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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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난 김진명 작가에 대한 묘한 편견이 있었다. 글쎄, 그냥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작가에 대한 독자의 열등감 같은 거라고 해 두자. 아니면,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가의 작품엔 문학성이 떨어질 거란 독자가 갖는 보수적인 편견 같은 게 있지 않나? 그런 것을 통해 독자라고 아무 작품이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은근 과시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게 맞는 생각이든 아니든, 김진명 작가는 매니아층이 두텁다는 것엔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작가의 그러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첫 작품이다. 물론 이 책은 전에 한 번 나왔다가 이번에 개정판을 내면서 '신'이라는 글자를 달고 나왔다. 이 전의 책과 무엇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제법이다'하며 읽었다. 

 

무엇보다 문체가 쉬워 읽는데 부담이 없었다. 나이가 드니 머리 써 가면서, 앞뒤 문맥 따져가면서 읽는 책이 부담스러워 졌다. 더구나 추리 소설은 좀 그런 수고를 하게 만들지 않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양파껍질 벗기듯 알아 가는 재미도 있다지만 이쪽에 취약한 나는 꽤나 질기게도 추리 소설을 거부하며 책을 읽어 왔구나 싶다.

 

또한 쉬운 문체면서 논리가 정연하다. 물론 현실에 일어날 확률은 0.0001%도 안 되겠지만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상하에선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황태자비 납치 사건을 주도한 임선규는 또 얼마나 벗있는 사람인가!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막연히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다룬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중국의 난징대학살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까지 다분히 일본의 사과과 시정을 촉구하는 국가적 대명제에 작가는 이 작품으로 보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일본과 동시 출판을 하려했지만 일본 극우파에 의해 일본 출판이 저지됐다고 한다.

 

일본의 황태자비를 납치해서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고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 잡겠다. 확실히 꼼수긴 꼼수다. 엔딩도 나름 만족스럽긴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다분히 계몽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좀 웃기다. 역사는 사실에 입각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계몽적인 기능이 있으면 좋긴한데 왜 문학은 그러면 다소 김이 빠진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난 좀 그랬다. 하긴, 등장인물을 보면 하나 같이 모난 구석이 없다. 다 반듯하다.

 

하다못해 일본측 등장인물도 보면 그들이 역사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든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우리나라가 쓴 만큼 어느 한구석 그래도 좀 나쁜 사람으로 그릴 법도한데 균형이라도 잡듯 반듯하다. 그리고 독자의 열망이 뭔지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어 거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계몽 문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읽으면서 한편 드는 생각은, 지금의 일본 역사의 왜곡과 은폐가 우리나라도 똑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본다. 솔직히 인정을 하고 사죄를 구했을까? 아니면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게 극우적 태도를 취했을까? 그건 아무래도 대대로 내려오는 민족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는 정복의 역사가 아니다. 지키고, 보존하는 성향이 강한 민족이다. 누구는 왜 우리나라 민족성은 좀 정복하는 능동성을 갖지 못했냐고 불평할지 모르겠지만 난 우리나라가 정복과 찬탈의 역사가 아닌 것에 오히려 다행스러움을 느낌다. 물론 대신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었던 질곡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엔 다소 아픔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있는 인정할 수 없는 민족에 내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그 말에 나는 백 번 동감한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일본에 무엇을 크게 바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인정할 것 인정하고, 사죄할 것 사죄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이 세 나라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며 태평양 시대를 열어갈 중심축이지 않는가?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죄할 것을 사죄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지도자는 얼마나 미성숙한 사람들인가?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이 모양인데 그 나라 국민들이 지도자의 무엇을 보며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더구나 자라나는 다음 세대는 과연 자기네 나라가 전혀 남의 나라에 해코지한 적이 없는 깨끗하고 양심 바른 나라라고 정말 굳게 믿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한 가정의 부모도 자식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즉각 사과해야 하는 거라고 올바로 가르치지 않는가?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고 해도 다른 나리 민족의 아이가 그것을 건드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개미가 뚫어놓은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트린다고 그게 그냥 아이들 싸움으로 끝날 수 있을까?

 

세계가 남의 나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그렇다. 일본이 우리나라 보다 강대국이어서 일본에 유리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그건 올바른 세계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가 적대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 때문에 흠집을 내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느 나라나 부끄러운 역사는 있다. 단지 우리 다음 세대엔 이런 부끄러운 역사들 물려주지 않기 위해 역사는 바로 씌어야 한다.

 

또한 일본 모두가 우파적인 것은 아니다. 소수긴 하지만 자신의 나라 조상이 지은 죄를 대신 참회하고 역사를 바로 하려고 하는 성숙한 사람들이 있다. 난 그들의 참회와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수가 그럴 때 소신을 지켜내기란 또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앞서 일본의 지도자 얘기를 했지만, 소설의 일본 황태자비와 지금의 황태자비는 얼마나 다른 것인지 생각해 본다. 적어도 지금의 일본 황태자비도 알고는 있지 않을까? 자기네 나라 극우파들이 얼마나 역사를 왜곡시키려 하는지를. 하지만 나라를 대표하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 황실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견디느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진실은 언제나 정의 편이다. 정의가 살아 있는한 진실은 피를 흘릴지라도 승리할 것이다. 진실이 언제 행복하게 미소짓고 있는 거 봤나? 

 

이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계몽적이라고 해서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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