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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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마태우스님이 주최한 번개모임에 갔을 때, 난 참 묘한 경험을 했더랬다. 그것은 일상적인 나의 이름을 두고 온라인에서 쓰는 닉네임으로 불리워진 것이다. 이것은 나만이 경험한 것은 아니고, 거기 못였던 모든 서재인들이 본명으로는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온라인 상에서의 닉네임으로 불리워져야 누가 누군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오프 라인에서 조차 닉네임으로 불리워져야 한다는 그 사실이 익숙치 않아 서재인들 서로 어색해 하는 것이 역력했음을 엿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또 그것에 금방 익숙해져서 닉네임으로 서로를 불렀다. 아마도 알라딘에서 나의 본명이 불리워진다면 이것 또한 꽤 어색했을 것 같다.

이름이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들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회 또는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불리워지느냐에 따라 자신이 갖는 자아 정체감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비교적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가끔 정말 이런 이름이 존재할까 싶은 이름이나, 어떻게 저런 이름을...하는 혐오스러운 이름의 소유자를 볼 때, 나는 그의 부모가 어떠한 사람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름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인데 어떻게 자식한테 그런 이름을 지어줄 수 있을까 놀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가 작가 고골리를 좋아하고 인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바로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고골리로 불리웠던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들은 고골리란 이름을 어렸을 땐 좋아해서 그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걸 좋아했지만 커서는 그 이름이 싫어 '니킬'이라는 본래의 인도식 이름을 부여 받는다. 하지만 그러면서 늘 그렇듯 미국 내에서의 이민족으로서 겪는 자아정체의 혼란을 작가 다름의 시선으로 밀도있게 그려나간다.

그런데 이 소설이 인도인이 쓴 인도 소설이냐라고 했을 때 인도 작가가 쓴 소설은 맞지만 인도 소설이라고는 역시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중간 중간에 인도인의 풍습이나 주인공의 부모가 인도를 그리워 하는 건 보여지지만 작가는 역시 인도계 미국인인 것처럼, 지극히 미국풍이란 느낌을 내내 받았다.

미국 문학을 가리켜 '거리의 문학'이라고 누군가 말을 했는데, 역시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어찌보면 뿌리가 없어뵈고 또 어찌보면 그것 자체가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모험과 활동성은 그려지지만 깊은 성찰의 의미는 그리 드러나지 않아 보인다.

나는 가끔 미국의 허리우드 영화와 미국 문학이 같아 보인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미 영화화된 작품을 굳이 소설로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결국 미국 소설은 참 영화적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 문학을 왜 거리의 문학이라고 했을까? 거리는 머물기 위해 나 있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것이다. 가다보면 미로를 경험하기도 하겠지. 미국인의 인생 또한 그러하리라. 미국 그것도 중심부라고하는 뉴욕이 최첨단 문화의 메카라는 것은 굳이 뉴욕을 가 보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이민족으로서 주류사회에 정착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은 자아 정체의 혼란을 겪는다.

현대 문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성(性)인데,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과 그의 아내가 여러 사람과의 섹스를 하는 과정이 나온다. 심지어는 주인공 니킬의 아내 모슈미는 결혼해서도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해서 결국 결혼이 파경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현대 문학에서의 담론은 역시 자이 정체성의 혼란과 성인 것 같고,  이 작품 역시 그것을 굳이 비껴가지 않고 있다.  자아의 모호성이 성의 탐닉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란 소설 제목에서 나는 나름대로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뭔가 이름에 그리 값하지 못하고 미진한 아쉬움이 남는 소설인 것 같다.

인도 작가가 썼다고 해서 그나름의 독특함이 있을 줄 알았는데, 지극히 미국적이었다고 한다면, 작가는 그다지 소설적 모험을 즐겨하지 않던가, 아니면 떠나 온 인도를 잊고 있는 건 아닌가란 의구심도 가져본다.

그리고 이 만한 작품에 뉴욕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소설이란 수식어가 나로선 그다지 탐탁지가 않다. 이를테면 이 소설을 완독한지 얼마 안되는 나로선, '뉴요커들 별것 아니네' 이거나 내가 이런 풍의 소설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던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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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0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축복받은 집 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미국과 인도의 경계에 들어있는 작가의 모습이었어요. 미국 사회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열망도 보였지만, 이국땅에서 자신의 기원을 잃고 싶지 않은 이면이 아닐까 해요. 인도를 알리고 싶은 욕구도 있겠지요... 요즘엔 장편소설을 잘 읽지 않았어요. 나중에 읽어봐야겠네요. 추천합니다, 스텔라님...!

stella.K 2004-11-08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못 쓴 글인데...고마워요. 사실 리뷰 쓰고 반응 없으면 좀 민망하더라구요. 그래도 플레져님이 이 리뷰를 빛나게 해 주셨네요.

이 책 전에 판다님한테 싸게 산 거예요. 알라딘엔 참 좋은 분들 많아요. 그죠?^^

icaru 2004-12-3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려고 검색했는데~~ 님의 훌륭한 리뷰가 있었네요~~!!

이 소설...인도판 '영원한 이방인'인가봐요.. 음~!

stella.K 2004-12-30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복순 언니, 이미 한참 전에 쓴 리뷰라 이젠 읽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님 같은 분이 계셔서 반갑군요. 근데 그리 잘 쓴 리뷰도 아닌데...작품은 그만 그만한 것 같아요. 물론 님이 읽으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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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산문을 읽지 않았던 건, 아주 오래 전 잡문 수준의 '산문'을 '산문'이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비판했던 글을 읽은 영향도 있었다. 결국 난 산문을 좀 폄하하는 편견에 사로잡혔고, 이 책을 읽었을 때 이제라도 산문을 폄하해서는 안되겠다는 반성도 하게됐다. 그만치 이 책은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산문도 글을 쓰는 수준이나 취향이 제 각각이라 내가 좋아할만한 수준의 책을 고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 정도라면 고급한 산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작가의 깊은 사유와 사물에의 성찰이 돋보인다. 작가 자신은 무교라고 말하지만 불교에 꽤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이 만한 문장을 구가하려면 얼마만한 책과 깊이있는 사고를 해야하고, 문장과의 질기디 질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일까 의문스러워지기도 한다.

물론 일시적이긴 하지만, 어떤 글은 읽고 있으면 내가 글을 쓸 때 언젠가 모르게 그 문장을 흉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남의 것을 정령으로 하여 쓰고 있을 때 묘한 안정감이 느껴지곤 하는 건 뭘까? 결국 글발도 무당처럼 신이 내려야 쓴다는 말이 맞는 얘길까? 하지만 나는 이내 그 정령을 떨쳐 버리고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과연 문장이 누구의 것을 흉내내서 될 일이란 말인가? 잠시 흉내는 낼 수 있어도 내것으로 도용하거나 차용할 수는 없다. 누구는 누구 같이 쓴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문장은 그 사람의 생각을 표현해주는 도구일 것이다. 나는 알라딘 서재를 쓰면서 내 글이 참 많이 허접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정리도 안된 글들을 마구 토해낸다. 어떤 땐 내 스스로의 글에 창피함을 느끼고 앞으로 안 쓸까도 생각해 본 때도 많이 있다. 내가 산문에 관심을 갖으려한 것도 어떻게 하면 내가 내 글에 책임을 지고, 조금이라도 나은 글을 구사해 볼까 얍삽한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선우의 문장을 대하면서, 문장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사람처럼 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문장은 사유의 깊이에 비례할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때론 문장이 사유의 깊이를 쫓아 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피를 말리는 문장과의 사투를 서슴치 않기도 하는 거겠지.

작가에게 있어서 문장을 다듬는다는 건 어떤 글을 쓸 것이냐 못지 않게 자기 살을 깍는 아픔과 같은 것이리라.

무엇이 산문 정신일까? 좀 더 심사숙고 해 볼 일이다. 단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장의 명징함과 유려하다 못해 장중함 또한 느껴졌고, 사유의 깊이에 천착하는 작가의 성실함에 마음 속 깊이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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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10-1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산문을 잘 쓰지 못하는 시인의 시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기찻길
홍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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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종종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또는 부모님으로부터 6. 25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였을까? 자츰 자라면서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잊고 있었던 이야기를, 나는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그때 생각이 났고, 그때 우린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바로 우리 앞세대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참 재밌게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순수한 사람이야기였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우린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공부했고 자라난 세대다. 그 이야기를 순수한 휴머니즘으로 듣기엔 그 배후에 반공 사상이 깔려있었던 것 같다. "그 빨갱이 놈들 때문에 우리가 이처럼 남과북이 갈라졌고,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 처럼 고생하셨어."라는 격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몇십 년만에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 느끼는 약간의 낮설고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막상 읽기를 시작했을 때 금방 6. 25 때 이야기를 즐겨 듣던 어릴 때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일견 반갑기도 했다.

작가 홍성원.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인 것 같은데 역시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 이력으로보아 아마도 그는 전쟁문학을 쓰는 작가인가 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딘지 모르게 그것을 살짝 비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호를 비롯한 네 명의 소년 소녀들이 졸지에 고아가 되서 길에서 만나 살기위해 부산으로 가는 피난 대열에서 겪에 되는 모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모험담이라고 하지만 치열함과 스릴 보단 휴머니즘에 더 많은 비중을 싣고 있다. 그래서 그의 다른 작품은 어떨런지 모르지만, 이 작품에서는 치열한 인간 대립의 갈등구조나 이데올로기의 대립 양상 같은 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냥 잘 만든 로드무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전엔 반공 드리마나 전후영화가 심심찮게 제작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엔 다분히 이데올로기가 깔려있었다. 만일  오늘 날에 어떤 감독이 6. 25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도 이 <기찻길>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리만치 이 이야기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왜 작가는 본격적인 전쟁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도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문장은 유려하지만 선이 그다지 굵지는 않다. 그리고 다분히 여성 취향의 감상도 있어 보인다. 물론 그것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뭔가의 아쉬움이 남는 건 무엇 때문일까? 전쟁문학이 갖는 남성적인 다소 거친 듯한 자극적인 선 굵은 환상(?)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래도 이데올로기를 양념 격으로라도 말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일까?

아뭏든, 아마도 작가는 6. 25를 이만큼이나 유려한 문장으로 다룰 수 있는 마지막 작가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토록 사는데 바빠 6. 25의 이야기를 먼 과거에 듣던 이야기로 치부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드는 생각은 옛날에 우리는 선생님께 6. 25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는데, 요즘에 아이들은 선생님께 무슨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며, 실제로 선생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졌다. 교사를 하는 몇몇 아는 지인들한테 물어 봐야겠다. 별로 대답은 신통치 않겠지만...

** 이 책은 전에 브리즈님 서재 이벤트 때 받은 선물이다. 아마도 그때 당첨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책이다. 서재 이벤트가 좋은 건 바로 이런 것 같다. 당첨되면 내가 알지 못한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

다시한번 브리즈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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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10-13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의 리뷰로군요. 추천 한 방!

stella.K 2004-10-1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역시 바람구두님 밖에 없어요!! 으흑~(감격)

브리즈 2004-10-2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에게 좋은 선물이 되길 바랐었는데, 조금 아쉬우셨나 봐요.
어쨌든 홍성원은 스텔라 님 이야기대로 "6.25를 유려하게 다룰 수 있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죠. 뒤늦게 리뷰를 봤네요. ^^; 추천하고 갑니다.

stella.K 2004-10-23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니어요. 나름대로 좋은 작품이었어요. 정말 브리즈님이 아니었다면 결코 몰랐을 작가였죠. 추천 고마워요.^^
 
Love 파이어 1
우에수기 카나코 지음 / 대명종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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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의 인터넷 써핑을 하나 재미있는 이미지가 있어 이곳 알라딘 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것은 당신은 왜 이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쏠로냐는 것에, 예. 아니오를 화살표 방향대로 따라가 답을 찾는 것이다.  

궁금하면,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530205 를 보라.

거기에 따른 서재 주인장들의 댓글엔 '두려움'이라고 답한 주인장들이 많았다. 나 같은 경우엔 '미숙'이라고 나왔는데, 막연히 짝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만나겠지. 뭐 그런식으로 따라 가다가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난 미숙하기도 하고 두려움도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두려움이 있다고나 할까?  

결혼에 대해 아예 관심없는 것을 제외하면, 결혼을 하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들 것 같다. 가장 좋은 건 어느 한순간 상대에게 그야말로 뿅가서 결혼하게 되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하고, 빠르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기대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좀 더 강해지는데, 그럴 수 있는 확률은 현실적으로 가면 갈수록 희박해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나를 선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건 현실에서 그다지 많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결혼하려고 아둥바둥 거리는 것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히 자존심이 허락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딘가 운명의 짝이 있지 않을까? 나는 항상 이성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길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결혼 상대자를 만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유혹의 기술을 연마하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싶어한다면 미숙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화 '러브 파이어' 한 여자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고 결혼 상대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재치있고 사실적으로 그려간다. 

주인공 다카라는 스물 여덞에 결혼을 안하면 평생 독신으로 살게될거란 어느 정쟁이의 말을 듣고, 독신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좀 황당하지 않은가. 고작 점쟁이의 말을 믿다니. 하지만 이러한 설정도 나쁘지마는 않다. 결혼이란 자기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라고 다들 말하면서도 또 어느 누구는 그래도 몇살이 될 때까지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되지 않을까?

정말 결혼이란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당당히 할 수 있는 것일까? 말은 그렇게해도 막상 현실을 살아가노라면 그렇게 녹녹치는 않을 것이다. 결혼을 하기로 했다면, 어떻게 많은 사람을 만나 보지 않고 좋은 사람을 판별해 낼 수 있는가? 단순히 이상형만 가지고, 쪽지 하나들고 주소 찾아가듯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많이 만나 보는 과정에서 좌절의 아픔도 격고 그러면서 연애 철학자가 되는 것이기도 하겠지.

이 만화책은 총 두권으로 되어있는데, 왜 결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은 나와있지 않다. 그리고 결혼해서 어떻게 살 것이라는 계획도 없다. 그저 오로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그렸을 뿐이다. 거기서 인상적인 건, 주인공 다카라가 이성과의 만남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고 자위하듯 하는 대사였다.

"난 지금까지 인간이란 혼자서 사는 게 편하고 제일 좋은 생활이라고 생각해 왔어...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서 처음으로 알았어. 처음으로 알았어.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있는 게 좋은 것보다 기쁜 일이 많다는 걸."

그렇게 돈을 뜯기고 사기를 당하는 순간 이런 깨달음을 얻는 건 또 뭘까? 그러면서 비록 자기에게 사기친 사람을 오히려 두둔하듯,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만 있는 산노지에게 따귀를 맞자 "여자를 위해서 뭔가를 희생할 용기도 없는  남자한테 맞을 이유는 없어!"라고 절규한다.

어쩌면 연애나 결혼이 어렵다고 말하는 건,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지만, 기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용기가 없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 주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쟁취하려고 한다는 건 좀 유아적 아닌가. 그래도 다카라를 사기친 상대는 비록 목적은 다른 것에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 다카라에게 최선을 다 한다. 나중에 주인공에게 허무한 상처를 줄 망정. 과연 상대에게 최선을 다 한다는 점은 본받을만 하지 않은가?

끝마무리가 다소 싱거운 것 같아도 역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확정하는 순간, 현실에서 정말 이 사람이 내 사람 맞아? 하는 의구심은 가질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믿기로 하는 순간, 옛 애인의 방해 공작도 있을 법하다.

만화는 정말 보여줄 수 있는 한도내에선 충실하게 잘 짚어나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하다보니 주제 의식은 나름대로 있어 보이긴 하지만, 뭔가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인 것 같다. 적어도 진지한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겐 그랬다.

* 만화 리뷰는 처음 써 본다. 만화를 접할 기회가 그다지 않지 않은 나에게  아직 비교하고, 생각하고가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그래도 지난 번 로드무비 이벤트 때 선물 받고 좋은 독서 체험을 하게 돼, 로드무비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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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4-09-13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화를 꽤 좋아하는데 이 리뷰를 읽어보니 마구 읽고 싶어지는데요..^^

설박사 2004-09-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증맞은 표지와는 다른 진지한 서평이네요. ^^

stella.K 2004-09-1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예. 읽어 볼만 합니다.^^
설박사님/오랜만에 뵙겠네요. 제가 좀 그렇습니다. 설익은 진지과라고나 할까요? 하하.

마립간 2004-09-1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을 생각하신다면 <준비된 결혼이 아름답다> (홍일권 저/생명의 말씀사 출판) 도 읽어보세요. (마립간의 평 - 결혼전에 단점을 많이 보고, 결혼 후 장점을 많이 본다. - 결론 결혼 못한다.) 저는 제 자신이 배우자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하다고 느끼면 결혼 상대자를 찾으러 나설 생각입니다. 좋아하다면(사랑한다면) 희생 못 할까?

로드무비 2004-09-1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스스로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하다고 느끼는 날이 과연 올까요?
아무리 양심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도 평생 자신을 회의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지?
아이구참,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건방졌다면 양해해 주세요.
스텔라님, 아유, 세상에 리뷰까지 쓰셨네요.
잘 읽었고요, 스텔라님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아주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stella.K 2004-09-1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그 책 저한테 선물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하하. 농담이어요.^^
로드무비님/어제 졸려서 횡설수설하면서 쓴 흔적이 보입니다요. 그래도 이쁘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마립간님은 이상적이어요. 저도 그렇지만. 로드무비님은 결혼을 하셨으니 현실적인 충고겠죠. 전 왠지 로드무비님 말씀에 한표!^^

바람구두 2004-09-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한 눈에 뿅가서 결혼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까요? 흐흐.
추천...
 
하이파이브 - KI 신서 412
켄 블랜차드.셀든 보울즈 지음, 조천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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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부턴가 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리더는 어때야 한다는 책들이 대거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기류를 태고 나도 아주 가끔은 리더십에 관한 책들을  읽게되곤 한다. 그러나 리더도 혼자 독불장군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리더를 해 먹을 수 있을만한 조직과 모임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만큼 팀 또는 팔로우십도 중요하건만 상대적으로 이 분야에 관한 책은 참 적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 봤었다.

그러던 중 내가 만난 <하이파이브>란 책은 팀에 관한, 즉 어떻게 하면 드림팀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처럼 쉽고 간결하게 씌여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어떻게 하면 좋은 팀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을 알려고 하기 전에, 리더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알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미국내 최하위 초등학교 하키팀인 리버밴드팀을 어떻게 최강의 팀으로 만들어 가는가에 대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야 하키가 그리 인기 종목의 스포츠는 아니지만, 미국이 하키가 인기 종목인 것만큼, 우리나라는 축구나, 배구, 야구, 농구 등이 인기 종목의 스포츠다. 거기서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 팀워크다.

꼭 운동이 아니더라도 팀워크를 이루어서 해야하는 일은 이 세상에 참 많다. 그러나 우린 전통적으로,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주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책은 이 한 사람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위험한지를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드림팀이어서 훌륭한 팀워크를 발휘한다는 것 또한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드림팀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어려움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팀내에서 문제적 인간은 꼭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문제적 인간이 없다면, 내가 문제적 인간이 될 소지가 있다. 왜 어느 팀을 봐도 문제적 인간이 꼭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꼭 딴지걸고 싸움과 분쟁의 단초가 되는 인간 말이다. 그것이 누군가 되지 않으면 나 자신이 될 확률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문제적 인간이 팀원의 한 사람이 아닌 바로 리더 그 자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리더 그 자신이어서 사람을 그저 윽박지르기나 하고, 끝까지 자기의 의견 외에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이 안 중에도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 사람과 그런 조직이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불행하게도 있다. 그런 경우 그는 또 다른 문제적 인간을 허용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결말은 그도 죽고 그 팀도 죽는다.

보스의 기질이 있는 사람은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어떻게든 힘으로 그를 제압하고 그렇지 않으면 팀에서 제거하기도 한다. 그러나 리더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책은 그것을 소설의 형식을 빌렸음에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훌륭한 팀을 만들기 위한 비결,

1. 목적 의식과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는 것.

2. 고난도 기술을 개발할 것.

3.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현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는 신념.

4. 자주 포상하고 인정할 것.

등을 제시한다.  사실 나도 지금까지 몇몇의 모임과 조직을 거쳐봤지만, 사람들 저마다의 가능성과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팀웍이 이루어지지 않에 삐걱거리고, 어느 일정 수준에서 멈춰버리거나 해체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리더에 의해서 또는 어느 특정인에 의해서만 주도되는 모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우린 지난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이전에 유명한 축구 선수 몇몇에 의한 경기가 아니라 팀 선수들 거의 대부분이 고른 우수한 기량을 발휘해 가면서 4강 신화를 이룬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이젠 스타플레이어에 의한 조직이 아닌 팀웤이 중요하단 말일 것이다.   

근데 안타까운 건 어느 모임을 가든 그냥 팀원으로 있다 리더의 자리에 서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우와좌왕하는 모습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자신의 처신 때문에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이끌어 가는 팀을 가장 좋은 팀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리더가 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정치를 봐도 그렇고 어떠한 조직을 봐도 그렇고 인재난이다. 홍수 중에 마실 물이 없다고,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일 할 사람이 없다.

여야가 서로 신경전만 벌이고 있다. 그 시간에 머릿 싸움하지 말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재대로된 팀을 만들고 운영해 나갈 것인가를 연구하면 얼마나 좋을까? 당수니 대변인 앞세워서 반대여론만 만들지 말고, 바른 말하는 사람들 보기 싫어 벌레 보듯 얼굴 구길 생각하지 말고, 리더라면 어떻게 하면 나에게 속한 사람이 그 분야에서 최고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리더는 어쩌면 드러나는 인물이 되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리더가 스포트라이트 밝혀서 뭐하겠는가? 그 팀이 최고의 팀이 되면 자연히 그도 드러날텐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리더층이 두꺼워야 그 나라의 저력이 두텁다. 한 사람의 리더에게 모든 것을 건다는 건 어리석다고.

그런 의미에서 리더란 그 사람이 그 분야에서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나의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면 그 사람에게 이 책을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주 심층적이진 않더라도 공감이 가는 구석은 많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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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8-1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은 이 리뷰를 통해서 알라딘의 리더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텔라님, 현재 37위인 에고이스트님이 무시무시한 양의 페이퍼를 쓰고 있답니다. 21위도 안정권이 아니니 화이팅 하시기를.

stella.K 2004-08-1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관심가져 주셔서. 역쉬 전 마태님의 응원으로 살아요!!
저도 알고 있어요. 21위고. 열심히 써야한다는 거. 근데 누가 내 페이퍼를 관심있게 봐줘야 신나서 쓰죠. 그래도 마태님 응원 받았으니 열심히 써 볼께요. 홧팅! 아자!

파란여우 2004-09-11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좋은 리뷰에 추천이 없는건지...

stella.K 2004-09-11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여우님, 감사해요. 여우님 밖에 없어요. 감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