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의사 얘기: 인기과의 명암

 

 

 

 

 

* 별로 재미는 없고 길기만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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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론

내 동기들이 졸업을 하던 91년, 조그맣게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다. 그해 졸업한 학생들 중 1, 2, 3등이 모두 안과를 지원했던 것.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4등을 했던 친구도 원래 안과를 하려고 했는데 성적에서 밀려 포기를 했다는 말도 들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2년, 모 신문에는 서울의대 졸업생 중 1, 2, 4등으로 졸업한 학생이 안과를 지원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지난 10년간 안과는 인기과의 최정상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안과 외에도 피부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등도 인기가 높아, 웬만큼 성적이 좋지 못하면 지원하지 못한다.


이들 과가 늘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공부를 좀 잘한다 싶으면 누구나 내과를 꿈꿨고, 내과의사야말로 진정한 의사라고 인식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내과에 지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과의 위상은 화려했던 과거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흉부외과 역시 마찬가지다. 심장 수술이라는 지극히 위험한 수술을 담당해 자부심이 높았던 옛날과 달리, 이제 지원자가 없어 할당된 숫자를 채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계 내의 인기판도는 왜 이렇게 달라지는 것일까?


2. 인기판도를 결정하는 요인

1) 돈

인기판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돈이다. 어떤 사람들은 의사들에게 쉬바이쩌 같은 봉사심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의사 역시 남들과 똑같이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에 불과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식당을 열고 싶은 것처럼, 의사들이 돈을 쫓아 움직이는 것은 비난받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일부 의사들은 어려운 관문을 뚫고 의사가 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돈에 더 집착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이런 사람은 어느 직업군에나 있고, 의사라고 해서 특별히 심한 건 아니다.


종합병원에서 월급을 받는 봉직의에 비해 개업의는 훨씬 돈을 잘 벌 수 있는데,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가 인기가 있다면 그건 쉽게 개업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개업을 해도 어지간해서는 망하지 않는다. 눈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는 민감한 장기인데다 한사람당 두 개씩 있고, 2년 전처럼 아폴로 눈병이 돌기라도 한다면 일년치 수입을 한달만에 올릴 수도 있다. 뒤의 두 과는 미용산업이 날로 팽창함에 따라 인기를 얻고 있으며, 보험 처리가 안되는 게 많아 떼돈을 벌기에 적합하다.


반면 내과는 개업이 그다지 쉽지 않다. 옛날과 달리 요즘의 내과는 호흡기내과, 순환기내과, 신장내과같이 세분화가 되어 버렸는데, 종합병원에 취직을 한 경우라면 모를까 개업을 하게되면 자신의 전문성을 별로 살리기가 힘들다. ‘신장내과’로 개업을 한다고 치자. 신장 쪽 환자 말고는 가기가 꺼려지지 않겠는가. 신장 환자가 그다지 많지 않고, 그나마 다 종합병원에 가버리니 굶어죽기 십상이다. 그냥 ‘내과’로 개업을 한 뒤 감기 환자를 비롯해서 모든 환자를 다 보는 이유는 거기에 있지만, 이 경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2) 취직

이런 농담이 있었다. ‘내과의사는 아는 건 많은데 해주는 건 없다. 외과의사는 아는 건 없는데 해주는 건 많다. 정신과는 아는 것도 없고 해주는 것도 없다’

그렇게 해주는 게 많았던, 그래서 내과와 더불어 최고 인기과였던 외과의 몰락은 80년대에 찾아왔다. 오죽했으면 외과의사들이 모여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취직 자리가 보장되지 못해서였다.


다들 알다시피 외과는 수술을 한다. 수술을 하려면 인력이 제법 필요하다. 숙련된 간호사가 있어야 하고, 보조를 할 의사도 필요하다. 레지던트가 교수 수술에 들어가는 건 배우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수술 내내 간을 당기고 있거나 전기로 지져 작은 출혈을 막는 식으로 수술을 돕고자 함이다. 간단한 수술과는 달리, 큰 수술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다. 그래서 외과는 개업을 하기 힘든 과다. 위암 수술만 배운 사람이 개업을 해서 도대체 뭘 하겠는가? 개업을 한 내과의사처럼 감기 환자를 진료하면서 생계를 이을 수밖에. 정체성에 대한 회의는 훨씬 더 크기 마련이다.


해결책은 취직을 하는 것. 자신이 교수로부터 배웠던 것처럼, 종합병원에서 부하들을 가르쳐가며 수술을 하는 게 외과의사들의 공통된 목표다. 하지만 종합병원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고, 먼저 있던 교수가 그만두지 않는 한 일자리는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외과의 속성상 레지던트 숫자가 많은 편이라, 서울대만 해도 일반외과 레지던트의 숫자는 한 년차에 열명이 넘을 정도다. 그러니 전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외과 전문의들이 무슨 수로 다 취직을 하겠는가. 앞날에 대한 불안, 그게 외과 지원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다. 그 결과 90년대 초반, 서울대병원 외과에는 지원자 수가 8명에 불과, 미달 사태를 빚기도 했다.


3) 3D

옛날만 해도 신경외과는 공부를 잘해야 할 수 있는 과였다. 아직도 밝혀야 할 게 너무도 많은 사람의 뇌, 그 뇌를 만진다는 건 얼마나 머리 아픈 일인가. 보람이 있는만큼 신경외과 일은 고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신경외과 레지던트들은 엘리베이터를 못타게 한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엘리베이터만 타면 잠이 들어, 엘리베이터와 더불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결혼을 두 번 한다고. 레지던트 시절에는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다보니 병동 간호사와 대충(?) 하고, 나중에 좀 여유가 생기면 또다시 결혼을 한다는 뜻이다.


3D 업종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건 시대적 대세, 이토록 힘든 신경외과가 인기가 떨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 때만 해도 신경외과를 하겠다는 친구에게는 “안됐다”는 위로의 말이 쏟아졌으니, 지금 신경외과에 남는 사람들은 아마도 의학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흉부외과의 인기 하락도 그게 3D에 속해있는 탓이다. 심장을 멈춰놓고 심장수술을 하는 건 보람도 있고 드라마틱한 일이지만, 문제는 너무 힘들다는 것. 간이야 조금 찢어먹어도 별 지장이 없지만, 심장 수술은 조금만 실수해도 환자의 생명이 왔다갔다 한다. 때에 따라서는 열시간이 넘는 수술을 하기도 하는 흉부외과, 그 긴 시간 동안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요즘같이 편한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그렇게 인생을 살고픈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힘들기로 친다면 해부병리도 만만치 않다. 병리과의 임무는 편안히 앉아서 슬라이드를 보는 거라고 알고 있지만, 수술을 받은 환자의 표본을 다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며, 해야 할 일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수술장에서 지키고 섰다가 떼어낸 조직이 양성인지 악성인지를 즉석에서 판명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악성인 경우 그 주위 장기까지 다 떼어내야 하므로, 환자의 향후 삶이 병리의사의 판독에 의해 결정되는 거다. 환자가 죽기라도 하면 부검을 하는 것도 역시 병리의사의 몫이다. 기생충을 의심한 환자가 있어 병리과 의사인 친구가 부검하는 걸 가서 본 적이 있는데, 평소 연약하던 그 친구가 그때처럼 안쓰러운 적이 없었다. 그러니 병리를 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는거다.


4) 방사선과의 부침

십여년 전만 해도 방사선과는 지원과였다. 하겠다고 손만 들면 레지던트를 시켜 줬으니까. 왜 인기가 없었을까? 개업을 못해서다. X-레이는 환자 진단에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개업을 하겠는가? 그러던 방사선과가 갑자기 뜨기 시작한다. 의학에 있어서 혁명적인 기계 CT와 MRI가 등장했기 때문. 해부해서 보는 것처럼 환자의 단면을 낱낱이 보여주는 이 기계들은 곧 웬만한 규모를 갖춘 모든 병원에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그 기계를 사려면 해당 병원에 전문의 자격을 가진 방사선과 의사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방사선과의 인기는 급격히 올라갔고, 방사선과 의사를 서로 데려가려고 싸우는 광경도 벌어졌다. 90년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선배가 방사선과를 선택한 건 그 상징적인 예였다.


그러다보니 방사선과로 개업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서울대병원의 CT와 MRI가 밀려드는 환자들을 다 소화해 내지 못하던 시절, 그 옆에 최신 장비로 무장한 방사선과가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혜화진단방사선과의원>. 그 병원은 이내 급히 사진을 찍어야 하는 환자들로 미어 터졌다. 보조 의사를 둘, 셋씩 둘 정도로 성황을 이루던 그 병원은 새로 병원장이 된 모 선생님의 정책-밤을 새워서라도 우리 병원서 찍어라!- 때문에 타격을 입긴 했지만, 머리를 잘 쓴 성공적인 병원으로 기억되고 있다.


뜨는 게 빨랐던만큼 몰락도 순식간에 찾아왔다. 인기에 편승해 레지던트 숫자를 정신없이 늘리다보니, 십년도 되기 전에 방사선과의 인기는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병원에 CT와 MRI가 들어오고 나자 더 이상 신규 수요가 필요없었던 것. 방사선과에 지원하는 숫자는 금방 줄어들었다. 대부분 병원의 방사선과가 레지던트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숫자가 적다보니 남은 사람의 업무량도 늘어나는 등 힘든 시절이 몇 년간 계속되었다. 하지만 배출되는 의사가 적다보니 수요가 다시 늘어났고,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호시절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줄을 잘서야 한다’는 말은 의료계에서도 진리다.


5) 마취과 의사는 어떻게 사나?

수술 중 마취를 담당하는 마취과 의사는 당연히 종합병원에 취직해야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랬다. 방사선과가 그랬던 것처럼, 마취과에도 개업은 어려운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다면 종합병원에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산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전신마취는 큰병원에서만 하는 건 아니다. 턱을 깎을 때처럼, 개업을 한 성형외과에서도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일이 늘 있는 것도 아니니, 의사를 고용해서 월급을 줄 여력은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거다. 마취 몇시간 해주고 수십만원을 만진다면 짭짤하지 않는가? 개업을 하는 것처럼 초기 투자도 필요없고, 휴대폰만 있으면 된다니 얼마나 편한가. 요즘에는 그렇게 불확실하게 하는 것보다 오늘은 이병원, 내일은 저병원, 이런 식으로 스케줄을 잡아놓고 사는 의사도 많다. 그 정도면 개업보다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진짜로 개업을 하는 마취과 의사도 있다. 이름하여 ‘통증 클리닉’. 말기암 환자처럼 소생할 가망이 없는 환자를 마약 같은 것을 써가지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곳이다. 취지는 좋지만 이걸 해서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걸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기상조가 아닌가 생각된다.


3. 의료계의 현황과 미래

요즘 경제가 어렵다보니 이런 말이 나돈다. “강남의 성형외과 절반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강남역 주변을 매일같이 배회해 보라. 월 1억을 번다는 ‘원진 성형외과’를 비롯해서 성형외과 간판은 늘 그대로 달려 있고, 새로 생기는 간판도 가끔 보인다.


게다가 병원이 망하는 건 회사가 망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회사는 망하면 빚더미에 오르지만, 병원이 문을 닫는 건 대개 이런 이유다. “이거 벌려면 내가 왜 개업을 했을까? 때려치워야지!” 다시 말해 봉직의가 받는 돈보다 크게 더벌지 못하는 걸 ‘망한다’고 하는 거다. 봉직의는 얼마나 벌까? 의사들 중 월수입을 공개하는 의사가 없으니 나도 말하지 않겠지만, 재벌2세로 행세하는 내 봉급은 전체 의사들 중 하위 30%에 속한다는 게 의사신문의 하나인 <청년의사>의 분석이다. 물론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개업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걸 빌미로 의사들이 다 어려운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것은 부당한 것 같다. 의사들은 “의사 좋은 시절도 다 갔다”라고 말하지만, 다른 직종에 비하면 의사는 아직도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의대의 커트라인이 그렇게 높을 리가 없고, 의사들이 자기 자녀를 곧 죽어도 의사로 만들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보기에 의료계의 문제는 지나친 양극화다. 들은 얘긴데, 모 피부과에서 서울대병원 피부과 4년차들에게 ‘월급을 천만원 줄테니 오라’고 했는데 한명도 안갔다고 한다. 천만원이 적어서 안갔는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류의 얘기들은 3D 업종에서 묵묵히 일하는 다른 의사들의 기를 죽인다. 휘플 수술이라고, 췌장암 같은 거에 걸리면 췌장 뿐 아니라 인근 장기들, 즉 담낭과 십이지장, 위 일부를 잘라내는 건데, 대여섯명이 몇시간 동안 달라붙어 해봤자 받는 돈이 고작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성형외과에서 턱을 깎는 값인 천만원에는 물론이고 쌍거플 수술 비용보다도 적다. 가슴에 식염수를 넣는 게 500만원인데, 밤을 새가며 애를 받아봤자 몇십만원을 받는다면 너무하지 않는가? 그래서 다른 과를 전공한 사람들도 죄다 미용산업에 뛰어들고, 내과나 정신과, 가정의학과도 다이어트 쪽으로 나가고 있는거다.


의료수가는 분명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말을 하면 ‘가재는 게 편’이라고 비난하겠지만, 의료수가는 애당초 너무 낮게 책정되었다. 의사들이 비보험이 많은 쪽으로 몰리는 건 그런 결과고,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일부에서 우려하는대로 3D 업종의 의사는 동남아에서 수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람’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 뇌수술과 심장수술이 중요하다면 그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돈을 벌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3D 업종 의사들이 우대받는 사회, 내가 바라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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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만물은 다 고유의 색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속성을 색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도 고유의 색깔이 있다.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빨강을, 포기하지 않는 낙관주의자에게는 주황을,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초록을 부여한다.

빨강·주황·초록·파랑·보라·노랑, 여섯 가지 색깔을 통해 성공의 바다를 건넌다.

빨강| 자신의 꿈에 과감히 뛰어든다

빨강은 주저하거나 눈치보지 않고 세상의 파도에 몸을 던지는 사람에게서 발현된다.

그의 행동은 거칠고 무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는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다.

그 변화가 처음에는 의도한 대로 커 나가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앞에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길에 들어선 것이다.

빨강은 거칠고 여과되지 않은 에너지다.

밖으로 뛰쳐나가는 원심력이며, 정제되지 않은 태초의 순수함이 있다.

빨강의 힘은 벌거벗겨진 진실이며, 새롭게 태동하는 역동적인 힘이다.

진취적인 정신과 의지, 개척자 정신이 모두 이 빨강과 연결된다.

빨강은 뒷전에 물러서 있지 못한다.

빨강은 이성보다는 열정을 요구하는 모든 종류의 적극성을 상징한다.

주황 |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주황색은 언제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사람에게서 발현되는 색이다.

주어진 모든 것은 일단 긍정하고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주황색을 지닌다.

주황은 밝지만 노랑처럼 눈부시지 않으며, 따뜻하지만 빨강처럼 뜨겁지 않다.

사교적이며 지도적인 빨강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빨강보다 건설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어떤 어려움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같은 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해결하기 쉬운 일일 수도 있다.

다만 사람마다 어려운 일이 다를 뿐. 역경 앞에서 스스로 마음을 놓아 버리지 않고 조용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절망적으로 보이는 순간에도 우리의 혈관 속에는 여전히 생명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

초록 |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간다

초록은 안주하지 않는 정신에서 발현된다.

물이 끊임없이 출렁이며 수평을 잡아 나가듯이, 세상의 움직임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중심에서 떨어져 나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안주하지 않는 정신이란 끝없는 탐욕과 욕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세심함, 조그만 만족에 머물지 않음, 그 어떤 순간에도 목표 의식이 확고함을 말하는 것이다.

초록은 생명을 상징하며, 생명은 성장을 의미한다.

일생을 통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녹색 가지를 한 번도 손에 잡아 보지 못한’ 사람이다.

중국에서는 녹색 장식석인 옥을 가장 아름다운 돌로 꼽는다.

옥은 특별한 생산을 상징한다.

중국의 상징학에 따르면, 옥은 하늘에 사는 용의 정자(精子)로 남성적인 생명력을 의미한다.

개구리는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개구리는 녹색이며 알을 많이 낳는다.

개구리의 알은 인간의 배아를 닮았다.

초록은 미성숙한 시기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는 곧 아직도 향상의 여지가 남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파랑 | 진정 강한 것은 자신 안에 있다

파랑은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강건함에서 비롯된다.

빨강은 힘을 발산하지만, 파랑은 힘을 흡수한다.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이 색은 힘의 근원지이며, 고요한 믿음이다. 움직임이 없지만 늘 먼 곳을 바라보며 힘을 끌어당겨 축적한다.

파랑은 정신적 미덕을 나타내는 색이다.

열정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이 요구되는 곳에는 언제나 파랑이 있다.

용해된 금속의 파란색 화염은 빨간색 화염보다 온도가 더 높다.

파랑은 물리적으로 가장 높은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가시적인 파란 보라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세계로 연결되어 보다 더 강력한 자외선으로 넘어간다.

진정 무한한 것은 내부에 있다.

티벳의 탄트라 불교에서는 파랑이 완전한 의식과 결부된다.

즉 파랑은 명상적 상징의 중심인 동시에 출발점이다.

파랑은 영혼의 더 깊은 영역으로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그 유연하고 조용한 힘은 다른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매력이 있다.

보라 | 이상과 행동이 맞닿은 곳에 성취가 있다

보라는 행동과 이상이 맞닿는 곳에서 생겨난다.

단순히 욕심에서 설정한 목표에서는 보라색이 발현되지 않는다.

보라색은 육체적인 빨강과 정신적인 파랑이 만나서 생겨난다.

감성과 이성이 합일되어 일체의 힘을 발휘한다.

보라처럼 커다란 대립을 하나로 통일하는 색은 없다.

보라는 빨강과 파랑,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합체이다.

보라에는 모든 대립이 녹아 들어 있다.

보라를 만들려고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갈색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빨강에 노랑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갈색이 나오기 때문이다.

보라를 얻으려면 순수한 빨강(마젠타)이 필요하다.

노랑 | 어떤 어려움도 작게 내려다본다

지혜의 색, 장애를 뚫고 나가는 색. 황금색과 통하기도 하는 이 노랑은 깨달음의 색이다.

깨달음은 무한한 지혜를 상징한다.

노랑은 어떤 어려움도 작게 보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노랑은 난관 앞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늘 높은 곳에서 어려움을 내려다본다.

거기에서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지혜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태양을 노랗게 그리곤 하지만, 태양의 빛은 무색이다.

그 강렬한 에너지의 원천을 그저 노랑으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노랑은 모든 색 가운데 가장 밝고 가벼운 색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황금빛 노랑이 지혜를 상징한다.

노랑은 성숙을 나타내는 색이다.

성숙을 나타내는 노랑이 이상화되면 황금이 된다.

황금빛 들판, 황금빛 가을 등등. 중국에서는 황제만이 빛나는 노랑을 누릴 수 있었다.

만일 우리의 머리 속에 ‘반짝하는 생각이 떠오르거나’ 마치 번개처럼 ‘무엇인가를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은 밝은 노랑의 선물이다.

그것은 직관과 깨달음이다.

노랑은 편견이 없고, 도량이 넓고, 영감을 자극한다.

가장 긍정적으로 진동할 때에는 지식과 지혜가 동반된다.


출처 : [Success Par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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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몬스터의 세트장안에서 찍은 박찬욱 감독의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칸에서 수상한 박찬욱 감독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내놓은 작품입니다. '쓰리, 몬스터'는 아시아의 세 감독이

 

옴니버스로 결합한 형태의 영화죠. 박찬욱은 여기서 '컷'이란 40분짜리 중편을 내놓았습니다.

 

 

시사 뒤에 초보 영화기자인 저는 무척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영화는 저를 위로하지 않았고, 각성이라기 보다는

 

뭔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에게 질문을 몇 가지 던졌는데,

 

첫번째 질문은 "당신의 영화를 보고 구토할 뻔 했다. 만족하나"라는 도발적 질문이었죠.

 

그는 "절대 만족못한다"는 귀여운^^ 대답을 하더군요.

 

신문에는 세 감독의 인터뷰를 압축해 놓았습니다. 박찬욱이 한 말은 더 많고, 더 풍성합니다.

 

여기 박찬욱과의 인터뷰를 처음 공개합니다. 그는 구토를 느끼는 관객들에게, '불만'입니다.

 

 

1. 당신의 작품을 보고 구토를 느꼈다. 만족하는가. 만족한다면 이유는?
-만약 만족 못한다면 뭘 느끼게 하고 싶었나.

죽어도 만족 못한다.  내가 원한 반응은 구토가 아니라 '의문'이었다.  저 인물들은 왜 저렇
게 행동하는가, 나라면 저럴 때 어떻게 했을 까, 도대체 저들의 언행은 어디까지가 진심이
고 어디부터 거짓일까, 따위.  [컷]의 키워드는 '딜레마'이다.  내가 만들어온 영화가 죄 그
렇다.  살면서 필연적으로 놓이게 되는 선택의 갈림길.  어느쪽을 고르든 완벽할 수는 없다. 
어차피 하나를 택하면 뭔가 하나는 잃어야 한다.  최선은 없다, 최악만이 겨우 선이다.  당신에게 딜레마 상황이 닥치지 않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철없다. 상황에서 끝내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다행인 줄 알아라. 어디로도 가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니. 딜레마 상황에
끝없이 봉착하면서도 그런 줄 모르는 사는 둔감한 우리의 머리 속에 도덕적 물음표를 생성시키고자 함, 바로 내 목적이다.


2. 세 작품을 기획할 때 당신들이 공감한, 혹은 합의한 키워드는 뭔가.
마지막까지 지니고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 프로젝트의 교집합은 무엇인가.

-35분 전후의 러닝타임.  나는 이를 지키지 못했으므로 할 말 없다. 


3. 당신의 작품을 보고, 증오를 말하고 싶어하는 당신을 발견했다.
그 감정들이 가지는 악마성에 대해 각자 얘기해달라.

-증오는 몹시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사랑의 어두운 이면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은 분리 불가능한 양면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호적인 증오의 관계는 바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증오심의 파괴적인 성격을 직시하지 않고는 우리가 사랑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내의 목을 조르면서 "사랑해, 여보!"라고 중얼거리는 이병헌을 보라. 

 

4. 이 장면만은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감독으로서의 추천이 있다면?

 침입자는 카운트다운하고 아내는 울부짖는다. 메트로놈은 무심하게 박자를 세는데 남편에게는 아내를 구할 용기가 없다.  아내를 구하는 것은 분명 선한 행위일 테지만, 그것은 생면부지의 어린아이를 죽인다는 엄청난 악을 통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선이다.  이 총체적인 카오스야말로 [컷]이 보여주고자 하는 인생의 모습이다.


5. 일상을 살면서 영화보다 더 무서운 현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당신에게 기억나는 그 순간을 얘기한다면.

-아직 김선일이 살아있을 때 파병 입장을 확인해준 한국 정부.


6. 미이케 다카시와 프루트 챈 영화에 대한 당신의 소감은.
-[일본] - 나는 오래된 미이케의 팬이다.  열 편이 넘게 봤다.  그래봐야 극히 일부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악몽이겠지만 샴 쌍동이에게는 따로 떨어져 살아봤다는 체험 그것만으로
사상 최고의 아름다운 꿈일 수 있었다는 이 개념은 정말 미이케적으로 매혹적이다.

[홍콩] - 어떤 초자연 현상도, 원귀나 악의적인 폭력 행위도 없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 경의를 표한다.  공포장르사상, 식인 티브를 가지고 만들어진
가장 우아하고 의미심장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7. 40분 분량은 소설로 치면 중편일 것이다. 어떤가. 이런 옴니버스 영화의 매력과 아쉬운 점은?

-서브 플롯 없이 단일한 이슈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영시간 아닌가.  그 집중도가 매력이다.  내가 좀 헤매더라도 다른 두 편 감독만 잘 해주면 어떻게 좀 묻어서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태한 자세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8. 당신의 열혈 팬들을 제외하고, 이번 당신의 영화에 대해 당신 영화의 투자자들이 기뻐할 것 같은가?

-극장용 장편상업영화를 해온 감독이 단편을 만든다면 그건 흥행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쓰리] 프로젝트는 또 엄연히 상업영화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다 받는다는 거다.  게다가 이번 흥행에 시리즈
자체의 명운이 달렸다고 압박하는 오정완 대표까지 있다.  나 하나 때문에 앞으로 어떤 걸작들이 나올지 모르는 이 시리즈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상황은 극중 영화감독이 처한 것 못잖은 악몽이다.  후속작들은 아직 태어나지 못했지만 현재 임신중이다.  이 태아들이 낙태되지 않고 세상의 햇빛을 볼 수 있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투자자가 아니라 [쓰리3], [쓰리29]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9. 저널에서 요약하는 자신의 소개글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200자 원고지 한 장 분량 안쪽으로 스스로를 소개해 달라.

-우리가 이력서, 자기소개서 쓰기 싫어서 예술가 된 사람이다, 그런 거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어수웅의 영화 가로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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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0-1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 못봤어요. 비디오라도 봐야지

stella.K 2004-10-1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언제 개봉했나요? 상영 기간이 너무 짧아서 언제 뭘하고 내리는지 통 알 수가 없군요. -_-;;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 볼까요?

 

고등학교 시절 저는 집에서 한국일보를 받아봤습니다.

 

그 때 한국일보의 문학담당 기자는 김훈이었고, 당시 대부분의 문청이 그랬듯

 

저도 그의 문학기사와 문학기행의 팬이었습니다.

 

문화부 기자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처음 품은 것도 그 때였죠.

 

95년 신문사에 들어오면서 그 꿈은 현실이 됐고, 99년부터는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화담당 기자지만, 제 6년 간의 문화부 기자 생활 중 가장 오랜 기간은 문학 담당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그를 제대로 인터뷰 했던 건 2001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런저런 인연을 그와 이어오고 있지만,

 

김훈 선배(신문사에서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선배라고 부릅니다^^)는

 

저에게 여전히 어렵고도 친근한 이율배반적인 존재입니다.

 

그 인터뷰 때 저에게 새겼젔던 말이 '6하를 배반한 글쓰기'였죠.

 

6하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신문기사와, 그 원칙 만으로는 품을 수 없는 삶의 진실.

 

그 사이에 갈등하고 고민하며 넘어서려는 욕망이 그의 기사에는 있었던 겁니다.

 

 

엊그제 토요일 밤, 다시 몇몇 문인들과 김훈 선배와 함께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은 선배는,  그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 속에 딸 사랑을 묻어내더군요.

 

그에 관한 이야기는 저와의 겹쳐진 인연 만큼이나 몇 번을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우선 그의 책 중 '밥벌이의 지겨움'에 관한 글입니다.

 

메트라이프 생명에서 얼마전 청탁을 받아 사외보에 실릴 글인데, 제 블로그에 먼저 띄워봅니다.

 

 

건조한 계절입니다. 편집국 제 책상에 꽂혀있는 책들을 훑어가다가 자극적인 제목에 시선이 멈춥니다. 김훈 세설(世說)이라는 부제가 붙은,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 나무 刊)입니다. 집집마다 청년실업자 한 명씩은 존재한다는 2004년의 한국에서, 감히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니요. 하지만 제목만 보고 역정을 내지는 마시기를. 그 안에는 당신의 울컥하는 감정이 오해였음을 증명할, 울림깊은 역설의 문장이 빼곡하니까요.

 

신문기자가 꿈꾸는 역설적 욕망이 있습니다. 6하를 배반한 글쓰기가 그것이죠. 사실 그렇잖습니까. 신문에 나오는 모든 기사는 6하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죠. 구태여 신문방송학 개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에 대한 팩트(fact)가 어떤 사건을 알려주는 기본적인 정보라는 사실은 상식으로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객관성과 명료성을 생명으로 한다"라는 사실은 신문기사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고등학교때 읽었던 신문기사를 통해 해체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에서는 한국일보를 구독하고 있었고, 그 신문의 문학담당 기자는 김훈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기사를 보면서 아, 신문기사를 이렇게도 쓸 수 있겠구나, 나도 신문사에 가서 문학담당기자를 한 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처음 해 봤던 것이죠. 

 

그 욕망은 현실이 됐고, 신문사 문학담당기자가 되어 이 전직 기자를 취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당연히 그 당시의 추억을 담아 질문을 던졌죠. 문학기자로서의 김훈은 6하원칙으로 구성되는 기사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젊은이가 어디서 누구를 찔러 숨지게 했다고 했을 때, 그 팩트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은 도대체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가령 살인의 순간 그 젊은이의 영혼에서 끓어오르던 그 격렬한 분노를 어떻게 기사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진실은 오히려 그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 김훈은 6하를 버렸을 때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고, 그 때 기자생활은 오히려 풍요로웠다고 말했습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은 그의 산문집입니다. 6하를 버린 책이죠. 이제는 소설가로 더 이름났지만 그의 문장은 사실 산문에서 더 빛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요즘 세상에 대한 그의 호, 불호를 문학의 언어로 빚어낸 글들로 채워져있죠. 
어느 한 편을 들지 않으면 몰매를 맞을 듯한 요즘 세상. 하지만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판단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나는 도덕적 존재"라는 확신에 찬 사람을 김훈은 경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필시 누군가를 부도덕 하다고 생각하는 속내를 감추고 있기 마련"이라는 거죠. 그는 스스로를 도덕적 존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부도덕한 존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처절한 제목의 이번 산문집에서 김훈의 글은 크게 네 뭉텅이로 나눕니다.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과 '늙은 기자의 노래', 그리고 '큰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거리에 관한 짧은 기록'이 그것입니다.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과 '큰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가 신문의 문화면에 어울리는 글들이라면, '늙은 기자의 노래'와 '거리에 관한 짧은 기록'은 사회면에 더 어울리는 글들이죠.
그동안 김훈에 관해 "삶에 관한 도저한 허무주의"라거나 "세상과의 불화"같은 수식어들이 도드라졌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선입관이 굳어져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짧은 글들로 묶인 이번 산문집에서는 갑년에 이른 장년이 자신 후배세대의 젊음을 부러워하며 그 싱싱함을 찬양한 글도 종종 눈에 띕니다.

분위기를 잠깐 바꿔, '노출'이라는 제목의 유쾌한 산문을 한 번 추천해보고 싶군요. 지나간 여름을 추억하는 의미에서라도요.
"몸을 드러낸 여자들은 도시의 여름을 긴장시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산문은 바로 여자들의 여름 패션 중 '탱크탑'에 관한 예찬론입니다. "탱크탑에 핫팬츠로 강렬하게 몸매를 드러낸 여자가 저쪽에서 걸어올 때 더위에 늘어진 거리는 문득 성적인 활기를 회복한다"는 것이죠. 그 때 느끼는 순간적인 아득함은 온갖 정의로운 담론들이 아우성치는 이 황폐한 도시에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자의, 그나마의 즐거움이라는 겁니다.
사실 진보적 자유나 보수적 진실을 절규하는 신문 칼럼을 읽을 때보다 이렇게 노출이 대담한 젊은 여성이 애인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활보하는 모습을 볼 때, 차라리 이 나라의 건강함을 확인할 수 있고, 세상은 아직 기대할 것이 많구나, 하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솔직한 것 아닐까요.
김훈이 보기에 탱크탑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드러낸 패션이라는 겁니다. "드러내기와 감추기 사이에서 가장 긴장된 타협을 이끌어내는 패션이 탱크탑"이라는 거죠. "도발과 평화 사이를 밀고 당기면서 여름 여자들의 노출과 화장도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문장이 독자를 설레게 합니다.
순간 순간 조각처럼 주어지는 시간들, 그의 문장과 함께 다가올 가을을 견뎌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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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학번인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제 주변세대를 중심으로 '문청'에서 '영청'으로 무게중심이 바뀌지 않았는가 하구요.

 

그 때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또래들이라면 다들 '문학청년' 기질을 조금은 갖고 있었는데요,

 

제가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해서는 영화입문서를 함께 읽고 스터디하는게 유행하기 시작했었죠.

 

하지만 그 때만 해도 제가 가진 관심은 문학에 방점이 더 찍혀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아시다 시피,

 

요즘 한국영화가 우리 문화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보면, 정말 격세지감입니다.

 

 

 

그런데, 다시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소설이 죽었다고 하는 시대,

 

그리고 소설이 주는 서사와 이야기는 영상 문화가 거의 완벽하게 대치했다고 하는 시대잖아요.

 

 

그렇다면 소설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결국 소설을 살아남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이죠.

 

너무 비장한가요?

 

 

쿤데라는 '불멸'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설을 쓸 만큼 미친 작가라면, 그리고 자신의 소설을 보호하고 싶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각색할 수 없는 방식으로  써야만 한다네."

 

 

무슨 말일까요.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가 이번에 나온 문예계간지 '문학동네' 가을호를 읽었습니다.

 

서울대 박성창 교수의 '영화가 갈수 없었던, 그러나 문학이 가야만 하는 길에 대하여'라는

 

글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긴 글이었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묘사'와 '에세이적 성찰'이 방법 중의 하나라는 거죠.

 

그리고 예로 든 작가들이 바로 김훈과 배수아였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훈의 소설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문체입니다.

 

가령 '현의 노래'에 나오는 이런 문장,

 

"비화의 날숨에서는 자두 냄새가 났다.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에, 비화의 입 속에서는 단감 냄새가 났고,

 

잠을 맞는 저녁에는 오이 냄새가 났다. 귀 밑 목덜미에는 잎파랑이 냄새가 났고, 도톰한 살로 접히는 겨드랑이에서는

 

삭은 젖 냄새가 났다. 비화의 가랑이 사이에서는 비린내가 났는데, 그 냄새는 초승에는 멀어서 희미했고,

 

상현에는 가까워지면서 맑았고, 보름에는 뚜렷하게 진했고, 그믐이 가까우면 다시 맑고 멀어졌다."

 

후각이 총동원된 이런 묘사는 영상서사의 묘사로는 포착되기 힘든 것이 아니냐는거죠.

 

배수아의 최근 소설도 마찬가집니다. 사건 위주의 내러티브를 진행하던 초기작과 달리

 

배수아의 최근 소설은 엄청나게 관념적이고 분석적이며 사색적인 분위기예요. 박교수의 표현대로 하면

 

'에세이적 성찰'이죠. 영화같은 영상서사가 표현하기에는 근원적인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그의 작품 '에세이스트의 책상'이나 '독학자'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죠.

 

 

문학기자를 거쳐 영화기자를 하고 있는 저로서는 그 생각의 단면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영화가 지배하는 2004년 한국의 문화,

 

그만의 결을 갖춘, 그리고 영화가 도저히 베낄 수 없는

 

 소설 텍스트들이 더 풍성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문화소비자'로서 자신을 규정하고 싶은 독자와 관객들이

 

뿌듯하게 느낄 수 있는 문자텍스트와 이미지텍스트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요.

 

출처:어수웅의 영화 가로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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