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몇 달 전부터 타블로의 학력 허위 논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뭐.. 난 특별히 연예계 뉴스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당연히 처음부터 이 문제를 쭉 관심을 갖고 본 것도 아니기에
내가 뒤늦게 이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 할 게제는 아니다.
그런데 가끔 이와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내용은 이런 거다.
타블로라는 대중가수가 있었다.
왜 그런 의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스탠퍼드라는 미국 서부의 꽤나 이름 있는 대학을
그가 졸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심을 제기한다.
‘그럴 리가 없다’는 의심의 시작.
몇 차례의 논란을 거친 끝에
‘증거를 밝히라’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타블로 쪽에서는 그 대학을 졸업했다는 내용의 문서를 제시했고,
학교 교수의 증언도 나왔다.
이쯤 됐으면 논란이 잦아드나 싶었는데,
여전히 ‘그런 문서들도 조작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중간에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밖에 있는 내 시각으로 보면 이 문제의 본질은
‘당신이 당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요구다.
그리고 이 문제의 밑바탕에는 ‘증거주의’라는 사조가 전제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은 확실한 증거를 통해서만 믿을 수 있다는,
꽤나 독선적인 주장이다. 


 





 





언뜻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것이
뭐가 어렵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논란을 통해 보면 알 수 있듯 이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도대체 내가 나라는 것을 뭘로 증명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공신력이 있는 기관의 증명서를 받아 와도
조작이 아니냐는 의문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또 조작된 문서가 아니라고 해도
그 문서가 증명하는 사람이 ‘나’인 것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
(이는 이번 논란에서도 실제로 등장했던 일이다)
다른 사람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금방 증언한 그 사람의 권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를 물을 수 있고
이제는 증언을 한 사람이 진짜라는 증거를 찾아 헤매야 한다.


뭐가 문제일까?
처음부터 한 인격적인 존재를 비인격적인 증거로
증명해내라는 요구부터가 무리였다.
물론 어떤 사람의 자격과 경력에 대해
합리적인 증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증거주의에 너무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오늘 만난 그, 혹은 그녀가
어제 만난 그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합리적인 증거를
애써 찾아가며 데이트를 하지는 않는다.
또, 오늘 아침 나를 깨워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아주머니가
정말로 내 어머니인지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분석하지 않는다.
그냥 그녀는 내 애인이고, 그 아주머니는 어머니이다.


하지만 ‘증거주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것에 증거가 있어야만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철학적 논의에서는 무한한 회의(懷疑)가 가능할지 모르나
실제 생활에서는 어느 정도의 회의를 넘어서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특히나 인격적인 대상을 증명해 내라는 요구가 그렇다.
물의 분자구조가 H2O라는 것은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진짜 이 사람인지는
그렇게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직관’이라는 요소에 많이 의지한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빨간색을 보면 위험하다고 여기고
또, 처음 보는 모양의 자동차라고 하더라도 몸을 피한다.
그 때마다 이 빠르게 달리는 물체를 피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오래 살기 힘들다.
특히나 인격적인 대상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욱 직관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직관에 의지한 판단과 결정을 하는 사람을 향해
어리석다거나,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여기서 조금 도약해 보면,
고래(古來)로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있는
신 존재 증명, 혹은 신 부존재 증명도 같은 논리로 접근할 수 있다.
신 존재에 대한 철학적이고 사유적인 증명을 시도했던
고대의 변증가들은 제쳐 두고 보면,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증명’은 대개 자연과학적 전제에서 시작된다.
신의 존재를 과학적 근거로 증명해내거나, 부정하려는 것.
하지만 이는 타블로가 ‘다니엘 선웅 리’(그의 미국식 이름)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내거나 부정하려는 시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를 ‘아는(경험한) 사람’은 직관적으로 이를 믿을 수 있겠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은 (그리고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무슨 설명을 해도 그를 믿지 못할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를 잘 아느냐’의 여부고,
이는 직관의 영역이며,
직관은 경험의 축적을 통해 형성된다.


신에 대한 존재 증명도 마찬가지다.
‘그를 아는(경험한) 사람’은 너무나 쉽게 이를 확인할 수 있지만,
경험해 보지도, 알지도 못한 사람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법이다.
모든 주요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신은 ‘인격적’인 존재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인격적 존재는 직관과 경험으로 ‘증명 된다’.


자기들도 평소에 다른 인격적 대상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과학적 증명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유독 신이라는 인격적 대상을 향해서는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은
적어도 공평한 처사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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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0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타블로 사태는 마치 바이러스 증식하는 모양 같더군요.
 

1.먹고 입고 살고 싶은 욕심과 조금은 부족한 재산 

2.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3.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4.남과 겨루어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또 한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5.나의 연설을 듣고서 듣는 사람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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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0-06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핍이 행복의 조건이다 처럼 들리네요 ㅎ

stella.K 2010-10-06 18:37   좋아요 0 | URL
이 어르신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니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ㅎㅎ

BRINY 2010-10-06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뒤집어 말하면, 재산이나 외모가 어느 정도는 되고, 명예, 체력, 말솜씨도 평균정도는 있단 얘기 아닌가요? 힝.

프레이야 2010-10-06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전 행복한 거네요. 조금 불행한 거에요.ㅎㅎ

전호인 2010-10-0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넉넉함과 부족함의 중간!
모든 것과의 뒤틀어짐이 아닌 어울림만 있다면 된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참말로 철학스럽네요.
플라톤, 철학자답다. ㅋㅋ
 
청춘 - Plum Blossom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곽지균
주연 : 김래원, 김정현, 배두나

배두나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 그런 말을 했다. 봉준호 감독이 자신을 발견해 줬고, 곽지균 감독이 연기란 무엇인가를 알게 해줬다. 나 뭐라나. 그리고 곽지균 감독 얘기가 나오자 그녀의 큰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곽지균 감독은 올봄에 타계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호기심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배두나가 이 영화에 큰 의미를 두는 것과 나의 호기심이 무슨 상관이라고 이 영화를 봤을까? 싶다. 그녀가 특이하게 연기를 잘하긴 하지만 내가 그녀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로맨스 영화의 대부라던 곽지균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볼만한 이유가 없는데 봤다는 것.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면 그가 죽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보지 않았을 영화다. 

 

영상은 아름답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늘어지고 암울하다. 무엇보다 감독의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지만 그리고 2000년에 만들어진 영화라지만, 내내 보면서 드는 생각은 감독은 자신의 영화적 화법을 극복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일부러 그것을 고수하려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전자에 더 혐의를 두긴 하지만.  영화는 어찌보면 옛날 방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도 그런 게, 김자효(김래원 분)와 이인수(김정현 분)이 번갈아가며 뇌까리는 "섹스"라는 단어가 진부하고 권태롭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우리의 "청춘"으로 대별되는 단어가 (슬프게도) "섹스"라는 단어 밖에는 없었던 걸까?  어찌보면 이 영화는, 세상이란 자기가 느끼고, 보고, 체험하는 것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다소 자조적인 것을 보여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보통 우리는  성인이 되는 싯점을 고등학교 졸업 전후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때가 되면 성인이 됐기 때문에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며, 섹스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지점이 가장 취약한 싯점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때야 말로 누구를 만나느냐,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세계가 결정되는지도 모르니까. 자효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3학년 그 싯점에서 섹스의 첫 경험을 그렇게 하지만 않았더라도 그의 인생이 조금은 나았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정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첫 경험의 상대였던 정하라(윤지혜 분)는 그가 보는 앞에서 투신 자살을 하고 만다. 정하라 역시도 섹스의 첫 경험을 책임져 줄 줄 알았던 자효가 자신을 피하고 싫어하니 수치와 복수심으로 그같은 무모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니 자효가 성인이 되서 섹스 좀비가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풋풋했던 자효와 수인이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벌써 뭔가에 쩔어있다. 이 비포와 애프터의 연기를 김래원과 김정현은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방황하는 청춘을 나름 잘 연기했다. 하지만 나도 벌써 기성세댄가? '대학이라고 기껏 들어갔더니 저 짓거리 밖에 할게 없군'이란 우리네 부모 세대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뇌까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차츰 보면서 드는 생각은, 흔히 하는 말로 남자는 사랑과 섹스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아가 그것은 그저 사랑없이 섹스한 것에 대한 자기 합리화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란 말이다. 그에 비해 여자는 사랑이 먼저고 후에 섹스라고 말한다. 이것도 알고보면 내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고전적 사고방식이 나은 유언비어는 아닐지? 이심전심이랬다고, 남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여자 역시도 그럴 수 있다. 요즘 자유연애라하여 여성에게 있어 섹스는 예전 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박수도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방탕한 자효가 진짜 사랑을 만날 수 있을런지는 알 수가 없다. 물론 영화의 엔딩은 긍정적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지만, 자효가 섹스만 하고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해 사람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한다면 영화 이후에도 자효는 여전히 방탕한 삶을 살 확률은 여전히 높다. 즉 이말은 그렇게 섹스와 사랑이 별개라고 말하는 이상 누구에게든 진짜 사랑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효와 수인의 자취방에서 그 둘이 나누는 말 그대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늙어도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상 자신의 배우자는 여전히 섹스의 상대자며 익숙한 집안 식구중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렇게 섹스와 사랑을 별개라고 말하면서 마음 저편엔 구원의 여인상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것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인수에게서 보여진다. 그는 고등학교 때 만난 선생님을 잊지 못해 동정의 몸을 나름 꽤 오래도록 유지(?)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 역시 미숙하고 어리석어서 선생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무와 섹스를 하고 그덫에 걸려 버린다. 나중에 선생님과 하룻밤을 지내게 되지만 그땐 이미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살을 하고 만다.  

가끔 영화나 문학은 아는 누가,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죽음을 목도하면 자아를 깨닫고 성숙해지는 것으로 표현을 하곤 하는데, 인수의 죽음이 그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자효에게 그것을 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결말처럼도 보인다. 그것도 사실 자신 스스로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인수의 죽음과 자효를 좋아하는 서남옥(배두나 분)의 적극성이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그렇게 자효의 소극적인 태도로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섹스란 잣대 하나만 가지고 이 세상을 어떻게 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청춘을 사랑 그것도 섹스에만 국한시켜 보여주려 했던 감독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몸은 여전히 청춘인데 20대와 함께 정신은 이미 40대 중후반의 권태로움을 보여준다. 사실 어쩌면 청춘은 뭔가 대단할 것 같아도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인생의 한 과정으로 흘려보내는 것일 뿐. 그런데 자효와 인수는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주저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꽃 같다.

여기서 '무릎팍 도사' 때 배두나가 말했던, 곽지균 감독에게서 로맨스 연기의 정서를 배우게 되었다는데 과연 무엇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빈번히 보여지고 있는 정사 장면은 오히려 저렇게까지 친절할 필요가 있을까? 짜증스러울 정도였다. 특히 그녀는 그 프로에서 정사 장면의 곤혹스러움을 얘기 했었다. 수치스러움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자신이 앞날도 걱정스럽다는 것 까지. 그러면서도 그녀는 일에 있어서의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의 나는 필요 이상의 정사 장면을 보여 준다면, 그것이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떠나서 그것도 일종의 착취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독은 어떻게 하면 베드신을 많이 보여 주느냐, 배우는 얼마나 벗는 영화에 참여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과 예술에 이바지한 정도가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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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초등학교 2학년 때가 생각이 납니다.  

학생들을 꼭 키 순서로 앉히는 건 아닐텐데, 그 때 저는 초등 2년 생 치고 작은 키가 아니어서 한때 맨 뒤에 앉은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감히 언감생심이죠.  저는 그때 이후로 점점 앞으로 앞으로만 앉게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학창시절 키 작다고 맨 앞에 앉아 본적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아무튼 그 시절 맨뒤에 앉아 공부를 했는데, 어느 날,  여느 때와 상관없이 아침에 등교를 했는데 제 책상위에 대접으로 한 대접쯤 되었을 거품이 잔뜩낀 끊긴 국수가락도 보이는 흰 물체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놀라고, 누군지 장난을 쳐도 이렇게 칠 수 있을까? 어린 마음에 적잖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내성적인 성격에 드러내놓고 호들갑 떨지도 못하겠고,  주변의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은 동정 보다는, 네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을 당하느냐는 듯 저를 놀려대기에 바빴습니다. 사실은 그게 더 당한 입장에선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그 아이들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네 책상 이니까 빨리 치우라며 과연 그것을 제가 어떻게 치우나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무슨 오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토사물을 치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몰지각한 놈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범인을 잡을 길은 요원했지만 아무튼 그놈이 치워야 마땅한 거라며 버텼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3학년 선배가 그랬다. 또는 5학년 선배가 그랬다. 말은 많았지만 그것 역시 확실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그렇게 안다고 한들 제가 그 선배를 찾아가, 선배가 그랬으니 치우라는 말도 못할 거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버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책상 위에 아무 것도 올려놓지 못하고 오로지 제 무릎 위와 책상 서랍을 의지해서 수업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누가 이랬어?" 한마디만 하셨고, 그렇게 놀려대던 아이들도 차츰 관심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채로 2교신가? 3교시가 지나갔습니다. 지금이야 2, 3교시 금방 지나가는 것 같아도 어린 아이가 그 시각까지 버틴다는 건 거의 하루종일을 버티는 것과 다를바 없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이 흐르자 어느 하얗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아이가, 저 보기가 딱했던지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레를 가져다 그 토사물을 깨끗히 치워주는 것이었습니다.  편하게 공부하라면서.그 아이는 나와는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고, 그 이후에도 친해질 기회가 없어 그냥 덤덤하게 지냈을 뿐인데, 그날 딱 하루 그렇게 나에게 천사가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린 마음에도 그 친구가 어찌나 고맙고, 미안했던지 꼭 누군가 치워주길 바랐던 것도 아닌데 거의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먹었습니다. 세상엔 이런 아이도 있구나, 하면서.  

제가 또 유치원이라도 좋은데 나왔으면 그럴 때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행동요령을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 유치원에 다녔던 아이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저 역시 초등학교가 처음으로 사회성을 길렀던 곳인데 그 어린 나이에 사회성의 사자라도 제대로 알았겠습니까? 아마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저는 평생 학교는 갈만한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어느 산 속에 암자 하나 지어놓고 살았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냐면, 어제 오늘 그 옛날과 비슷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제 저 <성균관 유생의 나날>을 빌려주거나 그냥 넘겨달라는 페이퍼를 올렸었는데, 아무도 이것에 만족할만한 결과가 없어 섭섭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빌려주겠다는 알라디너가 나와 저의 민망함을 덮어주길 기대했지만 결국 안 되나 보다 마음을 접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h님께서 저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그 전에 사이판의 친구 예를들어 아쉬운 마음을 피력했었는데, 그런 제가 불쌍해 보이셨는지 중고책도 있는데 굳이 새책으로 보내 주셔서 다시 한번 새롭게 민망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책이 저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h님께서는 오히려 미안했는지 제가 읽고 나중에 자신에게 적선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물 받은 걸 그 선물한 분께 다시 적선하는 하는 법은 없는 법. 그것만큼 결례가 어디 있겠습니까? 단, 이 책을 다 읽고 제가 리뷰를 쓸터이니, 제 리뷰를 읽으시고 h님도 저와 같이 읽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ㅎ 

또 한 가지 놀라운 일은, 제가 그렇게 사이판의 도서실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의 얘기를  했을 때 ㅂ님께서 그 친구에게 보내달라며 책을 7권이나 쾌척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ㅂ님께서 가지고 있는 책은 상태가 좋지 않다며 굳이 새책으로 신청해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그 친구에게 새책 같이 상태가 좋은 책을 보내 준적은 있어도 일부러 새책을 사서 보내 준 적은 아직 한번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그 친구가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요?   

정말 이 세상엔 천사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는가 봅니다. 그 어린 날 내가 만났던 웃는 얼굴로 토사물을 치워줬던 친구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 시간 이후로 책상에 책과 공책을 올려놓고 공부한다는 게 이토록이나 편하고 좋은 것인지를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솔직히 그전까지 무릎위에 올려놓고 공부하느라 목이 엄청 아팠거든요.  

갑자기 그 친구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변변히 고맙다는 말도 못한 하얀 얼굴의 그 친구가. 이름도 기억이 안 나고, 이목구비도 기억이 없어 길에서 스쳐지나도 모를 것입니다. 그런 친구가 있었기에 저도 인생 살면서 잠시잠깐 아주 사소한 친절이라도 베풀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저 귀한 책들을 보내주신 두 분을 생각하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지면을 빌어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또한, 함께 걱정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던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고마운 말씀과 죄송하다는 말씀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쉬운 마음에 저만 생각하는 옹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또 어디선가 누구에게 친절을 베풀며 사실텐데 그것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 이제 저는 h님께 약속 드린 바도 있으니 이 책을 읽기 위해 알라딘을 잠시 떠나있겠습니다. 남은 시간도 좋은 시간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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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0-03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아래글부터 주욱~ 읽고서야 이해가 됐어요.
일비일희하고 절망과 희망의 곡선을 타는게 우리네 인생이지요. 뭐~ ^^

stella.K 2010-10-03 16:4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언니는 정말 호호 아줌마 같으세요. 아, 그렇다고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좋은 뜻이라는 거 언니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순오기 2010-10-04 00:43   좋아요 0 | URL
호호아줌마~ 잘 알지요. 우리 큰아이 어려서 늘 보던 프로였어요.
호호아줌마처럼 살 수 있다면 멋진 인생이죠.^^
 
쉐프 1 - 쉐프의 탄생
앤서니 보뎅 지음, 권은정 옮김 / 문예당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갖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 어떤 사람은 가업을 잇기 위해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은 취미로 시작한 일이 밥벌이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끔,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일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게 되는 그런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 보면 되게 부럽다. 아직도 자신이 뭘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 내가 읽은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 먹은 차가운 스프 한 그릇이 그의 영혼을 깨우고, 청년 시절 첫 사랑에 실패하고 뛰어들게 된 쉐프의 길. 이 책은, 그 길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바들을 글로 쓴 것이다.  

사실 나란 사람은, 드러난 것 그 자체를 보기보다 그 이면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어 이 책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이 보뎅 아저씨는 쉐프란 직업을 그다지 점잖게만 쓰지 않았다. 어느 서평에 히스테리컬하고, 곤조 저널리즘의 헌터 톰슨을 떠 올르게 만든다고 했는데, 헌터 톰슨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난 잘 모르겠고, 그 '곤조'라는 말은 이 책에 딱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까발리듯이 썼다는 말이고, 난 그런 그의 정신이 마음에 든다. 

오죽했으면, 우리의 보뎅 아저씨 이 책이 나오고 나서 같은 동종업계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협박전화도 받을 줄(아니 받게 되길 은근히 바란듯) 알았단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재미가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정말 그럴 때 있긴 있다. 어떤 글을 야심차게 써서 블로그에 올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썰렁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건 좀 아냐. 하는 글에 댓글이 몇 십 개가 붙는 경우도 있고. 도무지 모르겠는 게 사람의 마음이긴 하다. 이 까발리듯한 글을 같은 동종업계의 사람이 조용하다는 건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관심이 없거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런데 반대로 대중들로부터는 굉장한 반응과 찬사를 얻었다. 그도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동안 가리워졌던 쉐프의 세계를 현미경으로 보듯 보게 해 줬다는 점을 높이 샀거나, 그동안은 점잖빼듯 요리법만을 알려주거나, 진로지도하듯 요리사가 되는 길을 안내해 주는 그런 책만을 봤다가 '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다'고 열광하거나.  

'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다'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과장된 듯하긴 하다.  이런 류의 책이 있긴 하다. 단지 변주되어 있을 뿐. 어쨌든 솔직하고, 다소는 심술스럽기도한 이 책이 나름 매력적이다.  

사실 쉐프라는 직업도 불 앞에서 또는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다룬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중노동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더구나 나 같은 사람은 먹는 것은 즐겁지만 먹기 위해 만드는 과정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 직업이 마냥 좋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쩌다 TV에서 어느 요리사가 자신의 요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보여주는 깨끗히 다듬어 논 식재료며 기구들을 보면, 저렇게 준비하기까지 뒤에서 얼마나 전쟁을 치뤘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사람 저마다의 성격들이 다 다르겠지만, 쉐프라고 해서 늘 신사적이고 온유하고 부드러울거라는 생각은 이 책을 보면 전혀 들지 않는다. 까칠하고 때론 과격하기도 하다. 그들만이 쓰는 고유 언어 내지는 은어가 존재한다는데, 우리나라 쉐프들은 어떤 언어를 쓸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경우가 있다. 반드시 깔끔한 주방에서 최고의 요리가 나오는 것마는 아니라는 것. 주방은 깔끔해서 요리 또한 깔끔한데 그 맛은 별로인 것과, 주방은 다소 허름하고 만드는 과정도 별로 깨끗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맛있는 음식과. 사람들은 어떤 음식에 손을 들까? 참고로 사람의 오감 중 가장 예리하고 욕망을 자극하는 건 후각이라고 한다.  내가 앞에도 밝혔지만 난 이면을 보여주는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거기서 필요악이란 말도 숨어있고, 통찰도 가능하며, 인간의 내면을 좀 더 관찰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이 나쁘지는 않는데, 딱히 권하기에는 왠지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요리하는 과정을 그리 즐기지 못하는 성격적 결함 때문인지 읽으면서 조금은 지루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쉐프가 우리 한식을 가지고 이런 류의 책을 썼다면 충분히 킥킥대고 읽었을지도 모른다. 이름은 들어봤으나 먹어보지 못한 그리고 쉽게 구해질 것 같지 않은 식재료 가지고 뭐라고 중얼거리니 감 떨어졌다. 난 역시 요리 하나 잘해서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할 팔자는 못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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