌선은 약간 간격을 두고 벌어져 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는 이 감정선과 두뇌선이 갈라져 있지 않고 일직선으로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집게손가락(인지)이 독립성을 가진 반면 영장류의 집게손가락은 다른 손가락들과 함께 움직이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손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시죠. 감정선과 두뇌선이 붙어 있다면 당신의 손금은 인간이 아닌 '원숭이형 손금'인 셈입니다.(이런 손금형을 가진 사람은 전세계 인구의 0.4% 정도라니까, 당신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죠. 다운증후군 환자들의 경우 이런 손금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범죄 수사 연구에서 지문은 범인을 밝혀내는데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 이유는 잘 아시듯 지문은 평생 변치 않는데다가 같은 지문을 가진 인간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당신을 복제한다 하더라도 그 복제 인간의 지문조차 같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군요.
당신은 왼손잡이인가요, 오른손잡이인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왼손에 대한 터부가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요? 약 20만년 전 구석기 시대 인류가 만들어 쓴 손도끼들을 분석해 본 결과 당시의 원시인들 은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비율이 2:1정도로 오늘날처럼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이진 않았다고 합니다(오늘날엔 전세계를 통틀어 왼손잡이는 전체 인구의 5% 정도인 것으로 추정). 이렇게 왼손잡이가 점점 더 줄어들게 된 까닭은 인류가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하게 되면서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농경생활에 사용되는 농사도구는 공동 소유였을 텐데 이런 도구를 여럿이 돌려가면서 쓰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표준이란 것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표준이 된 것이 바로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죠.
오늘날에도 오른손잡이들은 잘 모르지만 왼손잡이들은 확실히 불편하게 문명이 발달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을 열고 닫는 방식이나 기타 여러 도구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말이죠. 야구 선수 베이브 루스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같은 왼손잡이들의 경우, 글러브나 일렉트릭 기타가 왼손잡이용이 없어서 생기게 된 일화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베이브 루스가 야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왼손잡이용 글러브가 없어서 수비할 때 글러브로 공을 잡은 뒤 글러브를 빼고 다시 공을 던졌고, 지미 헨드릭스는 왼손잡이용 기타가 없어서 기타를 반대로 들고 연주했다.)
인터넷상에도 왼손잡이 협회(http://lefthand.or.kr/)와 왼손잡이들만을 위한 용품 매장(http://www.leftland.com/)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어려서부터 은연중에 교육받고 훈련되었던 것은 이처럼 원시시대이래 계속 되었던 "오른손잡이가 되어라.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으리라"는 자기 암시 같은 것이었겠죠.
침팬지들도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므로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억지를 부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류의 진보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결과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죠. 침팬지는 고작해야 나뭇가지를 이용해 개미를 잡아먹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인류는 완전히 새롭게 고안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더 이상 직접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하지 않고, 다만 시장에서 도구를 구입해 이용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의 쓰임새는 좀더 다양해졌겠죠. 『손의 신비』를 지은 네이피어는 "인류는 도구 사용자에서 도구제작자로 진화했다가 지금은 다시 도구 사용자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인류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손을 사용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죠. 자, 우리의 손을 좀더 창조적인 용도로 사용해봅시다.
<200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