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Plum Blossom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곽지균
주연 : 김래원, 김정현, 배두나

배두나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 그런 말을 했다. 봉준호 감독이 자신을 발견해 줬고, 곽지균 감독이 연기란 무엇인가를 알게 해줬다. 나 뭐라나. 그리고 곽지균 감독 얘기가 나오자 그녀의 큰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곽지균 감독은 올봄에 타계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호기심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배두나가 이 영화에 큰 의미를 두는 것과 나의 호기심이 무슨 상관이라고 이 영화를 봤을까? 싶다. 그녀가 특이하게 연기를 잘하긴 하지만 내가 그녀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로맨스 영화의 대부라던 곽지균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볼만한 이유가 없는데 봤다는 것.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면 그가 죽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보지 않았을 영화다. 

 

영상은 아름답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늘어지고 암울하다. 무엇보다 감독의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지만 그리고 2000년에 만들어진 영화라지만, 내내 보면서 드는 생각은 감독은 자신의 영화적 화법을 극복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일부러 그것을 고수하려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전자에 더 혐의를 두긴 하지만.  영화는 어찌보면 옛날 방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도 그런 게, 김자효(김래원 분)와 이인수(김정현 분)이 번갈아가며 뇌까리는 "섹스"라는 단어가 진부하고 권태롭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우리의 "청춘"으로 대별되는 단어가 (슬프게도) "섹스"라는 단어 밖에는 없었던 걸까?  어찌보면 이 영화는, 세상이란 자기가 느끼고, 보고, 체험하는 것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다소 자조적인 것을 보여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보통 우리는  성인이 되는 싯점을 고등학교 졸업 전후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때가 되면 성인이 됐기 때문에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며, 섹스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지점이 가장 취약한 싯점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때야 말로 누구를 만나느냐,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세계가 결정되는지도 모르니까. 자효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3학년 그 싯점에서 섹스의 첫 경험을 그렇게 하지만 않았더라도 그의 인생이 조금은 나았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정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첫 경험의 상대였던 정하라(윤지혜 분)는 그가 보는 앞에서 투신 자살을 하고 만다. 정하라 역시도 섹스의 첫 경험을 책임져 줄 줄 알았던 자효가 자신을 피하고 싫어하니 수치와 복수심으로 그같은 무모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니 자효가 성인이 되서 섹스 좀비가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풋풋했던 자효와 수인이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벌써 뭔가에 쩔어있다. 이 비포와 애프터의 연기를 김래원과 김정현은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방황하는 청춘을 나름 잘 연기했다. 하지만 나도 벌써 기성세댄가? '대학이라고 기껏 들어갔더니 저 짓거리 밖에 할게 없군'이란 우리네 부모 세대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뇌까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차츰 보면서 드는 생각은, 흔히 하는 말로 남자는 사랑과 섹스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아가 그것은 그저 사랑없이 섹스한 것에 대한 자기 합리화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란 말이다. 그에 비해 여자는 사랑이 먼저고 후에 섹스라고 말한다. 이것도 알고보면 내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고전적 사고방식이 나은 유언비어는 아닐지? 이심전심이랬다고, 남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여자 역시도 그럴 수 있다. 요즘 자유연애라하여 여성에게 있어 섹스는 예전 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박수도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방탕한 자효가 진짜 사랑을 만날 수 있을런지는 알 수가 없다. 물론 영화의 엔딩은 긍정적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지만, 자효가 섹스만 하고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해 사람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한다면 영화 이후에도 자효는 여전히 방탕한 삶을 살 확률은 여전히 높다. 즉 이말은 그렇게 섹스와 사랑이 별개라고 말하는 이상 누구에게든 진짜 사랑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효와 수인의 자취방에서 그 둘이 나누는 말 그대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늙어도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상 자신의 배우자는 여전히 섹스의 상대자며 익숙한 집안 식구중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렇게 섹스와 사랑을 별개라고 말하면서 마음 저편엔 구원의 여인상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것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인수에게서 보여진다. 그는 고등학교 때 만난 선생님을 잊지 못해 동정의 몸을 나름 꽤 오래도록 유지(?)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 역시 미숙하고 어리석어서 선생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무와 섹스를 하고 그덫에 걸려 버린다. 나중에 선생님과 하룻밤을 지내게 되지만 그땐 이미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살을 하고 만다.  

가끔 영화나 문학은 아는 누가,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죽음을 목도하면 자아를 깨닫고 성숙해지는 것으로 표현을 하곤 하는데, 인수의 죽음이 그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자효에게 그것을 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결말처럼도 보인다. 그것도 사실 자신 스스로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인수의 죽음과 자효를 좋아하는 서남옥(배두나 분)의 적극성이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그렇게 자효의 소극적인 태도로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섹스란 잣대 하나만 가지고 이 세상을 어떻게 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청춘을 사랑 그것도 섹스에만 국한시켜 보여주려 했던 감독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몸은 여전히 청춘인데 20대와 함께 정신은 이미 40대 중후반의 권태로움을 보여준다. 사실 어쩌면 청춘은 뭔가 대단할 것 같아도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인생의 한 과정으로 흘려보내는 것일 뿐. 그런데 자효와 인수는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주저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꽃 같다.

여기서 '무릎팍 도사' 때 배두나가 말했던, 곽지균 감독에게서 로맨스 연기의 정서를 배우게 되었다는데 과연 무엇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빈번히 보여지고 있는 정사 장면은 오히려 저렇게까지 친절할 필요가 있을까? 짜증스러울 정도였다. 특히 그녀는 그 프로에서 정사 장면의 곤혹스러움을 얘기 했었다. 수치스러움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자신이 앞날도 걱정스럽다는 것 까지. 그러면서도 그녀는 일에 있어서의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의 나는 필요 이상의 정사 장면을 보여 준다면, 그것이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떠나서 그것도 일종의 착취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독은 어떻게 하면 베드신을 많이 보여 주느냐, 배우는 얼마나 벗는 영화에 참여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과 예술에 이바지한 정도가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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