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아카데미상이 있는 반면, 골든 래즈베리상이란 것도 있습니다.
래즈베리상(줄여서 래지상이라고도 합니다)은
아카데미상 후보 발표 바로 다음날 후보를 발표하고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시상식을 합니다.
아카데미의 권위적 성향을 조롱하는 의도도 깔려 있지요.
이 상은 1981년 존 윌슨이라는 사람이 집에서 친구들을 초청해 조촐한 파티를 열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TV로 지켜보다가 결과에 실망해 불평을 늘어놓으며
장난 삼아 집에서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수상작을 선정하는 시상식을 연 데서 비롯됐습니다.
대부분 진보 성향의 젊은 층이 주도하는 영화제라 정치적으론 좀 치우친 경향도 있지만
할리우드의 구태의연한 스타시스템과 무책임한 블락버스터들에 일침을 가할 떄도 있습니다.
올해는 주로 부시 대통령과 할리 베리가 도마에 올랐네요.
사실 부시를 지지하냐 반대하냐를 떠나서
부시 대통령을 '최악의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린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일 이 영화가 부시를 지지하기 위한 영화였다면, 그때는 '최악의 남우주연상'이 성립하겠지만
'반 부시'라는 '화씨 9/11'의 제작 의도에 비추어봤을 때, 영화 속 부시 대통령의 연기는
(아주 멍청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자료 화면만 골라 썼기에 부시 지지자들조차 실망스럽게 만드는)
연기로 치면, 너무나 적합한, 뛰어난, 설득력 있는 연기였으니까요.
사실 부시가 재선에 실패했다면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은 1등공신 대접을 받았을테고
'화씨 9/11'에서의 열연으로 전세계에 수많은 '앤티 부시'를 만들어낸 주연배우 부시 대통령은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낙선시킨 주역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 면에서 이번 래즈베리상에선 부시보다는 할리 베리가 개인적인 관심사입니다.
할리 베리가 '몬스터볼'로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사실 할리 베리가 그 정도로 역대 흑인 최고의 배우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이 있었지만
어차피 유색인종 대접이라는 아카데미의 정치적 고려가 일부는 작용한 것이고,
어떤 쪽으로든 아카데미의 역사가 진보하는 것 같아서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후 할리 베리의 행보는 그다지 흐뭇하지 못하네요.
2002년 할리 베리의 수상 직후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카데미 수상 배우라고 해서 고상한 아트 영화에만 출연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내가 끌리는 영화라면 언제나 선택할 것이고
전과 달라지지 않겠다"고 시원시원하게 말하던 게 기억납니다.
증명이나 하듯 바로 다음에 '007 어나더데이'에 섹시한 몸매를 자랑하는 본드걸로 출연했지요.
이후에도 '엑스맨2' '캣우먼' 등에서 '몸으로 하는 연기'를 주로 하더니만
급기야 3년만에 래즈베리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말았네요.
아카데미 수상 이후 조금은 달라지는 것도 괜찮았을텐데 말입니다..
아래는 오늘자에 실린 기사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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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 등
부시 행정부 인사들이 대거 래즈베리상 최악의 배우상 후보로 올랐다.
래즈베리상은 아카데미상과 대조적으로
영화 관련 각 부문에서 최악의 성취도를 보인 배우 및 작품에 수여하는 상.
부시와 럼즈펠드, 라이스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반(反) 부시 다큐멘터리 ‘화씨 9/11’에 등장해 최악의 주연상 및 조연상 후보로 선정됐다.
이들은 영화에 삽입된 자료화면에서 지도자로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화씨 9/11’에서 껌을 씹으며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하든 국민은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단 한 장면 출연으로 ‘최악의 여우조연상’ 후보가 됐다.
그밖에도 '알렉산더'의 콜린 패럴, '저지 걸' '서바이빙 크리스마스'의 벤 에플렉,
'리딕'의 빈 디젤, '폴리와 함께'의 벤 스틸러 등이 '최악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편 영화 ‘캣우먼’에 출연한 배우 할리 베리 는 ‘최악의 여우주연상’ ‘최악의 커플상’ 후보에 올랐다.
2002년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지 불과 3년만이다.
‘캣우먼’은 ‘최악의 작품상’ ‘최악의 여우조연상(섀런 스톤)’ 등 총 7개 부문 후보로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알렉산더’는 ‘최악의 작품상’ ‘최악의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에 올랐다.
그밖에도 한때 연인이었던 벤 애플렉과 제니퍼 로페즈가 각각 ‘저지 걸’로 나란히 '최악의 커플상' 후보로 올랐고,
‘80일간의 세계일주’에 깜짝 출연한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최악의 남우조연상’ 후보로 선정됐다.
아카데미상의 권위에 도전하고 할리우드를 조롱하는 뜻에서 출발한 래즈베리상은
골든래즈베리재단 회원 500명의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해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수여한다.
물론 수상자가 시상식장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자연기자 achim@chosun.com
*참고로 래즈베리상 노미네이션 리스트입니다.
Worst Picture:
- Alexander
- Catwoman
- Superbabies: Baby Geniuses 2
- Surviving Christmas
- White Chicks
Worst Actor:
- Ben Affleck, Jersey Girl and Surviving Christmas
- George W. Bush, Fahrenheit 9/11
- Vin Diesel, The Chronicles of Riddick
- Colin Farrell, Alexander
- Ben Stiller, Along Came Polly, Anchorman, Dodgeball: A True Underdog Story, Envy and Starsky & Hutch
Worst Actress:
- Halle Berry, Catwoman
- Hilary Duff, Cinderella Story and Raise Your Voice
- Angelina Jolie, Alexander and Taking Lives
- Mary-Kate and Ashley Olsen, New York Minute Shawn and Marlon Wayans, White Chicks
Worst Screen Couple:
- Ben Affleck and either Jennifer Lopez or Liv Tyler, Jersey Girl
- Halle Berry & either Benjamin Bratt or Sharon Stone, Catwoman
- George W. Bush & either Condoleeza Rice or his Pet Goat, Fahrenheit 9/11
- Mary-Kate and Ashley Olsen, New York Minute
- Shawn and Marlon Wayans, White Chicks
Worst Supporting Actress:
- Carmen Electra, Starksy & Hutch
- Jennifer Lopez, Jersey Girl
- Condoleeza Rice, Fahrenheit 9/11
- Britney Spears, Fahrenheit 9/11
- Sharon Stone, Catwoman
Worst Supporting Actor:
- Val Kilmer, Alexander
- Arnold Schwarzenegger, Around the World in 80 Days
- Donald Rumsfeld, Fahrenheit 9/11
- Jon Voight, Superbabies: Baby Geniuses 2
- Lambert Wilson, Catwoman
Worst Director:
- Bob Clark, Superbabies: Baby Geniuses 2
- Renny Harlin and/or Paul Schrader, Exorcist 4: The Beginning
- Pitof, Catwoman
- Oliver Stone, Alexander
- Keenan Ivory Wayans, White Chicks
Worst Remake or Sequel:
- Alien vs. Predator
- Anacondas: Hunt for the Blood Orchid
- Around the World in 80 Days
- Exorcist 4: The Beginning
- Scooby Doo 2: Monsters Unleashed
Worst Screenplay:
- Alexander
- Catwoman
- Superbabies: Baby Geniuses 2
- Surviving Christmas
- White Chicks
Worst Razzie Loser of Our First 25 Years:
- Kim Basinger
- Angelina Jolie
- Ryan O'Neal
- Keanu Reeves
- Arnold Schwarzenegger
Worst Drama of Our First 25 Years:
- Battlefield Earth (2000)
- The Lonely Lady (1983)
- Mommie Dearest (1981)
- Showgirls (1995)
- Swept Away (2002)
Worst Comedy of Our First 25 Years:
- The Adventures of Pluto Nash (2002)
- Dr. Seuss' The Cat in the Hat (2003)
- Freddy Got Fingered (2001)
- Gigli (2003)
- Leonard Part 6 (1987)
Worst Musical of Our First 25 Years:
- Can't Stop the Music (1980)
- From Justin to Kelly (2003)
- Glitter (2001)
- Rhinestone (1984)
- Spice World (1998)
- Xanadu (1980)
출처:인사이드 할리우드