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富者는 정보도 저축"       
  
富者특성 연구 10년 은행원 문승렬씨

“한국 부자의 80%는 맨손으로 출발해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부자들의 공통점을 배우고 실천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어요.”

부자의 특성을 일반인에게 알리는 ‘부자(富者) 전도사’로 나선 은행원 문승렬(42)씨. 문씨는 은행에 거액을 맡기러 오는 자산가들을 상대하다가 부자들의 특성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10년 전 처음 만난 VIP고객이 허름한 옷을 입은 80대 노인이었어요. 현금 80억원을 가진 대부호란 사실이 믿기지 않았죠. 하지만 한 달에 책을 50권 정독하고, 하루에 신문을 5개 이상 읽으며 지식을 쌓는다는 얘길 듣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부자는 운이 좋았을 뿐이란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던 문씨는 진짜 부자인 그 노인을 만나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부자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부잣집 탐방에 나서기도 수십 차례. 직접 인터뷰를 하면서 어릴 때 교육은 어떻게 받았나, 어떤 친구가 있는지 생활 환경도 꼼꼼히 살폈다.

조선 시대 300년간 10대에 걸쳐 부자로 살았다는 경주 최씨 집안 등 옛 사료도 샅샅이 훑었다. 99년 조선대 경영학과에서 박사 학위도 받는 등 이론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문씨는 10년간 부자 500여명을 만나 인터뷰한 기록을 토대로 부자특성 연구회를 만들었다. 삼성경제연구소 부설 동호회 ‘부자특성연구회(www.seri.or.kr/forum/ric

h)’가 바로 그것. 현재 회원수는 6000여명으로, 백수에서부터 사장까지 연령도 직업도 가지각색이다. 10억~100억원대 부자가 10%, 부자 지망생이 70%, 나머지 20%는 신용불량자 등 빈곤층이라고 한다. 회원들은 두 달에 한 번꼴로 부자를 초빙해 세미나를 열거나 독서 토론을 갖는다.

그런데 도대체 부자의 특징이 뭘까. 문씨가 소개하는 손에 잡히는 부자 되기 10계명은 다음과 같다. ▲긍정적 사고 ▲자기계발 철저 ▲사람관리 철저 ▲자녀교육에 열심 ▲가정 화목 ▲강한 실천력 ▲부자일지 기록 ▲건강 관리 ▲목표가 뚜렷하며 젊을 때 종자돈을 모은다 ▲투자용 빚은 감수하지만 사치는 두려워한다.

“부자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금전 교육을 시킵니다. 아이한테 학원비를 주면서 ‘네가 학원에 안 가고 성적을 올리면 학원비를 주겠다’고 제안해 집안의 돈이 밖으로 새지 않게끔 하지요. 또 어렸을 때부터 재산이 얼마인지 소상하게 알려줘서 경제 감각을 가르칩니다.”

문씨는 또 “부자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작은 정보 하나도 흘려듣지 않는다”고 했다. 돈도 자신에게 애정을 쏟는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 “돈에는 관심 없다며 애써 외면하는 사람은 평생 가난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부자의 공통점을 꿰뚫고 있는 문씨는 현재 부자가 됐을까. 그는 “10년 장기 계획을 세워 열심히 실천 중”이라고 짧게 답했다. 일단 수입의 20~30%부터 꼬박꼬박 저축한다는 것. 2014년 부자특성연구회에서 문씨의 사례를 연구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글=이경은기자 diva@chosun.com )

(사진=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waho 2004-04-1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자 되기 쉽지 않죠. 운과 노력이 따라야하지 않을까...요즘 전 아이 가지고 로또 사는데...바보 같죠? 교육비 생각하면 얼른 돈 벌어얄텐데...경제적으로 바보라...머리 좋은 놈이 나오기만 바란답니다.ㅋㅋ 부자들이 더 알뜰하고 돈 무서운 줄 알더군요.

stella.K 2004-04-15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 보면 부자는 타고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만들어지는 면도 상당히 있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자에 대한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자기는 되지 못했으면서 은근히 부러워하고, 자기 못된 걸 부자를 색안경 끼고 보는 것으로 대치하고...뭐 그런거. 우리나라도 2세들에게 부자교육 시킬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도 있잖아요.
 

앤티크-인사동, 무진장의 보물(강엘리야 글·그림)=꼭 탐정 만화를 읽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만큼 재미있고, 속도감이 넘칩니다. 1권에 해당되는 이 책은 서울 인사동과 북촌이 주무대입니다.

고구려 을파소 재상 가문의 소녀 지로가 열 살짜리 사동이와 풀어가는 수수께끼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가보로 내려오는 칼에 얽힌 비밀은 무엇일까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점쟁이 노인은 누구일까요? 다빈치기프트, 7800원

 

마침 앤티크님을 위한 책이 나왔다. 앤티크님은 아실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4-04-1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이거 정말 저를 위한 책이로군요!! 앤티크-라는 글자체도 마음에 들어요~ ^^ 어,그런데 여기서 앤티크는 뭘로 쓰인건지...저 퍼갈께요~ ^^
 

"행복하건 행복하지 않건 보드카가 있는 한 징징거리지 말지니"
아이작 B. 싱어 장편소설/ 정영문 옮김/ 다른우리/ 399쪽

▲ '쇼샤'의 책표지
사랑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굴레를 쓴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 운명적인 박해가 가해질 때면 역사라는 이름의 핑계조차 그럴싸하다. 이 소설은 폴란드에서 러시아식 공산 혁명을 열망하던 지식인들이 스탈린에 대한 처절한 배신감으로 방황하던 때의 이야기다. 이념적 혼란과 추락에 떠밀리는데 나치의 전차바퀴 굉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면 사랑은 어떤 토굴에 머리를 처박는가.

이 소설은 외형적 줄거리를 엮기 위해 20세기 전반 동유럽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신산했던 삶을 시공간의 배경에 늘어놓고 있다. 1910년대 중반부터 독일이 침공하기 전까지 폴란드에서 이중으로 내몰림을 당하고 있던 그들의 삶이 적실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전쟁이 지나가고, 해방과 피안의 상징이 된 미국으로의 망명과 성공이 주인공들의 운명을 또한번 휘저어 놓는다.

주인공은 바르샤바의 크로크말나 거리 10번지에 살았던 아론과 쇼샤다. 백짓장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아론은 히브리어와 아람어(옛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사용하던 언어)와 이디시어(독일어, 히브리어 등의 혼성언어)를 쓸 줄 아는 천재 소년이다. 랍비의 아들인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극작가로 성공을 거둔다. 쇼샤는 가죽가게집 딸이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공립학교에서 2년 정도 뒤처져 있는, 말하자면 약간 바보 취급을 받던 아이였다.

엄격한 유대 가정에서 자라난 아론에게는 ‘내가 하고 싶어한 모든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사람을 그리면 십계명 중 두번 째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었고, 다른 소년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면 그것은 중상이었으며, 누군가를 비웃으면 그것은 조롱이었고, 이야기를 꾸며내면 그것은 곧 거짓말을 의미했다. 그러나 아론은 이미 아르키메데스, 코페르니쿠스, 뉴턴 그리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을 읽고 있었다.


쇼샤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미숙한 아이였지만, 아론은 그녀를 찾아가 그가 읽고 듣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해준다. 쇼샤도 아론의 이야기를 자기 나름의 수준대로 이해하며 좋아한다. 그러나 쇼샤네 가족이 이사를 하면서 서로 헤어진다.

아론은 쇼샤를 점차 잊어 간다. 예술에 대한 열망과 퇴락한 생활의 캄캄한 격차 속에서 아론은 글쓰기를 시작하는 한편 여러 여인들과 연애에 빠진다. 문학에 열정을 갖고 있던 셀리아 부인,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모스크바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던 도라 스톨니츠, 아론에게 희곡에 대한 열정을 일깨워주는 미국인 여배우 베티 슬로님, 그리고 하숙집 하녀인 테클라였다. 도대체 그는 ‘죽어서 무(無)로 돌아가기 전에 쾌락을 찾아야’(87쪽) 했다.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서 꼼짝 못하고 있던 그때 유대인의 굴레는 섹스와 토라(구약 첫5권), 그리고 혁명 세 가지였다. 히틀러가 군화 발굽을 들이밀기 전 그 시절이 절대적으로 암흑이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마치 러시아 노래처럼 ‘행복하건 행복하지 않건/ 보드카와 포도주가 있는 한/ 징징거리지 말 일’이었다.

다만 ‘모든 약점과 탈선은 절대적으로 자유롭고자 하는 충동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야만 그 ‘자유가 나를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까지 이해할 것이란 충고를 하고 있다. 그래서 ‘메시아가 오면 구름에 실려 가게 될 곳’인 팔레스타인 땅을 동경하다가 “그걸 믿어요?”라는 질문에 “아뇨, 내 사랑”이라고 답하게 되는 것이다.

아론은 전쟁이 끝나기 전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쇼샤라는 것을 깨닫고 그녀와 결혼식을 올린다. 아론이 문학적 아이덴티티를 찾고, 삶의 본령에 올라서는 것은 쇼샤 덕분이다. 전쟁의 와중에 그녀는 목숨을 잃는다.

아이작 싱어는 특유의 문체로 솜씨좋게 잘려나간 생선회 같은 단문장의 연결, 그리고 문장전환의 상큼한 묘미를 맛보인다. 틈만 나면 그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체념, 공산주의식 탈취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인간의 비참을 외면하는 신에 대해 원망을 드러낸다. 사랑도 예술도 결국은 ‘장난감을 부순 후 울면서 그것을 다시 맞추는 아이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은 폴란드 태생의 아이작 싱어가 노벨문학상을 받던 1978년에 발표됐다. 싱어 자신도 랍비 교육을 받았으며, ‘쇼샤(Shosha)’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김광일기자kikim@chosun.com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강정인 지음 | 아카넷 | 586쪽 


간혹 ‘서양의 역사와 문화’라는 교양 과목을 가르칠 때가 있다. 학생들과 대면하는 첫 시간부터 늘 곤혹스럽다. ‘서양’이나 ‘동양’이 역사·지리적 실재가 아니라 만들어진 ‘상상의 역사 지리’임을 강조하노라면, ‘서양의 역사와 문화’라는 과목의 정당성을 처음부터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실정성이 부정되면, ‘서양사’ 전공 교수로 분류되어 ‘서양사’를 연구하고 가르쳐야 하는 내 자신의 학문적 존재와 재생산의 근거가 사라진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서양’의 대학에는 ‘서양사’라는 전공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 대학의 지식 분류 체계가 ‘서양’보다 더 서양적인 것이다.

강정인 교수(서강대·정치학)의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서양’보다 더 서양적인 한국의 지식사회에 보내는 차분하면서도 통렬한 경고장이다. ‘서구중심적 세계관을 내면화’한 이 땅의 지식인들에 대한 그의 비판은 자기 성찰에서 출발하기에 단단한 존재론적 기반을 갖는다.

그에 의하면 ‘서구중심주의’는 서구우월주의, 서구보편주의·역사주의, 문명화·근대화·지구화라는 세 가지 명제로 압축된다. 서구는 다른 문명에 비해 내재적으로 우월한 요인들을 갖고 있어서 먼저 근대 문명의 길로 접어들었고, 서양의 근대가 걸어 온 길은 여타 문명권도 본받아야 할 인류 역사 발전의 보편적 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서구예외(例外)주의’와 ‘오리엔탈리즘’으로 요약된다. 계몽주의, 자유주의, 합리주의, 진보사상 등을 특징으로 부여하면서 서구를 특권화하여 ‘유럽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만든 서구예외주의와, 비유럽은 자유주의, 합리주의, 법치주의, 사유재산 등이 결여되었다는 ‘부재의 신화’를 만든 오리엔탈리즘은 사실상 한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서구중심주의’는 제국에 앞서 제국을 정당화하는 지식 체계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로부터 영국 이주민들의 재산권을 옹호하고자 했던 로크의 재산권 이론에서부터 기독교에 대한 서구예외주의와 유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 찬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이르기까지 그 목록은 끝이 없다.

사이드, 채터지, 블로트, 프랭크, 영 등 탈식민주의 연구자들의 선구적 업적을 계승한 저자의 이러한 문제 의식은 선언적 차원을 넘어선다. 한국의 현실을 서구의 경험과 개념에 두들겨 맞추는 서구중심주의적 심성에서 한국 보수주의의 특수성을 끌어내는 저자의 신선한 시도는 자신의 문제 의식을 학문적으로 감당하고자하는 한 지식인의 고투를 보여준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을 지적하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제국의 지배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상대적으로 쉽다. 21세기의 탈식민적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더 이상 ‘군림하는 제국’이 아니라 ‘헤게모니로서의 제국’이다. 지배하지 않는 듯한 외양을 띠는 헤게모니는 늘 숨어 있다. 그리고 더 심층에서 더 정교하게 작동한다.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제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비판 작업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 이데올로기가 소외와 억압의 기제이며 비(非)서구 사회의 지식인이나 일반인 모두 그 피해자라는 저자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서구 사회 자체 내에서도 시민을 규율화하고 주변인을 만들어내는 소외와 억압의 기제로 작동한다.

지구적 차원의 민주화 혹은 ‘다중심적 다문화주의’에서 대안을 발견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동양’의 피해자뿐 아니라 ‘서양’의 주변인에게도 눈을 돌릴 때,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도 ‘서양’이 있듯이 뉴욕에도 ‘동양’이 있는 것이다. ‘서양’의 해체는 ‘동양’의 해체이지, ‘동양’의 반사적 구축은 아닌 것이다.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철학으로 읽는 타르코프스키 영화 7편
 김용규 지음/ 이론과 실천 / 335쪽 

영화가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긍정하기 쉽잖은 질문에 만일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란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편 데뷔작 ‘이반의 어린시절’(1962)에서 유작 ‘희생’(1986)까지 모두 7편에 이르는 걸작들에 담긴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 지향점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바로 구원일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 같은 책을 보면 그가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태도로 영화작업에 매달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예술가였고 철학자였으며 동시에 구도자였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영화 7편을 철학적으로 치밀하게 해석해낸 역작이다. (엄청난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영화라는 매체를 빌려 (골방에 유폐된) 철학을 설명하려는 책들은 많이 나왔지만, 영화 자체를 철학적으로 해설한 책들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위대한 창작자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는 이 책은 단연 빛난다. 저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10부작 영화 ‘십계’를 한 편 한 편 꼼꼼히 다뤄낸 책 ‘데칼로그’에서도 영화 해석의 또 다른 깊이를 보여준 바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개념들은 그 자체로 교양과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감독의 영화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동원되는 도구에 가깝다. 자전적인 작품 ‘거울’을 해설하기 위해 라캉을 끌어들이고, ‘이반의 어린시절’ 속 현대문명에 대한 위기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쿠제의 저서 ‘일차원적 인간’과 연결짓는 등 상대적으로 익숙한 독법도 있지만, ‘안드레이 류블료프’의 주인공이 처한 실존적 위기를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윤리학으로 해설하는 것처럼 독특한 시도도 담겨있다. 학문의 딱딱한 개념어로 예술의 풍부한 상징을 난도질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이다.


▲ 타르코프스키의 대표작 '노스탤지어'
저자는 각 작품을 장별로 분석하면서도 ‘타르코프스키적 구원’이란 중심테마에 대한 관심을 내내 잊지 않음으로써 이 책에 튼튼한 척추 하나를 심어놓았다. 첫 작품 ‘이반의 어린시절’을 타르코프스키 예술 세계 전반에 대한 ‘위대한 질문’ 자체로 인상적 자리매김을 한 저자는, 마지막 작품 ‘희생’에 대한 글을 맺는 자리에서 애초 제기한 물음을 다시 상기시킨 뒤 타르코프스키의 말을 인용해 답변을 시도한다.

그리고 한 빼어난 영화 철학자의 뇌와 심장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려 했던 이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독자(관객)의 윤리적 결단을 상기시키는 묵직한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다른 감독에 대한 책이라면 너무 많이 나아간 결말일 확률이 높겠지만, 그게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것이라면, 사실 이보다 더 적절한 마무리를 찾기도 어렵지 않을까.

(이동진기자 djlee@chosun.com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