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 Littor 2017.6.7 - 6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어떻게 운이 좋아 1년인가, 10개월치 정기구독권을 무료로 받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리뷰를 쓰지 못했다. 다 게으름 탓이겠지만 이건 또 독자로서의 예의는 아닌듯하여 늦게라도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은 지가 좀 되서 자세한 리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전에 창간호를 산 적이 있는데 그때는 (돈 주고 사서일까) 좀 낮선 느낌에 딱히 나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호들갑 떨고 싶으리만치 좋다는 느낌도 안 들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읽을 거리도 많고 재미가 쏠쏠했다.

 

기억에 남는 건, 장강명 작가가 창간호 때부터 우리나라 문학상을 고찰하는 글을 써왔는데 그게 나름 흥미가 있었다. 이번호까지 다섯번의 연재로 마무리가 되는데 그 나머지는 단행본에서 이어질거란다. 물론 우리나라 문학상이 문제가 많지만 그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올만큼 할 얘기가 많았나 새삼 놀라고 있는 중이다. 하긴 최근 어느 일본 작가가 세계적인 문학상에 대한 수다를 책으로 낸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할 말이 많긴 많은가 보다. 문학상도 문학상이지만 출판사 역시도 확실한 지명도가 있지 않으면 책을 잘 안 내려고 하니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언제쯤 정상화가 될지 모르겠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선 작가에 대한 정보 없이 독자더러 순순하게 작품으로만 판단해 달라고도 한다는데 과연 우리나라에도 그런 날이 올까 싶다.

 

또한 릿터는 주목 받고 있는 외국 작가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번엔 미셸 뷔시를 다루었다. 누구냐면 <검은 수련>, <절대 잊지 마> 등 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인데 요즘 부쩍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북 디자인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특히 <검은 수련>은 뭔가 악마적이면서도 고혹적이라 나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의 인터뷰는 젊고 잘 생긴 문학평론가 허희가 인터뷰어로 나섰는데, 작가도 작가지만 그가 나섰다니 더 관심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엔터테이너적이어도 되는 건지.

 

그 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소설이다. 특히 아킬 샤르마란 젊은 인도 태생의 작가의 '모험과 즐거움이 가득한 삶' 단편은 의외로 잘 읽혔다. 이야기는 섹스 밝힘증이 있는 주인공이 이제 그만 정리하고 결혼할 사람을 만나 조신하게 있다 결혼하려고 하는데 그걸 앙큼하게 어기고 적당히 즐기는 삶을 살아간다는  뭐 그런 얘긴데 유쾌하다. 그래봤자 주인공은 섹스 머신 같긴하지만.

 

그리고 이어서 구병모와 최영건의 단편도 나오는데 웬만하면 읽으려고 했는데 못 읽었다. 왜 그리도 재미가 없던지. 어제도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었는데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은 이야기를 좀 재밌게 쓸 필요가 있다. 여성 작가는 재미없을 거라는 인식이 남성 작가에 비해 높다는 것이다. 내러티브가 약한 건가 아니면 크리에이티브 정신이 부족한 건가? 독자로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읽은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읽을 새도 없지만 솔직히 겁이난다. 재미없고 돈만 버렸다는 느낌을 갖게될까 봐. 

 

이번호에서도 에세이스트 서경식의 글은 계속되고 있는데 그의 글발이야 뭐 이미 정평이 나있는 거고, 글중에  특별히 프리모 레비를 다루고 있어 관심있게 읽었다. 언제고 프리모 레비의 글도 읽어줘야 할 텐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이 잡지가 <악시트>보다 한 달 늦게 나온 줄로 알고 있다. 이 잡지도 작가의 인터뷰가 눈에 띄는데 <악시트>를 내고 있는 출판사는 벌써 그 부분을 따로 떼어 한 권의 책으로 내기도 했는데 이 잡지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는지 조용하다. 따로 책으로 내도 괜찮을텐데.

 

잡지는 말 그대로 잡스러운 책이고 난 잡지에 별로 욕심이 없었는데 자꾸 보니 그도 욕심이 난다. 무엇보다 팔거나 내다버리지 못하겠다. 이런 거 잘 모아두면 나중에 괜찮은 기록물로도 남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모아두면 짐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쩌나 무료 정기구독 기간이 끝나도 계속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이런 선물은 안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역시 공짜는 양잿물을 마시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것 같다.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7-09-01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9월 1일입니다. 즐겁고 좋은 시간 꽉꽉 채워서 보내세요.
어쩐지 매일 좋은 일들 많이 생기는 그런 한 달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17-09-01 19:4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9월, 좋은 가을되기 바랍니다.^^
 
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춘기 때 시를 잠시 좋아한 적이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언어의 영롱함이랄까 깊은 옹송그림이 나의 의식을 붙잡고 놔주질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못 쓰긴 하지만 직접 써 보기도 했다. 써 보면서 이게 과연 시일까?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낯간지럽고, 소름이 돋을 것도 같았다. 시를 아무나 쓰나? 시 쓰는 영혼은 따로 있는 것만 같았다.

 

후회가 남는다. 이왕 그렇게 알기 시작한 시라면 깊이 빠져 볼 걸 어쩌자고 한쪽 발만 잠깐 담그다 말았을까? 핑계 같은 예기지만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고, 사랑할 용기가 없어 시작도 못하고 뒤돌아서버린 형상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지 못했다. 내가 시를 잊은 걸까, 시가 나를 잊을 걸까? 전자가 됐든 후자가 됐든 잊힌 존재가 된다는 건 또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나는 시를 잊었다.

 

그렇게 된 것엔 나름의 이유는 있다. 우리나라가 언제 시를 좋아한 적이 있었나? 특별히 이 나라 교육이 시를 좋아하도록 권장한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권장은 고사하고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시를 음미하고, 좋아해야할 때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했고,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야 했다. 세상에 모든 학생들이 영어와 수학을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를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제도적으로 허락되지 않으니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하면 정신분열에 걸리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시는 솔직히 담이 높다. 여간해서 자신의 실체를 한 번에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 무슨 스무 고개라도 하듯 아주 조금씩 천천히 보여주는 것이다. 몇 번씩 곱씹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데 스피드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시는 생리적으로 잘 안 맞는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시 세계 전반에 흐르는 엄숙주의는 어떠한가? 홀로 고고하다. 80년 대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낙서 같은 대중시가 유행했었다. 그에 포문을 열었던 게 원태연 시인으로 알고 있는데 그의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를 두고 얼마나 문단계와 대중이 말이 맞았던지. 나 같이 어정쩡하게 시를 좋아하다 만 영혼은 정말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그럴 바엔 아예 시에 냉담해지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다. 지금은 그 시 보다 더 문턱을 낮춘 시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시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 우리나라 문단계가 시를 더 고립시켰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린 왜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러기 전에 시인은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자. 이 책의 저자 장석주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오만한 영장류의 시대는 얼마나 지속될까? 생물학적 피폐화의 시대, 멸종의 시대는 금세기 안에 끝난다. 공생과 공존의 감각을 키우고, 그 지혜를 발휘하지 못한 채 일방적 독주를 하는 한 인류 문명은 종말을 맞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단단한 믿음에 구멍을 내고, 인류와 동물들, 문명과 자연 사이에 평화로운 공존과 균형을 찾아줄 중재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시인이라고 월트 휘트먼의 말을 인용해 말한다(46p). 우리가 의사가 왜 필요한지, 교사는 왜 있어야 하는지, 상인과 정치가가 왜 있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작가 특별히 시인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는가? 모르는 사람은 시인을 그저 이상주의자고, 신선 같은 존재인 줄 알고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우린 시인에 대해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리와 아름다움의 주춧돌, 인간의 시간을 가로질러 넘어오는 광대함이자 인간 마음의 최대치고, 고뇌와 기쁨들을 보는 천 개의 눈을 가졌으며, 방랑자, 게으름뱅이, 판관이다. 비율과 형평을 맞추는 자들이고, 모래에서 세계를 보며, 찰라에서 영원을 보고, 언어, 징후, 신호, 상징에 민감한 사람이다. 또한 그들은 리듬의 직조이며, 노래의 적자며, 좋은 시인은 항상 생성과 소멸에 민감하고, 자기 세계의 한복판에서 산다는 점에서 농부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채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일상에 흔히 존재하는 사람 같지 않고,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식이 일상적이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처럼 명징하고 묵시적인 존재가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시인이 시를 쓴다. 여기서 먼저 짚어봐야 하는 것은 시는 원래 그렇게 만만히 읽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낯설고 해독의 어려움에 부딪치며 뭔가에 가로막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가 일상적으로 쓰는 생활 어법과 다른 어법으로 쓰기 때문이다. 위에서 난 시를 멀리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이 이유가 더 근본적이지 않을까? 시 보다 소설이 좋은 건, 소설은 논리와 합리적으로 말이 되게 풀어나가면 된다. 은유 보다 직유를 사용해 복잡하지가 않다. 가끔 내 마음도 내가 모를 때가 많은데 온갖 은유로 무장된 시에서 언제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음미한단 말인가? 그런 것은 내 취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를 쓴다. 그들은 은유에서 시작해서 은유로 끝난다. 고양이를 밤의 야경꾼이라 쓰고, 비 온 뒤 길에 고인 물웅덩이를 길의 눈동자라고 한다. 확실히 멋진 은유다. 거울에서 타자인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은유화라고 했고, 진정한 의미를 낳는 것이 은유라고 했다. 창조의 번뜩임이고, 언어의 가능태가 곧 은유다. 나쁜 은유, 해로운 은유는 없으며 오직 명석한 은유와 덜 명석한 은유만 있다고 했다. 그건 확실히 직유로 이루어진 소설 보다 낭만적이고 은밀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통음 난무하는 자들의 외침, 산모의 허공을 찢는 비명, 사물들의 속삭임, 편물 기계들이 내는 소음들, 새벽이나 황혼 같은 기후들이 내는 소리, 악마와 연인의 목소리, 얼음과 바람이 내는 소리들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이를 세계에 중계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말을 모으는 자들이 아니다. 말을 채집하고 그것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말을 버려서 의미의 부재에 이르게 한다. 말의 바닥에 닿으려고 말을 지우고 빈자리를 만들고 그 빈자리에 시가 들어선다. 말의 제의로서의 시, 그 제의를 주제하는 집정관으로서의 시인. 좋은 시들은 가장 나쁜 세상에서 우리를 살아남으로 이끈다. 과연 멋지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시인가? 감각의 쇄신을 이루고, 세계의 쇄신을 의미의 살로 드러내는 것. 그것은 저를 둘러싼 모르는 세계라는 외부성에 의해서만 성립되고 의미를 품는다. 시인의 상상력은 그 세계와 부딪칠 때 동심원을 그리며 펼쳐진다. 그런 까닭에 좋은 시를 읽는 것은 세계의 확장이자 의미 영역의 확장이다.

 

그렇다면 나쁜 시는 무엇인가? 사실 보다 더 큰 진실을 담으려는 시, 큰 목소리로 외치는 시, 옳은 소리만 해 대는 시, 큰 진실, 큰 목소리, 넘치게 옳은 소리가 작은 소리, 여린 것들의 속삭임, 가냘픈 것들이 내는 소리들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쁜 시 또는 악시(惡詩). 또한 직유는 은유의 나쁜 친척이다. 오직 나쁜 시인들만 직유를 남발한다. 좋은 시인들은 이것과 저것은 같다고 하지 않고 이것은 저것이다라고 쓴단다. 좋은 시집은 빼어난 이미지들의 집이다! 좋은 시집들은 대개 좋은 이미지의 백과사전이다.

 

또한 그것은 시에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노르웨이 국민시인 올리브 하우게의 시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에서 밝힌 의미이기도 하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 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그는 매일 시 한 편을 쓰고 싶다고 소박한 갈망을 표현했다. 시는 엄청난 영감이나 고매한 착상이 아니라 떠오른 생각, 일어난 일, 무언가 주의를 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또한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데는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찰나를 목격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것은 시는 그렇게 작은 진실만을 머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를 어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말자. 시는 늘 우리 가까이에서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고 있다. 모든 것이 명확하기만 하고 진실만을 추구하려 한다면 얼마나 피곤하고 삭막한가. 어떤 이는 말했다. 머리는 의식적이고 사회적이지만, 손은 욕망과 무의식에 가깝다. 시는 바로 머리를 뚫고 나오는 손가락 같은 것. 걸으면 벌어지고, 멈추면 닫히는 중국 치마 차파오 같은 거라고.

그렇구나. 시는 그렇게 앙큼하고 엉큼한 것이로구나. 이것을 모르고 감히 덤비려 했다니.

 

저자의 시와 시인에 대한 정의가 어찌 보면 사변적이긴 하다. 함민복 시인이 언젠가 자신의 시에서 내 시를 팔면 얼마의 돈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게 더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만 정의된다면 누가 시인을 할까? 그렇게 사회적인 의미로만 시인이 해석되어진다면 또 말하건대 세상은 피곤하고 삭막하다. 누군가는 세상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그렇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시인은 이 세상의 피곤과 삭막함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저자의 시와 시인에 대한 정의가 맞다.

 

저자는 시와 철학은 친척관계라고 했다. 시를 알려면 철학을 알아야 한다. 저자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알만한 소설가들은 처음엔 시를 쓰다 소설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시가 소설을 쓰기 위한 전단계로 오해하면 안 될 것이다. 시는 그 나름의 존재의 무게와 의미를 가지고 있고 평생 이 시의 감옥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장석주는 책을 알뜰하게 읽고 살뜰하게 글을 쓴다(이 책은 세 번째로 읽는 책이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문장노동자라고 했는데 그의 그런 구도자적 자세는 정말 본받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은 읽기에 따라선 조금은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이만큼 빼어나고 진지하게 시를 인문학적으로 잘 정의할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시를 읽다 문득 시와 시인이 뭔지 알고 싶어지거든 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8-25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8-25 18: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2017-08-29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9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9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9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9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9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9495473&isYeonhapFlash=Y&rc=N

 

생리대 문제가 언제부터 나타난 건데 이제야 들고 일어난단 말인가?

나는 생리가 시작된 이래 아직까지 이렇다할 부작용은 없는 편이긴 한데

예민한 사람은 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이걸 어떻게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까?

제2의 가습기 사태가 될 수도 있다니 충격스럽다.

 

뭐 나같이 둔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될 건 아니고,

어쨌든 그 성분이 유해하다는 점에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가습기 사태에,

계란 파동에

생리대 사태까지

뭐 하나 믿을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구나.

대한민국은 불량공화국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08-2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8-24 15:1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그럴수록 사용자인 여자들이 발 빠르게
문제를 제기하고 대처하고, 시위하고 그랬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제 목소리를 낸다는 게 넘 늦은 건 아닌가 싶어요.

유기농으로 바꾼다고 하는데
가득이나 울나라 생리대 값이 비싼 편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여자가 봉인가 봅니다.
생리대도 여성복지 차원에서 확 내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 또 남자들 난리 피우겠죠?
화장지 사는데도 복지 혜택 받아야 하는 거냐?
그럼 면도기 값 내려라. 뭐 그러고 나오겠죠.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때 이런 얘기 오고 갔었거든요.ㅉ

2017-09-06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마 전, <색, 계>를 다시 보았다.

다시보니 개봉 때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글쎄,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사에 미인계를 쓰는 건 양날의 검이다. 뭐 그런 교훈인 건가? 

 

예전에 얼핏 들으니 산악인들 사이에선 여자와 함께 산을 오르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고 한다. 안 그러면 꼭 조난 사고가 난다고. 꼭 여자를 무시해서 하는 말 같지는 않고  뭔지 이해가 갈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왠지 그 말이 생각이 났다.

 

이 영화는 친일파의 핵심 인물을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과정을 그렸다. 왜 실패할 수 밖에 없는가를 잘 짜여진 플롯에 담아냈다. 보면 역시 이안이다! 엄지를 쳐들만 하다. 물론 원작이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영화는 암살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은 암살단의 일원인 왕치아즈(탕웨이)와 그 일당들이 의욕만 앞섰지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그것은 왕치아즈가 부인들과 하는 마작에서 번번히 지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목해 봐야하는 건 왕치아즈와 리(양조위)의 심리의 변화다.

 

난 끝에 왜 왕치아즈가 리를 마지막에 살려줬는지 일견 이해가 같것 같다.

남자와 여자는 아무리 적이라 하더라도 가까이 자주 만나면 스파크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친일파의 핵심 인물 리와 왕차이즈는 너무 매력적이다. 왕치아즈는 임무를 위해 리를 사랑하면 안 되는데 그러지 않기란 쉽지 않다. 사실 리가 친일파의 핵심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겠는가? 왕치아즈는 목적 달성을 위해 리에게 밀착해 그를 자꾸 위로해 주다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지도 모른다.

 

또한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 혹은 동조하는 비합리적인 현상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왕치아즈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즉 리에 대한 사랑과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암살을 실패로 이끌었다는 것. 

 

이 영화는 파격 베드신으로 유명한데 특히 양조위와 탕웨이가 펼치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체위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베드신도 못지 않지만 중국은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구나 탄성이 나올 정도다. 그것도 한 두 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개의 신으로 나눠 보여지고 있는데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양조위는 고사하고 탕웨이가 이것을 어떻게 찍었을까 정말 그녀의 공력에 박수라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아, 나는 왜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하고 자꾸 배우가 보이는 걸까?)

 

그런데 언제나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 감독의 욕망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파격적인)베드신이 그렇기도 한데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곧 감독이 여배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직결되기도 한다. 그건 또 사디즘과 메저키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그것을 여과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나는 이것 역시 남성주의적 해석이고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어떤 여자도 남자가 주는 고통에 희열을 느낄 사람은 없다. 고통도 길들여지는 거라면 그건 확실히 잘못된 거다. 그런데 남자들(감독)은 그것을 자꾸만 자기 식으로 해석하며 믿게끔 만드려고 한다. 또한 그것을 철학적,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고까지 한다. 나 같이 영화에서의 베드신을 문제 삼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저 작품의 한 장면 또는 좋은 이야기 거리쯤으로 생각하지. 예술은 오욕칠정을 과감없이 표현해 주는 거라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여성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희생시켜 왔는가에 대해서는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그래서 말인데,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의 여배우 폭행사건도 왜 이게 문제가 됐을지 짐작이 간다. 남성주의가 강한 영화판에서 여배우는 그 영화를 완성시키는 도구요 재화일뿐 존중 받고 이해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와 이런 사단이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제작측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네가 원해서 이 판에 들어 온 것 아니냐? 그렇다면 배우라면 배우답게 처신해라. 영화판이 그런 줄 모르고 뛰어든 거냐? 보나마나 그러고 맞섰겠지. 시각차의 문제라며. 시발, 이게 어디 시각차의 문제냐? 늬들이 깔아 놓은 판이 문제인 거지. 그래, 설혹 시각차라고 치자. 왜 그 시각차를 여배우에게만 전가시키고 늬들은 바꿀 생각을 안하는 건데? 지금까지는 늬들의 프레임에 여배우들 갖고 놀았겠지만 더 이상은 봐 줄 수 없다는 걸 이제라도 말하려고 하는데 그게 뭐  그리 잘못 됐냐?     

    

그나마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중 베드신에서 여성을 존중하고 우위에 뒀던 영화는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다. 독특하고 다소 황당하긴 하지만 말이되고, 어이없게도 좋은 영화라고 엄지까지 치켜들고 싶은 영화였다. 나는 한다하는 남자 영화 감독들 무조건 여배우들 베드에서만 굴려 먹을 생각하지 말고 그런 영화에서 좀 배웠으면 좋겠다.

 

영화 말미에서 리가 왕치아즈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던데 이것 역시 다시 봐야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보석을 좋아하던가? 거기에 대해선 부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 또 그러니만큼 남자들은 사랑의 증표로 이걸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다이아몬드를 좋아할 거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관객의 입장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리가 정말로 왕치아즈를 사랑해서 그것을 선물했을 거라고 생각되질 않는다. 오히려 섹스를 잘 해 줬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댓가로 주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리는 완벽한 남성을 대표하기도 하는데 섹스와 사랑과 다이아몬드를  동시에 해 줄 수 있는 남자로 그려지고 있다. 저 셋중 하나가 불협화음을 내면 그게 바로 사랑의 문제요 능력없는 남자로 찍히는 것이다. 그런 프레임에서 보자면 <이수일과 심순애>도 얼마나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쓰여진 작품인지 알 것도 같다.      

 

그렇다면 답은 왕치아즈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 리를 살려줬을까? 정말 사랑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이아몬드 때문일까?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목적 달성도 하지 못한 채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이런 미련퉁이가 어디있는가? 마지막 순간에 그 무엇도 올바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여자라는 것을 말하려 했거나 아니면 순정이길 감독은 바랐던 것 같다.

 

처음 봤을 때는 영화가 갑자기 끝나는 것 같아 다소 불만스러웠다. 그땐 또 그런 영화가 꽤 있었다. 뭐 열린 결말이라고 해서 마지막은 관객 맘대로 상상하라고. 그런데 이제 다시 보니 열린 결말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이후 리가 어떻게 됐을지는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사실 이 영화는 뜯어 보면 한낱 웃픈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이안 감독은 꽤 진지하면서도 우아하게 스크린에 담아냈다. 영화의 공력을 생각하면 별 내개쯤 줘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탕웨이를 아니 여자를 거칠고 멍청하게 그렸다는 점에선 난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별 두 개로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7-08-2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영화 전에 원작이 유명한 책이군요. 영화를 아직 못 봐서 잘 모르겠지만, 사진 속의 탕웨이 예뻐요.^^

stella.K 2017-08-23 16:20   좋아요 2 | URL
예쁘기는 지금이 더 예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이게 데뷔작인데 저때도 예뻤죠.
베드신이 넘 파격적이라 서니데이님 보시기에 어떻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진 건 사실이예요.
문제적 시각에서만 보지 않는다면.
기회되시면 함 보시길.^^

2017-08-23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8-23 17:56   좋아요 0 | URL
이 영화 야하죠?ㅋㅋ
 

얼마 전, 하이드님 페이퍼를 보니 생리대가 문제긴 문제인가 보다.

뭐 안 그런 제품도 있겠지만 유명 생리대에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아직도 검출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건 몇 년 전에도 지적이 있었다. 그동안 잠잠해서 시정이 됐나 보다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번에도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휘발성 독성물질은 물론이고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하는데, 솔직히 난 그 보도가 더 짜증이 났다. 그렇다면 문제가 된 제품이 어떤 건지 명확히 나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저 단순히 A, B ,C. D, E... 제품이라고만 나왔다. 어떤 제품인지가 알아야 그 제품을 안 쓰고 불매 운동이라도 벌이지 이런 변죽만 울리다마는 거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이건 모르긴 해도 그 제품을 만든 회사의 명예를 생각하거나 또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마찰을 생각해서 그런 것 같은데 이런 소극적인 보도는 남성주의 편향 프레임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좀 오래된 이야기이긴 한데, 생리대나 종이귀저기를 남성들이 만드는가 보다. 그러면서 그들이 얼마나 제품에 열정적인지 직접 차보기도 한다면서 자랑을 하더라. 난 그때 멋도 모르고 대단하다 암, 그래야지 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왜 그걸 남자들이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여성의 생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이 생리대를 백날을 착용해 보면 뭐하겠는가? 해봐야 오줌을 질금 거리는 것이 다 일 텐데 그것 가지고 생리대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건 당연히 여자가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감당해야 할 여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적지않은 여성들이 생리통을 경험한다. 이유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가 생리대 때문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바다. 그렇다면 한국일보의 그런 보도도 있겠다 언제까지 이 문제를 팔짱만 끼고 바라 볼 것인가?

 

이왕 생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얼마 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상담학 석사를 시작한 지인인 J를 만나고 다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들 중엔 여자의 생리가 파란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게 믿기지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언젠가 생리대 선전에서 제품 비교를 보여주면서 파란 액체를 쏟아 붓는 장면이 나왔다. 그걸 단순하게 믿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더 황당한 건 남자들 중엔 여자의 생리가 하루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 그러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여성의 생리는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도 간다. 더 웃긴 건, 여자들은 생리를 중요한 순간 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 화를 내면서 그것도 못 참느냐고 윽박지른단다. 지네들도 생리 현상 못 참으면서 누구더러 뭘 참으라는 건지 헛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라면 여성의 생리에 대해 뭐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요즘엔 여성계를 중심으로 생리 바로 알리기 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성부터 생리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무슨 시크릿이니 그날이라고 돌려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때 생리대를 사러 약국에 들어가면 남자 고객이 있으면 눈짓으로 생리대를 가리키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편의점 계산대에 남자 점원이 있거나 말거나 당당하게 생리대를 집어 계산한다. 그게 창피한 일인가? 그거 산다고 실실 얼굴이나 쪼개고 있는 남자 녀석이 있다면 그게 잘못 된 거지. 생리대는 위생용품이다. 화장지를 사는 것과 같다.

 

그날 J에게서 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J의 아는 지인이 숙박업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게 연인이든 불륜이든 한 쌍의 남녀가 오면 그걸 정상으로 본단다. 남녀가 떼로 몰려와 아예 한 층을 점령하고 조금 있다 CC TV를 보면 서로 이방 저방을 바꿔가며 돌아다니는 것이 포착이 된단다. 즉 스와핑을 하는 것이다. 

 

그럼 그들이 음란마귀라도 씌웠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극히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단다. 이쯤 되면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설파했는데 이를 두고는 음란의 평범성 또는 성적 타락의 평범성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그러면서 자신도 자식을 키우지만 모텔은 못해 먹을 짓이라며 할 수만 있으면 정리하고 싶어 한단다.

 

지금 일선 학교에서 성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남자아이들은.

보통은 야동이 성교육이라고 생각하겠지. 물론 실제로 부부치료를 위해 야동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런 목적을 제외하면 야동은 가급적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야동도 중독이 된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한다. 뇌가 그렇게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에 큰 차이를 보이고 혼란에 빠지고 웬만한 자극에 만족을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일정 기간 동안만이라도 야동을 보지 말아야 뇌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챙긴단 말인가.

 

우리나라처럼 성교육이 엉망인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여성의 생리에 대해 이토록 무지한데 콘돔 사용의 필요성과 사용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옛날이나 딸들에게 남자는 다 늑대다. 남자를 조심하라는 말이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 그런 말이 통하는 세댄가? 그래서 구성애 같은 성교육가가 남자 아이들에게도 콘돔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면 아들 가진 엄마들부터 들고 일어난단다. 우리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라며.

 

이상한 일이다. 구성애 씨의 존재가 알려진 것이 거의 20년 전 일인데 그때 그녀가 한창 TV에서 웃겨가며 성교육에 대해 부르짖을 때 낄낄대며 고개를 끄덕이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여자들 곁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는 아들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언제까지 그녀들의 아들을 어린 아이로만 볼 것인가? 그러다 어느 날 내 아들이 어느 집 귀한 딸에게 임신이라도 시키면 그 뒷감당할 자신 있는가? 정말 사람이 안 변하는구나 싶었다. 어떻게 옛날 엄마들이나 그래도 배웠다는 요즘 엄마들이나 이렇게 안 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이 얘기를 지금은 할머니가 된 울엄마한테도 하면 별반 다르지 않다. “, 그러니까 지지배들이 조심해야지. 남자들이 그런 종잔 줄 몰라 그런다니?” 대번에 이런다. 그 남자들 뒤에 그런 엄마들이 있는 줄 알고 하는 소린지.

 

피임도 그렇다. 남자들이 콘돔 사용을 기피하는데 정관 수술이라고 좋아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심야에 하는 한 예능 프로에서 경기 지역의 모 시장이 나와서 자기 정관 수술했다고 자랑하던데 처음에 그게 어디 자랑할 일인가 했다. 아내를 위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정말 자랑할 만하다 싶다.

 

여자들 원치 않는 임신을 위해 루프 시술하기도 하는데 남자들은 그것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것을 할 경우 거의 대부분 요통으로 고생한다고 한다. 오죽 고통스러우면 시술한 것을 다시 풀 생각을 하겠는가? 그랬더니 요통이 사라졌다.

 

그럼 경구용 피임약은 어떤가? 그건 루프 시술 보다 더 위험하다. 여성암의 발병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선 경구용 피임약을 버젓이 선전한다. 옛날에 마누리가 죽으면 영정 앞에선 울고 뒷간 가서는 웃는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요즘에도 통할 말인가? 재혼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세상인가 말이다. 특히 마누라가 그런 이유로 죽은 거라면 이런 남자는 조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남자가 정관 수술을 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간단하다는 말씀.

 

그날 J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즘 페미니즘, 페미니즘 하는데 이 성 문제만 제대로 해결해도 여성 문제의 반은 해결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아도 J의 두 딸은 공부를 잘해 사립 명문대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관이 우리 때와는 또 다르다. 큰딸은 결혼에 긍정적이긴 하지만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하고, 둘째 딸은 결혼을 하기엔 자기 인생이 너무 소중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단다. 그런데 또 그렇게 말하는 속내를 들여다보며, 둘째 딸은 엄마를 닮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데 교회 다니는 형제들은 어딘가 모르게 덜 채워진 것 같고, 교회 안 다니는 남자애는 믿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도 결혼하지 않겠단다.

 

요즘 여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아직도 남아 선호사상의 그늘이 깊은데 옛날이나 아들 낳은 게 유세지 앞으로 그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닐 때가 도래하겠구나 싶다. 이젠 아들 낳은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 아들 장가 잘 보내려면 지금부터라도 잘 가르쳐야 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란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하라 2017-08-20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걸스데이의 유라양이 콘돔 광고를 찍는다고 하니까 앞으로는 남성 여성 모두에게 콘돔사용이 일상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하라 2017-08-20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관수술에 대해서 말씀한 대목에서 남자로서 수긍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여성은 수술도 피임약도 건강상 해선 안되는거니 다 남자가 하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정관수술 받은 남성들도 통증을 느끼고 심리상태에도 악영향을 받아 불안과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않다고 합니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해가 되지않을 방법은 무얼지 신속한 의학적 발견에 무게를 두는게 좋을 것같아요

stella.K 2017-08-21 13:41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말이있습니까?
그거 그냥 기분상 그럴 수 있다고 들었는데
민감한 남자들도 있는가 봅니다.
저의 집안에 아는 누가 정관수술했는데 그런 얘기 못들었거든요.
그래도 똑같이 안 좋은 거라면 여자 보다 남자가 하는 게 낫지 않나요?
어떻게 연약한 여자한테 피임 수술을 권합니까?
이도저도 어렵다면 콤돔 사용이 답이겠네요.

2017-08-21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8-21 13:4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그런 게 특히 더 심한 것 같아요.
생리에 대한 인식부터도 이렇게 잘못되어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파야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