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처럼 경영하라 - 서희태 지휘자가 말하는 하모니를 이루는 조직경영
서희태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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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을 다룰 때 빠지지 않고 말하게 되는 것이 '소통과 화합'이 아닐까? 이건 또 박근혜 정부가 처음 출범시키면서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고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 나라에서 이것만큼 이상적인 캐치프레이즈가 또 있을까? 멋진 것 같긴 하지만 또 한꺼풀 뒤집어보면 그만큼 잘 안 되기에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앞으로 더 지켜보면 알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오케스트라와 경영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곧 경영을 오케스트라에 빗대어 설명한다는 발상은 그도 나름 좋은 시도란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이 소통과 화합이 가장 조화롭게 발현되는 분야가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하지만 그건 또 오케스트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기업은 물론이고,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난 모처에서 뮤지컬 대본을 쓰는 작가로 활동 했었다. 지금은 그 모임에 발을 끊은 상태이긴 한데 그곳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나고 안타깝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 리더라는 사람이 리더다운 모습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팀을 억압하고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고 하는 독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비난과 원성을 샀던 건 물론이고, 그 리더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오히려 자신도 상처 받았다며 속상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니 나름 충격적이기도 하고, 좋은 뜻에서 모임 팀이 리더 하나 잘못 세운 바람에 어찌될지 몰라 지금도 생각만 하면 걱정이 된다. 물론 어느 기관 안에 있는 팀이고, 비영리 모임이니 오늘 있다 내일 없어진다고 해도 크게 손해 날 것은 없다지만, 전에 한 번 그런 쓴 경험을 해 본지라 또 똑같은 일을 겪을까봐 안타까운 것이다. 솔직히 그때는 내가 책임감 같은 것이 그다지 있지도 않아 없어지면 없어지는가 보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미련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때 내가 얼마나 미숙하고, 안일한 생각을 했는가 그 후회는 지금도 두고두고 있던 참이니 그 안타까움은 더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 리더를 보니 새삼 리더십에 대한 지식이나 훈련 없이 리더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위험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사람도 나름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그걸 뼛속 깊이 자기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팀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나 생각들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팀 위에 군림하려 하고 모든 것을 본인이 다 주관하고 통제 하겠다는 자신의 생각으로만 꽉 차 있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그 사람은 일 욕심이 많은 거라고도 볼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정말 가장 안 좋은 리더의 모습이었다.

처음엔 그 사람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상처도 받았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고 보면서 아무래도 리더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의 속성이 편할 때는 생각을 잘 안하게 마련이라고, 어찌보면 이전까지는 이쪽 방면에 대해 깊이 고민을 안 해 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야 워낙에 나의 맡은 일이나 잘 해 보겠다는 생각 밖엔 없었던 사람이고, 또 그러기에 누군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비난하거나 나무라는 정도였을 뿐이니 세상을 참 편하게 살았다 싶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그 리더를 보니 리더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한다 싶다.

솔직히 나는 오래도록 리더라는 것에 별로 생각없이 살았다. 리더가 되면 책임질 일이 많으니 할 수만 있으면 안하고, 피하는 게 일이었는데 이게 또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안일하고 위험한 생각일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감투 쓴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앞서 말한 사람처럼 리더는 뭔가를 지시하고, 통제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지배적이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며, 이런 21세기 최첨단의 시대에서도 그런 리더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리더는 이런 리더는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가? 

지금 우리는 뜻하지 않게도 한 여객선의 침몰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다. 사고의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예견된 인재니 선장과 기관사의 안일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데, 이도 알고 보면 리더로서의 자질의 문제가 아닌가? 

사실 나는 여러모로 리더에 대한 도전이 없어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어느 때부턴가 리더십, 리더십 떠드는 게 못 마땅했다. 리더십 못지 않은 게 팔로우십인데 왜 이것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너도 나도 리더가 되겠다면 팔로워는 누가 하겠는가 나름 앞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즈음 해 보게도 된다. 팔로우는 리더를 앞서지는 않는다. 좋은 리더엔 반드시 좋은 팔로워들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리더다. 이번 여객선 침몰 사건도 첫번째 드러난 양상은 교신이 문제였다. 교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 많은 사상자가 났다고 전하고 있다. 교신은 말하자면 소통을 의미할 것이다. 이 책에도 보면 바이올린 협연자의 바이올린 줄이 끊어졌을 때 연주자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행동 강령에 대해 밝히고 있다. 물론 웬만해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협연자를 돕기 위해 곁에 있는 바이올린 주자가 아낌없이 자신의 바이올린을 빌려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행동 가이드라인이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정해져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선 이런 최소한의 수칙과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아 참사가 더 커졌다는 말이다. 

화합은 뭐였을까? 화합이야말로 팔로워십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진정한 리더의 덕목은  희생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여객선 침몰에서 감투 쓴 리더들에게선 리더다운 면목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남을 구조하고 자신은 산화한 리더 아닌 사람에게서 오히려 진정한 리더다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팔로워십은 뭘까? 팔로워 안에 리더십이 있는 것을 아닐까? 적어도 이들은 샴쌍둥이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솔직히 협연자의 바이올린 줄이 끊어졌을 때 누군가 자신의 바이올린을 빌려주는 희생이 없다면 그 연주회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함께 하는 일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 물론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누구냐, 협연엔 누가 나오느냐가 주요 관건이라 나머지 연주자는 크게 빛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오케스트라의 단원이고 그 무대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갖지 않고  혹시 모르는 일에 희생 정신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오케스트라는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작년에 내가 그 모임을 나오면서 나는 그 리더에게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는 팀장의 직책을 부여받았는데, 팀장은 첫째도, 둘째도, 세째도 팀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야한다고 했다. 사실 그 팀장의 문제는 팀장과 연출이 하는 일을 구분해내지 못해 팀에 혼선을 가져왔던 것이다. 물론 팀장이 연출을 겸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그러나 그 둘 다를 하려는 지나친 과욕이 팀의 안정화를 이루지 못해 문제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 오케스트라와 뮤지컬엔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에는 작가와 연출가, 배우와 작곡가, 안무가, 스텝들이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연출가는 오케스트라에선 지휘자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팀을 총괄하는 팀장은 오케스트라에선 악장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휘자는 단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했다. 연출가도 배우에겐 그러한 존재일 것이다. 나 같은 작가는 작품의 설계를 맡은 사람이고. 

그랬을 때 리더는 팀원들이 서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소통의 다리가 되어주는 사람은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은 앞서 말한 팀장에게 적합한 책인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솔직히 나로선 이 책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저자가 지휘자인만큼 오케스트라나 음악적 지식은 성실히 전달해줘서 좋긴한데, 리더십에 관한 조명은 충분히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냥 좀 적당히 끼워 넣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통섭 얘기 많이 하지 않는가? 오케스트라와 경영의 통섭. 시도는 좋았는데 그다지 균형은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아쉽다.

하긴 제대로 하려면 저자가 경영에 관해 충분히 연구를 했어야 하는데 지휘하기도 바쁜데 언제 조직경영을 공부하겠는가? 그건 또 어찌보면 굳이 따질 건 없지만, 차라리 악장의 몫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지휘자는 말 그대로 단원들에게 연주할 작품에 대해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그래도 그 팀장에겐 적당히 좋은 책 같기도 하다. 나에게 아쉬운 책이라고 해서 남에게도 그러리란 법은 없으니까. 그 사람도 음악은 아니지만 예술쪽 전공분야고 아직 조직경영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것이 없어 보이니 읽기엔 부담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읽을지도 의문이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선물해 줘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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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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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난 김진명 작가에 대한 묘한 편견이 있었다. 글쎄, 그냥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작가에 대한 독자의 열등감 같은 거라고 해 두자. 아니면,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가의 작품엔 문학성이 떨어질 거란 독자가 갖는 보수적인 편견 같은 게 있지 않나? 그런 것을 통해 독자라고 아무 작품이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은근 과시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게 맞는 생각이든 아니든, 김진명 작가는 매니아층이 두텁다는 것엔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작가의 그러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첫 작품이다. 물론 이 책은 전에 한 번 나왔다가 이번에 개정판을 내면서 '신'이라는 글자를 달고 나왔다. 이 전의 책과 무엇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제법이다'하며 읽었다. 

 

무엇보다 문체가 쉬워 읽는데 부담이 없었다. 나이가 드니 머리 써 가면서, 앞뒤 문맥 따져가면서 읽는 책이 부담스러워 졌다. 더구나 추리 소설은 좀 그런 수고를 하게 만들지 않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양파껍질 벗기듯 알아 가는 재미도 있다지만 이쪽에 취약한 나는 꽤나 질기게도 추리 소설을 거부하며 책을 읽어 왔구나 싶다.

 

또한 쉬운 문체면서 논리가 정연하다. 물론 현실에 일어날 확률은 0.0001%도 안 되겠지만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상하에선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황태자비 납치 사건을 주도한 임선규는 또 얼마나 벗있는 사람인가!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막연히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다룬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중국의 난징대학살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까지 다분히 일본의 사과과 시정을 촉구하는 국가적 대명제에 작가는 이 작품으로 보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일본과 동시 출판을 하려했지만 일본 극우파에 의해 일본 출판이 저지됐다고 한다.

 

일본의 황태자비를 납치해서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고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 잡겠다. 확실히 꼼수긴 꼼수다. 엔딩도 나름 만족스럽긴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다분히 계몽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좀 웃기다. 역사는 사실에 입각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계몽적인 기능이 있으면 좋긴한데 왜 문학은 그러면 다소 김이 빠진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난 좀 그랬다. 하긴, 등장인물을 보면 하나 같이 모난 구석이 없다. 다 반듯하다.

 

하다못해 일본측 등장인물도 보면 그들이 역사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든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우리나라가 쓴 만큼 어느 한구석 그래도 좀 나쁜 사람으로 그릴 법도한데 균형이라도 잡듯 반듯하다. 그리고 독자의 열망이 뭔지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어 거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계몽 문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읽으면서 한편 드는 생각은, 지금의 일본 역사의 왜곡과 은폐가 우리나라도 똑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본다. 솔직히 인정을 하고 사죄를 구했을까? 아니면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게 극우적 태도를 취했을까? 그건 아무래도 대대로 내려오는 민족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는 정복의 역사가 아니다. 지키고, 보존하는 성향이 강한 민족이다. 누구는 왜 우리나라 민족성은 좀 정복하는 능동성을 갖지 못했냐고 불평할지 모르겠지만 난 우리나라가 정복과 찬탈의 역사가 아닌 것에 오히려 다행스러움을 느낌다. 물론 대신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었던 질곡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엔 다소 아픔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있는 인정할 수 없는 민족에 내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그 말에 나는 백 번 동감한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일본에 무엇을 크게 바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인정할 것 인정하고, 사죄할 것 사죄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이 세 나라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며 태평양 시대를 열어갈 중심축이지 않는가?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죄할 것을 사죄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지도자는 얼마나 미성숙한 사람들인가?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이 모양인데 그 나라 국민들이 지도자의 무엇을 보며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더구나 자라나는 다음 세대는 과연 자기네 나라가 전혀 남의 나라에 해코지한 적이 없는 깨끗하고 양심 바른 나라라고 정말 굳게 믿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한 가정의 부모도 자식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즉각 사과해야 하는 거라고 올바로 가르치지 않는가?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고 해도 다른 나리 민족의 아이가 그것을 건드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개미가 뚫어놓은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트린다고 그게 그냥 아이들 싸움으로 끝날 수 있을까?

 

세계가 남의 나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그렇다. 일본이 우리나라 보다 강대국이어서 일본에 유리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그건 올바른 세계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가 적대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 때문에 흠집을 내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느 나라나 부끄러운 역사는 있다. 단지 우리 다음 세대엔 이런 부끄러운 역사들 물려주지 않기 위해 역사는 바로 씌어야 한다.

 

또한 일본 모두가 우파적인 것은 아니다. 소수긴 하지만 자신의 나라 조상이 지은 죄를 대신 참회하고 역사를 바로 하려고 하는 성숙한 사람들이 있다. 난 그들의 참회와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수가 그럴 때 소신을 지켜내기란 또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앞서 일본의 지도자 얘기를 했지만, 소설의 일본 황태자비와 지금의 황태자비는 얼마나 다른 것인지 생각해 본다. 적어도 지금의 일본 황태자비도 알고는 있지 않을까? 자기네 나라 극우파들이 얼마나 역사를 왜곡시키려 하는지를. 하지만 나라를 대표하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 황실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견디느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진실은 언제나 정의 편이다. 정의가 살아 있는한 진실은 피를 흘릴지라도 승리할 것이다. 진실이 언제 행복하게 미소짓고 있는 거 봤나? 

 

이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계몽적이라고 해서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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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버릇없다고, 이기적이고 문제 많다고 걱정의 소리가 많던데,

그래도 어떤 때 보면 아이들이 어른 보다 낫다고 느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침몰해 가는 배 안에서 자기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입히고 죽어 간 아이가 있는가 하면,

승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같이 탈출도 못하고

오히려 탈출을 도와주고 22살 꽃다운 삶을 바다속에 수장시켜 버린 젊은 아가씨.

같이 배에서 내리면서도 자신 보단

알지도 못했을 어린 아이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던 단원고 학생.

 

이런 것들을 보면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가 살만한 나라구나 싶은데,

우리 어른들은 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나 싶다.

 

제발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죽는 일이 없었으면.

어른들이 그들의 꿈을 사장시키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죄가 많다.

 

오늘은 또 어느 누구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려나...

 

예전 악동시절에 그리도 많이 불렀던,

우리나라 좋은 나라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

 

부디 그들이여,

속세의 미련일랑 다 잊으시고

저 천국에서 영생복락 누리시게...

 

애도합니다.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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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4-04-19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아이들이... 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요.
답답하고 먹먹합니다, 정말.

stella.K 2014-04-19 11:44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왔구나.
그러게 말이다. 이런 사고 나면 참 여러 많은 것들을 생각해.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말야.ㅠ

비연 2014-04-1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진전이 없을 수 있는 건가요... 정말 가슴을 칠 노릇입니다...

stella.K 2014-04-20 13:3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래도 시신들이 느리게나마 발굴이 되가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장례 소식들으니 마음이 또 다시 무너집니다.
기적의 생환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거겠죠?
마음이 아픕니다.
 

어젠 모처럼 남산 벚꽃길을 친구와 함께 걸었다. 

남산에 와 보기는 얼마만이던가? 헤아릴 수 없을만큼 먼 시간을 돌아 다시 이 길을 걸었다. 

차를 없앤 산책길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함께 걸으니 그도 신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한 친구는 또 얼마나 오랜 친구런가? 헤아려 보니 얼핏 20년 세월을 훌쩍 넘기는가 보다.

 

친구도 한 때 친구던가 싶은 친구들이 있었다. 한때는 오래도록 만날 것만 같은 친구도 나를 스쳐지나 갔다. 언제 만나서 언제 헤어졌는지도 모르게 헤어진 친구들이 현재 만나고 있는 친구들 보다 많아졌다. 이렇게도 만남이 순식간이라니 왠지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이상하다. 나와는 취향이나 성향이 비슷해 언제나 만나질 것만 같은 사람은 멀어지기도 하고, 나와는 조금은 다른 듯한 친구가 오랜 만남을 유지하도 하니 말이다. 어제 만난 친구도 그런 친구 중 하나다. 나와는 좀 다를 듯하여 이 친구를 언제 또 만나랴 싶은데도 여전히 만나고 있다. 이 친구에게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년이란 세월을 견디며 만났으니.

 

그래도 또 얼핏 생각해 보면 그리 많이 만난 것 같지도 않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시간이 빠름을 탓해야 하는 건지, 이 친구의 지루하지 않는 매력을 칭찬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우정에 관해 할 말도 없고, 아는 바도 없다. 어떤 친구가 나에게 오래 남고, 어떤 친구가 나에서 떠나 갔는지 난 알지 못한다. 그냥 관심사가 같고, 서로를 걱정해 주는 마음, 관심 써 주는 마음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있어 만나는 건 아닌가 싶다.

 

어제 그렇게 산책을 했더니 정신은 말짱한데 몸의 피로는 아직도 덜 풀린 느낌이다.

 

나른하고, 게으른 마음으로 알라딘에 들어와 책구경을 하다 우연히 친구가 책을 낸 걸 알았다. 

 

소리 소문 없이(?) 낸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지내나 문득문득 생각이 나곤 했는데 또 이렇게 모르느데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었구나 싶다.

 

반가웠다.

그리고 그리웠다.  

 

어제 산책길에서 문득문득 나의 지난 날의 친구들을 생각하며,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잊고 사는가가 아니라 서로의 가슴속에서 잊혀질려고 애쓰며 사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편 친한 친구 곁에서 이런 헛된 망상을 하다니, 괜스레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랴 자꾸 생각 나는 걸.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 나는데,

이렇게 그리운데...   

 지금, 여기에 충실할 수 없는 동물이 또한 인간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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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1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힐링 -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된 문장들
박범신 지음 / 열림원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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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오로지 예속된다면 그것이 꽃피우는 문화는 종이꽃 같은 것이다. 드라마 중심의 이른바 한류도 그러하다. 활자 문화를 근간으로 삼는 인문학의 뒷바침 없이 오로지 자본의 힘에 의해 내달리는 문화의 확대 재생산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반짝 세일이 될 수 있다.-34쪽

아침에 나가고 저녁에 돌아오고
욕망으로 나가고 본성으로 돌아오고
사랑으로 나가고 이별로 내게 돌아오는 것.
이것이 삶이다.-46쪽

나는 작가다.
작가는 홀로 있을 때 온 세상과 온 우주를 품어야 한다.-67쪽

기다리고 기다려야 할 것이
사랑 말고 무엇이 또 있단 말인가.-81쪽

상상력은 길을 잃어야 발현돼.
길 찾기 위해 길을 내지.
사람에게 가는 길도 그래.
보편적 길 가면 보편적 관계에 이를 뿐이야.
비의적인 고유한 길을 찾아야지.
실패의 위험이 커서 두렵겠지.
보편적 길은 쓸쓸함 다 구원 못하고,
고유한 관계는 위험이 크니 문제야.-302쪽

문장이 문장을, 말이 말을 줄줄이 불러오는 거, 신명 나지만 안 좋아. 생각이 문장을 불러오도록 기다려. 머뭇거리는 습관, 그게 짱이야. -311쪽

앙드레 지드 왈 "나는 문장을 예민한 악기로 만들려고 한다." 했는데, 나는 문장이란 연모로 감히 독자들을 예민한 악기로 만들고 싶은 꿈 때문에 쓴다. 내 문장에 의해 생생히, 갖은 소리로 울리는 악기가 되는 미지의 독자들 생각하면, 흥분된다. -313쪽

떼를 짓거나 굳이 바로 곁에 내 편을 모아놓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게 문학이다.
단독자로 살면 구르는 물속 자갈처럼 이끼 낄 새 없다.
그러니 문학은 일종의 방부제.
난 그 맛에 여전히 이 길을 가는 중이다.-321쪽

세상과 내가 조화롭게 합쳐진다면 삶은 안정을 얻는다.
그러나 거의 불가능한 꿈이다. 문학은
그 빛과 그늘 사이의 거리를
날마다 아프게 확인하는 일이다.-317쪽

역사는 명분의 기록이지만
문학은 확인불가하고
틀에 가둘 수 없는 오욕칠정의 기록이다.-340쪽

작가는 밀실에 존재하고
작가의 사회적 자아는 광장에 존재한다.
밀실과 광장을 오락가락하는 게 작가의 삶이다.
소설은 광장을 지향하되 밀실에서 쓰니까 -343쪽

유의할 것은 작가는 '이야기를 한다'가 아니라 '이야기를 쓴다'는 사실이다. 이걸 잠시도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수다'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목소리가 커지는 일이다. '발언'은 어떡하든 잘 숨겨야 한다. 글 쓰는 나도 잘 숨겨야 한다. 좋은 소설은 '보물찾기'의 치밀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독자를 내가 설계한 '게임'에 무저항으로 끌어들이도록 애쓸 것.-346쪽

'깊거나 도발적이거나'가 관건이다. 욕망이 도저할 필요가 있다. 모범생으로 뭘 해보겠다는 전략은 적어도 예술창작에선 좋은 전략 아니다. 예술창작에선 b,c 학점이 없기 때문이다. -347쪽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뭔가 떠오를 때 책상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것이 헌신이다.-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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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6 1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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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6 2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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