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색, 계>를 다시 보았다.

다시보니 개봉 때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글쎄,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사에 미인계를 쓰는 건 양날의 검이다. 뭐 그런 교훈인 건가? 

 

예전에 얼핏 들으니 산악인들 사이에선 여자와 함께 산을 오르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고 한다. 안 그러면 꼭 조난 사고가 난다고. 꼭 여자를 무시해서 하는 말 같지는 않고  뭔지 이해가 갈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왠지 그 말이 생각이 났다.

 

이 영화는 친일파의 핵심 인물을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과정을 그렸다. 왜 실패할 수 밖에 없는가를 잘 짜여진 플롯에 담아냈다. 보면 역시 이안이다! 엄지를 쳐들만 하다. 물론 원작이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영화는 암살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은 암살단의 일원인 왕치아즈(탕웨이)와 그 일당들이 의욕만 앞섰지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그것은 왕치아즈가 부인들과 하는 마작에서 번번히 지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목해 봐야하는 건 왕치아즈와 리(양조위)의 심리의 변화다.

 

난 끝에 왜 왕치아즈가 리를 마지막에 살려줬는지 일견 이해가 같것 같다.

남자와 여자는 아무리 적이라 하더라도 가까이 자주 만나면 스파크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친일파의 핵심 인물 리와 왕차이즈는 너무 매력적이다. 왕치아즈는 임무를 위해 리를 사랑하면 안 되는데 그러지 않기란 쉽지 않다. 사실 리가 친일파의 핵심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겠는가? 왕치아즈는 목적 달성을 위해 리에게 밀착해 그를 자꾸 위로해 주다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지도 모른다.

 

또한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 혹은 동조하는 비합리적인 현상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왕치아즈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즉 리에 대한 사랑과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암살을 실패로 이끌었다는 것. 

 

이 영화는 파격 베드신으로 유명한데 특히 양조위와 탕웨이가 펼치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체위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베드신도 못지 않지만 중국은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구나 탄성이 나올 정도다. 그것도 한 두 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개의 신으로 나눠 보여지고 있는데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양조위는 고사하고 탕웨이가 이것을 어떻게 찍었을까 정말 그녀의 공력에 박수라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아, 나는 왜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하고 자꾸 배우가 보이는 걸까?)

 

그런데 언제나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 감독의 욕망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파격적인)베드신이 그렇기도 한데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곧 감독이 여배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직결되기도 한다. 그건 또 사디즘과 메저키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그것을 여과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나는 이것 역시 남성주의적 해석이고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어떤 여자도 남자가 주는 고통에 희열을 느낄 사람은 없다. 고통도 길들여지는 거라면 그건 확실히 잘못된 거다. 그런데 남자들(감독)은 그것을 자꾸만 자기 식으로 해석하며 믿게끔 만드려고 한다. 또한 그것을 철학적,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고까지 한다. 나 같이 영화에서의 베드신을 문제 삼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저 작품의 한 장면 또는 좋은 이야기 거리쯤으로 생각하지. 예술은 오욕칠정을 과감없이 표현해 주는 거라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여성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희생시켜 왔는가에 대해서는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그래서 말인데,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의 여배우 폭행사건도 왜 이게 문제가 됐을지 짐작이 간다. 남성주의가 강한 영화판에서 여배우는 그 영화를 완성시키는 도구요 재화일뿐 존중 받고 이해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와 이런 사단이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제작측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네가 원해서 이 판에 들어 온 것 아니냐? 그렇다면 배우라면 배우답게 처신해라. 영화판이 그런 줄 모르고 뛰어든 거냐? 보나마나 그러고 맞섰겠지. 시각차의 문제라며. 시발, 이게 어디 시각차의 문제냐? 늬들이 깔아 놓은 판이 문제인 거지. 그래, 설혹 시각차라고 치자. 왜 그 시각차를 여배우에게만 전가시키고 늬들은 바꿀 생각을 안하는 건데? 지금까지는 늬들의 프레임에 여배우들 갖고 놀았겠지만 더 이상은 봐 줄 수 없다는 걸 이제라도 말하려고 하는데 그게 뭐  그리 잘못 됐냐?     

    

그나마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중 베드신에서 여성을 존중하고 우위에 뒀던 영화는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다. 독특하고 다소 황당하긴 하지만 말이되고, 어이없게도 좋은 영화라고 엄지까지 치켜들고 싶은 영화였다. 나는 한다하는 남자 영화 감독들 무조건 여배우들 베드에서만 굴려 먹을 생각하지 말고 그런 영화에서 좀 배웠으면 좋겠다.

 

영화 말미에서 리가 왕치아즈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던데 이것 역시 다시 봐야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보석을 좋아하던가? 거기에 대해선 부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 또 그러니만큼 남자들은 사랑의 증표로 이걸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다이아몬드를 좋아할 거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관객의 입장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리가 정말로 왕치아즈를 사랑해서 그것을 선물했을 거라고 생각되질 않는다. 오히려 섹스를 잘 해 줬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댓가로 주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리는 완벽한 남성을 대표하기도 하는데 섹스와 사랑과 다이아몬드를  동시에 해 줄 수 있는 남자로 그려지고 있다. 저 셋중 하나가 불협화음을 내면 그게 바로 사랑의 문제요 능력없는 남자로 찍히는 것이다. 그런 프레임에서 보자면 <이수일과 심순애>도 얼마나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쓰여진 작품인지 알 것도 같다.      

 

그렇다면 답은 왕치아즈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 리를 살려줬을까? 정말 사랑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이아몬드 때문일까?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목적 달성도 하지 못한 채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이런 미련퉁이가 어디있는가? 마지막 순간에 그 무엇도 올바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여자라는 것을 말하려 했거나 아니면 순정이길 감독은 바랐던 것 같다.

 

처음 봤을 때는 영화가 갑자기 끝나는 것 같아 다소 불만스러웠다. 그땐 또 그런 영화가 꽤 있었다. 뭐 열린 결말이라고 해서 마지막은 관객 맘대로 상상하라고. 그런데 이제 다시 보니 열린 결말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이후 리가 어떻게 됐을지는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사실 이 영화는 뜯어 보면 한낱 웃픈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이안 감독은 꽤 진지하면서도 우아하게 스크린에 담아냈다. 영화의 공력을 생각하면 별 내개쯤 줘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탕웨이를 아니 여자를 거칠고 멍청하게 그렸다는 점에선 난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별 두 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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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8-2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영화 전에 원작이 유명한 책이군요. 영화를 아직 못 봐서 잘 모르겠지만, 사진 속의 탕웨이 예뻐요.^^

stella.K 2017-08-23 16:20   좋아요 2 | URL
예쁘기는 지금이 더 예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이게 데뷔작인데 저때도 예뻤죠.
베드신이 넘 파격적이라 서니데이님 보시기에 어떻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진 건 사실이예요.
문제적 시각에서만 보지 않는다면.
기회되시면 함 보시길.^^

2017-08-23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8-23 17:56   좋아요 0 | URL
이 영화 야하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